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2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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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는 오늘 학생 상담을 앞두고 있다. 지난 4월 1일부터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야학의 전담 교사가 되었다.  지난 한달간 일을 배우고 상담에 참관하며 숨가쁘게 보냈다. 이번달도 행사가 참 많고 1:1 상담이 잡혀있다. 물론 담당 선생님이 하시는데 오늘은 선생님이 외부에 나가셔야 해서 내가 하게 되었다. 어젯밤 얼마나 걱정이 됐는지 모른다. 나 자신도 모르는 내가 누군가와 얘기를 나눠야 한다니. 게다가 어제는 한 학생에게 대해서 뜻모를 화가 계속해서 나서 집에 오면서 내가 왜이러는 걸까 고민 또 고민해야했는데 상담이라니... 그래서 인지 빨리 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 같았고 내 문제를 더 들여다 봐야한다고 여겼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열심히 형광펜질을 하였다. 그래 그래 바로 이거야 그래 그래! 라며 고개를 많이도 끄덕였다. 이런 나를 지켜보던 남편은 "야! 책을 읽는게 아니라 무슨 공부하는 것 같다야!"라고 말을 하였다.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정말 나는 공부하는 심정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이 대목을 발견하고는 가슴이 먹먹해 왔다. 

  맞벌이하는 세진의 후배부부에게 기은이라는 딸이 있는데 생 후 삼개월부터 시골 할머니가 키웠다. 여름휴가 동안 아기와 함께 지내기 위해 데리고 왔는데 네 살먹은 기은이의 눈빛이 벌써 상처입은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진은 이 아이 기은에게 자신의 모습을 본다. 안아주려해도 안기지 않는 점, 언니가 제 것을 탐내자 순순히 양보한 점, 작은 서운함에 크게 상처 받는 모습 등... 그리고 세진은 의사에게 묻는다 어떻게 해야하는거냐고. 그러자 의사는 말한다 [무조건 사랑해줘야 합니다. 아이가 귀찮다고 느낄 만큼 사랑해줘야 해요] 나는 아직 아이인것 같다. 아직도 사랑받고 싶다. 내가 귀찮다고 느낄 만큼 누군가 나를 사랑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무엇을 잘할 때만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실수를 해도 용납되어지고  귀찮으리만큼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일단은 그 대상이 남편인 것 같다. 철저하게 사랑받고 싶은 것이다. 남편에게 묻곤 한다. 내가 불구가 되어도, 지금보다 더 못생겨지고 뚱뚱해져도 사랑할 수 있느냐고. 남편은 당연하지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내가 한 시간 가까이 설겆이할 때 TV나 만화책 보느라 나에게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남편을 향해 눈물 바람을 날리며 뭐가 당연히 사랑하는거냐고 따져 물었다. 귀찮으리만큼 사랑받는 일...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지금 그래야하는 상황이다. 나도 받지 못해 힘들어 죽겠는데 우리 야학 아이들을 향해 그런 사랑을 해야한다. 아이가 귀찮다고 느낄만큼 사랑해줘야 한다. 나의 콤플렉스를 자꾸 건드려 나로 하여금 화를 돋우는 그 아이를 향해 귀찮을 만큼 사랑해줘야 한다. 나는 그럴 수 없는 몸인데 말이다. 책은 박세진에 대해서 [올바름, 정의, 그런 것을 위해 사는 것 같아요] 라고 말한다. 그것은 페르소나에 대한 지적인 것이다.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라는 페르소나를 내보이면서 성격의 다른 면은 깊이 억압한 채 그 페르소나가 자기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나 또한 어릴 때부터 자선사업가가 꿈일 정도로 페르소나로 철저히 나를 감추었다. 나 가진 것도 없어서 동네 수퍼에서 도둑질을 했던 내가 그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는 것으로 찾은 것이 어려운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철저하게 이중적이다. 중학교 때 일기장을 보면 내 안에는 악마가 있다며 그것 때문에 괴로워 하는 일기로 가득차 있다. 이 이중성에서 벗어 날때 나는 비로소 진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 학원에서 학생과 아주 크게 싸웠다. 정말 패고 싶도록 미운 감정이 솟아 올랐다. 악다구니를 치고 얼굴이 씨뻘개졌다. 원장이 말려서 그 싸움은 일단락 됐다. 그 다음. 그 학생을 만나 내 이야기를 했다. 나는 열등감 덩어리라고. 너때문에 화가 난게 아니라 나 때문에 화가 났던 것 같다고. 그러면서 나는 아이앞에서 울고 말았다. 어린 아이처럼 그렇게 엉엉... 학원을 그만두고 나오던 날 그 아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죄송하다는 말과 선생님은 저의 유일한 상담자였다는 말이 적힌...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나의 부도덕성을 인정하고, 열등성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그렇게 학생을 대해야겠다. 그리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남편을 향해서도, 나의 가족과 친구들을 향해서도. 책 한번 읽었다고 해서 내 문제가 해결된다면 35년간 이 문제를 끌어안고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씩 내 문제에 다가가고 있음을 확신하고 이 책이 그 기폭제가 되어준 것을 인정한다. 오늘보다 안나아있을지도 모를 내일이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해줘야겠다. 귀찮으리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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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의 김씨 2010-09-27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을 전에 읽다가 말았습니다. 최근에 어떤 자매에게 이 책을 권유하고, 좀 찔려서 다시 읽고 있는 중인데 뭔가 도움이 될까 싶어 인터넷에서 찾다가 들렀습니다. 교회에서 하는 내적치유와 세진이 상담하는 부분이나 세진이 절에서 행하는 일들과 관계설정이 가능한지요?
아니면 서로 따로따로 인가요? 세진을 상담하는 의사가 종교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는 부분, 어떻게 보아야 하나요? 그냥 궁금해서

