5-6.
사실 촛불이 변하기 위해서 정말 필요했던 것은, 진보진영 내지 조직된 노동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약소자들과의 거대한 합류였다. 촛불은 그야말로 '원군'을 필요로 하고 있었고, 사실 작년 촛불 패배의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이 원군이 어디에서도 나타나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촛불은 (데리다적인 의미에서의) 보충대체(supplement)를 필요로 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진정한 의미에서의 데모스로 만들어줄 수 있는 것). 
나는 작년에 촛불의 중간계급적 성격을 지시하면서, 노동자를 비롯한 기층 민중의 지원없이 촛불의 싸움은 승리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을 역설했었다. 참세상에 올렸던 '컨테이너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라는 글을 통해서 내가 말했던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나는 거기에서 컨테이너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물질적 힘이 반드시 요구되지만, 그것은 단순한 폭투냐 비폭이냐의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가 아니며, 그 자리에서 단순히 컨테이너를 넘어설 것인가 말것인가라는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도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 논의가 파업 등을 조직화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논의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계급적 촛불 자신이 혼자서 자신의 과업을 완수할 수 없는 바로 그 때에 노동자들이 나서서 그것을 급진화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 이 역시 동의한다. 그러나 촛불이 스스로 원군을 거부했다는 사실 역시 지적되어야 할 게 아닌가? 촛불시민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거부하는 어떤 이질적인 것도 시위현장에 들어오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다함께가 잘한 건 아니지만, 확성기녀 사건 이후로 운동권들은 철저하게 배척받았다. 그래서 운동권들은 시위에 나와도 말없이 촛불시민들이 하는대로 따라다녔다. 지인에게 들은 가장 웃기는 사례는 민주노총 금속노조 아저씨들이 촛불시민들을 따라 열심히 경찰을 피해 다니면서 게릴라 시위를 했다는 것이었다. 파이 하나 쥐어주면 경찰은 우습게 뚫어버리는 그 무서운 전투력의 아저씨들이 “깝치지 마라, 운동권!” 정서에 짓눌려 시민들을 따라 뜀박질을 하고 있었던 거다. 그게 촛불시위 전성기의 시위 환경이었다. 촛불시민은 물론 단일하지 않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은 스스로를 ‘시민’이라 칭하면서 운동세력과 거리를 두었고 그들을 불순물처럼 취급했다.



그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더 재밌었던 것은 운동권들이 그렇게 철저히 촛불시민들의 시위문법에 복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촛불시위가 시들해지자 우리 ‘시민’들이 그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과 운동권에게 돌렸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끼어들어서, 혹은 민주노총이 끼어들지 않아서 시위가 실패했다는 식의 얘기는 촛불강경파들에게 흔히 들을 수 있는 얘기다. 여기서 웃기는 점은 크게 세가지다.



1) 자신들은 실패의 책임을 지식인, 운동권 등에 돌리지만, 남들이 촛불시위의 실패의 요인을 분석한다고 말하면 “촛불이 실패했다니!! 이 반동!!!” 이라고 외치고 있다는 점.


2) 자신들이 시위에서 운동권을 배제해놓고 시위실패의 책임을 운동권에게 돌린다는 것. 시위를 장악하셨으면 실패(?)의 책임도 스스로 지셔야지.

3)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나는 개인일 뿐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는 것. 자기 책임은 아니라고 말하면서도 대체적인 분위기가 그랬다고 하면 성질낸다는 것. 자기가 한 거 아니라면서 성질은 왜?


촛불시위가 운동세력 때문에 타락했다는 얘기는 일부 촛불강경파와 조선일보가 같이 하는 얘기다. 그들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김지하. 최원 님의 얘기는 물론 김지하의 얘기와 정반대다. 그리고 나는 그 얘기에 동의한다. 하지만 최원 님도 운동권이 촛불시민들의 ‘외부’였던 것처럼 말한다. 그래야 했다고 말한다면 동의할 수 있는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았다. 운동권은 촛불시위대의 내부에서, 자신의 색깔을 죽이고 숨죽이고 있었다. 시위대가 진화를 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운동권이 유입되면서 촛불시민도 변하고 운동권도 변해야 했다. 물론, 그런 변화가 전혀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촛불시민들의 대체적인 의식은 그 ‘변화’를 순수함의 상실로 보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여기서 촛불강경파와 김지하가 만나는 것이다.




“곧 자신을 성공적으로 구성하는 데에 필수적이지만, 그 보충물을 자신에게 추가하고나면 그자신을 변질시켜 대체할 어떤 것” 그 무엇보다도 촛불 자신이 그것을 두려워했다. 기륭 현장에서 저 유명한 82cook 회원분들을 몇 명 만났다. 기륭을 위한 회의를 할 때 그분들이 두려워한 것은 자신들이 촛불시위대와 82cook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떠나 고립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논리적이고 정치적인 설득보다는 정서적인 공명을 강조하는 쪽으로 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분들은 말했다. 촛불시위보다 한발 더 내딛어 기륭으로 온 그분들은 소수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나는 어차피 이런 운동은 소수가 하는 것일 수밖에 없고, 논리적이니 정서적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보다 훨씬 힘이 센 상대편의 정책(?)에 따라 대응할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촛불시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들은 차라리 이런 분들, 어떤 의미에서는 ‘새로운 운동권’의 탄생이다. 



