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191회 아트엠콘서트 - 김도현 피아노 리사이틀 : 노래는 물결이 되어

일시 : 2026년 6월 18일(목) 19:30

장소 : 신영체임버홀

연주 : 김도현 (피아노)

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

프로그램

  -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899

  - 슈베르트-리스트, 물 위에서 노래함 S.558/2

  - 슈베르트-리스트, 마왕 S.558/4

  - 글린카-발라키레프, 종달새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Bb단조 Op.36 (1931 revised version)


* 세줄평

오랜만에 듣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새삼 훌륭한 곡임을 느낀다. 편곡 작품은 원곡 리트에 없는 리스트다운 화려함과 당당함이 드러난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부분적으로 좋은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다. 연주자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하는데 완전히 극복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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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임영주 바이올린 독주회

일시 : 2026년 6월 15일(월) 19:30

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

연주 : 임영주 (바이올린), 이영신 (피아노)

프로그램

  -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 Op.94

  -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A단조 Op.105

  -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D단조 Op.121


* 세줄평

슈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만 꾸며진 무대다. 실연에서 슈만의 바이올린곡을 듣기 어려운데, 좋은 기획이다. 피아노가 바이올린과 대등하게, 때로는 독자적으로 펼치는 가운데 조화와 긴장이 묘한 매력을 준다. 슈만의 작품답게 독특한 선율 또는 화음 진행이 여전히 인상적이며 내재한 어두운 정열과 격정을 무난하게 잘 살려 연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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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클래식의 권장
허제 / 도서출판 북트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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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도 클래식 음반 가이드북이다. <두근두근 클래식>에 이은 후속작이다. 모든 면에서 전작과 유사하다. 숨겨진 작곡가와 작품 소개, 기존에 알려진 음반 관련 일화 소개 및 오해 정정은 동일하고, 몇몇 악기에 관한 이야기, 유명한 곡이지만 위작으로 판명 난 작품 등 나름대로 차별성도 지닌다. 분량도 1.5배 정도 늘어나 얄팍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났다.

 

근년 들어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대개 유명 작곡가와 대표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재밌는 일화와 함께 다룬다. 대중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작곡가는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책의 특장점은 비주류 작곡가도 소개하며, 익히 알려진 악곡의 경우도 작품보다는 연주자와 연주 자체에 비중을 두고 있다. 결국 음악 감상자로서는 누구의 무슨 곡이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연주자의 연주인지도 못지않게 비중이 크다. 유명한 곡은 수백 개의 연주가 존재하기에 여기서도 옥석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총 38개 장의 내용을 낱낱이 언급할 수 없기에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에 남은 대목만 소회를 남긴다.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리흐테르,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가 카라얀과 협연한 음반은 최고의 명반이자 최악의 음반으로도 평가가 엇갈린다. 주로 독주자 3인방과 카라얀의 주도권 다툼에 관련된 일화가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과도한 확대해석으로 생각하는 저자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프로예술가들은 설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연주에서는 최고를 지향하는 법. 하물며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빙도 없다. 협주곡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조화와 경쟁. 연주자 간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연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카라얀은 똥폼을 잔뜩 잡은 채 찍은 사진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비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라얀은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관리하여 좋고 멋있는 것만을 공개했다고 한다.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 차원이라고나 할까. (P.25, 베토벤 3중 협주곡)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 연주자는 많지만, 여성 작곡가는 드물다. 샤미나드와 그녀의 피아노 3중주 작품 소개는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심오하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살롱풍의 아름다움을 담은 샤미나드와 훔멜의 작품은 무시될 만한 성격이 아니다. 모두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가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3중주를 언급하는 김에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골덴바이저, 아렌스키,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슬픔의 3중주 전통도 빼놓을 수 없다.

 

저자는 잘 알려진 위작을 여럿 소개하는데, 의외의 반전이 주는 묘미와 더불어 익명의 작곡가와 숨겨진 사연을 파헤쳐 보는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씁쓸한 여운도 남는다. 한때 카치니의 <아베 마리아>로 유명세를 떨쳤던 곡이 사실은 카치니와 전혀 무관한 현대 작곡가 바빌로프의 작품이라고 한다. 페르골레지의 <조화의 협주곡>도 바세나르란 무명 작곡가의 작품인 게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밝혀졌단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세레나데>도 사실은 호프슈테터가 원 작곡가라고 하니 놀랍다. 작곡가가 애초에 정체를 숨긴 경우도 있지만, 출판업자의 농간인 사례도 있다. 무명인 원 작곡가가 드러났다고 음악의 가치가 절하되지는 않음은 당연하리라. 한편 하이든의 유명세는 그의 두개골마저 가짜가 존재하게끔 하였다니 유명하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잉글리시 호른은 영국과도, 호른과도 다른 악기라는 이야기,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치인 신세인 비올라의 처지, 바이올린의 명기란 무엇인가를 다룬 장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악기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근년 들어 비올라가 참으로 매력 있는 악기임을 새삼 발견하였다.