2010-10-01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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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삼십대 후반의 사회적 명성이 어느정도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모여 사회를 비판하고, 현실의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 성문제 등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박세진에게 몰입되었고 그녀의 정신분석 수순을 똑같이 밟아가며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세진뿐 아니라 인혜의 이야기도 흡입력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재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두 번째 읽을 때는 세진에게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세진이 했던 말들, 의사가 했던 말들에 형광팬을 그어가며, 나의 상처에 직격탄을 날린 곳에는 펜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가며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내 이야기를 어디에든 잘 정리해서 둬야겠다는 생각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오래오래 고민하여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의사는 처음 병원을 방문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엇을 해결해 줬으면 하는지 말해보세요]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제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이 작업을 통해 제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심리학 책도 읽었고, 심리상담도 받아봤고, 교회에서 내적치유 프로그램도 참여를 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것들을 통해 무엇을 해결받고 싶은건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힘들고 뚫리지 않는데 정면으로 그 문제에 부딪힐 엄두는 못내고 그냥 겉핡기만 열심히 하고 그래 이정도면 됐어! 라고 여기며 똑같은 문제로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묻는다. [대체 넌 문제가 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한건데!!] 그러게 도대체 내 문제가 무엇인건가. 만일 내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내게 [내가 무엇을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화를 내며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위로도 안해주고 바로 문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문제를 회피하고 내 주변을 둘러싼 그 무엇에서 맴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에 조금씩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진의 문제와 나의 문제가 많은 부분이 닿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외가에 보내진 세진과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방학 때면 할머니댁으로 보내진 나,  열심히 울어봐야 들어주는 이 없어 좌절감을 맛보았던 세진과 생일 날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는 뭔가 해주고 싶은데 집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 수퍼에서 과자를 훔쳤던 나,  질투의 대상이었던 인혜네 집에 그렇게 끊임없이 갔던 세진과 엄마가 학교 선생님인 친구네 집에 가서 그 집 방안으로도 못들어가고 마루에서만 놀던 나,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어려운 세진과 시키느니 그냥 혼자서 해결하지 하면서 모든 짐을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나,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전화를 못하는 세진과 대학교 때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 늘 "왜?" 라고 하시며 전화를 받으셔서 용건이 없으면 집에도 전화를 못하게 된 나,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없는 세진과 호의에 대해서 나를 깔보는 것 같아 오히려 화를 내는 나... 정말 여러면들이 겹쳐 보였다.  나는 잊었던 내 과거의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그게 있었던 일인지 내가 만들어낸 건지 모를 정도로 우습고 기막힌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꺼내기 시작했다. 

