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전 10시 40분 오랜 기간 정들었던 자동차를 폐차장으로 실어 보냈다. 잠시후면 해체를 위해 폐차장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지난 주는 폐차문제로 정신이 사나왔다. 화요일 자동차를 타고 창원에 갔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시동이 꺼졌다. 몇 년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저속에서 rpm이 떨어지고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다. 당시 문제는 엔진 분사과정에 있었다. 인젝터라는 부분을 손보고 괜찮아졌다. 일단 부산으로 와야했기에 속도를 가급적 떨어뜨리지 않고 창원에서 일을 마친 후 부산까지 왔다.(따지고 보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안전불감증이란 이런 거) 고속도로에서야 가속폐달을 쓰기때문에 별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도심에 들어와서 신호대기로 정차하면 신호가 꺼지는 것이다. 시동이 꺼지면 사이드브레이크를 쓰고 가속페달을 밟아 rpm을 유지하며서 겨우 겨우 단골 정비소까지 왔다.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는데 엔진 실린더의 헤드가 나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략 70-80만원 정도의 수리비를 요구했다. 

사실 지난해 요맘때 명절을 쇠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집 앞에서 차가 퍼져서 80만원 정도를 주고 수리했다. 그 때도 긴급출동한 정비사가 새차 교체를 고려해 보라고 요구했으나 2년 정도 더 탈 계획으로 눈물을 머금고 수리했다. 차는 97년형이었고 내 계획은 15년은 타는 것이었다. 올해로 14년째가 된 셈이다. 

그런 기억이 있었으니 다시 또 80만원의 수리비라는 말에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고액을 들여 수리한다고 해도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폐차 쪽으로 방향을 잡고 긴급서비스를 통해 일단 집까지 견인했다. 당장 폐차에 대한 방법이나 절차,보상금 같은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폐차라는 과정을 통해 폐차장과 폐차대행사가 영업이익을 얻는 방식을 나름 알게되었다. 대행사가 그렇게 많은 것도 폐차라는 과정에 꽤 괜찮은 부가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 안에서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을을 옮겨놓아야 했다. 

주차장에 옮겨 놓은 자동차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묵묵. 늘 대던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인데도 아직 수명이 남아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흑백 사진 처럼 보여졌다. 폐차를 위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내 차는 그렇게 하루 사이에 '과거'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었다.  

이 차는 내가 돈 벌어서 처음 산 자동차였다. 다른 주인 밑에서 7년을 있었고 또 내 곁에서 7년을 있었다. 차를 처음 샀던 해 남도 여행을 했다. 해남 들녘으로 해지는 모습도 함께 보았으며 김제 평야에서 소나기를 몰고가는 먹구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도 했다. 이른 새벽 진통을 하는 아내를 싣고 조산원으로 달렸던 것도, 태어난 두 아이를 안전하게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옮겨 주었던 것도 이 차였다. 오디오질을 좌절당한 내게는 가끔 음악 감상실이 되어 주기도 했고 또 가끔은 실내등을 밝힌 독서실이 되어 주기도 했다.  

몇 번 장거리 운행을 마치고 길 중간에서 고장이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목적지를 몇 백 미터 앞두고 멈추어섰다. 그래서 차에 대한 애정 어린 농담으로 "그래도 이 차가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지켜준다니까...힘이 딸릴 때까지 최대한 안전한 곳까지 와서 기절하잖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주말, 또 다른 정비소에 가서 타이어와 오디오를 탈착했다. 타이어는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에게 주었고 오디오와 스피커는 일단 보관했다. 주말이어서 견인을 할 수 없었던 관계로 일단은 그정비소에서 이틀 밤을 두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폐차 견인업체와 인도약속을 잡았다.  

지난 한 주 동안 자동차를 의인화 하려는 '감상주의'때문에 무척 심란했었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그 감상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톰 행크스의 영화<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은 무인도 생활에 말벗이 되어준 배구공 '윌슨'(스포츠용품 브랜드이다)이 실수로 바다로 떠내려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건지려고 한다. 결국 망망대해로 떠나가는 '윌슨' 배구공을 보며 마치 친구를 남겨두고 온 듯 오열한다. 물론 내 차에 대한 감상은 정황상 무인도에서 대화 상대였던 톰 행크스의 '윌슨' 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폐차 결정 초기에 비해 일주일 가량이 지난 지금은 감기 치료에 필요한 시간만큼 감상을 치료하기에도 적당한 시간은 되었다. 처음에 폐차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회고적 글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처음에 마음 속을 스치는 상념들을 글로 썼다면 마치 사춘기 소년이 밤에 쓰는 편지처럼 얼설픈 감상과 회고적 감정의 편린들이 춤을 추었을 것이다.(사춘기 여인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이건 내가 보기엔 가장 끔찍한 글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들었던 사물에 대한 의인화의 감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견인차를 기다리면서 매번 장거리 운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했듯이 운전석 앞 바디에 손을 대고 "수고했어"라며 인사했다. 견인차 기사를 기다리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오래 손을 대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 덕분에 무사히 다닐 수 있었어."라고 말이다.

 견인차 기사에게 35만원의 고철값을 받고 차를 인도했다.  차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비록 쇠로 만든 기계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하는 것이 정든 사물에 대한 예의 아닌가 싶었다. 투박하게 견인차에 실려 자동차가 점점 멀어졌다. 켜 놓은 비상등이 마치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깜빡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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