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스튜어트 홀 ROUTLEDGE Critical THINKERS(LP) 5
제임스 프록터 지음, 손유경 옮김 / 앨피 / 200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스튜어트 홀은 내게 고향집 담벼락 같다. 사실 내게 실제 고향이라는 것이 없는데도 그렇게 느껴진다. 

 마을 어귀부터 친숙한 고향의 느낌은 먼길을 달려온 마음을 무장 해제 시킨다. 스튜어트 홀이 내게 그렇다. 일종의 '사상의 고향' 같은 것이다. 물론 비 온 날 아스팥트 위에 고인 물만큼 얄팍한게 내 사상의 깊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양해를 해야한다. 하지만 동네에 하나 쯤 있던 바보들에게도 고향은 고향인 법이고, 똥개도 자기 집 앞에서는 50점 먹고 들어가는 법이다.

  음악 매니아들 중에는 최신 팝송에서 시작해 거꾸로 음악의 연원을 쫓아가는 경우가 있다. 마이클 잭슨을 듣다가 로버트 존스의 블루스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내게 '맑스'로 가는 그 사다리의 양 축에 '프랑크푸르트 비판이론'과 '문화연구' 가 있었다. 물론 이런 흐름이 맑스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고 볼 수도 그렇지 않다고 볼 수 도 있다. 그러나 거칠게 말하자면 맑스 이후 모든 사회학은 도전이든 응전이든 확장이든 모색이든 맑스에 답을 했다.

나같이 '딴따라'를 좋아하는 학생이 '대중현상과 대중문화' 에 관심을 갖는 '문화연구'에 등을 돌릴 리가 없다. 특히 내가 대학을 입학 했을 때는 소위 '정치경제 시대'의 하락기와 '문화시대'의 상승이 겹쳐지는 시점이었다. 강내희를 중심으로한 <문화연구>라는 계간지 역시 내가 대학 다니는 동안에 첫 호를 찍었다.

내게 너무 친근한 스튜어트 홀이지만 그래봐야 그는 B급좌파다.(김규항이 B급좌파라는데 아무래도 자신을 너무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재즈에서는 B급 뮤지션을 대개 '재즈사에 큰 흐름을 주도할 만한 뮤지션이나 장르의 중심적 인물은 아니지만 뛰어난 연주력과 재능으로 재즈를 풍부하고 아름답게 만든 사람들' 정도로 본다.이런 기준으로 보자면 찰리파커,마일즈데이비스 같은 이들은 A급 자격이 있다. 대신 소니스티트, 제리 멀리건, 리 모건 , 레이 브라이언트 뭐 이런 뛰어난 연주자들은 B급연주자라고도 한다. 이들의 실력이 결코 A급에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스튜어트 홀 역시 그런 의미에서 B급이다. 요즘 각광을 받는 슬라보예 지젝같은 학자도 이런 기준으로 보면 B급 좌파가 아닐까 싶다.

이 책 <지금 스튜어트 홀>은 입문서로서 상당히 잘 씌여졌다. 스튜어트 홀의 사상적 편력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홀이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면서 끊이 없이 자기를 갱신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잘 포착해 냈다.

문화연구의 창시자라는 평가를 들으면서도 스스로에게 "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긴박함 앞에서, 문화연구의 목적은 도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스튜어트 홀의 방식이다.그는 자신의 작업이 결코 자기충족적이며 통일된 형식적 이론으로 읽히는 것을 거부했다. 그의 생각의 밑 바닥에는 '비결정성'과 '국면적 특수성' 이란 것이 있다. 그리고 스튜어트 홀은 이런 생각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스튜어트 홀의 작업 방식에서 매력을 느끼는 점은 이렇듯이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방식때문이다.

"유일하게 해볼 만한 이론은 내가 완전히 유창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싸워 물리쳐야 하는 것이다."

저자 제임스 프록터의 글은 크게 '스튜어트 홀'을 세 시기로 구분한다. 하나는 (전통적인) 문화연구자 창시자로서의 홀이다. (내가 주로 배웠던 것이 이 시기의 그이다.) 그는 80년대를 넘어서면서 정치적으로 '대처리즘'과 충돌하게 되고 현실을 텍스트로 둔 그답게 이 문제를 통해 영국 문화정치의 분야를 건드린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정체성'의 문제,'디아스포라'의 문제로 건너간다.

