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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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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 이번에 우리 앞에 펼쳐놓은 이야기는 완득이와는 전혀 다른 회색빛 시절의 이야기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소시민.. 소시민 가정의 평범한 집안환경(여기서 평범하는 것은 평균적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흔히 있다는 뜻이다)에서 살며, 평범한 학교생활을 겪는 과거의 우리였으며, 현재의 학생들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겉으로는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아니 설마.. 이게 큰 문제가 될까? 하는 문제를 떠안고 있는... 내일을 준비하던 소녀의 자살로부터 시작된다. 천지..그 아이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무엇을 추억할 수 있을까? 

작가는 이 책을 우리에게 풀어놓게 된 이유를 솔직히 고백한다. 그녀 자신 또한 천지와 비슷한 나이에 삶을 내려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고.. 사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의 문제로 인하여 혹은 타인에 영향에 의하여 누구나 한번쯤 자살을 깊이 고려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그 나이를 지나 온 우리는 말한다. 삶을 너무 쉽게 포기해버리는 그들을 향해.. 그런 의지라면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 충동감이 온 몸을 지배하는 나를 죽이는 현장에서 운 좋게도 살아남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민감하게 느껴지는 시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모든 감각이 예민해져있는 시기.. 차가운 말 한마디가 수백개의 바늘이 되어 온 몸에 박혀버리는 시기.. 관심어린 한마디가 평생 되새김질하게 하는 시기.. 그러면서도 절대로 자신의 얼굴을 내비치지 않는 시기.. 거짓웃음을 누구보다 더 잘 지어낼 수 있는 시기..그렇기에 아무도 그 진실을 쉽게 알수 없게 하는 시기.. 죽음 뒤에도 슬픔보다 “왜?”하는 의아함이 들게 만들어버리는 시기..

어쩌면 우리는 타인을 너무 모르는게 아닌가 싶다. 자신에게 보여지는 표정과 자신에게 들려지는 말로서 사람을 대한다. 그가 너무 우울한 마음을 지녔더라고 미소짓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슨일이든 덤덤한 표정을 하면 아픔 따위 모르는 사람인 것처럼..

그래서 우리는 타인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가 싶다. 그들에게 우아한 거짓말을 해도 그들은 알아차리지 못할 것이라고 말이다. 집단이 주는 안락함에 빠져 자신이 튕겨나가지 않으면서도 단단한 결속력을 갖기 위해(공범자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다른 희생양을 삼고, 비난의 화살이 자신에게 쏠리지 않도록 모호한 행동과 우아한 거짓말로 상처를 주는 아이들..

나 또한 학창시절 한 아이로부터 따돌림을 받은 적이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때 우리반 아이의 가히 절반에 가까운 아이들이 한 아이로부터 일시적 따돌림을 받은 경우가 있다. 공교롭게도 한 무리내에서 자신도 모르게..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도록 조종을 당했다고나 할까? A도 따돌림을 받고 있지만 B를 따돌릴 때에는 A역시 좋은 동조자가 될 수 있는 시스템.. 자신이 따돌림을 받고 있다는 것을 한참 뒤에나 서서히 느끼게 되버리는 시스템을 만든 아이.. 마치 어느 누구라도 따돌리지 않으면 내일이 없는 것처럼 반복되는 이간질.. 후에 모든 사실을 알았을 때 나머지 아이들은 따돌림의 시초가 된 그 아이를 세워놓고 물었다. 넌 왜 서로가 서로를 따돌리게 하지 못해 안달이지? 그 아이가 울면서 우리에게 진실을 말했을 때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시절 반 친구전체로부터 엄청 심한 따돌림을 당했는데(같은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누군지는 몰랐지만 어떤 아이의 책상과 책이 복도밖으로 마구 버려져 있었던..)그 후에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누군가를 따돌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화연을 보면서 떠올랐던 그아이의 말.. 자신이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 누군가를 따돌릴 수 밖에 없었다는 말.. 비록 천지는 죽었지만.. 그 아이의 죽음이 너무나도 안타깝지만.. 화연도 큰 아픔을 지니고 사는 아이임에 틀림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 자체가 아픔이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무리속에 남아있고 싶은 잘못된 삶을 이어온 아이이기 때문에.. 그런 화연이 천지와 같은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한 만지의 모습에서  그때 그 아이의 입으로부터 빠져나와 교실을 왕왕 울렸던 충격적인 과거속에서도 모두 함께 안고 울며, 그 아이의 잘못을 용서해준 그때 친구들의 얼굴이 비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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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그녀 반올림 4
이경화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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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기.. 소년에서 청년이 되는 과도기.. 과도기는 불안정하다. 어느 편에도 속해있지 않기 때문이다. 불안정하기 때문에 위태롭다. 나 자신도 내가 아이인지 어른인지 분간이 안간다. 사람들은 때로 나를 어린아이 취급하면서도 어른의 행동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더 혼란스럽다. 그냥 16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16살의 나로만 봐줬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준희는 아이일까? 어른일까?'나는 아직 꿈이 없다. 꿈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건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와 같은 이름을 가진 준희는 꿈 때문에 부모님과 줄다리기 중이다. 나와 같은 나이인데 벌써 꿈을 정해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녀석을 보니 왠지 부럽고 두렵다. 나는.. 나는 어떤 꿈을 가져야 하는가...

