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미치겠다. 정말...

쪽팔린 짓만 하는 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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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스튜어트 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5
제임스 프록터 지음, 손유경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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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트 홀은 내게 고향집 담벼락 같다. 사실 내게 실제 고향이라는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마을 어귀부터 친숙한 고향의 느낌은 먼길을 달려온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킨다. 스튜어트 홀이 내게 그렇다. 일종의 '사상의 고향' 같은 것이다. 물론 비 온 날 아스팥트 위에 고인 물만큼 얄팍한게 내 사상의 깊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해야한다. 하지만 동네에 하나 쯤 있던 바보들에게도 고향은 고향인 법이고,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음악 매니아들 중에는 최신 팝송에서 시작해 거꾸로 음악의 연원을 쫓아가는 경우가 있다. 마이클 잭슨을 듣다가 로버트 존스의 블루스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내게 '맑스'로 가는 그 사다리의 양 축에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과 '문화연구' 가 있었다. 물론 이런 흐름이 맑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그렇지 않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자면 맑스 이후 모든 사회학은 도전이든 응전이든 확장이든 모색이든 맑스에 답을 했다.

나같이 '딴따라'를 좋아하는 학생이 '대중현상과 대중문화' 에 관심을 갖는 '문화연구'에 등을 돌릴 리가 없다. 특히 내가 대학을 입학 했을 때는 소위 '정치경제 시대'의 하락기와 '문화시대'의 상승이 겹쳐지는 시점이었다. 강내희를 중심으로한 <문화연구>라는 계간지 역시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에 첫 호를 찍었다.

내게 너무 친근한 스튜어트 홀이지만 그래봐야 그는 B급좌파다.(김규항이 B급좌파라는데 아무래도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재즈에서는 B급 뮤지션을 대개 '재즈사에 큰 흐름을 주도할 만한 뮤지션이나 장르의 중심적 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연주력과 재능으로 재즈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든 사람들' 정도로 본다.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찰리파커,마일즈데이비스 같은 이들은 A급 자격이 있다. 대신 소니스티트, 제리 멀리건, 리 모건 , 레이 브라이언트 뭐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은 B급연주자라고도 한다. 이들의 실력이 결코 A급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튜어트 홀 역시 그런 의미에서 B급이다. 요즘 각광을 받는 슬라보예 지젝같은 학자도 이런 기준으로 보면 B급 좌파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지금 스튜어트 홀>은 입문서로서 상당히 잘 씌여졌다. 스튜어트 홀의 사상적 편력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홀이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면서 끊이 없이 자기를 갱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잘 포착해 냈다.

문화연구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스스로에게 "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긴박함 앞에서, 문화연구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스튜어트 홀의 방식이다.그는 자신의 작업이 결코 자기충족적이며 통일된 형식적 이론으로 읽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생각의 밑 바닥에는 '비결정성'과 '국면적 특수성' 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스튜어트 홀은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스튜어트 홀의 작업 방식에서 매력을 느끼는 점은 이렇듯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때문이다.

"유일하게 해볼 만한 이론은 내가 완전히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워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저자 제임스 프록터의 글은 크게 '스튜어트 홀'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문화연구자 창시자로서의 홀이다. (내가 주로 배웠던 것이 이 시기의 그이다.) 그는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정치적으로 '대처리즘'과 충돌하게 되고 현실을 텍스트로 둔 그답게 이 문제를 통해 영국 문화정치의 분야를 건드린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정체성'의 문제,'디아스포라'의 문제로 건너간다.

스튜어트 홀은 "문화의 문제는 단연코 정치적인 문제이다" 라고 말한다. 문화를 단순히 향유하는 작품수준으로 이해하는 순수 미학자들에게는 불손하게 들릴 말이다. 그들은 문화는 그저 고도의 지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즐기는 것 뿐이지 결코 '정치'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또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반 믿는 것 같지 않다.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리비스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길게 설명할 것 까진 없고, '문화/문명'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대중문화로 부터 고급문화를 지켜야한다는 입장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보는 아도느로는 대표적으로 안티-대중문화자였다. 이에 비해 뒤에 등장하는 레이몬드 윌리엄스,리처드 호가트,에드워드 톰슨 같은 이들은 대중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흔히 '좌파 리비스주의'라고 불리운다. 이유는 그들이 대중문화의 역학을 인정했지만 대중문화 내에서 '고급'대중문화'/ '저급' 대중문화를 구분짓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 역시 크게 보면 이 '좌파 리비스주의'에 들어가는데 물론 전임자들에 비해 조금 더 발전한 입장이다.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라는 곳을 '투쟁의 장' 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스튜어트 홀은 구좌파 맑시즘의 경제환원론적 문화주의에 선을 그어야만 했다. 구좌파 미학에서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전통적인 계급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스튜어트 홀은 이를 단연코 거부한다. 홀이 주목한 점은 뿌리없는 대중문화의 양가성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상징장치가 될 수 도 있지만 그 반대의 의미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의 수동성 대신 그 '능동적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미디어의 효과 이론으로 보자면 초기 미디어 연구의 '강효과이론'에서 '상호효과이론'으로의 전환정도에 해당한다.(실제 이 모든 효과들이 동시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작용한다.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어트 홀 역시 '대중문화안에서의 위계'에 대해 인정한다. 그는 민속 예술/ 집단예술 사이 쯤에 '대중예술'을 둔다. 그가 '탈인격화되고 비독창적인' 집단 예술을 낮게 평가한다.