  책은 건강한 퇴행에 대해서 말한다.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고 가까워지면 퇴행이 일어나야 한다고. 오륙세와 같은, 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엄마 놀이하는 수준까지 퇴행이 따라야 한다고.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유치한 관계]를 견딜 수 없어 했다. 가치있는 대화, 가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당신은 참 어른스러워요 라고 말하고, 친구들은 너는 뭐가 그렇게 어렵니! 라고 말했다. 지금은 나의 모든 퇴행이 남편에게 마구 쏟아버려져서 남편을 힘들게 한다. 책에서도 세진은 경호를 참 힘들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들을 남편에게만 쏟아 붓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을 일차 목표로 삼았다. 옆에 없으면 보고 싶고 빨리 집에 왔으면 하면서도 남편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서운한 것이 확~ 내 몸을 감싸는데 아주 환장할 노릇이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끔찍한 말로 그를 할퀸다. 이제 제발 그만하고 싶다. 이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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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무적 불량야구단
주원규 지음 / 새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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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를 켠다. TV를 끈다. 컴퓨터를 켠다. 컴퓨터를 끈다. 아아폰을 둘러보다 다시 컴퓨터를 켜 아이툰에 들어간다. 소기의목적을 달성했는지 컴퓨터를 끈 후 그제서야 나를 돌아본다. 뭐해? 라는 눈빛을 보내며...  며칠째 남편 저런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나는 남편에게 말을 했다. "여보! 나는 당신이 1년에 30권 정도의 책을 읽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이를 주실 것 같아" 라고 말이다.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어버린다. 다음날 주일 설교 말씀 중 "남편들아 공부해라! 책을 읽어라!" 라는 내용이 나왔다. 아! 내 속타는 마음을 알아주시는 우리 주님~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 남편에게 오늘 설교 어땠어? 라고 물으니 많이 찔렸어! 라고 하며 오늘부터 당장 책을 읽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책읽기에 몰입한 울 사랑스런 남편! 첫번째 책을 읽고 두번째로 선택한 책이 바로 천하무적 불량야구단! 서점에 들러 여러가지 야구책의 제목을 전화로 불러주며 두번째 읽을 책으로 선택하라고 했더니 이 것을 선택했다. 책을 사가지고 돌아오는 지하철안에서 어떤 내용인가하고 읽었는데 단숨에 휘리릭~ 읽히더니 그 날밤 아니 그날 새벽 3시15분경까지 책에서 손을 못떼고 읽어버렸다. 내가 먼저 읽어버린 것이다. 다음날 아침! 남편은 어떤 내용이냐며 계속해서 물어봤지만 직접 읽으라며 한껏 졸린척을 하며 내용을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재미있어? 라고 물어보는데 내가 좋아하는 취향을 잘 아는지라 몰라! 라고 대답했다. 재미있다고 하면 꽤 좋은 결말인 것이고 재미없고 황당하다 하면 결말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에 몰라로 일관했다. 