촛불시위를 그 자체로 다중의 봉기로 예찬하려고 하는 조정환 류(정서적으로 조정환에게 공명하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해서)에게 해야 할 말은 이런 거다. 촛불에서 한발 더 내딛은 이분들은 촛불시민인가, 아니면 촛불시민이 아닌가? 그분들은 스스로를 촛불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어떤 촛불들은 그들을 불순하다고 여기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촛불이기도 하고 촛불이지 않기도 한 것이 아닌가? 촛불이 가야 할 길도 결국 이렇게 촛불이 아닌 다른 것이 되어야 하는 길이 아닌가? 촛불에 대한 무조건적인 예찬은 촛불의 긍정성을 말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에는 이런 변화의 에너지를 가로막아 촛불을 박제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김지하의 촛불 예찬과 조정환의 촛불 예찬은 어떤 의미에서 다른 것일까? 조정환이 촛불시위의 존재론적 승리를 운운할 때 그것은 일견 형이상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촛불의 스펙터클에 대한 현혹에 불과한 것이 아닐까?


7-8.
“이 점에 있어서는 여전히 내 판단은 변하지 않았다. 촛불이 패배한 시점은 정확히 민주노총의 파업이 흐지부지된 그 시점이었다. 바로 그 전에 백만을 동원하면서 명예가 걸린 마지막 전투를 치렀지만, 곧바로 촛불은 가시적으로 사그라져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촛불 자체의 한계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촛불이 문제가 아니라, 바로 기층 운동들이 그만큼 붕괴되어 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백승욱 교수와 같은 경우, (여기저기서 들리는 말에 의하면) 문제의 그 글에서 촛불이 87년보다도 못했던 것은 그것이 789 노동자들의 진출과 같은 것조차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것을 보면 분명해진다고 말한 것 같은데, 정말 가당치 않은 이야기다. 그 열린 공간에서 숟가락으로 떠주는 밥도 먹지 못한 것이 바로 기존의 운동진영들이었다. 87년에 노동자들은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바로 6월 항쟁이 열어놓은 정치공간 속으로 일거에 진입해 들어왔었다면, 2008년에 노동자들은 (이후 벌어진 조직내 성폭력사건에서도 드러났듯이) 그 조직들의 파산을 향해 이미 나아가고 있었고(지금도 나아가고 있듯이), 이 때문에 그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촛불의 한계란 말인가?“ 



--> 그런데 촛불 자체가 이미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탄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기존 운동권들을 무시한 것은 충분히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무시 자체에 대해 딱히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기층 운동들이 붕괴되어 있는 상황에서, 게다가 촛불시민 스스로가 그 운동권들을 갈구고 자기 내부에 편입시키면서 운동을 전개했다면, 당연히 촛불시위 정국의 한계는 촛불의 한계다. 촛불이 문제라서 뭐가 안됐다는게 아니라 그 상황에 촛불밖에 없었고 촛불이 뭔가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한계를 논한다는 것이다.



(운동권들이 무력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에겐 "열린 공간"이 아니었고 그들은 밥그릇은커녕 숟가락도 지급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했어야 한다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언제나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촛불에 대한 분석과 별개의 문제다. - 참고로 내가 촛불시위 정국에서 가장 높이 치는 좌파의 활동은 칼라티비가 아니라 일부 촛불 시위대를 기륭으로 끌어들인 '릴레이 동조 단식'이란 기획이다.)


촛불의 한계를 심심해서 논하겠는가? 촛불을 통해 사회가 어느 정도 변했으면 좋았겠는데, 충분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고민해 봐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고민이 없다면 손석춘 류의 ‘촛불정당’ 운운하는 코미디가 계속해서 이어지지 않을까?



조정환은 촛불시위가 성공과 실패를 논할 수 없는 것이며 존재론적인 승리를 거두었다고 말한다. 뇌내망상에 의한 정신승리로밖에 볼 수 없다. 촛불시위대가 거리에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겠다는 지향을 피력한 것도 아닌 이상, 그네들의 요구는 권력에 대한 실질적인 요구조건을 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요구조건이 수용되지 않으면 진 거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 한편으로 조정환은 이명박 정부가 잠깐 스톱했고 조중동이 타격을 받았네 하면서 촛불의 성과를 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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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글은 최원의 글이고 다른 건 한윤형의 글이다. 강조는 두 사람의 생각 중 내 생각과 닿는 부분이다. 최원의 글에 대해서는 한윤형이 거칠지만 할 말은 했다. 하지만 최원의 글의 전체적인 방향에 대해서 나는 동의하는 편이다. 나는 기존 운동권을 탐탁케 생각치는 않지만 그들이 어떤 형태로든 포괄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지 경계선 밖으로 몰아야된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외에도 촛불에 대해서는 나도 몇 마디 거들고 싶은 말은 좀 더 있고,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안쓰겠다. 저 이야기들을 예전에 어떤 형태로든 했었던 것들이다. 이 말은 '촛불'이 별볼일 없었다거나 '촛불'이 별반 쓸모없는 한 번의 액션이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촛불을 이간하려는 것도 촛불에 참여한 사람들의 소중한 뜻에 침을 뱉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노동자로서 촛불에 참여했었고,또 생태주의 지지자로서 참여했었고, 그냥 아이의 아빠로 아이와 함께도 참여했었고...하여간 왠갖 경험을 빌미로 발언권을 갖을 정도의 물질화된 나의 투쟁의 토대를 만들 짓은 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황지우 <뼈아픈 후회>에서 되뇌였던 구절이다. "젊은 시절 도덕적 경쟁심에서 자청한 내 고난도.." 일상을 살며 투쟁해야 했던 시민들에게 촛불이 엄청나게 고난스러운 행군은 아니었다. 알아서 요령껏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물론 생업에 물적,심적 피해는 없을 수 없다. 그건 자랑스러워해야할 일은 아니고 당연히 감수해야할 필요조건이다. 그 정도의 피곤함의 누적과 지속적 분노상태로 인한 정서적 분열, 잡혀갈 수도 있다는 모종의 불안감마저 없는 시위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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