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내가 죽은 집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영미 옮김 / 창해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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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문득 떠오르는 기억중에.. 마치 안개에 휩싸인듯한 밤거리에 곧 쓰러질것만 같은 이층집 주위를 맴돌며 아빠를 찾는 나를 끄집어 내곤 한다. 이 기억속에서 나는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가득한 체 아빠를 찾는 나를 바라보는 제3처럼 기억되곤 한다.  이런 기억이 진짜있었던 일인지 엄마에게 묻고 싶어도 내 기억속에 내가 너무 어려서 설마 이런 어린여자애가 깜깜한 밤에 혼자 돌아다니게 놔뒀을까? 하는 의구심에 과거 내가 절망 실제같은 꿈을 꾸고 그것을 실제 일인냥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묻어두곤 한다.   

이 책속에 빠져 있던 밤.. 왠지 등골이 서늘했던 이유는 아마도 꿈일것이라고 치부해왔던 기억이 더욱 생생히 떠올랐기 때문이다. 공포와 불안감에 휩싸여있는 나의 한없이 안쓰러운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기 때문이다... 만약 나의 이 기억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면. 왜 나는 그일의 처음과 끝(아빠를 찾고자 헤매고 다닌 이유와 결국 아빠를 찾았는지에 대한...)이 기억나지 않는 것일까?  누구나 사야카와 마찬가지로 예전에 자신이 죽은 집을 가지고 있다는 히가시노의 말이 가슴에 쿵하고 가라앉았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자신의 친딸을 학대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기억나지 않는 유년시절과 연관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야카는 아버지의 유품인 지도 한장과 열쇠 하나로 부터 자신의 과거를 밝히기 결심한다. 자신이 어렸을 적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를 기억조차 못하면서 그것이 대물림되는 상황속에 사랑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파고든다. 참으로 무섭다.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되는 습성..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들을 심리적 치료를 하다보면 꼭 그 자신도 부모로부터 받은 학대의 상처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심리치료전에는 그 학대의 기억으로부터 자신을 완전히 떼어놓는다. 상처를 끄집어 내고 치유를 하기보다 자신과 떼어놓고 곪게만들고 자각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자식에게 되물림을 하는 것이다.  

그런자신이 무서워져 자신의 잃어버린 과거를 찾고자 첫사랑인 고등학교 동창 나카노와 함께 열쇠의 주인인 집을 찾아간 사야카... 어둡고 음습한 비오는 날씨속에 우두커니 서 있는 그 폐허가 되버린 그 하얀집은 그 둘에게 서서히 그리고 오싹하게 비밀을 풀어낸다. 나카노는 그 비밀들을 통해 불길한 비극을 예감하는데.. 결국 그 예감은 사실이 되어 사야카의 기억을 모두 돌려 놓는다. 그녀가 어린시절에 대한 기억을 억압할 수 밖에 없었던 엄청난 상처를...  

나카노는 반문한다. 과연.. 그녀의 과거를 찾고자 했던 그날의 일이 옳은 일이였을까?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위해 스스로가 삭제해 버린 기억... 다행이도 사야카는 그 사건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드리고 치유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다. 다 치유되고 난 후 사야카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까? 자신의 딸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게 된 엄마로 바뀌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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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금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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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지가 참 좋은 글이다.  역사를 바로 알리고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역사속에 살아오고 우리스스로 그것을 얼마나 부정했는지 또는 우리의 무지를 얼마나 정당화했는지에 대해 반성케 하는 그의 작가정신은 현대사회문제를 반영하고 우리에게 깊은 반성을 이끄는 타 작가들의 소명과 비견해도 손색이 없다. 비록 나는 이책을 처음으로 그를 접했지만 알고 보니 이사람 이런 역사를 바탕으로한 소설을 꽤 여러권 써온 사람이다. 그가 쓴 대부분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이 책 또한 베스트셀러이다. 

그러나 나는 아쉽다. 이 아쉬움을 짧게 이야기 하자면.  이건 소설가가 쓴 역사이야기라기보다 역사학자가 쓴 소설같다. 소설의 주제나 소재 모두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사건들이 진행될수록 페이지를 넘길수록 약간은 부족한 상황설명과 대화 몇번 만으로 훌쩍 넘어가는 다음 전개, 지나친 우연의 연속과, 이해를 할 수 없는 사건들.. 왜 이런 중요한 이야기를 이렇게까지 억지스럽게 짜여진 글들로 표현할 수 밖에 없는가 하는 아쉬움마저 들었다.  그의 다른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적어도 이책은 나에게 있어 '소설가' 김진명으로서의 존재감을 주지 못했다.

