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 - 내가 겪은 6.25 전쟁
김원일 외 글, 박도 사진편집 / 눈빛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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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언제나 대규모의 학살을 동반한다.<나를 울린 한국 전쟁 100장면>에서 눈에 밟히는 사진들도 학살의 장면을 담은 것과 영문도 모르는 채  전쟁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아이들의 사진이다.

1950년 7월 대전이라고 날짜가 적혀 있는 학살 직전의 한 장의 사진.삶과 죽음이 종잇장 한 장 사이였던 아비규환의 시대를 보여 준다.사진은 사선 구도를 하고 있다.사진의 배경이 되는 위쪽에는 폭 2m 를 넘어 보이는 구덩이가 있다.그리고 그 안에는 몸의 온기도 빠져 나가지 않았을 주검들이 빼곡히 누워있다.다리가 서로 얽혀 있기도 하고 주검들 사이로 머리를 처박고 있기도 하다.그리고 불과 몇 초 후 자신의 모습이 될 그 장면들을 바라보고 있는사람들이 구덩이 위에 있다. 배를 바닥에 대고 서로의 겨드랑이에 팔을 끼워 굴비처럼 엮여있다.사진에는 4명의 사형수가 보인다.머릴를 짧게 잘라서인지 어려보인다.20살을 조금 넘었음직하다.죽음을 눈 앞에 둔 상태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는다.사형수 중 하나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본다.그는 엷은 미소를 띄고 있는 것 같다.아니면 죽음 앞에서도 끊을 수 없었던 순간적인 호기심일지도 모른다.그의 얼굴에는 살려달라는 마지막 염원이 담겨있다.그 젊은이는 그렇게 세상에 마지막 모습을 남겼다.그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돌렸을 때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다.

50년 전의 한국전쟁에서 죽음의 사자는 공기처럼 어디에나 존재했다.그가 펼친 죽음의 망토는 한반도 전역을 뒤덮었다.어느 때 보다도 잔혹하게 그의 칼날은 대지를 갈랐으며 그 때 마다 이 땅에서는 수 천 수 만의 울음이 핏물처럼 터져나왔다.죽음의 사자는 여러 모습으로 다가왔다.미국의 폭격으로,국군의 소총소리로,북한군의 탱크소리로, 또는 완장을 찬 이웃 아저씨의 모습으로.... 소설가 전상국은 그의 글에서 일상적으로 접하던 죽음의 공포를 이렇게 표현한다 .

"무서웠다.밤은 밤대로,낮은 낮대로,낯선 사람은 낯설어서,아는 사람은 알기 때문에 무서웠다."

한국 전쟁의 공포와 인간에 대한 두려움은 거대한 사회적 트라우마가 된다.이 정신적 외상은 '자기와 직계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낳게 한다.이 공포의 '원기억'은 전쟁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사회적으로는 우리 사회를 '가족 국가' 로 만들어 버려서 '시민사회'의 공간을 앗아가 버린다.또한 사람들 마음 속의 증오와 생존본능은 치환되어 '사람들 사이의 정글'을 만들어 버렸다.