   이곳에 비밀을 털어놓자면~ 완전 재미있다!!!! 근래에 이렇게 하룻밤에 읽어본 책이 없는 것 같다. 짧고 많은 꼭지들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속도감이 붙는다. 한국시리즈 1차전부터 7차전까지의 짧은 시간의 이야기를 그린 것인데 인물들의 몇십년의 걸친 역사를 볼 수 있고 왜 지금 이 선수가 이런 마음의 상태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잘 알 수가 있다. 어쩌면 너무 뻔~ 해서 시시하다고 느낄 수 도 있겠지만, 조금 만화 같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뻔하지만 통쾌하고, 노력하는 자는 잘 된다라는 뻔~ 한 진리가 녹아져 있어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속 인물들을 현역 야구 선수들과 야구만화의 인물들에 녹여 상상하며 읽었더니 더 재미있었다.  

  한 가지 아쉬운점을 꼽으라면 책의 제목이 흥미를 돋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구미를 확 떨어뜨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kbs 예능프로인 천하무적 야구단을 좋아하는 나로써는 흥미가 생기기도 했지만 웬지 상업적 냄새가 물씬 풍기는 것 같아서 문학의 순수함을 갉아먹는 것 같아서 또 구미가 확 떨어지기도 한 것이다. 지금은 뭐 제목이 뭐 어떻듯 그냥 너무너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장까지 긴장감이 떨어지지 않게 재미있게 읽었다. 야구를 좋아하고, 만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강력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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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전화
일디코 폰 퀴르티 지음, 박의춘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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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책 읽기 습관 중 살짝 독특한 것이 있다면 <쉬운 책 어렵게 읽고, 어려운 책 쉽게 읽기> 이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덮은 후 대체 내가 제대로 읽은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특히나 리뷰를 쓰려고 알라딘에 들어와 다른 이의 리뷰를 읽게 되는 순간 더더욱 강한 의문에 사로잡힌다. '나 완전히 헛다리 짚으며 책 읽었네!' 라고 생각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난 이 책이 알랭드 보통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처럼 난해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알랭드 보통의 책은 나중에는 뭔가 일부러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서 읽으니까 어렵게 생각되어진 부분들이 유머가 되어 되돌아와서 책 읽기를 수월하고 또 재미있게 만들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유머의 포인트를 어디로 잡아야할지 당췌 알 수가 없고 시간의 순서를 알아차리기가 너무 어려워 애를 먹었다. 그래서 열흘 정도에 걸쳐서 읽은 것 같다. 그렇게 힘들게 읽었는데 마지막에는 마치 연애소설 처럼 끝이 나버려 어찌나 황당하던지... 그런데 리뷰를 보니 독일판 <브리짓존스>라고 써있다. 허탈하다. 그냥 쉽고 편안하게 읽었어도 되는 걸, 어떤 리뷰는 시간을 죽이는 용으로 좋다고까지 써있다. 나는 죽여도 너무 죽인 것 같다. 

사람이 실제보다 더 교양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면 빠르든 늦든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34p 

생각해보니 쉬운 책 어렵게 읽고 어려운 책 쉽게 읽은 이유가 바로 더 교양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다가 생긴 결과가 아닌가 싶다. 책 읽기를 본격젹으로 시작한 건 고3 수능 후 대학에 붙은 후부터 였다. 집에 그다지 책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교 3학년이던 언니가 사다 놓은 책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무쏘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람의 아들> 등등. 당시의 내 친구들은 하아틴 로맨스에 빠져있을 때 나는 이런 책들을 접하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함의 즐거움에 대해서 조금씩 눈 떴던것 같다. 이때 부터였을 것이다. 지적 혀영심에 가득차게 된 것이.  대학 1학년 때 들어갔던 운동권 출신 선배가 이끌었던 독서토론은 이런 나를 더욱 부추겼다. 나는 아는 것이 매우 짧다. 호기심은 왕성하나 시간을 투자해 깊이 파고들지를 못한다. 그러니 책 읽기도 헛다리 투성이지. 그런데 말이다. 책 읽기를 비롯한 문화,예술 감상의 영역에는  정답이란 없다고 자위할때가 많다. 그리고 평생 그렇게 믿으면 살아가고 싶다. 열흘 넘게 걸려 어렵게 읽은 여자,전화. 남들이 어떻게 읽든 간에 난 참 어렵게 그렇지만 또 생각 많이하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앞으로도 나의 책읽기는 많이 서툴고 다를지도 모르지만 시험도 아닌데 뭐 꼭 정답 따라 갈필요 있나... 그런 맘으로 쭉~ 진행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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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달래는 순서 창비시선 296
김경미 지음 / 창비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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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잘 알지 못한다. 난해한 글귀들에 질려 몇편 읽다가 책꽂이에 그대로 꼽혀 있는 시집도 몇권이 된다. 그런데 최근 몇년 전 부터 시들이 읽힌다. 알아서 읽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읽기에 따라가는 것이다. 함민복, 신경림의 시들이 그랬고 이제는 김경미의 시가 그렇다. 

