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하늘연못 > 이쁜 하루님의 리뷰를 보고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 - 개정판 정채봉 전집 8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6년 1월
평점 :
품절


제 책에는 '1998년 11월 11일 1쇄 펴냄 1998년 12월 24일 1판 4쇄 펴냄'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한달 반도 안되어 4쇄를 박고 있다는 건 이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이겠지요.11월 11일 1쇄도 재미있지만 12월 24일 1판 4쇄도 재미있네요. 크리스마스 이브에 찍혀나왔다는 거 아닙니까? 1도 처음으로 가는 거고 크리스마스이브도 새로운 시작을 이야기해 주니까요.-전 기독교인도 아닌데 감동하게 되네요.

그리고 이쁜 하루님이 아니셨다면 표지에 어항 속의 물고기를 보고있는 고양이 그림이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무언가 먹잇감을 찾는 탐욕스런 현대인을 뜻하는 걸까요? 그러면 눈이 어항쪽이 감기고 반대쪽이 음흉하게 떠있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러고보면 어항이란 거울처럼 무언가를 성찰한다는 뜻이 있는게 아닐까요? 과거로 빚어진 나라는 물고기를 선입견이나 지식의 눈으로 보지말고 호기심이 가득한 아이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 아닐까요? 고양이가 그래도 착하게 보이는 걸로 봐서 그리고 고양이와 물고기가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걸로 봐서 여하튼 과거와 현재의 대화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개정판은 표지가 바뀌었군요. 책 속에 풀잎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 그래서 풀그림이 그려져 있나 봅니다. 그렇다면 처음이라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연두색이면 좋았을텐데요... 어찌 생각해보면 맑은 가을하늘을 배경으로 갈색이 더 나은거 같기도 하구요.아무튼 고양이 그림도 풀잎그림도 저한테는 오리무중이네요.^^

정채봉 선생님과 권정생 선생님을 종종 헷갈리게 됩니다. 이름이 특이한 이름들이시고 똑같이 '정'자가 들어가고 '채'자와 '생'자가 비슷하고 끝이 모두 'ㅇ'받침으로 끝나는 동화작가여서 그런가 봅니다.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권정생선생님은 '강아지똥'의 작가고, 정채봉 선생님은 '오세암'의 작가로구나 라는 걸 말이죠. 그러고 보면 권정생선생님은 훨씬 척박하고 구체적인 애환을 배경으로 동화를 쓰시는 반면에 정채봉 선생님은 투명한 기독교적 감성으로 동화를 쓰시는 거 같습니다.예를 들어 제가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의 걸작"강아지똥'이 자신의 길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험난하고 암울하기 그지 없습니다. 독자는 강아지똥의 처지에 자신을 몰아넣고 같이 느끼고 울게 됩니다. 보잘것 없는 똥개의 똥이라는 설정 자체가 배운것도 걸칠것도 없는 초라한 부모님의 보잘것없는 자식들-헐벗은 일반 서민에 다를바가 없습니다. 거인들의 세상에서도 난쟁이들은 꽃으로 피어나야하고 피울수 있다는 희망을 담은게 강아지똥이었습니다. 강아지똥의 모험을 보면 권정생 선생님은 가슴깊이 품고 안아주시는 분입니다.