 "가장 우수한 재즈와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영화는 고급예술을 향해 나아간다.그러나 보통 영화나 팝 음악은 집단예술로 변해간다"

이건 사실 대중문화에 대한 옹호자들 역시 한번쯤 걸릴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원더 걸스의 "SO HOT" 과  메르세데스 소사의 " 생에 감사해" 를 같은 대중문화라고 똑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스튜어트 홀은 방법론적으로 '구조주의'와 '문화주의'를 절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문화주의는 사회 변동의 동인으로서 산 경험을 중심에 둔 반면 구조주의는 경험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언어와 문화의 효과라고 주장한다. 홀은 마르크스의 결정론에 반대하면서도 '보증없는 마르크스주의' 예를 들자면 마르크스주의에 의문을 품고 넘어서려는 비판적 마르크주의를 선호한다. 스튜어트 홀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알튀세르적인 구주조의'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구좌파적으로 착각의 산물이라고 여기지 않고 우리가 우리 존재으 실제 조건들을 상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표상들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기호로서 작동한다면 당연히 기호/기호화의 문제 역시 중요해 진다.그가 매스 커뮤니케이션 비평분야에 남긴 족적은 이와 상관이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말 그대로 '구조'를 강조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서 스튜어트 홀은 이것을 시대를 꺼꾸로 돌려서 그람시로 돌파한다. '헤게모니론'을 활용하여 '대중문화의 공간이 투쟁의 공간'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이 말은 '대중문화'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국면적으로 끈임없이 지배/저항사이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러시아의 발렌틴 볼로시노포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에서 빌어온 '다악센트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대중문화에 성격에 대한 견해를 펼친다. 이것은 '반본질주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가 단순히 한 계급의 성향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 의미 역시 관계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액센트를 갖는 다는 말이다.또한 이것은 '기호'의 해독 문제와도 관계 있다.

"기호는 늘 새로운 악센트를 부여받게끔 되어 있으며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 즉 언어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에 전적으로 뛰어든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미디어의 메시지) '소비자가 생산자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서 스튜어트 홀은 '선호된 의미'라는 말을 넣어 둠으로써 '평등하지 않은' 다의미성에 대해 말한다.

스튜어트 홀은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맥락성','관계성', '비본질성' ,'수용자의 능동성' 등을 읽어냄으로서 억압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저항과 반역의 도구로서 '권력의 배치'를 바꾸는 역할이 가능하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튜어트 홀은 '대처리즘'에 관심을 갖는다. '대체가 도대체 왜 승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실제적인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 정치 상황과 비교해 봐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홀이 보기에 대처의 승리는 '이미지의 승리'였다.

"이데올로기로서 대처주의가 한 일은, 사람들의 공포.불안.정체성 상실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것은 정치를 이미지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대처주의는 우리의 집단적 환상,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영국, 사회적 상상력에 호소한다. 좌파가 '자신들의 정책'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대처 여사는 이러한 이슈들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대처의 이데올로기 프로젝트의 정점에 '포틀랜드전쟁'이 있다. 여기서 대처는 '도덕적 원칙' 제국시대 영국의 위대함' '애국심과 가부장제'등의 이데올로기 재현에 힘쏟는다. 결국 '퇴보적 근대화'라는 무기를 통해 '대처'와 반대에 서야마땅할 '흑인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어낸다. 홀은 전혀 압뒤가 맞지 않는 정세와 이데올로기를 매칭시키는 대처를 '독재적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스튜어트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우파를 칭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도그마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좌파를 구원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 다닐때 우리 교수님은 파업 현장에선느 그렇다고 쳐도 ,노사 협상에서 노조가 수염을 기르고,붉은 띠를 두른 것이 어떻게 이미지 정치화되는지 생각해보자가 말씀하셨다. 사측은 '합리적' '타협적' '신사적' '이성적'인 이미지로, 노조의 주장은 -주장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 '비타협적' '야만적' '폭력적' 으로 TV를 보는 일반인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진보정치에 있어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왜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대학 과방같은 분위기여야 하는지? 왜 모든 사무실에서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야하는지? 이것이 물론 내가 부르즈아적 세련미를 존재조건으로 갖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재고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진보정당들이 이미지 정치를 잘 모르고 그것을 쓰는 것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다.

