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코레아니쿠스 - 미학자 진중권의 한국인 낯설게 읽기
진중권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중국집에 가면 언제나 깊은 고민에 빠진다.자장을 먹을 것인가 짬뽕을 먹을 것인가.이미 자장을 주문해 놓고도 잠시 후 마음을 바꿔 '아줌마..자장 대신 짬뽕으로..'를 외친다.블루오션을 개척한 일부 중국집은 그래서 짬짜면을 내놓았다.내게 진중권의 책은 짬짜면(짬뽕+자짱)이다.진중권은 시차를 두고 두 개의 면을 만든다.하나는 전공을 살린 '미학' 요리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평론' 요리이다. 전자에 해당하는 책들이 <미학 오디세이><춤추는 죽음><현대 미학 강의>등이고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폭력과 상서로움><시칠리아의 암소>등이 후자에 해당한다.'중권반점'의 강점은 자장이든 짬뽕이든 대중적인 입맛에 맞게 만든다는 것이다.(미학과 관련된 책들이 사전 학습이 조금 필요한 경우가 있지만 ...)

이 책 <호모 코레아니쿠스>도 진중권이 과거에 보여준 한국사회의 분석방향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이 책에서 진중권이 분석대상인 한국인의  '하비투스',(아비투스) 즉 한국인의 습속이라는 것도 이미 다양한 학자들의 글을 통해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결코 신선하지 않다.(이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는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다.다른 이들에겐 바다에서 막 건져낸 도다리처럼 아주 신선할 수도 있다.) 진중권은 편의상 세 개의 장으로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나눈다.근대화,전근대성,미래주의가 그 세가지 구분이다.현재 한국 사회를 바라보는 진중권의 입장은 세 시기가 혼재해 있다는 것이다.(별로 새삼스럽지 않다.)흔히들 말하는 '압축근대'가 가장 큰 원인이다.전근대성과 근대성이 발효의 시간을 갖기도 전에 뒤늦은 근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작된 조숙한 '탈근대'가 믹서기에 든 과일마냥 쾌속으로 섞여 버린 것이다.진중권은 다른 책에서 '근대와 탈근대'의 문제를 단계적으로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에 반대한다고 밝혔다.(이 주장은 우리 사회의 취약한 근대성 성취를 우선하는 모더니스트들에 대한 반대로 읽힌다.) '전근대성'을 계몽하며 '근대' 산업 사회가 파생시킨 해악들과 '탈근대'가 가져다준 소수자문제,개인성의 성취문제등이 동시에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중권이 애써 전근대/근대/탈근대를 나누어 놓았지만 그 역시 이 세 시기 구분이 인위적인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어떤 사회나 -아무리 선진화된 사회일지라도- 이 역사적 시간은 동시대에 존재한다.진중권은 한국이 조금 더 압축된 시간 속에서-식민주의,군사주의,천민형 자본주의에 의해- '이성의 합리성'이 존재할 공간이 줄어들었음을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분석한다.

<호모 코레아니쿠스>를 읽으신 분들 중 다수가 진중권의 분석이 서구의 시각,또는 외국에서의 경험에 바탕을 둔 오리엔탈리즘적 성격이 있다고 지적한다.(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진중권에게 근대성은 문명화 과정이다.전근대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사회의 변화를 분석하는 준거틀은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이다.한국은 궁정적 합리성이 상인적 합리성으로 변화하는 과정이 없었다.또한 의무교육을 통한 사회 하층 계급으로의 문명화가 정체되었다.우리가 '에티켓'이라고 부르는 '문명화'가 더딘 것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해 설명된다.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그런데 좀 의문이 남는 것도 있다.일단 비교 대상의 범주에서 조금 혼란이 있다.진중권이 말하는것은 서구의 문명화 전체이다.사실 서구라는 것이 어디까지 인지 잘 알수가 없다.미국도 서구이고 프랑스도 서구이다.스페인의 문명화 단계와 핀란드의 그것이 같은 방식으로 작동했을까? 그는 문명화를 이야기하면서 '서구의 일반성'을 적용한다.그러나 그에 대한 비교대상은 '한국의 특수성'이다.이런 비교를 통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것은 가능하다.그러나 이 비교방식은 왠지 마음에 찝찝함으로 남는다.