정채봉선생님이 과연 이 책을 동화책으로 썼겠느냐 부터가 궁금해집니다.예를 들어 "사랑의 옷은 신비이다'라는 글을 보면 "6월의 산에서 밤꽃 향기를 대한 적이 있는가. 사랑의 유혹 또한 밤꽃 향기처럼 숨을 막히게 하느니."로 시작합니다.또 '삶에 고통이 따르는 이유'에서는 "생선이 소금에 절임을 당하고 얼음에 냉장을 당하는 고통이 없다면 썪는 길밖에 없다."도 퍽 단정적인 글투입니다. 아마도 저자를 알려주지 않고 이 책을 읽어주고 저자를 알아맞추라고 한다면 어쩌면 "이외수 선생님"이라고 쓸 사람이 많을 거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건 성인들을 위한 동화나 정채봉 선생님의 세상 보는 법이라고 보아야 할거 같습니다. 사실 아이들이야 처음 마음으로 돌아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때로는 너무나 안타까운 결말이 있는데요.예를 들어 '두꺼비와 개구리'같은 글은 천천히 가는 두꺼비를 조롱하며 먼저 뛰어나간 개구리가 그만 경운기에 치어죽고 맙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천천히 걸으며 이것저것 음미하는 두꺼비와 점프의 스피드를 즐기는 개구리가 꼭 우열을 가릴 필요가 없을 텐데도 개구리를 죽이십니다. '5분 먼저 가려다 50년 먼저 간다'는 과속방지 캠페인이 떠오르는데 저는 아무리 정채봉 선생님이지만 개구리가 불쌍해 죽겠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경운기 돌정도에 맞고 넘어져 있는 걸 두꺼비가 업고 가는 걸로 끝내도 좋지 않아요. 둘이 같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요. 그러고 보니 시인 김완하 선생님이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읽으시더니 "너무해. 꼭 한명이 경찰한테 끌려가는 비참한 몰골로 끝을 내다니. 나라면 세탁소하는 친구와 내가 소주 한잔 기울이며 과거를 시끌벅적하게 얘기하며 끝낼텐데!"라고 하신게 떠오르네요. 김완하 선생님은 이문열선생님이 소설로 신인작가 상을 탈때 바로 옆에서 시로 신인작가상을 탔었지요. 김완하 선생님의 사부는 고은 선생님이십니다. 정말 권정생 선생님과 정채봉 선생님의 차이가 김완하 선생님과 이문열 선생님이라고 보면 어떨까 하는 별스런 생각마저 듭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문득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라'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졌습니다. 물론 이 책에는 처음과 관계된 글이 몇 편보입니다. 예를 들면 '첫길 들기'라는 글에는 "새 볼펜의 첫 낙서는 '사랑하는' 이라는 글 다음에 자기 이름을 써본다"같은 예쁜 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그리고 정말 이쁜하루님의 지적대로 가장 감동적인 글 '물 한 방울도 아프지 않게'에 어쩌면 간암으로 죽음을 마주한 선생님의 처절한 처음에 대한 회한 역시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저는 문득 맨 앞의 글이 무언지 궁금해졌습니다. 피천득 선생님의 시가 머릿글로 적혀있네요.

마당에 꽃이 /     많이 피었구나.

방에는 /     책들만 있구나.

가을에 와서 /    꽃씨나 가져가야지.       (피천득님의 시 '꽃씨와 도둑')

정말 배부르게 살기보다는 예쁘게 살기를 바라는 사람의 이야기로군요. 그럼 정채봉 선생님의 처음의 의미는 직접 책을 보고 확인하시지요. 이만 총총..

*** 좋은 리뷰 써주신 이쁜하루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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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다른 분들의 리뷰를 읽고 '공중그네'를 읽지 않은 나는 행운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비교 대상이 없기 때문에 순수하게 유머는 유머로, 아픔은 아픔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비교 분석으로 들어가면 그 순간 순수함은 없어지고 전작에 비해 어땠다 저땠다 식으로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더풀보다 공중그네가 더 낫다는 의견들이 다반사니 호호호 이 어찌 행운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

본격적으로 인더풀 얘기를 해보면 이라부! 그는 천재인가, 아니면 엽기 변태에다가 아직 덜 자란 어른인데 모든 것이 우연으로부터 나와 힘을 합쳐 그를 도와주고 그의 환자를 낫게 해주는 것인가!에 관심이 쏠렸다. 첫 이야기 [도우미]를 읽으면서는 이라부가 일부러 그녀의 망상과 똑같은 행위를 그녀 앞에서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그렇게 해줌으로써 주인공 히로미가 스스로 그것을 깨달아 가길 바라는 의미에서... 그런데 현실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니 그녀를 치료해주겠다고 병원 밖인 탤런트  시험장에까지 가서 시험을 치룬 다는것이 말이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쨋든! 그녀의 병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던 이라부 이기에 그는 과연 천재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 너무 섰다!] 편에서 보면 또 그것도 아닌것 같았다. 아내의 부정으로 이혼을 하게된 남자가 음경강직증(진짜 있는 병인가?)에 걸려 음경이 발기해 가라앉질 않아 내과 치료를 받다가 정신과로 오게 되었다. 별 치료는 하지 않는것 같은데 환자 스스로가 이라부의 행동을 통해서 자신의 문제점을 파악해 나간다. (그게 이라부의 치료법일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이라부가 3개월 함께 산 아내에게 '이런 ››어빠진 화냥년' 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는 자신은 자신을 두고 바람을 핀 아내에게 그렇게 못했음을 후회한다. 또 이라부와 그의 3개월 함께 산 아내가 병원에서 육탄전을 벌이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살아 있다는 실감을 느끼게 된다. 그리하여 확실히 자신의 병이 무엇인지 깨닫고 그것을 통해 나음을 받는다. 이 싸움은 치료를 위해 혹시 이라부 선생이 꾸민 짓이 아닐까? 혼자서 생각해봤다. 그런데 또 현실적으로 생각하자니 저 사람 하나 치료하겠다고 병원의 기물을 다 부셔가며 쌈질을 하겠는가..아니지 아니지..