나의 아빠는 아이같다. 내버려 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어떻게든 나를 먹여살리고 할머니를 부양해야겠다라는 책임이 없다. 아빠는 꿈도 없고, 직업도 없고, 의지도 없다. 그런 아빠에게 난 아이같은 아들이 되어야 할까? 어른같은 아들이 되어야 할까?

나의 그녀는 나의 논술 선생님이다. 나이는 곱절이나 많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는 나를 아이로 어른으로 구분 짓지 않는다. 그냥 나를 나로 받아주는 사람이다. 그녀는 스스럼 없이 말한다. 준희 넌 너를 사랑해야 해! 넌 너무 이상해! 라고..그녀는 잊지 않은 것 같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테지만 어른이 되버리면 싸악~잊어버리는 지금의 많은 고민들을..

 나는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내 꿈을 정하고, 아빠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지만 내 또래의 여자친구를 만들어 가고 있다.'

나도 준희와 같은 시절이 있었다. 벌써 10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때의 나는 지금의 준희보다 더 격하고 혼란했던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나도 다른 어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 시절이 얼마나 강인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던지간에 어른이 되고 난 후의 나는 이미 그때의 나를 당시의 마음이 아닌 어른의 눈으로 보게 되었다. 내가 어른이 되고 난 후 나의 가까운 사람이 그 시기를 보낼 때 나는 그 아이가 겪는 그 시간들을 이해하고 받아드리기 보다 설득하고 다그치고 꾸중하기 바빴기 때문이다. 마치 나에겐 그 시절이 편집된 것처럼 행동했다. 나도 너와 같은 시기를 겪어봤어! 난 너 보다 더 했어! 라는 말을 포장으로 씌우고, 너 이딴식으로 할꺼야? 뭐가되려고 그러는 거야? 하는 말을 건네줬던 것이다... 이제 그 아이도 성인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가끔 그때 내가 어른의 모습으로 그 아이를 다그친 것이 몹시 아프고 저리다. 과연 커버린 그 아이도 나와같은 어른이 될까? 마치 그 시절이 없었던 양... 

우리 청소년들은 누구에게 자신들의 속이야기를 속시원하게 풀어놓을 수 있을까?그들이 인생선배인 어른들에게 얼굴을 붉히며, 하던말을 멈출때.. 어른들은 과연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부디.. 부디.. 준희는 나와 같은 어른이 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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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 - 속수무책 딸의 마지막 러브레터
송화진 지음, 정기훈 각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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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자를 읽으면서 많이 공감했다. 그런데 이런 공감이 비단 나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닌가 보다. 

여러 독자들의 서평을 보면 알수 있듯이.. ^^

엄마와 딸사이에는 엄마와 아들사이에선 결코 생성될 수 없는 모종의 정, 질투(?), 같은 여자로서 가지게되는 이해심 그리고 같은 여자라서 가지게되는 경쟁심(?) 등이 있다. 나와 우리엄마 또한 애자와 그의 엄마처럼 속으로는 둘도 없이 사랑하면서도 겉으로는 왕왕 물어뜯기만 했던 시절이있었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죽음이 임박한 엄마의 상황이라던가, 서른살이 되도록 마땅한 직업없이 카드 빚에 시달리는 애자의 상황속에 놓여있지 않은 체 엄마와의 사랑표현법이 물어뜯기에서 안아주기로 바뀌었다는 다른점이 있지만... 

