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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
이윤기 외 대담 / 민음사 / 2001년 6월
평점 :
품절
이념의 과잉시대,80년대는 그렇게 저물었다.90년대의 포스트모던논쟁도 떡잎만 잠깐 보여주고 또 그렇게 희미해져간다.그리고 IMF ...대량실업,노숙자.그 퀘퀘한 지하역사의 웅크린 벌레같은 기억을 그대로 안은채 21세기는 시작하였다. 인문,사회학의 위기론은 기실 어제 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다.하지만 미국을 중심으로한 신자유주의가 사형집행인의 거대한 칼날마냥 경제와 효율의 이름하에 살생부를 집행하고 있는 2001년. 일상인의 의식속에 유전학의 적자생존의 원칙이 요즘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적은 또 언제였을까?
인문학의 위기가 인문학이 무언지도 잘 모르는 범부에게도 익숙한 단어가 되어버린 지금 그들이 만났다. 세계의 문학 100호 기획으로 몰락한 집안의 명망있는 선비들이 때와 장소를 달리하며 무릎을 맞댄것이다. 이윤기,최승호,이문열,김화영,이강숙,김병종,김우창,최장집... 비록 가세가 기운 집안이라도 각 분야 최고의 지성들인 만나 이야기를 나눈것 만으로도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거기에 출판계의 거목-부르디외가 말한 문화권력의 한 축을 형성한-민음사의 실로 깜직한 제목과 제자,그리고 시원한 편집과 훌륭한 재질.그리고 거의 모든 일간지의 전폭적인 지지. <춘아 춘아 옥단춘아 네 아버지 어디 갔니?>는 인문학이란 어려운 집안의 스타들과 훌륭한 제작자가 만난셈이다.
우선 취업,재테크,연봉인상이 시대의 화두인 지금 시대에 진정으로 이야기나누어야하는 우리시대의 고민을 대담이라는 편안한 방식으로 이끌어간 기획자의 의도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대담자의 선정 역시 공통된 관심이라는 큰 틀 아래 세대간,이종학문간,실천 영역의 전위와 후위간, 다양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윤기와 그의 딸 이다희의 대화에서는 인간의 원형으로서 신화에 천착하고 있는 아버지와 굳지않은 이성으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젊은 딸 사이의 훈훈한 이야기가 담겨있다.아버지와 이런 류의 진지한 대화를 시도해보지 못한 많은 이들에게 선망과 시기어림을 받을 만큼 깊이있으며 자연스럽다.
생물학자 최재천과 시인 최승호의 만남은 만남 자체가 이질적이어서 눈길을 끈다.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라는 최재천과 건어물상같이 죽음의 대상에 천착한 최승호의 만남은 이 책에서 가장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었다.생명과 죽음이 하나로 이어어지는- 서로 다른 쪽에서 출발해서 어우러지는-관계를 편안하고 진지하게 풀어간다.양념삼아 최재천 교수의 학업 연마기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헌책방 주인 노동환과 인터넷 서점을 경영하는 조유식의 대담도 건강하고 진취적이다.각기 다른 현실지평에 있으면서도 상호발전을 통한 독서계의 확장을 꿈꾸는 젊은 마음이 흐뭇하다.
그외에도 김화영 이문열은 번역과 우리문학의 세계진출에 대해 견해를 달리하며 논쟁을 이끌어간다.이문열씨가 가지고 있는 보수적 작가로서의 견해도 간간히 읽을 수 있다.양명수와 도법수님의 대화는 현실의 역사성에 조응하는 종교에 대한 양명수 씨와 불교적인 일원론으로 가치를 강조하는 도법스님의 이야기가 서로 부딪히는 것 같으면서도 참 종교에 대한 고민의 흔적들을 보여준다.그외에도 최장집교수,김우창교수,이강숙 총장등의 대화는 자기분야에서 한가를 이룬 분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묻어있어서 그분들의 딱딱한 글만 접하던 독자들에게 친근함을 준다.
이렇게 동시대를 사는 인문,사회,예술계의 인물들을 쉽게 만나고 그들의 삶과 생각을 대중적으로 읽힐 수 있게 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그러나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다.대담 시간의 한계 였는지 편집자의 배려였는지 좀더 논쟁을 붙이고 파고 들어야하는 부분에서 흐미하게 정리할 수 밖에 없음은 못내 아쉽다.또 대담자들 중 몇분은 대담을 통한 소통의 공간 확보보다 자신의 생각을 소극적으로 대답하고 마는 경우들로 간간히 볼 수 있다.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때문이었는지 대담이 지나치게 상호우호적이라는 인상 역시 지울 수 없다. 본질적인것은 때론 비우호적 질문을 통해 도출될수 있음에도 공격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반론이 전체적으로 미비하여 대담의 갈등이 주는 짜릿함이 부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