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조간 신문을 점심 식사 하면서 보게되었다. <소금꽃 나무>의 저자이기도 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결국 크레인에 올랐다.  고 김주익 위원장이 올랐던 그 곳이다. 85호 크레인. 몸에 익은 용접공의 기억을 되살려 용의주도하게 자물쇠를 녹이고 그녀가 또 고공에 올랐다.    

한겨레 신문 "8년전 비극의 크레인 올라.." www.hani.co.kr/arti/society/area/457677.html 

김진숙 위원의 편지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세벽 세 시 고공 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이미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가 김주익 위원장의 비보를 듣고 그날 방송의 오프닝에서 한 말이다. 반복되길 원하지 않지만 반복되는 비극이다.

 한진중공업은 부산 영도에 있다. 배를 만드는 곳이다. 며칠 전 나는 한진중공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져 버렸다. 부산시청에 양해를 구해서 시청 광장에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3주전에 시청에 양해를 얻었다. 그리고 별 일 없이 일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퇴근길에 한진중공업의 48시간 연좌집회가 그 곳에서 있다는 소식을 알게되었다. 경찰청에서 우리 쪽에서 하는 일을 모르고 집회 신고를 내준 것이다. 집회 허가는 경찰청 관할이니 시청 측 담당자가 그것까지 알 일은 없다. 공무원이라해도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이다 보니 이런 업무에서 연계될리 만무하다.  

 결국 우리가 먼저 잡은 장소였는데 민주노총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경찰청 담당자도 일이 그렇게 되었느냐며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민주노총에 몇 시간이라도 양해를 구해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모양새가 말이 안된다. 결국 내가 장소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도 거기서 뭔 일이 있는지 알수 없었고 나 역시 그랬고 시청도 그렇고 경찰청도 그렇다. 광장 사용에 대해 시청-경찰청 연계만 잘 되어 있었어도 문제가 없었겠지 말이다.  내가 땅을 치면서 억울해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나야 자리를 바꾸면 좀 업무적으로 수습해야할 일도 늘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400명이 실직할 판이다. 그에 따른 가족들까지 생각해보면 그 수는 더하다. 조금 더 가면 조선소 특성상 한진중공업은 하청업체가 많다. 하청업체의 연쇄적 도산과 그 가족들까지 생각하면...숫자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하여 나는 한진중공업때문에 피해를 본 축에 끼지만 조금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원망할 생각이 없다.   

 최소한 노동자들의 파업때문에 길이 좀 막혔다고-미리 알아보지 않는 자기 잘못은 생각치도 않고- 또는 밥 먹고 들어오는 길에 1인 시위하는 자들 때문에 몇 발짝 더 돌아가야 한다고  울컥거리는 인간 따위는 되지 않는다. 책 좀 편히 사려는데 시끄러워 심란하다고 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안다. 그런 인간들 많은거. 내 입장에서 그거 한마디로 규정해 줄까?  나쁜 족속들이 인간되기란 참으로 힘들다.딱 그거다.) 

지난해 이맘때 쯤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이 나와서 책 좀 읽고,생각 좀 있다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10년 나온 '올해의 책' 같은 목록에도 들어 있었다. ) 조지 오웰의 책을 보며 진짜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시대의 위건부두 사람들은 어디있는가? 조지 오웰이 애정을 가지고 담아내려 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사람들'은 아껴지는데 이 시대의 '위건부두사람들'은 잘 눈에 안들어온다면 그게 바로 책이 만든 청맹과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속이지 마라. 자기를 속이지 않는것이 글을 읽는 첫걸음이다.   

모든 싸움에서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고 김주익 위원장도 그리고 또 김진숙 위원도 모두 싸움에 익숙해온 사람들이다. 나같은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절박하고 또 그 절박함이 만든 강인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단단한 그들도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외로움이란 적과 마주쳐야 한다. 이런 걸 알려야 하는 지역의 언론이라고 하는 것들은 400명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는 외면하고 각급 기관장들을 초대해서 안면찍기에나 정신이 팔려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사실은 별로 없다. 대신 나는 외롭게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을 지지하고 한진중공업 노조의 투쟁을 지지한다. 단 1명의 몫만큼 더 친구가 되어주는게 자본과 언론에 고립되어 '무지몽매한 폭력주의자", "막무가내 노동자" 등으로 외로와져가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예의이며 작은 연대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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