이제 스튜어트 홀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간다. 흑인 문제와 관련해서 홀은 두 단계로 흑인 운동의 특징을 말한다. 특히 '정체성' 보호를 위해 나온 '선량한 흑인'이란 개념이 담론의 영역 안에서 또 하나의 '전체성'을 갖는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예를 들자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각의 한 단면의 예로 활용될 수 있다.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아시아 노동자'라는 개념 역시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차분하게 봐야 한다는 점 말이다.

오랜 만에 문화주의자들의 이름을 불러 보니 한 편으로 반갑다. 우리가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주의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문화주의가 흔히 받는 비판인 '정치경제학적 결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문화이론을 왜곡하고 곡해한 것이다' 라는 방어적인 태도로는 더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 스튜어트 홀>은 아주 훌륭한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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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수요일에는 회사노조에서 상경투쟁을 한다.

당연히 가야하는데 수요일은 업무상 빼도 박도 못하는 날이다. 남이 대신 해줄 수도 없고 기한은 반드시 맞추어서 납품해야 하는 일이 있다.

오는 9월에는 대규모 파업이 예상된다. 파업이 대안도 아니지만 뾰족한 답이 없다는 노조 위원장의 말에 서글픔이 묻어 있다. 9월에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이것 저것 나를 압박할 많은 법들과 시행령들이 통과될 것이다.

왜 상경투쟁을 하느냐?

그건 이명박때문이다.

이명박이 어떻게 했냐구?

..나쁘게 일을 몰아가고 있다.

 

 신나게 욕도하고 비난도 하지만

내게 아무런 피해가 없는 그런것과 다르다.

 이명박을 쥐박이라 욕하고 잡아죽이자고 해도

 월급은 그대로 나오고, 연말 보너스가 그대로 보장되고,

 불특정 다수에 속해서 목소리 하나 더 얹는데

 내게 무슨 큰 피해가 있겠는가?

오히려 '훈장'이 될 가능성이 있지 않은가? 저 사람은 '진보적'이야 '의식' 있어.

..

이명박이 내 직장을 잃게 만든다.

 농담이 아니다...이런 추세라면 이명박이 물러나기 전에

내가 직장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꼭 나만이 아니라...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누구든.

....

 그래서 나는 '흥분' 하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말이다.

이건 냉혹한 것이다. 돌파해 나가지 않으면 길바닥에 나앉는거다.

.... 

길바닥에 나앉는다는 것에 대해 두려운 꿈을 꾼적이 있다. 실제 IMF때 늘어난 노숙자들을 보면서 내가 저 자리에 있지 않으라는 보장을 못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물론 그렇게 무력하게 나앉지는 않겠지만...)

이런 위기감이 늘 상 내 주변에는 팽배하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그렇게 읽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그 위기감때문이다.)

내가 알라딘에서 가끔 심심할 때는 

그런 '위기감'이 늘 코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없다는 거다. 아니면 있어도 '탈세속화'하여 이미 대범하거나(또는 대범한 척 믿거나), 그도 아니면 8월에 물가에 가 있는 것을 이런 '위기감'과 동일시 하는 사람이 많거나....

물론 '위기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내가 곧 겪게 될 지도 모를 절박함을 매일 만나는 분들도 계시다. 하지만 정말 '절박'해진 자는 알라딘 같은데 글을 쓰는 여유를 가질 수 없다. 나 역시 나를 둘러싼 상황이 그 끝으로 가면 글을 쓸 수 없을 게다. 그 때가 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위기로움' 과 함께 더불어 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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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주나무 2008-07-21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적과의 동침이군요.
드팀전 님의 글에서는 다른 창을 볼 수 있어 좋아요^^;
 

창비주간 논평에 '서구의 68혁명을 떠올리며 촛불을 본다' 라는 부산대 사학과 유재건 교수의 글이 올랐다.