스튜어트 홀은 "문화의 문제는 단연코 정치적인 문제이다" 라고 말한다. 문화를 단순히 향유하는 작품수준으로 이해하는 순수 미학자들에게는 불손하게 들릴 말이다. 그들은 문화는 그저 고도의 지성과 따뜻한 감성으로 즐기는 것 뿐이지 결코 '정치'적이 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런 생각 자체가 또 하나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구성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반 믿는 것 같지 않다.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실 '리비스주의'를 이해해야 한다. 길게 설명할 것 까진 없고, '문화/문명'의 이분법적 구분이다. 대중문화로 부터 고급문화를 지켜야한다는 입장이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일원으로보는 아도느로는 대표적으로 안티-대중문화자였다. 이에 비해 뒤에 등장하는 레이몬드 윌리엄스,리처드 호가트,에드워드 톰슨 같은 이들은 대중문화를 부정적인 것으로만 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들은 흔히 '좌파 리비스주의'라고 불리운다. 이유는 그들이 대중문화의 역학을 인정했지만 대중문화 내에서 '고급'대중문화'/ '저급' 대중문화를 구분짓고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트 홀 역시 크게 보면 이 '좌파 리비스주의'에 들어가는데 물론 전임자들에 비해 조금 더 발전한 입장이다.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라는 곳을 '투쟁의 장' 으로 파악한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스튜어트 홀은 구좌파 맑시즘의 경제환원론적 문화주의에 선을 그어야만 했다. 구좌파 미학에서는 대중문화라는 것은 전통적인 계급동맹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지배이데올로기의 장치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스튜어트 홀은 이를 단연코 거부한다. 홀이 주목한 점은 뿌리없는 대중문화의 양가성이다. 그것은 지배계급의 상징장치가 될 수 도 있지만 그 반대의 의미작용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결국 스튜어트 홀은 '대중문화'의 수동성 대신 그 '능동적 가능성'에 대해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미디어의 효과 이론으로 보자면 초기 미디어 연구의 '강효과이론'에서 '상호효과이론'으로의 전환정도에 해당한다.(실제 이 모든 효과들이 동시에 각기 다른 장소에서 작용한다. 어느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튜어트 홀 역시 '대중문화안에서의 위계'에 대해 인정한다. 그는 민속 예술/ 집단예술 사이 쯤에 '대중예술'을 둔다. 그가 '탈인격화되고 비독창적인' 집단 예술을 낮게 평가한다.

 "가장 우수한 재즈와 마찬가지로, 가장 훌륭한 영화는 고급예술을 향해 나아간다.그러나 보통 영화나 팝 음악은 집단예술로 변해간다"

이건 사실 대중문화에 대한 옹호자들 역시 한번쯤 걸릴 수 밖에 없는 질문이다. 나 역시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원더 걸스의 "SO HOT" 과  메르세데스 소사의 " 생에 감사해" 를 같은 대중문화라고 똑같은 위치에 놓을 수는 없다.)

스튜어트 홀은 방법론적으로 '구조주의'와 '문화주의'를 절합하려는 시도를 한다. 문화주의는 사회 변동의 동인으로서 산 경험을 중심에 둔 반면 구조주의는 경험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된 언어와 문화의 효과라고 주장한다. 홀은 마르크스의 결정론에 반대하면서도 '보증없는 마르크스주의' 예를 들자면 마르크스주의에 의문을 품고 넘어서려는 비판적 마르크주의를 선호한다. 스튜어트 홀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알튀세르적인 구주조의'이다.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를 구좌파적으로 착각의 산물이라고 여기지 않고 우리가 우리 존재으 실제 조건들을 상상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표상들의 체계'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기호적 특성을 강조한것이다. (이데올로기가 기호로서 작동한다면 당연히 기호/기호화의 문제 역시 중요해 진다.그가 매스 커뮤니케이션 비평분야에 남긴 족적은 이와 상관이 있다.) 하지만 구조주의는 말 그대로 '구조'를 강조하여 변화의 가능성을 희석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여기서 스튜어트 홀은 이것을 시대를 꺼꾸로 돌려서 그람시로 돌파한다. '헤게모니론'을 활용하여 '대중문화의 공간이 투쟁의 공간'이라는 것을 실증하는 것이다.이 말은 '대중문화'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국면적으로 끈임없이 지배/저항사이에서 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러시아의 발렌틴 볼로시노포의 <마르크스주의와 언어철학>에서 빌어온 '다악센트성' 이라는 개념을 통해 대중문화에 성격에 대한 견해를 펼친다. 이것은 '반본질주의'과 깊은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가 단순히 한 계급의 성향을 일관되게 표현하는 문화가 아니라는 것이며 그 의미 역시 관계의 맥락 속에서 다양한 액센트를 갖는 다는 말이다.또한 이것은 '기호'의 해독 문제와도 관계 있다.

