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크기 보다 조금 작다.이 육아일기는....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에 씌여진 일기다.내가 이 육아 일기를 본 것은 중학교 때 쯤이었다.우연히 옛 앨범을 뒤적이다가 발견했다. 첫장에는 출생증명서가 붙어 있다.그 다음 장 부터 볼펜으로 한 자 한 자 적어간 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 육아일기는 당시 실업자이셨던 아버지가 첫 아들을 낳은 기쁨을 글로 적으신 것이다.매일 적었던 것은 아니다.어떤 때는 매일 어떤 때는 몇 주의 간격이 있다.또 중간에 몇 달간 비어있는 경우도 있다.결코 꼼꼼하게 채운 일기장은 아니다.하지만 이 일기에는 그분들의 나에 대한 사랑이 소복히 담겨져 있다.
주로 출생할 때의 가족 상황-몇 달 전에 세상을 뜨신 할머니는 이 일기장에는 58살이시다- 그 동안 내가 태어 나기 까지의 과정,그리고 생사를 넘나 드는 몇 번의 고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어렸을 때 나는 정말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겼다.중간에 가면 글쓴이가 어머니로 교대된다.이 일기의 마지막은 돌을 갓지난 내가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가 쓰신 글이다.뜨거운 물 주전자를 엎지르며 부엌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온몬의 절반 이상이 큰 화상을 입었다.엄마의 일기에 의하면 병원에 갔을 때 주변 의사들과 사람들이 전부 혀를 끌끌하고 찾다고 한다.그 당시 20대 중반이었던 엄마의 슬픔과 걱정,그리고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낀 죄책감이 마지막 장을 채운다.몇 방울의 눈물도 떨어져 있다.
일기에 나오지 않는 부분이지만 그 위험한 상황을 무사히 잘 넘겼다.다들 흉이 많이 남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아버지는 후에 당신이 군의무병 출신이어서 미군 부대에서 훔쳐온 약을 잘 발랐기 때문이라고 자랑하셨다.큰 화상이었음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상처가 없으니 미국 놈들이 약을 잘 만들긴 하나보다.당시에도 의사 선생님께 엄청나게 큰 칭찬을 들었다고 하셨다.
내가 이 일기를 처음 보았을 때 나 역시 코 끝이 찡해졌었다.그리고 지금 역시 그렇다.사는 게 어려워서 그리 많은 글을 남기시진 못했지만 그 한 장 한 장을 보다 보면 눈물이 맺힌다.
어제 부모님이 부산에 왔다 가셨다.아가와 산모를 보기 위해서였다.아이와 길게 함께 할 수는 없었다.'백일쯤에 되서 우리 손자 다시 보자..그 때까지 건강해야 한다 '라는 말로 아가와 인사하셨다.

잘 자고 있는 우리 아가....
나 역시 육아일기를 쓴다.몇 달 전 부터 노트 한권을 사서 아내와 함께 쓰고 있다. 생각 날 때 마다 쓰는 일기여서 초등학교 때처럼 일기에 대한 부담이 많지는 않다.
요 며칠은 아내가 글을 쓸 수 없어서 내가 쓰고 있다.
처음에는 어떤 사람들 처럼 인터넷에 쓸까도 생각했다.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결론 내렸다.
나의 육아일기는 아날로그다.가급적 불을 은은하게 하고 쓴다.내가 가진 펜 중에서 가장 좋은 파카 만년필로 쓴다.기분에 따라 정성스런 글자체가 되기도 하고 그냥 날리기도 하지만 마음은 늘 평화롭다.육아일기를 눌러쓰다 보면 가끔 내가 써놓고도 눈물이 핑돌때가 있다.나의 육아일기는 아버지의 육아일기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며 그 댓글이다.
아버지는 종이를 모으고 구멍을 뚫고 줄을 끼워 육아일기는 만드셨다.또 가끔 만화로 그려넣으셨다.그에 비하면 나는 너무 쉽게 육아일기를 쓴다.그래도 사랑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