책을 읽으면서 계속 헷갈린다. 그는 치료를 위해 일부러 저러는 것일까, 아님 진짜 우연일까!! 그러나 이것 한가지 확실한 건 그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 의학 책을 뒤적거려보고 지금까지의 여러 사례들을 검토해 본다든가의 식으로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지금 무엇으로부터 고통 받고 있는지 그 원인에 그 자신도 함께 빠져봄으로써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해결책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다들 처음에는 이 의사의 외모만을 보고 비호감을 갖게 되고 다시는 병원에 오고 싶지 않은 감정마저 갖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를 해보면 해볼수록 자신과 똑같은 행동을 하는 그를 보면서 그들은 마음을 열고, 오로지 말할 상대라고는 이라부 선생밖에 없음을 느끼고 매일 같이 출근을 한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혼자있는 것을 못견뎌 하는 프렌즈의 유타를 통해서 나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었고,  때로는 어린애처럼 또 때로는 친구처럼 구는 이라부를 통해서 미래의 나의 부모상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논픽션 작가 요시오를 통해서는 책임감 이라는 무서운 감투 때문에 잔소리가 늘어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았고, 싫은 소리 못하고 살아 세상에서는 함구하고 오로지 남편만을 향해 화를 내뿜는 나를 보게 되었다(나의 음경강직증은 성기의 발기가 아닌 남편에게 향하는 짜증과 폭언이다) 나는 매우 이성적인 사람이기때문에 오히려 이라부 같은 의사를 만나면 더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의사가 정말로 있다면 한번 쯤은 만나고 싶다. 너무 이성적으로 살려고 해서 감성들이 자꾸 메말라가고 지적 허영심만 가득차지는 나의 이 병을 고침 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의 엽기 적인 행각에 나도 모르게 동화되어 함께 수영장 유리창을 깰 수 도 있고, 함께 돌을 던질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웬지 쾌감이 밀려오고 한 줄기 시원한 바람이 내 마음을 쓸고 가는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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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과 '않'이 헷갈려요

  의외로 '안'과 '않'을 혼동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마도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인 듯해요.

 '안'과 '않' 은 아래에 [1]과 [2]처름 쓰여요.

  [1] 철수가 밥을 안 먹는다.

  [2] 철수가 밥을 먹지 않는다.

  '안'은 '아니'의 준말이고 '않(다)'는 '아니하(다)' 의 준말인 건 알지요? 그러니까 '않'의 'ㅎ'은 '하다'의 '하'가 줄어든 모양이예요. 위의 [1]과 [2]를 본디말로 바꾸어보면,

  [1] 철수가 밥을 아니 먹는다.

  [2] 처루가 밥을 먹지 아니한다.

  처럼 됩니다.

  그러니까 '안' 과 '않'이 헷갈리는 곳에 '아니'와 '아니하'를넣어서 말이 되는 걸로 쓰면 돼요.'아니'가 자연스러우면 '안'을 쓰고, '아니하'가 자연스러우면 '않'을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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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이' 와 '반드시'

한 번 소리 내볼까요? [ㅂ, ㅏ, ㄴ, ㄷ, ㅡ, ㅅ, ㅣ]

쉽지요?

그럼 이번에는 글로 써볼까요?

반드시? 반듯이?

둘 중에 어느 것으로 써야 할지 모르겠지요/ 둘 다 맞는 것 같은데 말이죠. 둘은 소리는 같지만 표기가 다른 단어예요. 그러니까 둘은 단어의 뜻도 다르겠지요? '반드시'는 '꼭' 이라는 뜻이고 '반듯이'이는 '반듯하게, 똑바르게'의 뜻이에요. 그 정도는 안다고요? 그럼 이것도 알겠네요? '반드시'는 같은 모양이 들어 있는 다른 단어가 없지만 '반듯이'는 같은 모양이 들어 있는 다른 단어가 있다는 거요. 어떤 낱말이냐고요? '반듯하다'요 '반듯하다'의 '반듯'이 '반듯이'의 '반듯'과 같지요?