"기호는 늘 새로운 악센트를 부여받게끔 되어 있으며 의미를 놓고 벌어지는 투쟁, 즉 언어 안에서 벌어지는 계급투쟁에 전적으로 뛰어든다."

이런 맥락에서 (대중미디어의 메시지) '소비자가 생산자다'라는 말이 나온다. 물론 여기에서 스튜어트 홀은 '선호된 의미'라는 말을 넣어 둠으로써 '평등하지 않은' 다의미성에 대해 말한다.

스튜어트 홀은 이렇게 '대중문화'에서 '맥락성','관계성', '비본질성' ,'수용자의 능동성' 등을 읽어냄으로서 억압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저항과 반역의 도구로서 '권력의 배치'를 바꾸는 역할이 가능하다는 입장에 서 있는 것이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스튜어트 홀은 '대처리즘'에 관심을 갖는다. '대체가 도대체 왜 승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실제적인 고민에서 출발한다. 이것은 현재 우리 정치 상황과 비교해 봐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홀이 보기에 대처의 승리는 '이미지의 승리'였다.

"이데올로기로서 대처주의가 한 일은, 사람들의 공포.불안.정체성 상실 등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것이다. 그것은 정치를 이미지로 생각하게끔 만든다. 대처주의는 우리의 집단적 환상,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영국, 사회적 상상력에 호소한다. 좌파가 '자신들의 정책' 쪽으로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동안, 대처 여사는 이러한 이슈들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대처의 이데올로기 프로젝트의 정점에 '포틀랜드전쟁'이 있다. 여기서 대처는 '도덕적 원칙' 제국시대 영국의 위대함' '애국심과 가부장제'등의 이데올로기 재현에 힘쏟는다. 결국 '퇴보적 근대화'라는 무기를 통해 '대처'와 반대에 서야마땅할 '흑인과 노동계급'의 지지를 얻어낸다. 홀은 전혀 압뒤가 맞지 않는 정세와 이데올로기를 매칭시키는 대처를 '독재적 포퓰리즘'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이를 통해 스튜어트홀이 말하고 싶은 것은 우파를 칭찬하는 데 있지 않다. 그는 도그마에 빠져 허우적 거리는 좌파를 구원해 내고 싶었던 것이다.

대학 다닐때 우리 교수님은 파업 현장에선느 그렇다고 쳐도 ,노사 협상에서 노조가 수염을 기르고,붉은 띠를 두른 것이 어떻게 이미지 정치화되는지 생각해보자가 말씀하셨다. 사측은 '합리적' '타협적' '신사적' '이성적'인 이미지로, 노조의 주장은 -주장의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 '비타협적' '야만적' '폭력적' 으로 TV를 보는 일반인들에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꼭 맞는 말은 아니지만 진보정치에 있어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왜 민주노총에 들어가면 대학 과방같은 분위기여야 하는지? 왜 모든 사무실에서 그렇게 담배를 뻑뻑 피워대야하는지? 이것이 물론 내가 부르즈아적 세련미를 존재조건으로 갖고 있어서 그런 걸 수도 있지만 재고 해 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일반적으로 진보정당들이 이미지 정치를 잘 모르고 그것을 쓰는 것이 대중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조금씩 바뀌고 있긴 하다.

이제 스튜어트 홀은 '정체성'의 문제로 넘어간다. 흑인 문제와 관련해서 홀은 두 단계로 흑인 운동의 특징을 말한다. 특히 '정체성' 보호를 위해 나온 '선량한 흑인'이란 개념이 담론의 영역 안에서 또 하나의 '전체성'을 갖는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예를 들자면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현재 우리의 시각의 한 단면의 예로 활용될 수 있다.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선한 아시아 노동자'라는 개념 역시 -그들의 열악한 상황을 개선해야 함은 물론이지만- 차분하게 봐야 한다는 점 말이다.

오랜 만에 문화주의자들의 이름을 불러 보니 한 편으로 반갑다. 우리가 스튜어트 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주의자'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문화주의가 흔히 받는 비판인 '정치경제학적 결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또 나아가야 한다. 그것을 '문화이론을 왜곡하고 곡해한 것이다' 라는 방어적인 태도로는 더 나아가기 힘들다.

<지금 스튜어트 홀>은 아주 훌륭한 입문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