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 인디영화 콜렉션 Vol.1 박스세트 : 피터팬의 공식+거북이도 난다+보이지 않는 물결 (3disc 디지팩)
바흐만 고바디 외 감독, 소란 에브라힘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페이퍼로 쓴 글을 이 쪽으로 옮겨놓는다 

TV로 폭격 동영상을 보면서 아내에게 농담처럼 전화를 했다. "TV 켜봐. 난리도 아니다. 쌀이나 라면 사놔야 되는거 아닌가? ^^"  - 아직 쌀이나 라면을 사놓치는 않았다. 
 결국 한반도 영구평화체제가 만들어지거나 한쪽이 완전 박살나지 않는다면 이런 일들은 과거 그랫던 것 처럼 지속적으로 반복될지 모른다. 그런데 '한쪽이 완전 박살나는 일'은 어떤 일이 있어도 피해야 하는 방식이다. 전쟁을 WAR, 대문자로 파악하는 자들은 '박살' 사이에 숨겨진 비극에 대해 모른 척 한다. 뭔 일만 터지면 금새 장농에 모셔둔 과거의 제복을 입고 '전쟁하자'고 들끓고 일어나는 무도한 모험주의자들에 대해서는 '정신 차리시오' 라는 말 이외에 달리 더할 말이 없다. 항문기때 미해결된 욕구의 문제라면,그대들 인생의 '화양연화'였던 군대 시절의 기억을 다시 재연하고 싶다면, 몇 만원 들고 서바이벌장으로 가라. 인생의 가장 아름다웠던 기억, 정체성이 멈춰진 시간이 군대시절이었다면 그 인생에 대해서는 '못났다'는 말대신에 '안타깝다'는 말을 해주는게 나을성 싶다.  

최근에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영화<거북이도 난다>를 봤다. 이 영화가 부산 국제영화제에서 개봉했을 때 특이한 제목때문에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대개 그랬듯이- 영화제 기간 동안 영화제가 벌어지는 근처에 있으면서도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최근에 알라딘에 올라온 '파고닥세운님'의 <거북이도 난다>라는 페이퍼는 기억의 항아리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이 영화를 다시 생각나게 했다. 영어로 하면 '리마인드'다. (감사를..)  현재 이 영화를 볼 수 있는 방법은 불법 다운로드와 DVD  CJ인디영화시리즈를 통하는 길이다. 나는 DVD를 대여하는 방식으로 이 영화를 봤다. 영화관 갈 수 있는 시간이 없어서 작은 컴퓨터 모니터나 그것보다 조금 더 큰 TV 화면으로 보게 되어 늘 안타깝긴 하다.   

영화 <거북이도 난다>는 이라크의 쿠르드족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을 겪는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사람들은 근거없는 착각을 통해 '우리는 전쟁을 한다' 라고 믿는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과 그의 가족들은 '전쟁을 겪을 뿐이다.'   

 

영화 줄거리는 쓰기 귀찮다. 포털의 영화 소개로 글로 대신한다. 

 <이라크 국경지역의 쿠르디스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임박했다는 소문에 사담 후세인의 핍박을 피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들 중에는 어린이답지 않은 리더십과 조숙함으로 또래 아이들의 인정을 받으며 살아가는 "위성"이라는 소년과 전쟁 속에서 팔을 잃은 소년 "헹고"가 있다. "위성"은 "헹고"의 여동생인 "아그린"을 보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나, 그녀는 전쟁 중 받은 상처로 늘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전쟁이 임박한 가운데 "위성"은 지뢰를 내다팔고 무기를 사두는 등, 나름대로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면서 "아그린"의 관심을 끌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러나 아그린은 그런 "위성"과 자기를 아껴주는 오빠 "헹고", 그리고 불쌍한 아들인 "리가"가 곁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군인들에게 겁탈당하고 아이까지 낳은 악몽 때문에 늘 자살을 생각하는데.> -네이버 영화소개-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은 감독의 '슬픔에 대한 예의'이다. 이 영화는 대단히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여느 멜로드라마들처럼 눈물이 잔에 흘러넘치게 만들지는 않는다. 분노로 치아를 상하게 하지도 않는다. 영화를 보며 잘 우는 나도 고인 눈물을 천장 한 번 바라 보고 말릴 수 있었다. 만약 이 영화가 헐리우드적 방식으로 '잘 만들어졌다' 면 이 영화는 극장 바닥을 온통 적셔서 모두들 영화관을 나서며 젓은 신발의 문제를 해결하느라 영화의 감흥을 잊었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감독은 이 아이들을 멜로드라마나 단순한 비극의 주인공으로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함으로써 이 영화가 담고 있는,또 자기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바를  영화관객들의 자족적인 몇 천원의 문화적 소비로 끝내게 하지 않는다. 고바디 감독은 극도로 눈물을 자아내거나 또 치마를 부여잡으며 분노케할몇 몇 장면을 대단히 빠르게 처리한다. 예를 들어 슬픈 아기 '리가'의 마지막 장면 같은 것 말이다. 감정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장면은 거의 없다. 날카로운 칼날에 베인 상처처럼 그렇게 필름은 스윽하고 아무런 감정도 담지 않고 관객의 가슴을 밴다. 여기서 감정을 끌고 가는 것이 오히려 사치이고 그것은 이들의 비극을 왜곡하는 것이라는 식의 태도다. 감독은 거리두기를 통해 슬픔에 대해, 비극에 대해, 현실에 대해 깊은 예의를 보낸다. 이 영화가 가장 빛나는 부분은 바로 그 지점이다. 비극의 겪는 이들에 대한 예의를 통해 슬픔을 가볍게 하지 않는 방식말이다.  

 

그 결과 영화를 보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지는 않지만 잠자려고 누운 어둠 위에는 영화 속 어떤 장면의 적막함들과 비통함들이 다시 재상영된다. 

 거북이. 물소리. 지뢰. 아이들. 파란 하늘과 절벽. 아그린의 보랏빛 고무신. 팔이 없는 헹고의 절규. 위성의 공포에 젖은 안경. 붉은 물고기... 

거북이가 날 수 있을까...그렇다. 우리가 평화롭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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