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레 동안 그들은 수많은 장작을 날라왔다. 그러나 열 번째로 인간에게 빛을 가져다주는 새벽이 밝았을 때/ 그들은 눈물을 흘리며 대담한 헥토르를 밖으로 들어내어/ 그의 시신을 높다란 장작더미 위에 올려놓고 거기에 불을 질렀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이 나타나자 이름난 헥토르의 장적더미 주위로 백성들이 모여들었다. ...<일리아드>, 24권 784행-789행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중에서 단 한 장면만을 꼽아야 한다면 나는 '프리아모스 왕, 아들 헥토르의 시신을 찾기 위해 아킬레스를 찾다' 를 고를 것이다. 아킬레우스의 분노에 의해 처참하게 죽임을 당한 아들을 찾기 위해 노구의 왕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리스 동맹의 천막을 찾는다. 신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의 행동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헥토르의 장례를 위해 며칠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프리아모스는 이렇게 대답한다. " 열하루째 되는 날 그를 위해 무덤을 만들어줄 것인즉, 열이틀째 되는 날 꼭 필요하다면 우리는 싸울 수 있을 것이오". 아킬레우스는 선뜻 이렇게 답한다. "프리아모스 노인이여! 그 모든 것이 그대의 명령대로 될 것이오."

준족의 전쟁-기계 아킬레우스의 이 결정은 단순한 영웅에서 한층 성숙한 영웅으로의 변모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실제로 아킬레우스는 프리아모스와의 12일 장례기간 약속을 지켜준다.
이명박씨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라'는 말의 메아리가 채가시기도 전에 당장 그날 밤부터 이런식으로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는 늘 여론의 뒷북을 타고 도는 일을 한다. 과잉 대처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하지만 이 기간동안 어떤 움직임이 있을지 안테나를 높이 세우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하다 보니 다른 종류의 크고 작은 마찰은 불보듯 뻔하다. 영화 <친구>의 마지막 장면에도 장동건의 졸개가 유오성을 막으려할 때 장동건이 이렇게 말한다. "그냥 보내줘라... 오늘 아부지 제사라 카더라...보내줘라." 조폭도 제사는 챙겨준다.
개인적으로 명계남을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는 어제 너무 흥분한 나머지 "국민이 죽여놓고 무슨 국민장이냐?" 라고 날선 말을 했다. 상가집에서 흥분해서 나온 말은 사실 그냥 잊어주는게 예의이다. 그렇지만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것에 대해 심리적으로 부딤감을 갖는 이들도 많아서 이런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명계남의 발언은 정말 흥분해서 뱉은 말에 지나지 않는다.
명계남은 노무현 대통령을-망자를 언급하는 행위가 다시 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망설이게 된다.-뽑아주고 지켜주지 못한 '대중'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해자들이 어떻게 국민장을 할 수 있냐는 말이다. 얼핏들으면 또 그럴듯 해보이고 뭔가 죄책감때문에 고개를 떨구어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이에 앞서 대표적 친노 인사로 유명한 영화배우 명계남(57)은 자살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이 국민장으로 치러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데 대해 "국민이 죽여놓고 무슨 국민장을 하느냐"며 "국민장을 하면 가만 안 놔두겠다"고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명계남은 이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던 192명의 문상이나 화환을 절대 받아줄 수 없다"며 "조중동(조선, 중앙, 동아일보) 기자들이 들어오면 가만 안 두겠다"고 말했다.
먼저 명계남의 첫번째 착각은 '대통령과 주군'을 혼동하는 것에 있다. 명계남에게 대통령은 주군에 가까울지 모르지만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유권자에게 대통령은 동일한 충성을 바쳐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즉 대통령의 임기 내에 대통령에 대한 판단은 여러가지 형태로 수정될 수 있고 수정되어야만 한다. 명계남은 자신의 입장을 과잉일반화해서 '주군에 대한 충정'을 말하고 있다. 명계남 개인으로는 그런 행동 양식이 타당할 수 있고 지조있는 방식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대중에게 전도시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먼저 노무현 전대통령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단일한 지지층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한다. 기억이 2MB가 아니라면 5년전 대선 상황을 떠올려서 복기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에 가장 충성도가 높았던 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노사모이다. 많이 해체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노사모가 일가친척을 동원해 올인 투표를 했다고 해서 그가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은 여러 차례의 당내 경선, 그리고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통해 여러 가지 이해와 성향이 다른 후보들의 지지층을 혼합시켰다. 거기에 막판 정몽준의 배신행위로 분산된 표의 결집까지 있었다. 즉 노무현의 충성스러운 지지층과 그가 얻은 득표수를 착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따지고보면 처음부터 노무현을 물에서 건져주고 보따리까지 챙겨줄 지지층은 생각만큼 그렇게 두껍지 않았다. 그리고 그들이 바로 '국민'이고 '대중'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 중에는 노무현보다 좀 더 보수적인 지지층도 있엇고, 훨씬 진보적인 지지층도 있었다. 그들은 투표행위를 한 것이지 '충성'서약을 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노무현의 행보에대해 지지하면서도 예의주시하는 층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고정된 무엇이 아니라 '움직이는 대중'이다.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고, 어떨 때는 항목별 지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그들은 또한 충격적인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앞에 또 깊은 애도를 보내고 있는 것일뿐이다. 이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정작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대중'을 고정된 무엇. 대개는 수동적인 존재로 파악하는 것이다. 실로 '대중'이라는 철학적 개념이든 '대중문화'라는 문화적 개념이든 대중에 대해 반쪽만 편의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지만 대중은 양가적 존재다. 대중에게는 수동적인 면이 있고 그 반면에 역동적인 면이 있다. 대중은 총체적으로 관리되는 즉 전체적으로 보이는 순간에도 실제 어떤 선별적 수용을 취한다. 이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대중'에 대해 일면적으로만 파악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디에 더 주목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이다.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쨋다구?>의 역자 한보희는 이런 표현을 한다. 좀 길지만 이 이야기의 문제와 관련이 있다.