 미진이 사서삼경에 목을 매단체 앉은체로 죽어있는  이 대목에서 부터 난 이해가 안갔다. 이 엄청난 '한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일어난 첫번째 사건으로는 너무나도 논리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사건이다. 미진이 정말 자살한 것이 아니라면 타살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 세상에 어떤 범죄자도 자신의 범죄를 밝히고 싶어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그 이유는 더더욱 감추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미진이 타살이라면 왜 목을 맨 줄을 사서삼경에 걸어두고 더욱이 자리에 앉은체로 두었을까? 이것은 이 사건이 타살임을 그리고 이 특이함으로 그녀의 죽음이 사서삼경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바로 연결시켜준다. 즉 범인이 스스로 잡히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닌가? 또한 그녀의 몸을 마비시킨 독도 어떠한 의심도 없이 복어독임을 확신하는 것도 이해가 안간다. 복어독을 잘 쓰는 사람과 시에허의 관계를 알고 나서 유추한 것도 아니고.. 단지 몸을 마비시키는 유일한 독이라 그 독을 썼을 것이다! 라고 확신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정서라는 인물에 대한 것도.. (아무 천재라지만 이정서에게 사건을 일임해버린 무책임한 수사과장도 그렇고)부족한 인물상황 설명으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천재 물리학자인 이정서는 핵융합 발전을 주도한 인물이라기 보다 미진의 죽음을 파헤치기 위해 준비된 인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왜 궂이 그를 물리학자로 설정했을까? 천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써? 관심이 있어 배운 중국어와 한자들, 아무리 주제를 가지고 책을 본다지만 역사학자도 평생에 걸쳐 연구하는 수십권의 책들을 단 하루이틀만에 읽는 능력, 우연히 만난 조교와의 행운, 부족한 상황 설명속에서의 시에허에 대한 의구심, 우연히 만난 왕가들, 마치 그들을 위해 준비한 듯한 고려인삼까지!(풉)!,  우연히 만난 전 주한 대사..그리고 뻔한 반전에 반전. 의외의 환경속에서 이런 우연이 계속되다 보니.. 아무리 소설이 허구의 일색이지만 이건 전혀 나를 소설속 공간으로 빨아드리지 못하는 것 아닌가!

큰 주제를 밝히기 위해 소소한 것들을 모두 포기해버린 듯한 소설.. 그래서.. 긴박한 상황들이 전혀 긴박하지 않았던 소설이 되버렸다. 뭐.. 상황이 악화되어도 괜찮아. 중국 길거리르를 걷다가 우연히 만난 사람이 너의 사건해결을 해줄 열쇠니까~~~~ 그리고 결국 천년의 금서인 왕부의 씨성본결에는 무엇이 있는것인가! 추측만으로 '한'의 유래를 밝히기위해 현재 존재여부도 확실치 않는 그 책을 오르내리는 것은 분명코 전해오지만 위서라고 치부하는 단군세기보다도 못한 것이 되지 않을까? 

덧붙여서... 

책속의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논하고 싶지 않다. 시경과 잠부론에 분영코 그런 문장이 있기에 이 책을 쓴 것일테고 나또한 그가 파헤져 놓은 증거들을 근거로 과거 우리민족이 가졌던 뛰어난 천문학지식과 문명을 지녔음을 진실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작 우리나라의 역사학자들이 그시기의 우리의 역사를 좀더 연구하지 않고 왜 타국에 의해 결정된 역사만을 논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고대 문명 국가를 바로세우는 것을 '민족주의다!반미 반일 주의다! 라며 외치는 자들 또한 한심하기 그지 없다. 그렇다면 친미 친일을 위해 사실의 역사를 덥어둬야 한다는 말인가? 진실을 밝히는 것을 꺼리는 이유가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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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예뻤을 때
공선옥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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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내가 가장 예뻤을 때'는 아마도 해금이의 그때처럼 18~22살즈음이 아닐가 한다. 벌써 그때가 10여년 전의 일이라는 새삼 놀랍고 깃털처럼 흐르던 시간들의 무게가 태산처럼 느껴지는 것만 같다.  

나는 이 책을... 책속에서 삼일 책밖에서 칠일을 읽었다. 비록 수선화회원들의 그때에 비하면 나의 20살은 너무나도 풍요로웠겠지만 마음속의 빈곤과 갈망은 역시나 같았기 때문에 나는 이책을 읽는 중간중간 그때의 나의 모습을 한참이나 떠올려보곤 했다. 시대적 상황이 주는 특수함만 제외한다면 수선화 회원들이 겪는 상황과 감정들...첫발을 내딛게 되는 사회에 대한 희망과 불신, 첫사랑에 대한 쓰라림, 나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 자신의 길을 가기위해 뿔뿔히 흩어지는 친구들... 모두 그때의 나에게 상처내고 치유되었던 것들이다.    