그런 말들이1 

저기 등뒤로 가까이 다가서는 저 친구를 조심하세요
오랜 친구를 가리키던 그 혀 실은 사랑이 아니었어 너도
처음부터 아니었잖아 황단보도 앞 낯선 연인의 비겨버린
가슴 단추 자리에 달린 압정들 거기 찔려 신호등 붉어지는
그런 말들


가을 폭우 속 젖은 단풍 같은 전화기 너머 끝내 아무 말
없는 발신인 그 귀에 익은 침묵의 소리 잘못 걸려온 자벌
레의 주판 눈금 같은 매일의 행복과 항복 사이 샛노란 은
행잎 색깔로 떨어지는 달력과 오후 네시 반의 다리 저는
책상과 여름 우유처럼 쉽게 상해가는 여행 티켓과 어느
길에선가 쓰레기처럼 버려질 저녁노을들
그런 말들
 

어디서 끊어 읽기를 해야하는 건지, 어디서부터 시작되어 어디까지 이어진 말인 건지, 대체 무엇을 나열한 것인지 머리가 알려고 노력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반응하면서 시어들 사이에 나만의 언어들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사랑이었는지 아니었는지도 모르게 사랑하다 헤어진 연인과의 추억들이 정지해버린 사고를 비집고  어지럽게 내뱉어 지는 것 같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 동생의 손에 들려주고 싶었으나 동생은 <인생수업>을 선택했고 나는 고통을 달래주는 순서를 들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일에 집중한다. 쏟아지는 졸음을 쫒아내기도 하고, 졸음에 몸을 맡겨 상하 좌우로 오지게 흔들어재끼기도 하고, 핸드폰 통화나 문자를 주고 받기도 하고, 일행과 얘기를 나누기도 하고, 나처럼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도 하고... 그들 사이에서 고통을 달래는 순서를 읽으며 시속에 빠져 있다가 어느틈에 정신을 차리니 두정거장이나 지나쳐 있었다. 급하게 내려 반대편으로 건너와 지하철을 기다리며 다시 시 속에 빠져 들었을 때 들어온 시가 바로 <그런 말들이1> 였다. 나는 두 정거장을 거슬러 올라가 6호선으로 갈아 탈 것이다. 원래 대로라면 이 두정거장을 올 필요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에게 우리집에 가는 길을 설명하려면 4호선을 타다가 삼각지에서 6호선을 갈아타는 거라고 말한다. 두 정거장 더 온것은 나만의 추억이고, 실수이고, 아무것도 아닌것일수도 있다. <그런 말들이1>에서 빠져버린 시어들을 상상한다. 그녀만의 추억이고, 실수이고,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그 빠져버린 시어들. 그러나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었을 시어들, 시간들. 빠져버린 시어들 때문에 독자는 어지러울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시어들로 그 사이를 메꾸는 일은 바로 시를 읽는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잠시 정신줄을 놓고 시속에 빠져 두정거장을 더 다녀온 일이 마치  혼자서 무인도에 있었던 경험 마냥 신나고 재미있었다. 돌아오는 길 지하철을 한참 기다릴 때는 지치고 살짝 외롭기도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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