마지막에 몇 몇 부분에서는 생각이 다르다. '정치의 복원'과 '일상정치의 투쟁'이 비동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교수의 글을 '일상영역에서의 투쟁'이라는 측면에서만 바라보면 될 듯하다. 그리고 현재적 의미를 배제한 채 '정당수렴론'이라고 '하며 정치 불신'으로 이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 진중권은 '어떤 당이든' 촛불 이후에 '정당'활동에 참여하라라고 말한 정도다. 유재건교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촛불'에 아부하는 것 만이 '촛불'을 위하는 것은 아니다. 다음의 우리를 준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자축'이 아니라 '질타'일 지도 모른다. 

모든 사회 운동은 좌절의 연속이고 또 다른 부활의 연속이다.

EBS의 영상은 68의 문화적 성격과 그 변화의 결과에 대해 말한다. 언젠가 나 역시 68의 토대 위에 서 있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EBS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68의 정치사회적 성과와 문화적 성과에 대해 구분하고 난 다음에 희망적인 부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걸 이해하지 않으면 논리적으로 '모든 혁명은 당장에 성공과 실패 여부에는 상관없이 어떤 변화를 만들기 때문에 모두 성공적이다' 라는 결론으로 가버리는 환원론적 함정에 빠질 수 도 있다. 감정적으로 이런 분위기를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그러면 도대체 '공부'를 왜하나? 우리는 이미 사람이 '동물'이라는 엄청난 진리를 알고 있는데...

 

      

             
 




서구의 68혁명을 떠올리며 촛불을 본다  
창비주간논평. Comments (0)

유재건 / 부산대 사학과 교수

그간 촛불항쟁을 서구의 68혁명(혹은 운동)과 비교해 그 유사성에 주목하는 글들이 간혹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사건을 알려진 역사적 사례에 비추어 이해하려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다. 물론 68운동은 역사적 배경에서 지금 우리와 크게 다른데다, 나라마다 특유의 발전과정을 보이기 때문에 곧바로 비교하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 아마도 상당히 정교하고 복합적인 역사적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기왕에 유사성 여부가 거론되는 마당이니, 촛불항쟁의 새로움을 약간 넓은 시야에서 명확히한다는 제한된 취지에서 한번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싶다.

서구의 68운동에는 촛불항쟁에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면모들이 많이 있다. 당시까지 자율적 주체로 인정받지 못했던 젊은 세대의 자발적 주도, 권위주의에 대한 저항, 축제와 저항의 결합, 생활정치의 발견, 활발한 토론문화, 참여민주주의의 극적 진전, 대학 교육체제 비판, 다양한 문화적 발산 등이 그것이다. 심지어 미국 언론보다 더 친미적인 슈프링거 같은 보수 언론제국에 맞선 수차례 대규모 시위와 언론사 공격은 우리 현실의 닮은꼴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분명 68운동은 거리의 정치를 통해 그때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실험하고자 했고 당대로선 무척 창의적이고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하기도 했다.   

68운동의 새로움과 딜레마

그러나 그 운동은 당대의 정치적 맥락에서 급진적인 해방을 목표로 한 저항운동이었다. 우선 그것은 혁명에 대한 과거의 기억에 압도당한 면이 있었고, 이 때문에 자신들이 추구한 새로운 대안적 가치와의 충돌을 계속 경험했다. 빠리의 5월사태만 보더라도 저항방식은 오랜 혁명전통에 따른 것으로, 거기엔 프랑스대혁명에서부터 1871년 빠리꼬뮌의 바리케이드 그리고 1917년 러시아혁명에 대한 기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비장한 과거의 추억과 미래의 상상력 간 긴장이 계속된 것이다. 게다가 그 운동목표는 새로운 사회변혁이 일국적 차원에서 가능하리라는 막연한 환상에 근거한 것이기에 내내 모종의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 결과 68운동의 저항은 점차 폭력이냐 비폭력이냐의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68운동의 역사학자 길혀홀타이(I. Gilcher-Holtey)는 급진성과 폭력성에서 비롯된 갈등이 운동의 붕괴에 중요한 동기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이는 운동가들 내에 좌절감이 확산되는 데도 크게 일조했다. 프랑스 68혁명의 절정이었던 5월이 지나고 치러진 6월의 선거는 오히려 드골주의자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결국 폭력/비폭력 여부가 운동세력 내에 갈등지점으로 잠복해 있었고, 운동은 끝내 분열,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에 걸렸다. 그 좌절로 인해 일부 활동가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승리하지 못했다. 천만다행이다" 같은 냉소가 퍼지기도 했다.