 

타이스의 <명상곡>으로 시작하여 마스네,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등 명상적인 소품 연대기는 간과하였던 악곡의 성격을 되새기게 한다. 반대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로망스는 흔히 떠올리기 쉬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는 전연 다르다. 그의 왈츠와 로망스가 편곡과 편집 오류로 인해 <재즈 모음곡>에 포함된 사연은 기가 막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생전 처음 접하는 브루흐의 두 대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브루흐의 제자가 악보 출판 배달 사고를 일으켜 늙은 스승을 등쳐먹었다니 갑자기 브루흐가 딱해 보일 지경이다.

 

전작에서도 저자는 간혹 문화예술계의 작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치관과 이념으로 좀 더 나아간 점은 다소 유감스럽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 재즈는 저급이라고 칭하는 인식은 클래식 우월주의 관점에 사로잡힌 견해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가요나 국악, 팝송과 월드뮤직 등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윤이상에 대한 평가도 주관적 맹목에 가깝다고 본다.

 

최근 사람들이 즐기는 햄버거나 째즈는 고급문화가 아니다. 햄버거는 정크푸드이고 째즈의 주제는 마약, 매춘, 도박이다. 고급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고 저급한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P.129,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로망스)

 

일본에서 <광주여 영원하라> 음반을 한 평론가가 <명반대전>에 소개하였는데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정부를 타도하는 음악을 북한의 지휘자와 악단이 연주하는 것이 두렵다.” (P.10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전작에서 제법 심각했던 교정 오류는 이 책에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실수가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브람스 <주제와 변주>를 다룬 장(P.283)의 부제는 ‘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의 잘못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물며 본문도 아닌 표제 윗줄의 부제에서 이러하니 교정의 허술함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런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클래식 음악과 음반의 길잡이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말할 나위 없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척박한 클래식 음악 출판 부문에서 힘겹게 고투하는 저자를 응원한다. 참고로 알라딘 서점에는 실물 도서가 없고 전자책만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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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근두근 클래식
허제 지음 / 좋은땅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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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반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클래식 칼럼니스트인데, 개인적으로 클래식 추천 음반을 살펴볼 때 많이 참조한다. 저자가 낸 책도 여러 권 갖고 있다. <명반 산책 1001>, <불후의 클래식>, <두근두근 클래식>, <클래식의 권장>이다. <명반의 산책>은 지인에게 양도하였다. <명반 산책 1001>은 명곡에 대한 소개 없이 순수한 음반 안내서다. <불후의 클래식>은 소위 명곡 명연을 작품당 여러 면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이 책은 대중적인 명곡도 다루지만 비인기 명곡 소개를 많이 한다. 곡 자체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거나 특정 음반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때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를 발굴하는 경우도 있다. 순수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음악과 국악에도 한 항목씩 배정하였다. 최종적으로 음반 소개에 이어지지만 음반을 매개로 한 음악 에세이 겸 가이드북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클래식 초보자에게 바로 권하기는 어렵지만, 다소간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 애호가라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심리적 접근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개인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름만 들어봤던 라이네케의 <발라드>, 나아가 플루트 협주곡과 운디네 소나타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작곡한 곡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바버의 <칸쪼네타>와 드뷔시의 피아노 3중주 등도 생소하지만 흥미를 당기기는 마찬가지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에 얽힌 비화, 비하의 <아리오소>, 플루트 소품집 <미니어처>와 더불어 경시되던 케텔비의 음반을 소개한 건 무척이나 반갑다.

 

당시 평론가들은 ‘불후의 작품’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품위가 없고 저속하지만 즐거운 곡이라며 비난하였다. 또 ‘순수하고 싸구려인 사이비 동양주의’란 빈정거림도 있었다.

당시 대중음악의 태동기인 시절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클래식이 아닌 가벼운 것이었고 이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P.148, 케텔비 <페르시아의 시장에서>)

 

쿠벨릭이 지휘한 체코필이 연주한 스메타나 <나의 조국>에 관한 저자의 부끄러운 일화, 대형 경기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는 상업주의 비판, 예술의 전당 음향에 관한 저자의 불만, 샤콘느 음악과 추모곡을 연동하여 비슷한 사례를 계속 소개한다든지, 클래식 연주자가 실력보다는 외모와 노출로 주목을 끄는 사례, 아버지의 명성에 가린 바흐의 아들들 중에서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를 부각하는 글 등은 재미와 유익을 두루 갖추고 있다.