단순히 엄마와 딸의 눈물겨운 관계회복기를 그린 책이라면 이렇게 인기가 있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통해 인기를 얻은 후에 영화화 된 다수의 이야기들과는 반대로 시나리오로 먼저 쓰여져 영화를 개봉하고 나서 책이 된 이 이야기는 애자역을 완벽히 소화한 최강희씨와 영희역으로 분신한 김영애씨의 활약덕을 톡톡히 본거 같다. 감히 영화도 안 본 주제에(ㅋㅋ)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예고편만 몇 번 봤을 뿐인데도 내가 이 책을 읽는 내내 애자역을 하고 있는 최강희씨와 영희역을 하고 있는 김영애씨가 머리속에서 대사를 외치고, 싸움질을 해대고, 등짝을 후려쳤기 때문이다.ㅋ 분명 글을 읽을뿐인데 음화되어 내귀에 걸죽한 부산 사투리가 들리니 책을 읽은 것이 아니라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12월이다.. 5월이 대표적인 가정의 달이라 하지만 12월도 만만치 않은 가정의 달이란 생각이 든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연말연시는 가족과 함께!를 외치는 내겐 더더욱 그런 달이다. 한 해를 마무리 하면서 드는 서운함과 아쉬움을 일찍 찾아오는 어둠이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이 때가 가장 엄마가 그립고 보고싶을 때라 그런가 보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어느 주말이건 가볼수 있지만 '항상'곁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것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 그런 애틋한 마음을 슬프지만 씩씩한 애자와 함께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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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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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이 많아져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빠지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참 재미있게 읽히는 책인데.. 책을 다읽고 나니 한동안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이 잘 안된다. 작가의 말도 곱씹어 보고 다른 이들의 독서평도 읽어보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을 읽었으니 응당 독서평을 써보자 마음먹기를 며칠째..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한 말이 맞나 싶어 몇번을 지웠다 고쳐쓴다를 반복한다. 이까짓 소설책 하나 읽고 독후감쓰기를 뭐그리 고민고민하냐고 타박을 해도 어쩔수 없다. 그만큼 나에겐 이 열외인종 잔혹사는 어렵고 쓰다. 

오히려 책을 읽을 때는 별 생각없이 피식피식 웃어가며 술술 넘어갔다. 근데 다 읽고 되새김질을 해보니 이거.. 영 개운치가 않다. 4명의 열외인종이 대한민국에서 결코 겪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황당한 상황속에 놓여진 하루간의 이야기로 읽어 내려가면 참 재미있는 소설이 되지만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생각해보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은 이런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 만했다. 과연 나는 이 소설을 작가가 의도한 바 그대로를 실천하며 읽은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경쟁과 착취, 혼돈과 모순 속에서 바로 우리들이 "열외인간"이라고, 그리고 지독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조차 '열외인간'을 벗어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4명이 이러한 열외인간에 속한다는 것인가?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이들은 사회가 열외시킨 열외인간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열외의 범주속으로 몰아넣은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내세우는 천민자본주의라는 사회풍토 속에서 나 스스로를 열외인간으로 내몰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이들 네명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들의 상황을 사회탓으로 돌리기엔  이 들, 주인공의 모습은 공감되지 않는 면이 더 크기때문이다. 내가 다른사람보다 타인에 대해 더 냉정하기때문인가? 매말랐기때문인가? 하고 나 스스로에게 반문을 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 

나는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몸소 체험한 시간의 위대함을 알기때문이다. 하지만 장영달과 같은 노인은 내가 말한 노인의 축에 속하지 않는다. 나이만 많이 먹었다고 응당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대게 이런 사람들이 대접받고 싶은때는 나이를 거들먹거리고, 그렇지 않은때는 자신을 노인으로 여기는 것을 매우 불쾌해 한다. 더욱이 노인이기때문에 자신의 사고를 반성하지 않는 장영달의 태도는 더 분노를 산다. 보수꼴통이라는 말이 절로 입술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윤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 사회에가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를 선밖으로 내몰았다고 하기엔 그녀의 삶은 너무나 최악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그저 명함하나 내밀고 월마다 들어오는 급여가 있는 일자리를 원할 뿐이다. 수도권 대학출신에, 어학연수도 다녀왔겠다, 힘든일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얻게된 제약회사의 인턴직.. 그런데 그것마저도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다른이를 부정하면서도 정규직사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놓치지 않으려는 이중성을 보인다.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꼼수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녀의 청춘이 아깝다. 

기무는 어떠한가. 말이 필요없다. 현 교육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필요가 없다. 현 교육사회의 희생양은 오히려 시골의 가난한 집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학원 한 번 못가보고 한달에 몇백씩하는 과외받는 친구들과 함께 경쟁해야하는 이에게나 써야 할 말이다.  