세계 도처에서 발생한 68운동은 흔히 실패에도 불구하고 세계사를 크게 바꾼 혁명으로 인식된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구좌파 모두를 겨냥했던 이 운동은 한편으로 체제 내에 포섭되어 길들여지기도 하고, 다른 한편 체제 전반에 스며들어 의미있는 사회변화, 더 나아가 세계체제의 변화에 기여하기도 했다. 그 운동에서 나온 새로운 감수성은 새로운 사회운동들을 낳고 참여민주주의를 한 단계 비약시킨 것이 사실이다.

촛불항쟁, 시장만능주의에 맞선 민주주의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촛불항쟁과의 결정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 좀 싱거워진 셈이다. 우선 촛불항쟁의 이념적 토대가 68운동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겠다.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 요구는 곧 다수 '국민'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기에, 전혀 급진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68운동은 급진적이고 변혁적인 운동으로, 촛불항쟁은 온건한 민주주의 또는 혹자의 주장대로 '대한민국 민족주의' 운동으로 대비시킬 수 있을까?

그렇게만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촛불항쟁의 밑바닥에는 탐욕스런 시장만능주의에 맞서는 민주주의, 건강한 삶이 위태로워진 시대에 맞서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가 있다. 이 점을 인식하는 것은 무척 긴요하다. 오늘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보통 사람들이 공유하는 이런 민주주의의 힘으로도 무력해지지 않고 제동을 거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오직 급진주의만이 변혁적인 것은 아니며, 현 세계체제의 제약하에서는 다수 국민이 참여하는 중도적이면서도 변혁적인 노선이 가능하고 때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것이 지구 차원의 민주주의에도 기여하리라는 것은 당연하다.

현재의 촛불항쟁만 하더라도 이미 미국사회 내의 쇠고기 안전에 경종을 울린 바가 있고, 앞으로 동물성 사료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간다면 세계 차원의 생태적 자각을 일깨우는 데 일조할 가능성도 있는 운동이다. 현재 우리 운동은 소위 '5대 의제'(건강보험·공기업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교육자율화, 대운하, 공영방송)뿐 아니라 한층 진보적인 의제를 포함한 다양한 과제들에 직면해 있는데, 이들 과제의 해결 하나하나가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동시에 세계자본주의의 변화에 얼마간 기여를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68혁명과 촛불항쟁은 아주 다른 방식과 정도로 자본주의 세계의 해악에 저항하는 것일 수도 있다.

불행이라 할지 행운이라 할지 우리에게는 도와주는 존재가 있다. 불교에서는 방해하는 인연, 즉 내게 비록 해를 입히지만 나 스스로를 단련시키고 원(願)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존재를 '역행(逆行) 보살'이라 한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행 보살'이다. 대통령은 하필이면 의식주, 건강, 환경 등 하나같이 생명과 인권의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정책만 골라 하겠다는 태세이다. 이를 제어하는 일이 앞으로 시급하지만, 대통령 스스로가 다수 국민으로 하여금 민주주의와 생명 그리고 인권의 근본문제에 관해 판에 박힌 공부가 아닌, 실질적인 공부와 수행을 하도록 도와주고 있다. 물론 우리가 그를 대통령으로 뽑은 것은 '뼈저린' 일이지만, 이번에 그는 경제성장과 이윤추구에 목매고 살아온 우리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는가?

