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 개정판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북스토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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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시절 친구들과 고무줄 놀이를 할때면 항상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었다. 한시간 놀이를 하기위해 삼십분동안 꼬인 고무줄을 풀어놓는 것이였는데, 여러명이 달라붙어 손으로도 풀어보고 모래바닥에 던져 발로도 비벼봐도 어디서 부터 어떻게 꼬인것인지 항상 애를 태웠다. 지난번에 놀고나서 잘 정리해둘껄 하고 후회해봤자 이미 지난일이고, 풀면 풀수록 더욱 억세게 엉켜버린다. 결국 어쩔 수 없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엉킨 곳을 가위로 잘라내고 다시 엮으면 길다란 고무줄이 온전한 상태인곳보다  묶인곳이 더 많아 정말 지저분해지는 것이다.  

신지로, 가즈야, 미도리... 이들의 인생이 마지막장으로 달려갈수록 이 엉켜버린 고무줄처럼 생각되는 것은 아마도 처음엔 별로 복잡하지 않은 것 같았는데 풀면 풀수록 더욱 엉켜버리는 모습이 닮았기 때문일테지...물론 셋의 인생이 모두다 막장을 향해가게 된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말이다.  

돈 없으면 못사는 세상 좀 더 잘살아 보고자 하는 가장의 의무이자 욕심을 부려본 것 뿐인데, 결국 자신의 목숨까지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는 신지로..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깨진다는데, 참으로 운도 지지리 없다라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작업환경과 주거환경이 뒤섞인 마을..2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신지로의 작업환경이나. 3차산업에 종사하고 있는 맞은편 맨션주민들(소위 화이틀 칼라)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같다. 그것은 바로 삶의 질 높이기. 하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둘의 노력은 전혀 상반된 것이다. 납품기한을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주말에도 일을 해야하는 하청업자 신지로의 삶의 질 높이는 방법은 좀 더 많은 일거리를 얻어오는 것이고, 맨션주민들의 삶의 질 높이는 방법은 최대한 신지로의 철공소에서 들려오는 소음을 막는 것이다. 누구의 사정이 더 딱하다고 하여 누가 옳고 그르다고 똑부러지게 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왠지 덜 배운 죄로 무시만 당하는 신지로의 모습이 우리네 아버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상황이 악화될수록 안쓰러웠다.   

10대에 이미 가출을 하고 파친코를 전전하며 자기보다 약한자의 돈이나 삥뜯는 삶을 사는 가즈야. 인생의 목표도 없고, 하루하루가 똑같은 비전없는 젊은이다. 문제는 이러한 젊은이들이 점점 더 사회에 많이 생겨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심성이라던가 사고방식 자체만을 탓하기엔 무리가 있다. 사회구조와 가정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어쩌면 거리로 내몰리 수 밖에 없는 불운한 청소년기를 거치는 아이들이 어떻게 제대로 사회의 일원이 될 수있겠는가? 가즈야도 이러한 인물상 중 하나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히 나쁜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고, 실행에 옮길수록 더 대범해지며 결국은 갈때까지 가보자는 심산이 된다. 물론 결국은 최악의 상황속에 놓여져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냥 조용히 사는 것이 목표인 미도리.. 사고만 치는 동생을 대신해서라도 무조건 조용히, 착실하게 딸역할을 해나가려는 데.. 전혀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다. 상사는 윗대가리들한테나 두 손 비비느라 직원들은 안중에도 없고, 자신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직원은 자신의 단짝 친구와 사귀고 있고, 더욱이 지점장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도와주기는 커녕 이 사건을 덮기만 하려는 상사들. 오늘이든 내일이든 언제든!! 때려치고 싶지만 맏딸 역할 하느라  그럴수도 없는 미도리의 눈 앞에 나타난 은행강도.. 그리고 그 강도의 정체!! 

여기서부터 이 세사람은 은행강도와 강도의 공범, 그리고 수상한 인질이 되어 하나의 공간과 시간을 보내며, 최악의 종점열차를 타고 달린다. 자신이 더 억울하고 분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생각의 자신에게 올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하지만, 그러면 다른 두사람이 더 피해를 보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렇게 서로가 좀 더 덜 피해를 보려고 티격태격 하지만.. 결국은 가장 인간적인 순수함으로 서로를 지키는 세사람.  

더 일찍 포기했다면... 그랬다면 더 행복했을 수도 있었던 것들(일, 돈, 직업)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고 난 후 이들은 상처받았지만 아니 상처가 남았다는 표현이 더 맞겠다. 상처가 남았겠지만, 오히려 더 안정적이고 마음편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지금 자신의 상황이 최악의 최악을 거듭하고 있다면, 혹시라도 내가 쥐고 있는 여러가지 욕심덩어리들 중에 어떤 것을 놓았을때 오히려 나를 이 최악의 구렁텅이에서 꺼내줄 열쇠가 되지 않을까? 무리하지 말고 차근차근 쌓아가기!  올바르게 살기! 행복하게 살기!! 신지로, 가즈야, 미도리를 보면서 내게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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