그나마 김중혁은 일말의 안쓰러움이 들기도 한다. 비정규직으로 월 80만원을 받고 미친듯이 일한 죄로 마누라의 외도라는 형벌을 받았으니말이다. 하지만 노숙자로서의 삶은 안쓰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포기했을 때 타인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것일까? 이억만리 타국에와서 노동착취를 당할지라도 매달 고국의 가족들에게 급여를 보내는 보람을 느끼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너희들때문에 내 일자리가 없어!, 너희들때문에 우리나라 노동현실이 더 최악이 되는 거야!'하고 주장하는 것은 노숙자들의 역할이 될 수 없다. 서울역사에 마네킹처럼 너브러져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구걸을 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 왜 저들은 막노동이라도 할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곤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기엔 그들은 이미 적선받는 것의 기쁨에 너무 길들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작가도 나와 같은 뜻인가 했는데.. 사회가 어떻든, 현재 우리의 문제가 뭐든.. 이런식의 삶의 방식은 곤란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탓하기 전에 나를 추스려야 한다. 그리고 타인을 돌볼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기대했는데.. 코엑스몰에서 벌어진 대규모 참사 후 그의 말은 이런 동질감을 순식간에 이질감으로 돌려놓았다. 뭐랄까? A를 한참 같이 씹어대던 B가 느닷없이 모든것은 C탓으로 돌리고 A를 옹호하고 나선 것 같은 황당함이라 할까? 그리고 이러한 황당함을 갖는 나는 과연 어떤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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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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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할때면 항상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한시간 놀이를 하기위해 삼십분동안 꼬인 고무줄을 풀어놓는 것이였는데, 여러명이 달라붙어 손으로도 풀어보고 모래바닥에 던져 발로도 비벼봐도 어디서 부터 어떻게 꼬인것인지 항상 애를 태웠다. 지난번에 놀고나서 잘 정리해둘껄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일이고, 풀면 풀수록 더욱 억세게 엉켜버린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엉킨 곳을 가위로 잘라내고 다시 엮으면 길다란 고무줄이 온전한 상태인곳보다  묶인곳이 더 많아 정말 지저분해지는 것이다.  

신지로, 가즈야, 미도리... 이들의 인생이 마지막장으로 달려갈수록 이 엉켜버린 고무줄처럼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처음엔 별로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풀면 풀수록 더욱 엉켜버리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일테지...물론 셋의 인생이 모두다 막장을 향해가게 된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돈 없으면 못사는 세상 좀 더 잘살아 보고자 하는 가장의 의무이자 욕심을 부려본 것 뿐인데,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신지로..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깨진다는데, 참으로 운도 지지리 없다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작업환경과 주거환경이 뒤섞인 마을..2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신지로의 작업환경이나. 3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맞은편 맨션주민들(소위 화이틀 칼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그것은 바로 삶의 질 높이기.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둘의 노력은 전혀 상반된 것이다.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 하청업자 신지로의 삶의 질 높이는 방법은 좀 더 많은 일거리를 얻어오는 것이고, 맨션주민들의 삶의 질 높이는 방법은 최대한 신지로의 철공소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막는 것이다. 누구의 사정이 더 딱하다고 하여 누가 옳고 그르다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왠지 덜 배운 죄로 무시만 당하는 신지로의 모습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상황이 악화될수록 안쓰러웠다.   

10대에 이미 가출을 하고 파친코를 전전하며 자기보다 약한자의 돈이나 삥뜯는 삶을 사는 가즈야. 인생의 목표도 없고, 하루하루가 똑같은 비전없는 젊은이다. 문제는 이러한 젊은이들이 점점 더 사회에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심성이라던가 사고방식 자체만을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회구조와 가정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어쩌면 거리로 내몰리 수 밖에 없는 불운한 청소년기를 거치는 아이들이 어떻게 제대로 사회의 일원이 될 수있겠는가? 가즈야도 이러한 인물상 중 하나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나쁜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고, 실행에 옮길수록 더 대범해지며 결국은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이 된다. 물론 결국은 최악의 상황속에 놓여져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냥 조용히 사는 것이 목표인 미도리.. 사고만 치는 동생을 대신해서라도 무조건 조용히, 착실하게 딸역할을 해나가려는 데.. 전혀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사는 윗대가리들한테나 두 손 비비느라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직원은 자신의 단짝 친구와 사귀고 있고, 더욱이 지점장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도와주기는 커녕 이 사건을 덮기만 하려는 상사들. 오늘이든 내일이든 언제든!! 때려치고 싶지만 맏딸 역할 하느라  그럴수도 없는 미도리의 눈 앞에 나타난 은행강도.. 그리고 그 강도의 정체!! 

여기서부터 이 세사람은 은행강도와 강도의 공범, 그리고 수상한 인질이 되어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보내며, 최악의 종점열차를 타고 달린다. 자신이 더 억울하고 분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의 자신에게 올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하지만, 그러면 다른 두사람이 더 피해를 보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게 서로가 좀 더 덜 피해를 보려고 티격태격 하지만.. 결국은 가장 인간적인 순수함으로 서로를 지키는 세사람.  

더 일찍 포기했다면... 그랬다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었던 것들(일, 돈, 직업)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난 후 이들은 상처받았지만 아니 상처가 남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상처가 남았겠지만,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마음편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지금 자신의 상황이 최악의 최악을 거듭하고 있다면, 혹시라도 내가 쥐고 있는 여러가지 욕심덩어리들 중에 어떤 것을 놓았을때 오히려 나를 이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열쇠가 되지 않을까?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쌓아가기!  올바르게 살기! 행복하게 살기!! 신지로, 가즈야, 미도리를 보면서 내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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