헌혈하러 갔다 어디선가 날아온 유탄에 맞아 죽은 친구도....그 친구의 죽음을 절대로 받아들일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친구도....아버지의 새여자때문에 집을 나와버린 어머니의 급작스런 죽음 후 미혼모가 되버린 친구도....잘다니던 대학을 때려치고 노동운동가가 되버린 친구도 ....이런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쌓아갔던 첫사랑의 씁쓸한 맛을 알게 된 해금이도 모두....안타까운 모든것들을 잊거나 혹은 이겨내면서 스무살을 보냈겠지...

이책에는 어떤 큰 사건이 없다. 또한 작가가 전달하고자하는 강력한 메시지 따위도 없다. 하지만 80년대 광주.. 생생한 사투리 만으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힘(정작 난 수도권출신인데도 말이다). 그 시절을 지나온 우리의 발자취같고, 그러므로 아련히 기억속에서 끄집어 내지는 세피아 영상같은 환영들이 펼쳐지는 것만 같다. 내가 가장 예뻤었지만 그것을 잘 몰랐던 그때.. 그래서.. 아쉬움이 남아서.. 더욱 되돌아 가고 싶은 그때... 결국에 나는 10번째 수선화회원이 되어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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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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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과연 미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진.. 안개로 뒤덮인 이 쇄락한 도시.. 안개가 온 도시를 휘감고 놓아주지 않음은 비록 날씨에 대한 뉴스뿐만이 아니었다. 얼굴에 억겁의 철면피를 깐 청각장애아 학교 자애학원의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 그 철면피를 녹여줄 똥물이라도 한 사발 붓고 싶은 심정이 북받친다.. 그들의 짓거리를 외면하고 눈감으며 감싸주는 소위 좀 배운 것들, 좀 산다는 것들(무진의 지역 유지들)의 행태가 한 여름밤 가위눌림보다 더 섬뜩하다.

 

꿈이라는 것은 이미 기억조차 나지 않고 먹고살자는 목구멍의 울림이 남은 삶을 결정해버린 강인호. 아내가 주선해준 장애인 학교 교사로서 어쩌면 이 자본주의 세계에서 남편노릇 아비노릇 제대로 해볼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울에서 무진으로 쫓기듯 올때까지만 해도 그저 안개로 뒤덮인 이 도시와 함께 몽글몽글 떠오른 자살한 내연의 제자 명희  생각에 잠시 소름이 돋았을 뿐이였다. 하지만 첫날부터 예사롭지 않았던 교장과의 대면과 열차사고로 인한 장애아의 죽음 등 그에게 이제 이 터질듯한 무소음의 자애학원의 오랜 비밀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언어라는 것.. 그것이 빠져버린 이 곳은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적막한 곳.. 그래서 더욱 소리에 민감해지는 곳이였다. 소리가 사라져 버린 곳에서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이질감을 갖는지 알게 된 그는 그 이질감의 진실... 아이들의 죽음과 비명 소리 속에 묻혀있던 진실을 알게 된다. 말 못한다는 이유로 자행된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의 성폭력을 당해야만 했던 아이들... 그리고 그 사실을 묵인해왔던 교사들..

 

그는 남편으로서 아비로서의 자신의 이 마지막 끈을 놓칠 것인가 고민하다가 결국은 한 인간으로서 인간답지 못한 그들의 죄를 낱낱이 까발리기로 한다. 그들의 죄가 만천하에 들어났을 때만 해도 이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나는 경우 제정신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단죄가 내려지기도 전에 악마같은 짓거리를 한 그놈들의 사회적 신분덕에 조금씩 콩고물을 얻고 있는 얽히고 설킨 무진 유지들의 행태에 그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더욱이 그들은 이 형제의 짓거리가 사실임을 내심 알면서도 그들과 연결된 사회지도층이라는 감투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가 서로를 위한 책임보험이 되어 이강석 형제 보호하기 프로젝트에 앞장서고 있다. 정말 그 누구보다 정의를 위해 앞장서야 하는 교육장, 판사, 변호사, 목사, 의사들의 이러한 행태를 보면서 이제 나는 광란의 도가니가 아닌 분노의 도가니 속에 빠져있다.  