이렇게 같은 모양이 들어 있는 단어가 있으면 '반듯이'처럼 그 모양을 밝혀서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처럼  소리 나는 대로 쓰면 됩니다.

'설거지'도 마찬가지예요.

설거지를 '설겆이'로 적어야 할까요? '설거지'로 적어야 할까요?

맞아요. '설거지'로 적어야 해요.

왜  그럴까요? '설겆'과 모양이 같은 다른 단어가 없지요? 그러니까 소리 나는 대로 '설거지'로 적는 겁니다

'지붕'이나 '마개'도 마찬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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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터너상 93년 수상자이며 97년 베니스비엔날레에 출품 했던 여성조각가 레이첼 화이트리드는
대칭구조를 이루는 단순한 조형을 통해 독특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작가.
 책꽂이 옷장 침대 싱크대등을 석고 브론즈 합성수지등의 재료를 사용해 만들면서,
드러나지 않은 공간이나 텅빈 공간까지 형상화하고 있다.

김은수 국제갤러리 큐레이터는 "두 작가 모두 지극히 일상적인 소재 를 은유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작품마다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이고 있는 것도 공통적"이라고 설명한다.
화이트리드의 작품을 먼저 살펴보자. 그는 우리가 매일 접하는 침대, 욕조, 싱크대, 책꽂이를 화두로 삼는다.
옷장문을 열면 나타나는 어 두운 빈 공간을 흰색 석고로 그대로 떠낸다.
'무(無)'로만 여겼던 빈 공간이 백색 덩어리로 덩그란히 놓인 모습이 낯설고 기묘하다.
그는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 공간도 석고로 그대로 떠냈다. 석고에 찍 힌 책들이 남긴 색색의 흔적이 이채롭다.
삶의 흔적을 담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화이트리드는 "어린 시절 옷장 속에 앉아있기를 즐겨했던 기억이 난 다. 텅빈 옷장 속에서 나를 에워싼 어두운 공간에 대한
경험을 형상 화하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이번 전시에는 '무제(트라팔가 광장 대좌)' '무제(단행본)' '무제(서 고)' 등 총 10점이 나온다.
'무제(트라팔가 광장 대좌)'는 런던의 심 장부 격인 트라팔가 광장에 실제로 세워진 설치작의 모형작이다.
조 형물을 올려놓는 대좌와 똑같은 형태를 투명한 합성수지로 만들어 거 꾸로 돌려 세워놓았다.
극히 단순하면서 완전한 균형미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이원론을 은유 적으로 표현했다는 찬사를 받고 있다.

▼레이첼 화이트리드전▼

화이트리드의 작품은 언뜻 보면 단순하다. 그러나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일상의 흔적을 예리하게 포착해내는 작가의
비범한 창의력에 놀라지않을 수 없다.
그의 대표작인 책꽂이 석고 형상물 ‘무제’. 책이 꽂힌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를 석고로 씌우고 석고가
마르면 책꽂이와 책을 빼낸다. 책장의 흔적이 남고 책표지의 색깔이 은은한 흔적으로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뽀얀 작품은 담백하고 단정하다.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던 책꽂이와 책꽂이 사이의 빈 공간에 눈길을 준 화이트리드.
그 비어있음에 생명력을 부여함으로써 사소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한다.
또한 책의 흔적을 보고 있으면 여기 꽂혀 있던 책은 무엇이고, 누가 이 책을 읽었을까,
잠시 생각에 빠지게 한다.텅빈 꽃병의 내부를 주조해 만든 작품도 눈길을 끈다.
꽃병 내부의 빈 공간을 작품으로 형상화함으로써 관객들을 비어있음에 대한 사색으로 이끈다.







현대미술의 보고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 레이첼 화이트리드의 embankment.
이 상자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크리스마스장식품등을 보관하던 종이상자를 합성수지로 떠낸 열수 없는 상자를 쌓아놓은 것입니다.

다시는 열어 볼 수 없는 지나간 시간이라는 상자. -아무도 열 수 없는 시간과 기억의 상자-

내게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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