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히트는 그의 미완의 희곡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부당함을 가르키고 있는 너희들의 손가락은 썩었다."
'썩은 손가락'에 대한 가장 평이한 해석은 '개인의 도덕적 자질론'으로 돌리는 것이다. 즉 부정의를 행하는 너희들은 더욱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이런 '도덕 자질론'은 여러가지 형태로 변주된다. 쉬운 예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의 설정 방식같은 것으로 말이다. 나는 이 곳에서 매우 투사적인 발언을 하고, 또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토로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 역시 가끔 마음을 풀어놓는 글에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대립의 의제에 자신의 심사를 토로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거의 90% 이상은 전자, 즉 '인간됨'에 무게를 둔다. 이것은 매우 옳은 지적이지만 또한 진보를 매우 오랫동안 괘롭혀왔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보수는 이미 사회적 윤리같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 그들은 자기들이 버린 아들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진보세력을 매우 고까와 한다. 그래서 보수세력들은 그들의 상대를 '진정한 도덕집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의 자격지심을 만회하기 위한 공격의 과녁으로 '도덕'을 이용한다.
실제로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룹은 도덕이라는 측면을 투쟁의 무기로 사용해왔다. 그래서 '민주화세력=도덕적'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해 기댈 곳이 없던 민주화세력은 옳음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도덕'의 이름으로 확보했다. 87년이 끝나고 자칭 민주화세력들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섰을 때 이제 그 '도덕'은 하나의 덧이 되어 쓰레기만도 못한 수구보수 세력에게 이용당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컹컹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예는 91년 외대 사건이다. 일명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사건이다. 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91년 봄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해 4월 명지대 강경대 학우의 사망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분신정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6월 정원식은 노태우 내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 강의를 하기 위해 외대를 방문한다. 신문,방송 기자들을 대동하고 말이다. 그 때 외대의 운동세력이 군부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정원식 총리 서리에게 계란과 밀가루 투척을 했다. 다음 날 신문 1면은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 쓰고 계란으로 떡칠된 그가 소동을 피해 쫓기듯 길을 뚫는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1991.6.4 <동아일보1면>
또하나의 6월 항쟁이라던 91년 봄 투쟁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대학마다 하계방학에 들어가는 시점이고 어떻게 91년의 열기를 이어갈까 고민하는 세력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내 기억에 외대 총학생회는 이 사건으로 운동권 내부에서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6월 말 있었던 내 전공수업의 시험 주제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신문은 '운동권의 비윤리성'을 한목소리로 드높였다. 흔히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사제관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 정원식이 아니라 정치인 정원식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쫓겨가는 방송국ENG 카메라의 영상과 스틸사진의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기획기사와 논설등은 악의적 방식까지 동원해서 운동세력의 윤리성을 깨부수는데 달려들었다.
그런데 외신보도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들에게는 유교적 의미의 '그림자도 피해가는' 스승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어젠더를 '스승과 제자'로 설정할 수 있는 틀이 없었고 왜 그래야하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학생들의 투쟁 수단 역시 그렇게 과격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에서는 계란투척이나 밀가루 투척은 매우 일반적인 정치항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정치인들이 계란맞고 도망가는 사진은 국제란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다.)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은 대한민국 언론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그 원인과 이유를 말했다.
내게 '도덕'과 '정치'라는 매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 건 아마 저 사건일게다. 나는 '도덕정치'의 위험에 대해 경험적으로 알게된셈이다. 그래서 '정치=도덕이다' 라는 식의 논리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매우 위험한, 그리하여 문자 그래도 수용되어서는 곤란한 명제라는 것을 알게된 셈이다.
학생운동권세력을 포함해서 민주화세력 등에 대한 윤리적 기대가 높았던 국민들은 정치권에 유입되면서 하나 둘 수의를 입는 민주화 세력의 일부 엘리트들을 보면서 결국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진다. 정치=도덕으로 보았기 때문에, 도덕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의 실패가 이어진 자리에는 냉소가 자라난다. "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똑같다." (노무현 사후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런 도덕의 실패의 역에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의 도덕성은 어느 정치인보다 뛰어났다. 그의 자살은 그런 면에서 도덕성의 표상이다. 그런데 그의 비극적 죽음 이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그의 정치적 실패는 도덕성의 이름으로 가려졌다. 생존에 노무현을 놈현이라고 평가하던 이들이 갑자기 '당신의 뜻을 오해했습니다'라며 사과문을 쓰더니 노무현! 노무현! 이렇게 된다.정치=도덕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 다른 예가 된다.)