세계사적 사건으로서의 촛불항쟁

촛불항쟁은 그 평화적 시위양태로 볼 때 68혁명과 비교할 것도 없이 이미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적 사건이다. 우선 촛불시위 주체들의 행동에는 68혁명의 운동가들과 달리 과거에 대한 얽매임이 신기할 정도로 없다. 80년 광주와 87년 6·10항쟁도 추억의 모델이 아니며, 2002년 효순-미선 촛불집회, 2004년 대통령탄핵 반대운동 때에 비해서도 그 양상은 두드러진 변화를 겪었다. 무엇보다 괄목할 만한 것은 디지털 네트워크를 활용한 소통과 연대였다. 이를 통해 대중의 광범위한 참여와 높은 토론문화가 가능했고, '거리의 정치'와 '싸이버공간 정치'의 결합은 68혁명을 비롯한 그전의 어떤 운동보다도 수준 높은 운동을 전개할 수 있었다. 탈중심적 성격 또한 뚜렷한데, 이제 운동 지도자들 대신에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헌신적인 도우미들이 존재할 뿐이다. 이같은 지도부 부재가 과연 어느 때나 바람직할지는 의심의 여지가 있지만, 이 현상 자체는 참으로 새로운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수만, 수십만에 이르는 대규모 인파가 아무 사고 없이 밤새도록 평화적인 시위를 한다는 것, 또 두달이 넘도록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은 세계 역사 어디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 대단한 것은 이것이 때때로 경찰의 자극과 도발을 견뎌낸 것이라는 점이다. 제발 좀 변질되었으면, 제발 좀 폭력이 나와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정부와 보수언론의 강박은 이제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대중의 울화를 돋우고 과격화와 고립화의 덫을 놓는 세력은 낡은 패러다임의 전선을 상상하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대중이 그 패러다임을 넘어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촛불의 정치는 68혁명이 걸려든 고립화의 덫을 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68의 패배와 좌절로 인해 자연스레 강화된 정당정치 수렴론과 대립된다는 점에서, 68 패배의 주요 원인과 주요 결과의 덫 양자를 피해가고 있는 셈이다. 사실상 운동의 정치를 제도적 후진성의 증거로 간주하고 정당정치로의 수렴을 주장하는 우리 지식계 일각의 논의는 68혁명의 좌절로 인한 순치(馴致)를 선진성의 징표로 삼는 꼴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촛불항쟁이 국민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평화시위를 통해 생명과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를 지켜가는 운동이라면, 이제 68운동과 촛불항쟁은 다른 면이 두드러진다. 타리크 알리의 《1968―거리행진》(1968: Marching in the Streets)의 우리말 제목 '희망의 시절, 분노의 나날'은 68에는 아주 적확한 것이지만, 우리 앞에 분노의 나날만 있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68혁명 때와 정반대로 정부가 오히려 '명박산성'이라는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7월 5일 국민승리선언 이후로 정부의 벽창호식 강경대응은 점입가경이다. 정부가 스스로 표방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계속 훼손하지 않고는 버티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부는 촛불의 승리를 인정하기보다 무력화하기 위해 전선을 아예 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이것은 국민이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다가 허탈과 분노로 지치거나 고립되기를 바라는 저열한 기획으로 보인다. '우리가 이미 이겼노라'는 국민승리선언은 그 진창에서 같이 뒹굴지 말고 우리가 이룩한 성취를 바탕으로 좀더 느긋하고 유쾌한 새 단계의 싸움으로 나아가자는 뜻일 것이다. 더구나 촛불항쟁이 세계사적으로도 선진적인 아름다운 사건이 될 조짐임을 자각한다면, 더 즐겁게 싸우는 일이 가능하지 않겠는가?

2008.7.16 ⓒ 유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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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걸어서 온다 - 윤제림 시집
윤제림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윤제림의 시는 웃긴다. -그래... 웃긴다.

물론 이 시집에 어설픈 간판쟁이처럼 이름을 달아줄 몇 몇 단어들이 내 주머니 속엔 있다. 이 친구들이 서로 치고 나가겠다고 열 바짝받은 냄비 속 옥수수 마냥 각축 중이다. 하지만 간판을 팔레트로 만들지는 말아야 한다. 결국 한 두가지 주종을 이루는 색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웃긴다' 라는 경거망동한 단어를 그 주머니 속에서 뽑아 들고 말았다.

 도대체 웃기는 걸 '웃긴다'는 말 말고 어떻게 표현해야 할 까? 내가 홍길동도 아닌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 이라 부르지 못한데서야 말이 되겠나.

싸리제 너머/비행운 떳다//  붉은 밭고랑에서 허리를 펴며/호미 든 손으로 차양을 만들며/남양댁/소리치겠다.//  "저기 우리 진평이 간다"

우리나라 비행기는 전부 진평이가 몬다// ......<공군소령 김진평>

청소당번이 도망갔다/ 걸레질 몇 번 하고 다 했다며/ 가방도 그냥 두고 가는 그를/ 아무도 붙잡지 못했다//

"괜히 왔다 간다"/ 가래침을 뱉으며/ 유유히 교문을 빠져나가는데 / 담임선생도 / 아무 말을 못했다. //.......<걸레스님> (중광 1935-2202)

안 우낀가? 나만 웃긴가. ^^

  마지막 시의 압권은 '담임선생도 아무 말을 못했다' 가 아닐까 싶다. 그 벙찐 선생의 얼굴과 세상만물의 모든 실을 끊고 교문을 나서며 '씨-익'하고 웃는 걸레스님의 얼굴이 생각나지 않는가?  일종의 니체적인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웃긴 시 한 편 더 보자. 길다.

1. 화장실 다녀오느라 일행을 놓친 할머니 한 분이/ 줄지어 늘어선 유치원 아이들을 헤치며/ 아무 버스나 기웃거립니다.// 노란 버스와 아이들 역시 동무 하나가 안 보이는 지/ 선생님들은 손나팔을 만들어 선창을 하고/ 아이들은 합창을하듯 따라 부릅니다. 코-끼-리!

