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책을 읽고 나서 이렇게 생각이 많아져보기는 처음인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들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빠지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한다. 참 재미있게 읽히는 책인데.. 책을 다읽고 나니 한동안 무슨 이야기인지 파악이 잘 안된다. 작가의 말도 곱씹어 보고 다른 이들의 독서평도 읽어보았지만 그래도 잘 모르겠다. 책을 읽었으니 응당 독서평을 써보자 마음먹기를 며칠째.. 지금 내가 하는 말이 내가 생각한 말이 맞나 싶어 몇번을 지웠다 고쳐쓴다를 반복한다. 이까짓 소설책 하나 읽고 독후감쓰기를 뭐그리 고민고민하냐고 타박을 해도 어쩔수 없다. 그만큼 나에겐 이 열외인종 잔혹사는 어렵고 쓰다. 

오히려 책을 읽을 때는 별 생각없이 피식피식 웃어가며 술술 넘어갔다. 근데 다 읽고 되새김질을 해보니 이거.. 영 개운치가 않다. 4명의 열외인종이 대한민국에서 결코 겪을 수 없을 것만 같은 황당한 상황속에 놓여진 하루간의 이야기로 읽어 내려가면 참 재미있는 소설이 되지만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생각해보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몇개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말은 이런 의문을 더욱 증폭시키는 역할 만했다. 과연 나는 이 소설을 작가가 의도한 바 그대로를 실천하며 읽은 것일까?   

작가는 말한다. 경쟁과 착취, 혼돈과 모순 속에서 바로 우리들이 "열외인간"이라고, 그리고 지독한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조차 '열외인간'을 벗어날 수 없다고. 그렇다면 작가는 자신이 주인공으로 내세운 4명이 이러한 열외인간에 속한다는 것인가? 나는 동의 할 수 없다. 이들은 사회가 열외시킨 열외인간이라기 보다는 스스로를 열외의 범주속으로 몰아넣은 것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작가가 내세우는 천민자본주의라는 사회풍토 속에서 나 스스로를 열외인간으로 내몰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한다면 이들 네명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들의 상황을 사회탓으로 돌리기엔  이 들, 주인공의 모습은 공감되지 않는 면이 더 크기때문이다. 내가 다른사람보다 타인에 대해 더 냉정하기때문인가? 매말랐기때문인가? 하고 나 스스로에게 반문을 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였다. 

나는 노인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노인들이 몸소 체험한 시간의 위대함을 알기때문이다. 하지만 장영달과 같은 노인은 내가 말한 노인의 축에 속하지 않는다. 나이만 많이 먹었다고 응당 대접을 받아야 한다라는 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대게 이런 사람들이 대접받고 싶은때는 나이를 거들먹거리고, 그렇지 않은때는 자신을 노인으로 여기는 것을 매우 불쾌해 한다. 더욱이 노인이기때문에 자신의 사고를 반성하지 않는 장영달의 태도는 더 분노를 산다. 보수꼴통이라는 말이 절로 입술사이를 비집고 나온다.  

윤마리아 역시 마찬가지이다. 현 사회에가 아무 잘못도 없는 그녀를 선밖으로 내몰았다고 하기엔 그녀의 삶은 너무나 최악이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것이 없다. 그저 명함하나 내밀고 월마다 들어오는 급여가 있는 일자리를 원할 뿐이다. 수도권 대학출신에, 어학연수도 다녀왔겠다, 힘든일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그래서 얻게된 제약회사의 인턴직.. 그런데 그것마저도 그녀는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다른이를 부정하면서도 정규직사원이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는 놓치지 않으려는 이중성을 보인다. 열심히 일해서가 아니라 꼼수를 이용해서 말이다. 그녀의 청춘이 아깝다. 

기무는 어떠한가. 말이 필요없다. 현 교육사회의 희생양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붙일필요가 없다. 현 교육사회의 희생양은 오히려 시골의 가난한 집자식으로 태어나 평생 학원 한 번 못가보고 한달에 몇백씩하는 과외받는 친구들과 함께 경쟁해야하는 이에게나 써야 할 말이다.  

그나마 김중혁은 일말의 안쓰러움이 들기도 한다. 비정규직으로 월 80만원을 받고 미친듯이 일한 죄로 마누라의 외도라는 형벌을 받았으니말이다. 하지만 노숙자로서의 삶은 안쓰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스스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포기했을 때 타인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하는 것일까? 이억만리 타국에와서 노동착취를 당할지라도 매달 고국의 가족들에게 급여를 보내는 보람을 느끼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너희들때문에 내 일자리가 없어!, 너희들때문에 우리나라 노동현실이 더 최악이 되는 거야!'하고 주장하는 것은 노숙자들의 역할이 될 수 없다. 서울역사에 마네킹처럼 너브러져 멀쩡한 사지를 가지고 구걸을 하고 있는 자들을 보면, 왜 저들은 막노동이라도 할 생각을 못하는 것일까?하고 생각하곤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기엔 그들은 이미 적선받는 것의 기쁨에 너무 길들여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작가도 나와 같은 뜻인가 했는데.. 사회가 어떻든, 현재 우리의 문제가 뭐든.. 이런식의 삶의 방식은 곤란하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탓하기 전에 나를 추스려야 한다. 그리고 타인을 돌볼줄 알아야 한다... 이런 것을 기대했는데.. 코엑스몰에서 벌어진 대규모 참사 후 그의 말은 이런 동질감을 순식간에 이질감으로 돌려놓았다. 뭐랄까? A를 한참 같이 씹어대던 B가 느닷없이 모든것은 C탓으로 돌리고 A를 옹호하고 나선 것 같은 황당함이라 할까? 그리고 이러한 황당함을 갖는 나는 과연 어떤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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