미래주의에 가면 진중권의 분석틀은 월토 옹의 <문자문화와 구술문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가 된다.진중권은 한국 사회를 구술문화권으로 보고 있다.구술문화가 가진 감성주의,이야기성,공동체성이 한국사회의 특징이다.그는 한국의 습속이 구술성을 디지털 기반 위에 올려놓았다고 말한다.인터넷 게임왕국이나 토론문화에 대한 진중권의 지적은 꽤나 설득력이 있다.또한 진중권은 세대간의 단절 문제 역시 매체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신체의 개념으로 설명한다.미디어가 의식을 재구조화 한다는 명제를 이용한다.여기서 세대간 갈등은 '문자문화 대 영상문화'의 갈등이다.(약간의 혼동이 있다.여기서 말하는 문자문화는 서양/한국을 나누는 근거가된 문자문화와는 다르다.) 구세대들은 시각에 고정된 문자문화인이다.반면 신세대인들은 촉각과 공감각이 활용되는 영상세대이다.맥루한이 말한 TV의 '재종족화'라는 개념이 응용된 듯 하다.'인문학의 위기'를 바라보는 진중권의 시각은 '미디어적'이다.그는 '인문학의 위기'란 다름 아닌 '디지털 실어증'이라고 말한다.사회가 문자문화에서 영상문화로 이행하는 시점에 당연히 등장할 수 있는 문제라는 것이다.그러나 진중권은 문자문화의 중요성을 외면하지 않는다.아무리 신세대가 그림과 숫자로 세상을 이해하더라도 결국 문자를 통한 해석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그가 우려하는 점은  신세대의 의식이 문자문화의 역사적 성취이전으로 퇴행하는 것이다.진중권은 '대학의 시장화'를 우려하고 있다.

진중권이 제안하는 한국인의 새로운 습속은 '기술적 상상력에 바탕을 둔 미학적 신체'이다.그의 기술문명에 대한 접근이 퇴행적이지 않다는 뜻이다.그는 엔지니어의 기술성,디자이너의 예술성,인문학자의 문자성이 하나가 된 새로운 조직이 한 사회의 산업구조를 이끌어갈 것으로 본다.이는 단지 기업조직문화에만 해당하는게 아니다.진중권이 말하는 새롭게 디자인된 개인이라는 것은 결국 '놀이'로 상징되는 상상력에 바탕을 둔 자율적 주체인 셈이다.

....................지루한 리뷰가 끝이 났다. 이후는 페이퍼이며 또 리뷰 후반전이기도 하다.

언젠가 같이 일하던 친구가 내게 '아메리칸 스타일'이라고 했다.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몰라서 어리둥절했다.처음 들어본 말이어서 꽤 지났는데도 아직 기억한다.아메리카(미국)에 그닥 애정을 갖지 않고 있는 나로서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결국 그 친구의 평가는 내가 '한국의 때거리'문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그걸 가지고 자꾸 딴지건다는 거로 정리할 수 있다.그 친구가 말한 나의 특징이란 것은 '조직보다 개인중심', '직장보다 가족중심' 그런 특징들이다.또 한가지 첨부하자면 어울렁 더울렁 노느니 혼자 노는게 낫다는 개인주의-요즘은 그걸 글루미족 이라고 하더군-... 그것이 나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규정한 근거다.이러한 요소를 아메리칸 스타일로 정의내릴 수 밖에 없는 너무나 '토종 한국인'인 그 친구의 어휘능력과 표현력이 아쉬울 따름이다.차라리 '유러피안 스타일'이 낫지 않았나? 그거나 그거나 매 한가지인가?

진중권의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거운 것은 '맞아 맞아'라며 맞장구 칠 수 있는 대목이 많다는 것이다.때때로 '대리배설'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준다.

<위계를 위한 예법>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위계를 짓는 데 사용되는 원칙 중의 하나가 연령이다.....수평적 예의는 수직적 무례로 간주되고 수직적 예의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

술자리에 가면 흔히들 잔을 돌린다.나는 개념이 없어서 인지 술자리에 가도 그냥 옆에 있는 사람부터 따라준다.그리고 후배가 먼저 잔을 받아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다.그런데 회사 회식 자리가면 술잔 돌리는게 위계확인하는 장소가 된다.마치 원숭이들이 서열 정하듯이.병권을 쥔 사람이 먼저 본부장을 따라 준다.그리고 그 밑에 부장...그리고 차장...그 다음은 선배....이제 내 차례다.아..그런데 문제가 생겼다.동기가 세명이다.^^어떻게 할까?  때에 따라 다른데...주로 이런다. "야..생일 누가 빨라? ""야..사원증 입사번호 누가 빨라?" ..그 때까지 다들 술들고 기다린다.다 받으면 그 때 본부장 한 말씀 하시고 원샷...

나도 조직의 술문화에 좀 익숙해져서 따라한다.그러나 내가 대장일 때는 아무렇게나 마신다.그냥 알아서 따라먹기도 하고 일부러 무시하고 옆에 있는 후배부터 준다.그럼 그 때 그 후배들이 뭐라하느냐? " 저..00선배부터 주시지요." .."싫다.내 맘이다.그냥 가까이 있는 사람부터 준다.왜? " ...

술자리문화가 별개 아닌 듯 보이지만  진중권의 말처럼 수직적 위계의 강조는 수평적 무례를 낳는다.그리고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잊혀졌다 생각난 기억... 

"한국의 기업들은 말로는 창의적인 인재를 원한다고 하나 실제로는 여전히 개발독재 시대의 군사문화를 실천한다....한화그룹회장은 그룹의 핵심 임직원 220명에게 도보행군을 주문했다.200킬로 미터에 이르는 강행군이다....은행들의 신입 행원 연수 프로그램은 철야 행군에서부터 100킬로산악행군,해병대 극기 훈련..."

