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포털 검색 1위는 역시 개인정보 유출이다. 어제 백화점에 잠시 들렀는데, 카드 담당창구는 정말 바글 바글 했다. 주로 50대 이상의 장년층 및 노년층들이었다. 창구 직원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분부터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창구에서 상담이나 해주던 직원이 왠 봉변인가? 정말 자기랑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연신 굽신 굽신...하도 안돼 보여서 지나가면서 "고생하시네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주민등록제에 대해 다들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다. 90년대 후반이었던가 주민등록 교체할 때 하도 개겨서 주민등록에 대해 읽고 들은게 있었다. 이번 일로 그게 생각이 났다.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정권 때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다. 전국민에게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여 국가가 개인의 신상을 일목요연하게 수집,관리하는 제도이다. 간첩 및 불순 세력 색출,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주요 관심사였다.
뭔가 좀 수상쩍다 싶으면 "어이 거기 민증 좀 봅시다." 이건데. 당시 군부 출신의 국정 책임자들은 바빠서 영화를 못보셨던 것이다. 스파이 임무의 첫 번째는 "자, 여기 자네 여권과 신분증일세." 이거 아닌가? 결국 간첩 잡는 건 핑계였다. 간첩 중에 주민등록증 미소지로 걸린 사람 있던가?
결국 사회안전이라는 이름의 사회통제가 목적이었다.
하여간 90년대 말, 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권력의 통제라는 주제에 대단히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일상적 파시즘론을 비롯하여, 미셀 푸코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내 기억에 의하면,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는 세계 최강이다. 대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역시 국민들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관리한다. 근대 주권국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배제/포함을 정치 철학적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 대개는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는데 몇 가지 공통적인 방식들이 있다. '개인번호 식별제','거주지 등록제', 그리고 '신체정보 등록제'다. 이중 최강은 맨 마지막에 있는 '신체정보 등록제'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문 날인'이다. 이건 서구권 국가에서는 범죄자들에게만 채취한다. 그러니까 좀 확대해석해서 보면, 전 국민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셈이다. 뭐 그렇게 까지 볼 필요가 있겠냐만, 그래도 그런 거긴 하다.
각 나라는 각기 국내 실정에 맞춰 이를 선별적으로 적용한다. 미국은 의료 보험번호나 자동차 등록증 번호로 이를 대체하고 개인 고유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고유번호가 있지만 거주지를 따로 등록하지 않는다. 동사무소 가서 전입신고 안해도 된다. 대개 국가 권력과 국민의 자유 사이에 침해소지가 국가 초기부터 쟁점시 되었던 나라들이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 등 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들은 국가에 의한 주민관리제도가 미국이나 프랑스등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관계법령으로 사회복지 이외의 사용을 대단히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쟁점...뭐 이런거 없다. 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에 눈물, 콧물, 감동 비빔밥 3종 세트를 9900원에 모셔도, 절대 저런 건 관심이 없다. 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런거 문제 제기하면 영화<남쪽으로 튀어>의 김윤식 대하듯, 튀는 사람 또는 빨갱이 또는 무정부주의자 ,반정부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는 빨갱이들의 반정부세력의 관심주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 사람들이 키워 낸 문제다. 그러니까 빨갱이의 문제가 아니라 파랭이의 문제라는 거다.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이들이니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국 '국가'에 과잉 몰입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 일부러 '국가'몰입한 거 아니다. 권력은 여러가지 다양한 전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 및 신체를 장악한다. 그리고 오랜 권력의 개입 효과를 지우는 방식, 즉 개인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 권력의 개입을 받아들이게하는 방식으로 마감된다. '권력의 내면화'라는 것이다. 푸코의 권력론에서 이 권력은 단순히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착각해서 '난 정치권력 이런거로 부터 자유로운데'하면 안된다. 먼저 정치권력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으며, 둘째, 푸코의 권력은 길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 협소한 권력개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푸코의 권력/자유에 대한 관심은 '규범권력-생체권력-통치성' 이라는 방법으로 완성된다. 푸코가 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의 출현을 예기하며 언급했던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현재 우리가 도달해 있는 곳이다.
국가 권력이 잘 만들어 준 개인정보등록법은 자연스럽게 기업체의 고객정보가 된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또는 아마존 같은데 등록해본 사람은 안다. 한국보다 훨씬 가입 절차가 간단하다. 이미 국가가 포맷을 만들어 놓고 잘 쓰고 있는 정보들이니 기업체도 그 익숙함에 기대어 그걸 요구한다. 울며 겨자 먹기로 신상은 다 넘겨 준다. 최고의 시장 조사 자료가 아닌가. 생년월일 나와 있지, 사는 곳 나와 있지, 핸드폰 번호 있지... 결국 국민은 국가권력의 감시 대상이며 또한 기업체의 밥이 되는 거다. 국가와 기업은 원래 친했고 소비자/국민을 호구로 삼아 앞으로도 잡은 손을 쉽사리 놓치 않을것이다.
주민등록제도는 쉽사리 안 바뀐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강화 하는 쪽으로 수정되기 보다는 오히려 효율성의 이름으로 점점 강화될 것이다. 생체칩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 마당이니 말이다. 정치적 감수성이 개입된 디테일이 살아야 이런 문제에 대해 따지고 자시고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당징 그런게 어디있겠나. 시켜서 하고 마지 못해서 하고 불편하니까 한다.
일단 현 단계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의 분노를 밀어부쳐서 기업체의 정보 수집 약관 고치고, 주민번호나 기타 가입 항목도 좀 줄이고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