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 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 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딘 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 최승자, 이 시대의 사랑

*** 독하게 쓴 시 아닙니까?  늦은 가을이 되면 이 시가 생각납니다.그리고 끝연 3행...부시.....죽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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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11-08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부시시가 부시가 죽었다고 보입니다... 최승자 한때 미치게 좋아했더랬지요. 근데 지금은 낯서네요^^

파란여우 2004-11-0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튼, 가을되면 개같은 가을은 단골메뉴로 다들 찾으시는군요.최승자의 시는 가을에 너무 허허로워 일부러 읽는 것을 피하고 있는 중입니다. 허긴, 피한다고 허무함이 안찾아오는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러 찾지는 않아요. 가슴이 뻥돈좁 몸통을 뚫고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마구 느껴지거든요.

드팀전 2004-11-08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요즘 제 정서는 아니에요.근데 가을이 되면 그 절창이라고 할 수 있는 "매독같은 가을" 이 단어가 가끔 생각이 납니다.오늘은 별로 눈에 안띄었던 '부시시..' 를 보고 '부시'를 떠올리며 혼자 키득 거린 것 때문에 올렸어요.

stella.K 2004-11-08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한 시로군요. 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