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김사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를 벗기고

눅눅한 요위에 너를 날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 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삵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 

퇴근길에 비가 그쳤다.  

집 앞을 얼마 앞둔 내리막 길에 앉은뱅이 노인이 보였다. 젖은 바닥을 엉덩이로 기어 내려가고 있었다. 창문 사이로 보인 노인의 행색은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아파트 단지 근처에서 그런 행색의 노인을 본 적이 거의 없었다. 부산역 근처에 가면 자주 볼 수 있다.  '바닥이 모두 젖어서 옷도 다 젖었을텐데...'  햇살이 내리 쬐는 날이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지도 모른다. 내려서 도와주어야 하나 망설이는 사이 차는 이미 아파트 주차장에 와있었다. '다시 돌아가 볼까..잘 갔겠지..아니 그래도'  

결국 차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그 노인이 어떻게 되었나 살폇다. 멀리서 보니 마을 버스 정류장에 지친 몸을 기대고 있었다. 나는 예전에 노숙자들을 몇 번 만난 적이있어서 그들에 대한 낯선 공포같은 것은 없다. 최소한 그들 모두가 알코올중독자거나 행패를 부린다고 생각치는 않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 노인을 확인하고 싶어서 근처까지 갔다.  

오늘은 비가 아침부터 많이 왔고 바닥은 아직 물기가 가시지 않았다. 정말 그것때문이었다.

사람들이 흘깃 흘깃 더러운 냄새가 나는 노인을 지나쳐가고 있었다. 그는 대략 70쯤 되어보였다.실제보다 더 늙어보였을 수도 있다. 노숙자들은 실제보다 더 늙어보인다. 옷은 남루했고 운동화는 아주 낡았다. 손톱은 아주 더러웠고 눈 근처에는 마른 눈꼽이 아직 남아있었다. 흔히 만나는 노숙자들의 행색과 똑같았다. 그래도 술을 마신 것 같진 않았다. 그 노인은 담배를 뒤적였지만 가진 것은 없어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눈 위쪽이 찢어져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피는 살짝 엉겨붙고 있었다. 나는 괜찮냐고 물었다. 그 노인은 어눌한 말투기는 했지만 괜찮다고 답했다. 무릎이 아파서 ...어딘가에 부딪혔다..라고 말했다. 나는 조심하셔야지요..하면서 잠시 기다리라고하고는 근처 약국으로 갔다. 마데카솔과 대일밴드..그리고 옆에 있는 편의점에서 담배 한 갑을 샀다. 노인의 상처는 생각보다 좀 컸다. 마데카솔을 발라주고 대일밴드를 그의 눈 위에 붙여주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큰 밴드를 샀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 노인에게 담배 하나를 붙여주었다. 마데카솔과 밴드를 주머니에 챙겨주었다. 가지고 계시다가 떨어지면 또 바르세요..라고 말했다. 노인은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고맙다고 했던 것 같다. 나는 빗길인데 조심하셔야된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돌아오면서 두가지 생각을 했다. 하나는 마데카솔을 먼저 바르는게 아니라 상처를 소독하고 지혈을 조금 더 했어야한다는 것. 침착하지 못했다. 나로서도 우연히 만난 노숙자의 상처를 치료해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으니까. 두번째는 '저 노인 오늘 저녁은 어디서 먹을까' 하는 생각...저녁밥값이라도 드렸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지금도 마음 한 켠이 씁쓸하다. 노인의 옷은 하루 종일 비를 맞았을 터이고, 나는 부족한 지식으로 대충 상처를 처리하고 말았고, 따뜻한 밥 한 그릇 해결해주지 못했다. 언제쯤 되면 뭐든 제대로 좀 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