1951년 4월 대구에서 찍었던 석장의 사진은 학살 장면의 슬라이드다. 북한군 부역자들에 대한 국군의 처형 장면을 담고 있다. 10명이 안되는 시골 농사꾼 같은 사람들이 서 있다.그 한쪽 옆에 책임자인 듯 한 사람이 철모를 쓰고 웃고 있다.아마 자신의 업적으로 남게될 기념 촬영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반면 옆에 서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침울하다.자신들이 어떻게 될 까 하는 염려와 '설마' 하는 감정이 뒤섞여 있다.그 들 손에는 삽이 들려져 있다.그들은 구덩이를 팠다.그들 중 대다수는 이 구덩이가 자신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것을 소문으로 또는 본능으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다음 사진은 그들이 빼곡히 구덩이에 들어가 있다.고개를 땅에 묻고 있다.뒤에는 죽음의 사신들이 준비를 끝냈다.대장인 듯 한 사람이 구덩이 쪽을 바라보면서 뭐라고 손짓을 한다.그들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설명하는 듯 하다. '너희들은 빨갱이를 도와서 부역을 했기 때문에 너희들이 판 무덤에서 죽는다.우리를 원망하지는 말아라.빨갱이들에게는 총알도 아깝지만...너희들은 그래도 운이 좋은 거다."....그리고 다음 장면은 서양 회화의 가장 유명한 학살 그림의 구도와 닮았다.마네의 <막시밀리안의 처형>이나 게르니카의 <한국에서의 학살>. 그림 속 사람들이 서있던 반면 실제의 피학살자들은 구덩이에 처박혀 있다.그래서 더욱 처참하다.나는 이 사진을 보면서 내가 저 구덩이에 들어가 있는 피학살자였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상상해봤다.뒤에서는 대장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뭐라 뭐라 이야기를 한다.내 옆에는 함께 농사짓고 밥 나누어 먹도 이웃 친구가 나와 같은 모습을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내 눈 앞에는 내가 파 놓은 구덩이의 흙더미 벽이 있다.한 30초 쯤 지나면 총탄의 괴성과 고통이 이 구덩이를 덮을 것이다.만약 내가 그 구덩이 속에 들어가 있었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어떤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까? 비록 나는 상상이지만 이 땅에서는 50년전에 그런 기억을 담고 사라져간 영혼들이 수백만이다.아니 어떤 이들은 자신이 죽음에 이른다는 사실도 모른 채 죽음의 사자가 날린 칼날에 사라져 갔을 것이다.

이 책 속에 등장하는 학살의 장면들은 주로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 사진들이다.물론 어떤 사진들은 학살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원래 전통적 의미의 학살은 국가 권력이나 권력에 힘입은 자들이 비전투 민간인들을 대량으로 살해하는 것이다.그러나 한국 전쟁 당시의 학살은 나치와 같이 조직화된 유대인학살과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전쟁에서의 학살은 몇 가지 특징을 갖는다.그중 가장 잔인한 것이 '보복성 학살'이다.특히 국가 권력의 부실성으로 인해 민간에서의 학살이 쉽게 자행된 한국 전쟁의 경우 그 잔인성과 피해 범위가 대단히 컸다.남한과 북한은 어찌되었건 전쟁을 통해 국가 건설은 완성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념 유지에 방해가 되거나 또는 부정적 결과를 미칠 요소들은 모두 제거되길 원했다.결국 국가 권력은 학살을 조장하거나 방조하는 형태를 취하게 된다.물론 권력의 개입보다 양 국민들 사이의 사적 보복심에 의해 자행된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러한 학살 양상을 방기한 것은 국가 권력이다.