2. 사람과 차들의 단풍숲을 헤치며/ 대열을 빠져나온 버스 한 대가 어중간히 멈춰 섭니다.// 좁다랗게 열린 차창 하나에 서너 명의 할머니들이 매달려서/ 합창을 합니다. 밀-양-댁! // 좁다란 차창을 빠져나온 꼬깃한 손수건도 한 장 다급하게 소리를 칩니다.

3. 밀, 양, 댁이 열심히 뛰어갑니다// 할머니를 태운 버스가 조심조심/ 사람과 차들의 단풍숲 사이로 길을 냅니다// 그 길 끝에 아이 하나가 서 있습니다 /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은 얼굴입니다// 코, 끼, 리입니다.   ... <관광버스가 보이는 풍경>

안 웃긴가? 안 웃기면 정말 당신은 과묵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메마른 사람이다. 컴퓨터로 글을 봐서 그럴지도 모르니 당장 시집을 사서 편안하게 '해우소'에 앉아서 읽어봐라. 당신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거다.

잡지에 글을 쓰는 평론가 신형철은 '시치미'의 어원에 장광설을 늘어 놓으며 윤제림의 전법이 '시침떼기'라는 것을 말한다. 앞의 세 시에서는 '진평이', '담임선생', '코, 끼, 리' 가 그런 '시치미'다. 그리고 이렇게 시치미 뚝 떼고 시인은 무리를 뒤로 하고 혼자 씩 웃으며 가는 거다. 윤제림의 시는 그래서 웃기는데 박장대소의 웃음이 아니다. 혼자 입을 실룩거리거나  입 한 쪽이 실에 의해 잡아당겨 진 듯 웃는 그런 웃음이다.

 거기까지 좋았다. 그런데 평론가의 글에서 그리고 저자의 약력에서 내가 윤제림이 '광고쟁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것이다. '광고쟁이'를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자본주의의 꽃' 아닌가 ? 내 전공도 이 쪽과 관련이 있어서 친구들 중에도 광고밥 먹는 사람들이 꽤 많다. 내겐 윤제림의 '시치미'떼기 전법이 요즘 유행하는 광고수법과 거의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좋다는 의미도 나쁘다는 의미도 아니다. 웃긴다는 의미다.^^ )  TV 광고에서 '유머'는 중요하다. 이런 유머를 만들어 내는 방식 중에 하나가 끝가지 그 광고 비밀을 움켜쥐고 있다고  마지막 한 두 컷에서 폭로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볼까... 도서관에서 책고르는 것 만큼 너무 많아서 쉽게 떠오르지가 않는데...최근 광고중 영화배우 김수로의 '해드뱅잉' CF 떠올려 보자.(잘 모르겠으면 검색해서 보시라.) 김수로가 딮 퍼플의 <SMOKE 0N THE WATER>에 맞추어 무아지경 상태에서 해드뱅잉을 한다. 잘도 한다. 날라리 논 가닥에 제대로 필 받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주변 사람들이 김수로를 쳐다보고 있다 (자막: 지치시죠?) 김수로는 해드뱅잉을 한 것이 아니라 과하게 존 것이다.  그리고 '활력 발효유...000" 마지막에 한방 김수로의 애드립이 결합된다. 쪽팔리니까 빨리 나가려고 옷을 입다가 거꾸로 걸치고 나간다. 15초 안에 반전이 이렇게 일어난다.

윤제림의 시를 계속 읽다보면 끝에 어떤 반전이 기다리고 있을까 기다리게 된다. 이게 관성화되니까 마치 해외 유명 TV광고 모음전을 보는 듯 하기도 하다. 이건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또 하나의 반전이-내 말로 '반전'이다- 있다.

그의 시에는 웃음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시는 평론가 이홍섭의 화엄세간론을 빌자면 부처님의 옅은 미소 속에 세상과 사람에 대한 따뜻하면서 애틋한 마음이 담겨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시를 광고와 달리 조금더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반전이다.(앞의 세 편의 시도 웃음속에 짠한 무언가가 있다.) 이 범주는 우리의 촌정서에서 비롯되지만 지엽적인데 머무르지 않는다. 더 넓은 세상과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다는 말이다.