그들에겐 장애인과 장애인을 위해 50년 동안 봉사활동을 펴온 이강석의 인권이 같지 않음이 당연하듯.. 나 또한 힘없이 당해야만 했던 장애인(人)과 50년동안 인간으로서는 해서는 안될 일을 한 이강석외 2명의 짐승들의 인권이 같지 않음이 당연하다. 짐승에게 어찌 인(人)권을 줄 수 있겠는가! 이런 짐승을 옹호하고 나서는 교육장과, 변호사, 목사와 그 교인들 에게 인권이라는 정의를 새로 각인시켜 주어야 겠지! 그리고 죄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재판부에게도 분노의 똥침을 놔주고 싶다!

 

무전유죄, 유전무죄... 이런 말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분명코 있었구나!

 

만약 이 책의 결말이 그리하며 나쁜놈들은 달게 벌을 받고 착한사람들은 모두 잊고 행복하게 살았다고 했다면.. 마음의 위안은 삼을 수 있었겠지만... 그저 잘 만들어진 소설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실제로 일어났을지라도 이렇게 결말을 보고야 말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 두렵다. 그리고 두렵기에 그렇게 되지않도록.. 이런 결말 속에서 분노의 도가니속에서 허우적 거리지 않도록 내가.. 우리가..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 해나가야 할 것들을 하나씩 되씹어 본다.

그렇다.. 진실을 결코 개들에게 던져줄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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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손가락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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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뉴스에도 또 나왔다.. 묻지마 살인..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무참히 죽여놓고도 전혀 죄의식 없는 얼굴로 뻔뻔하게 "죽이고 싶어 죽였다."는 터무없는 말을 툭툭 내뱉어대는 사회.. 이런 사회를 살면서 어느덧 살인은 너무도 익숙한 단어가 되었다. 나는 내나름대로 바르게 살고자 노력하는 사람으로서 저런 단어와는 평생 실제적으로 마주하는 일은 없을것이라는 믿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살인피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왜.. 왜.. 이런일이 자꾸 일어나는 것일까?

어느날 갑자기 자신의 집 마당에 버려진 여자아이의 시체.. 아키오는 아무런 원한을 살 일이 어뵤을 그 여자아이의 시체가 자신의 집 마당에 버려져 있다는 것 자체에 무척이나 당황하고 의아해 했겠지만.. 알고보면 그 시체가 그곳에 놓여있는 이유는 정말로 뜻하지 않게..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할 수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키오네 세가족에게 표출되는 분노를 참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분노가 오늘 아침뉴스를 보며 느꼈던 분노와 같은 종류의 것임 또한 알아챘다. 살인자에 대한 분노.. 그것을 방관하는 것에 대한 분노..  

살인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제 방에 틀혀박혀 게임을 하며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시키는 나오미의 뺨을 몇차례나 후려갈기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잘못된 자식사랑으로 나오미가 정신적 미숙아로 자라게 만든 야에코가 상식에서 벗어난 궤변을 입밖에 낼때마다 그녀의 뺨 또한 당장이라도 후려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항상 모든 가정사에 방관을 일쌈으며 부모. 형제. 아내. 자식. 그 누구에도 사랑이라는 것을 주지 못한 아키오에겐 무한한 불꽃싸다구를 선사해주고 싶었다..(그런 의미에서 후반부  하루미의 한방은 너무 아쉬웠다.) 이런 가족을 접하면서 단순히 화만 난 것이 아니라 씁씁함 또한 마음한켠에서 계속 머물렀던 이유는 현실 속에는 이보다 더한 환경에 처해있는..그래서 잠재적으로 범죄의 세계로 자연스레 흘러들어가는 가정이 많다라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알고있다는 사실때문이겠지.. 

부모가 자식을 잠재적 범죄자로 키우는 사회...자식의 살인까지도 덮어주고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일지라도 그 자식이 자신이 저지를 폐륜적인  잘못을 깨우치게 하려는 노력을 배제한 체 잘못된 행위 그 자체만을 덮어주기만 하는 부모의 사랑이 과연 올바른 부모라 할 수 있을까?  야에코의 시부모에 대한 태도를 볼 때 어쩌면 그녀는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모르기때문에 자기 자식에게도 그러한 도리를 일깨워주지 못한 것 같다. 부모는 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배워야하는 것이다.  

이러한 미숙한 자식과 손자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땟을까? 엄청난 사실을 숨기면서도 자식 스스로가 자신들이 하고있는 잘못을 깨우치게 하기 위해 얼마나 남몰래 피눈물을 흘렸을까? 붉은 손가락은 어머니가 흘렸을 피눈물을 닦아낸 흔적이다.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은 상처의 흔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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