김동춘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전쟁시의 학살은 국가 탄생의 비밀이다.국가는 자신의 출생 비밀을 철저하게 감추려 한다.그러나 출생은 대체로 일생을 지배한다.학살은 과거의 일이지만 학살을 저지른 국가는 그 이후의 정치 과정에서 민간인들에게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전쟁의 아픈 기억을 더듬는 사진들 중에서도 나는 아기들 사진에 눈이 머문다.아빠가 되고 나서 생긴 변화중에 하나이다.길거리를 가다가 미아찾기 사진이 보이면 한번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된다.신문에서 어른들의 부주의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기사를 보면 눈물이 핑돈다.좀 더 밝은 쪽으로도 마찬가지다.인터넷을 오고가며 만나는 예쁜 아기 사진도 예전보다 훨씬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태어난 지 백일 조금 지난 우리 아기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이다. <나를 울린 한국전쟁 100장면>에서도 나는 아기들 사진을 더 오랜 시간 바라보았다.인천의 어떤 판자집 건물 앞에서 울고 있는 두세살쯤 된 단발머리 여자아이.판자로된 건물의 황량함이 울음의 배경이 되고 있어 더욱 처연하다.아이는 하얀 무명저고리를 입고 있다.아랫도리는 어디다 잃어버렸나 보다.아이는 길 밖의 먼쪽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고 있다. 아이의 입을 보면 울면서도 엄마를 부르고 있는게 분명하다. 사진을 보면서 자꾸 아이의 울음소리와 환청이 들려서 사진을 오래처다보기 힘들었다.그 옆에 있는 사진 역시 마찬가지였다.돌을 겨우 지난 아이같아 보인다.발가벗고 길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다.말라버린 강변에 앉아 있는 듯 하다.빈 밥그릇에 수저가 외롭다. 이 두 사진은 서로 마주 보고 있는데 이 페이지를 넘길 때 마다 아기들의 울음 소리가 들린다.마치 연말에 받는 크리스마스 음악 카드처럼 책을 펼치면 울음소리가 진동한다.배고파서 힘이 쭉빠진 서럽고 긴 울음 소리다.그 다음 장에는 폭격을 맞아서 온몸에 화상을 입은 아기의 사진과 아기를 살펴 달라고 군인들을 붙잡아 세운 아버지의 사진이 있다.나는 내 아기가 저 들것에 누워 있는 아기라면...하는 생각을 하며 몸서리 쳤다.다음 사진은 찢어질 듯 한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폭격으로 엄마가 죽었다.폭격을 피해 길가의 덩쿨 속으로 피했지만 목숨을 지키기에 역부족이었다.누나인 듯 한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보고도 이해하지 못하고 돌 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전쟁을 갈라 버릴 듯 날카롭게 울고 있다. 주검이 된 엄마의 버선 신은 발이 덩쿨 속에서 보인다.버선 위로 드러난 발목은 아직 아기들을 두고 가기 힘들다고 말하는 듯 하다.엄마는 죽기 직전까지 이 아이를 죽음의 사신들로 부터 지키기 위해 몸으로 감싸고 있었을 것이다.....슬프다.

 북핵문제로 한반도가 시끄럽다.조금 실마리가 풀려나가는 모습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북핵 초기에 어떤 신문들은 국민들의 불안을 더욱 부추겼다.국민들은 오히려 관망하는 태도인데 비해 수탉이 홰치듯이 여기저시 전쟁의 불안감을 조성했다.마치 '여차 하면 한번 붙을 수 도 있는 것 아니냐?'는 투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전쟁은 어쩔수 없이 죽음이 발생하는 공간일 뿐이다.어차피 누군가는 죽는 것이 전쟁이기 때문에 조금 죽어나가도 할 수 없다는 식이다.모르겠다.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은 지하 벙커로 피할 능력도 있고 미국으로 도피할 수 있는 능력도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인지...나는- 그리고 나같은 많은 사람은-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나와 내 가족은 모든 폭력과 죽음을 우리들의 몸으로 받아 낼수 밖에 없다.50여년 전에 사진이 실렸던 나와 같은 사람들이 그랬듯이.그래서 나는 어떤 이유로든- 크라우비츠의 말을 인용하며 정치의 연장 어쩌구 하는 것도 내겐 개소리다-전쟁에 반대한다. ...나는 세상의 모든 전쟁에 반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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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6-11-04 08:40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 제게는 이른 아침부터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님의 마음이 너무 잘 와 닿네요. 전쟁에 대한 주제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야할 때가 많은데, 이 책을 통해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감사합니다. ^-^

마늘빵 2006-11-04 08:45   좋아요 0 | URL
한 표 행사하고 갑니다.

마노아 2006-11-04 08:47   좋아요 0 | URL
책, 그 이상의 리뷰였어요. 잘 보았습니다. ^^

달팽이 2006-11-04 22:03   좋아요 0 | URL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