낡고 지친 고깃배가 도망을 치면 얼마를 가랴.해경 순찰함에 끌려 배 들어온다. 목포항구 중국 배 하나 들어온다. 이 배엔 누가 탔나. 연변서 온 이가 박가. 길림 사는 최서방. 이룡강서 나온 장소저...갑판 밑에서 탄식하며 기어나오는데. 천리 뱃길 허사로세. 용궁 꿈도 헛꿈이로세. 어이 돌아가리. 빈손으로 어이 가리.  ...(중략)... 어린 처녀 하나 유독 슬피 우는데, 아이고 아버지 불쌍한 우리 아버지. 이렇게 소리 높여 제 애비만 찾으며 울더라.       ...<심청가>

절묘하지 않은가. 광고 전법은 이렇게 사회적 맥락과 이어지면서 강한 효과를 발휘한다. 거기에 '심청전'이라는 우리 고전과의 접목이라니...울림이 있는 시다. 나는 이 시를 읽으며 예전에 봤던 신문기사를 떠올렸다. 선박 회사에 사기를 당한 조선족들 말이다. 꽤 오래 부산항에 억류되어 있었다. 상륙하지도 못하고 본국 송환까지 비참함 생활 속에 있었다. 브로커에게 돈 탈탈 털어 한국에 건너 왔을 텐데, 한국땅을 코 앞에 두고 땅을 밟지도 못했다. 브로커는 이미 도주했고 단 한 푼도 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경찰도 딱한 사정을 이해하지만 법적으로 돌려 보낼 수 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윤제림은 그 안에서 심청이를 본 것이다. 비슷한 시를 또 보자.

나 어릴 때 학교에서 장갑 한 짝을 잃고/울면서 집에 온 적이 있었지/ 부지깽이로 죽도록 맞고 엄마한테 쫓겨났지/ 제 물건 하나 간수 못 하는 놈은 밥 먹일 필요도 없다고/ 엄마는 문을 닫았지/ 장갑 찾기 전에 집에 들어오지도 말라며

그런데 저를 어쩌나 스리랑카에서 왔다는 저 늙은 소년은 손목 한 짝을 흘렸네/ 몇 살이나 먹었을까 겁에 질린 눈은/ 아직도 여덟 살처럼 깊고 맑은데/장갑도 아니고 손목을 잃었네/ (중략)

어찌할거나 어찌 집에 갈거나/ 제 손목도 간수 못 한 자식이// 제 움푹한 눈망울을 닮은/ 엄마 아버지 아니 온 식구가, 아니/ 온 동네가 빗자루를 들고 쫓을 테지/ 손목 찾아오라고 찾기 전엔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고//

찾아보세나 사람들아...(중략)....걔 엄마 아버지한테 보이기라도 해야지/ 장갑도 아니고/ 손목인데.//

이제 웃음은 입꼬리를 내린다. 내가 사랑한 윤제림의 웃음은 이런 것들을 숨기고 있기 때문에 빛이 난다. 구재 런닝이 새 런닝보다 빛날 때가 있다. 건강한 땀이 만들어낸 초코렛빛 피부 위를 살며시 덥어주고 있는 구재 러닝은 표백제 냄새를 풍기는 새 런닝보다 훨씬 더 하얗다.

얘야, 이 사진 좀 보아라/ 엄마가 한국으로 돈 벌러 갔을 때란다/...모처럼 쉬는 날이라서/ 우리나라 사람들 열 댓명이 놀러 갔었지/ 아주 유명한 절이었다.

절 이름? 뭐더라. 엄마도 찾아봐야 알겠다// 네 아빠가 사준 것이라서/ 한 번도 안쓰고 넣어둔/ 수건 한 장.// 여기 있다/ 풀. 국. 사 관광기념

그래./ 엄마가 지금 네 나이에 돈 벌러 갔던/ 먼 동쪽 나라의/ 늦은 봄날 오후였다/ 풀. 국. 사였다.

.....<풀국사>

좀 심각해진 것 같으니, 다시 웃으며 끝내자. 아...그리고 마지막 한가지 더. 윤제림의 몇 몇 시에서는 하이쿠의 짧은 향기가 나기도 한다.

 리뷰의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시의 제목은 <춘향가>...더운 여름에 윤제림의 <그는 걸어서 온다>로 한 번 살짝 웃어주자. 운주사 와불들 처럼...끝.

부여중학교, 오늘도/ 이층 창가에 서서/ 당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저 여선생을 이기려면//

나는 아무래도, 여기/ 표 파는 여자나 되어야 할까봐요./ 정림사지 오층석탑/ 당신을 흔들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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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7-18 22:50   좋아요 0 | URL
좋은 소개 감사합니다. 해우소뿐만 아니라 여기저기서 읽어내려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