도덕정치의 현실적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제 사회윤리적 차원의 높은 수준을 생각하기 보단-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실제 자본주의적 풍요를 조금 더 누리기 위한 몰역사화된 경제적 동물로 주체화한다. 특히 97년 IMF 라는 초유의 사건은 성장 일변도의 한국경제에 일침을 가하며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노숙자와 도산 사업가의 자살 소식은 정신줄 놓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제 생존을 위한 변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87년 투쟁이 만든 시민들의 연대의식은 이제 쓸쓸한 자화상이 되었고 개인들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재탄생하기 위해 누구보다 착실한 자본주의의 시종이 되었다.
오로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파괴된 정치와 실용화된 도덕일 뿐이다.정치는 불구가 되었고 도덕은 오욕을 뒤집어 쓸 지언정 어떤 이름으로든 살아남았다.
엄기호는 그의 책<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언어에서 한쪽에서는 냉소주의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물들의 윤리적 언어로 전화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절대적 가치로 고정해놓고 도덕적으로 사용하다가 정치가 도덕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도덕'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주의자들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이다.'
우리사회에 과잉화된 '도덕 담론' 속에서 나는 '정치'와 '도덕'의 화용론적 결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정치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 답은 부정적이다. 근대 정치학에서 마키아벨르의 업적은 그가 '정치'를 '도덕'의 영역과 분리시키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신학정치에서 세속정치로 바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신학정치의 영역과 세속정치의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막연한 본질적 대상으로서의 도덕으로는 포퓰리즘과 그의 짝패(전체주의)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게 도덕적 유토피아는 가능성으로서의 유토피아일 뿐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현대정치철학자들이 가능성이 없어진 시대에 그 '가능성을 창조하기' 찾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 일정 부분 공감도 하지만 말이다.
밀레니엄의 10분의 1을 달려온 한국 사회. 나는 아직 이 땅에 정치적 역동성이 한 조각쯤은 남아 있다는-있을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이것도 야금야금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5년 또는 10년 사이에 어떤 전환적 출구를 만들고 시스템화하지 못한다면 퇴행적 순응으로 안착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이 말이 민주당식의 대통합론 수준을 의미하진 않는다.그들은 전환적 출구를 만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치사회의 역동성은 제로수준으로 가라앉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는 그런 징후들이 징후의단계를 넘어서 조건들로 자리잡고 있다.
97년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철저하게 개인화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태어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 역시 개인적 차원으로만 이해한다. 투표를 한다거나 정책 결정에 대해 툭툭 한번씩 말대꾸하는 정도로 말이다. 정치는 개인과 집단, 또는 집단과 집단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집단의 것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는 그것 자체로서 매우 의미있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정치를 위한 필요조건 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은 본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여기저기 시끄럽게 하는 것은 남보기 우사스럽기 때문에 조용히 나 혼자 하면 된다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개인적 윤리로서는 이것을 꼭 나쁘게 보지만은 않지만 이것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그러면 아마 이런 질문이 있을거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핵심은 거기에있다. '모이게 하는 것'. 혼자 조용히 삼성에 불매하는 것은 아직까진 정치적 행위의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모이게 하는 것' 이라는 참여와 연대의 영역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러한 집단화 과정에 참여하는 실천에 있는 것이다. 물론 너무 낯을 가리고 말도 못하고 쑥스러워서 남들과 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게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여'란 뭔가 껄끄러운 말이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하면 안되냐?' 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럴 때 나름대로의 해법을 '선언'이라는 차원에서 찾는다. 그래서 '조용히... 선언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실천하는 것' 알랭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이'선언'이 '정치'로 가는 첫길이다. 그냥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은 다 말뿐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의 가장 본원적인 짓은 마스터베이션임도 알것이다- '선언'이라는 것은 그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가장 작지만 또 가장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혼자서 조용히 '나는 삼성 안사...그걸 실철할거야' 이런 것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무런 효력도 없는 분출일 뿐이다. '나는 삼성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훨씬 정치적이며 자기 구속력도 강하다. 그리고 항상성의 측면에서도 그 유통기한이 길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시 정치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 복원을 위해서라도 '정치는 모든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듯 하다.
...부산에도 눈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