내가 대기업 다니는 회사원이 되지 않기로 마음 먹었던게 초등학교 6학년때다.뭘 알고 그런게 아니다.TV에서 신입사원 연수식을 봤는데 정말 정나미 딱 떨어졌다.똑같은 체육복 입고 펄쩍 펄쩍 뛰어 다니고 쪼그려 뛰기하고.....그럼에도 '연수를 마치고 동료애가 생기고 회사에 대한 애정이 생겨납니다.' 라고 말하는 인터뷰..초등학교 6학년 짜리 눈에도 굴종적으로 보였다.내 대학 친구 중에 하나는 S그룹에 들어갔다.그런데 나흘만에 뛰쳐 나왔다.그룹 연수 가서 뛰어다니다가 .."에이 지랄..." 이렇게 외치고 나와 버린 것이다.그 뒤 고생 좀 했지만 그래도 별로 후회하진 않았다.물론 이것도 다 경기 좋을 때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요즘처럼 경기 어려울 때 그런 생각이 어디있냐고...맞는 말이가도 하다.

진중권은 뒤에 '공포'에 의존하는 한국 사회를 말한다.이 말은 박수 열번 받을 만하다.한국 사회의 첫번째 공포는 적색공포다.

"공포를 느끼는 사람은 -그에 얼마나 효율적이든-이제까지 자신의 생존방식을 보장해줬던 방식을 고집하게 마련이다.....(시청앞 군복 시위대를 보고) 군복을 입은 신체는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몇십년전의 동작을 반복한다.그들의 머릿속도 몇십년전 부터 똑같은 생각을 반복할 뿐이다.....공포는 판단력을 마비시킨다.과거에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한 것이 전쟁의 공포였다면 오늘날 한국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시장의 공포이다......극심한 이념 대립 속에서 국가의 폭력에 시달리던 그들은 이제 사회적 안전망이 전혀 없는 생존의 정글이세 무차별한 시장의 폭력에 내맡겨졌다.기분 혹은 무드는 인식에 앞서는 원초적 체험.때문에 너무 강렬한 경우 그것은 이성의 작동을 연기시킬 수 있다...."

엄마들이 남들 욕하면서도 아이들을 무리하게 영어조기 교육시키고 유학보내는 이유,적성이고 뭐고를 떠나 공무원 임용시험에 지방생들을 위한 특별열차가 동원되는 이유...등등.. 모두 안전망 없는 사회의 추락에 대한 공포때문이다.

진중권의 책은 이제 약간 진부하게 느껴진다.그러나 강점은 사라지지 않는다.시원 시원한 글쓰기와 삐딱함이 주는 쾌감.그리고 조금만 생각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자신이 겪은 체험과의 대입의 편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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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2-12 19:07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별3개 딱 적절한 것 같습니다. :)

바람돌이 2007-02-12 20:35   좋아요 0 | URL
평소 진중권의 말에서 대리배설의 쾌감으로 전율하는 저로서는 별3개가 적은 듯 보이지만 아직 책을 안읽었으니 뭐.... ㅎㅎ 재밌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조만간 보게 될 책일것 같네요. ^^

마늘빵 2007-02-12 23:19   좋아요 0 | URL
저는 네개와 다섯개 사이에서 갈등했는데, 아마 제가 다섯개를 줬더랬죠.
진중권의 글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시원함과 날카로움이 있죠. 거기에 점수를 많이 줬더랬습니다. 특별히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새로울 것이 없는 것에서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진부함'에는 '별반'의 고민을 했어요.

드팀전 2007-02-12 23:39   좋아요 0 | URL
기인님>네..별셋.보통이란 이야기죠.
바람돌이님>진중권의 가장 큰 장점은 대중적인 글쓰기에 강하다는 것이라고 생각해요.그의 강의 역시 그러하다면 즐겁게 들을 수 도 있겠다 싶네요.
아프락사스님>음 그러셨군요.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특유의 시원함과 날카로움은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당분간 계속되겠지요.거기에만 점수를 후하게 주면 계속 별 다섯인데..^^ 그것도 나쁠 건 없지요.그의 글이 진부하다는 것은 그가 제기하는 문제가 진부하다는 것은 아닙니다.그가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지요...다만 다작의 작가들이 겪을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진중권에게도 적용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과거에 소설가 윤대녕이 그랬습니다.그럼에도 이번에 나온 윤대녕 책을 또 사고 말았지만요.(오랜만에 나왔으니까.^^)

글샘 2007-02-20 12:47   좋아요 0 | URL
공공성이 원천적으로 없었던 국가에서 '사적인 관계의 중요성'만이 강조되는 풍토가 한국 사회의 술자리 문화, 수직적 문화를 고착화시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진중권처럼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진부한 것은 정상이 아닐까요? 민중 미학을 선도해나가는 예술가가 아닌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