전체주의 사회의 인민들은 죄다 반민주주주의자로 낙인찍는 것인데(이를 테면 대중독재) 이러한 사고는 민주주의에 관한한 순환적 정의- 민주적인 인민이 만드는 사회만이 민주적이다-로 빠져들거나, 그 자체로 반민주적인 발상인 엘리트주의로 귀결될 수 밖에 없다. 즉 전체주의적 우중들은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거나 민주주의를 망쳐놓는다는 식이다. .... 그리하여 '대중 독재'라는 역설적 관념의 반대편 극단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민주 파쇼' 라는 또 하나의 기괴한 관념이다.
나는 솔직히 엘리트주의란 말은 거창하고 '대중에 대한 스노비즘' 정도가 아닐까 싶다.대중에 대한 스노비즘에는 일관된 방향성이 없다. 본인 스스로 대중이기 때문에 대중으로서 자처하지만 다른 대중과의 차별을 중요시 여긴다. 대중 속의 재엘리트화 같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하는 짓에 대해서는 무언가 거부감이 생기고 다른 무언가를 찾아야 될 것같은 강박이 생긴다. 차라리 전통주의적인 엘리트의식이 있다면 그것은 이야기 나누기 쉽다. 하지만 봄날 풍선 날아가는 듯 한 '대중에 대한 스노비즘'은 본인 스스로도 일관성이 없어서 규정해내기 쉽지 않다. 이런 스노비즘 속에는 -모든 것은 아니겠지만- 정신적 미성숙과 관계적 성찰의 미숙함이 담겨있다.
명계남은 노무현을 지켜주지 못한 국민을 비난하고(이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자극한다고 느끼는 경우도 있겠지만-내가 이 글을 쓰는 것은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있지만 실제로 비난의 화살은 노무현의 측근들에게 더 돌아가야한다. 만약 명계남이 그 측근이었다면 그 역시 노무현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책임이 국민보다 더 크단 말이다. 안희정,이광재가 구속수사를 받았던 것은 노무현 재임기간 중이었다.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한 개인으로도 보지만 그와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의 집합체로 읽기도 한다. 도덕성와 원칙을 지키겠다는 대통령 옆에 불미스러운 일들이 발생했다면 사실 먼저 책임졌어야하는 것은 그런 측근들이었다. 이명박의 과잉수사로 전직 대통령이 불미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그 옆에서 더 크게 운다고 그들의 잘잘못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대통령을 더 곤혹스럽게 만든 것은 국민이 아니라 측근들 아니었나 생각한다면 이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그런데 문화계 측근으로 알려진 명계남씨는 '국민이 죽였으니 국민이 책임지라고 한다.'
물론 명계남의 말 중에는 한가지 명백한게 들어있다. 그동안 노무현을 가장 괴롭혔던 게 누구인지 밝힌 부분말이다. 그것은 보수 언론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해보려던 노무현은 결국 언론과의 타협을 시도했다. 하지만 취임 초부터 끝까지 언론은 노무현에게 악의적이었다. 그것이 비판이었다고 말한다면 악의적인 것과 비판적인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다. 흥미도 끌지 못할 만큼 재미없는 것은 조중동의 논리로 노무현을 공격하다가-즉 노무현을 가장 괴롭히던 주장들을 수용하다가- 죽음 이후에 갑자기 그 책임을 '대중들'에게 돌리는 것이다. 명계남이 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의 과거 행각을 대중에게 전가시키는 방식이다. 결국 '대중'은 똑같은 식으로 또 다시 죽음의 책임자가 된다. 물론 대중들이 그 죽음에 어떤 책임이 없다는 말을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것보다 발화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인없는 '대중'을 비판의 도마위에 올려놓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공히 그 죽음에 책임이 있다면 그것은 '대중들의 행동' 쪽에 있을까 아니면 '노무현의 측근'과 '보수언론'의 지속적 행동 쪽에 있을까?
노무현을 적극적으로 지지했건 ,노무현을 비판했건.. 설령 한나라당을 지지했을지라도.. 노무현 전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에 깊은 애도를 표하고,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은 성숙한 인간들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정서이다. 추모 행사를 버스로 둘러막거나...나야말로 '진성'이고 '적자'인데 ..너희들 그간 뭐라 했어.빠져..라는 것은 이 시점에 미성숙이거나 어리광의 증거이다.
7일간의 국민장으로 결정난 듯 하다. 아킬레우스가 그랬듯이 조용히 추모의 정으로 그 분을 보내드리는 시간이다. 나 역시 긴 언설로 가시는 걸음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것 같아 죄송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