 

결국 나는 그것을 수정하고자 무려 8년을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2009년 나온 <불후의 클래식>에 ‘눈시울을 붉히고’로 수정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후배 말만 믿고 확인도 하지 않고 쓴 내가 경솔했다. (P.22, 스메타나 <나의 조국>)

 

멀쩡한 오페라 극장을 놔두고 도떼기시장 같은 대형 경기장으로 나가 오페라 공연을 하고 또 여기에 비싼 돈 내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이유가 몹시 궁금할 따름이다. (P.46, 푸치니 <투란도트>)

 

이 책에서 주요 작품 또는 연주로 다루는 음반을 다 감상한 후 독서 단상을 쓰면 좋겠지만, 그러면 꽤 많은 시일이 걸리거나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에 - <불후의 클래식>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순전히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 일단 몇 자 끄적거린다.

 

다만 여러 장점과 미덕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로서 완성도는 많이 부족하다. 정보의 오류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빈번하게 마주치는 맞춤법의 오류는 분명한 교정의 오류다. 좀만 더 꼼꼼하게 살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나씩 예시만 든다.

 

칼 뵘 연주 이외에도 명연주로는 모노이지만 에리히 클라이버 연주 그리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연주를 추천한다. (P.51,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 에리히 클라이버 연주는 모노가 아니라 스테레오 녹음

 

드보르작이 이 곡을 통해 끝없는 우수와 동경을 마음속의 향수와 같이 토로하고 있다면, 셸 역시 느꼈던 인생의 감회를 마지막 녹음을 통해 백조의 노래로 울부짖고 있다.

오늘도 그의 1970년 도쿄 실황 연주는 들으며 예술적 향취에 젖어본다. “인생을 짧은 예술은 길다” (P.175, 드보르작 교향곡 8번)

→ 오늘도 그의 1970년 도쿄 실황 연주를 들으며 예술적 향취에 젖어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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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하는 미술관 -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
송정희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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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와 같이 갤러리스트인 저자가 애호하는 12인의 여성 미술가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12인의 미술가는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 판위량,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 원래 마리 로랑생을 다룬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어보니 글의 내용이 알차고 깊이 있어 전체를 다 읽게 되었다. 천경자, 카미유 클로델과 프리다 칼로 정도가 그나마 들어본 이름이고 후자 두 명의 간단한 정보만 기존에 접했을 뿐 나머지 미술가는 생면부지다.

 

이 책이 동종의 다른 미술 입문서와 구별되는 특색은 저자의 약력이다. 보통 미술 관련 서적은 화가 또는 큐레이터 등 미술 전공자가 집필하게 마련이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감상, 기법 등 전문적 영역은 문외한으로서는 접근에 한계가 있어서다. 저자 송정희는 문학 전공자로서 미술 전시 및 기획에 관심을 가져 갤러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글에서 짙은 문학적, 인문학적 이해와 해석이 두드러진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고 그것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저자는 12인의 예술가를 네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배치한다. ‘아름다움, 그 너머’, ‘뮤즈에서 예술가로’, ‘몸을 통해, 몸을 위해’,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 그것이다. 예술가로 아름다움을 천착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아름다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들로 특히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를 다룬다. 추상표현주의의 개척자 오키프는 꽃, 짐승 뼈 등 그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사물을 확대함으로써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일깨운다. 그녀의 말처럼 본 것을 그렸을 뿐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고자 한 사람은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 마리 로랑생에 대해서는 건너뛴다. 천경자의 예술과 굴곡진 삶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의 조화를 꿈꾼 그녀의 미술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위작 논란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 그녀의 말년이 안타깝다.

 

오키프는 사막에 나뒹구는 하찮은 것들,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을 크게 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상이라고 했고, 그녀는 “그저 본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P.35)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을 다룬 장은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 예술가의 고지로 올라선 인물을 다룬다. 이 점에는 앞에 나온 조지아 오키프도 마찬가지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 등 화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다. 키키는 사진작가 만 레이, 화가 후지타의 모델이자, 댄서와 가수로 ‘몽파르나스의 여왕’으로 불렸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인 동시에 자신 또한 뛰어난 조각가였다. 피사체로 그치지 않고 자신 또한 예술가로 우뚝 서기를 고대하였지만, 정신병원에서 불행한 삶을 마감한 클로델은 그나마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다. 발라동과 키키, 특히 여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발라동은 아쉽다.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풀리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강인하고 굴곡진 그녀의 내면을 현실적인 표정으로 살려냈다. (P.112)

 

수잔 발라동이 여성 초상화와 누드화를 많이 그렸지만, ‘몸을 통해, 몸을 위해’ 장에서 소개하는 화가는 판위량, 브누아, 프리다 칼로다. 판위량은 삶 자체가 예술과 맞물려 있다. 창기 출신의 여성, 중국인이지만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에서 방랑하며 정착하지 못한 미술가. 영원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인 판찬화와 재회하지 못한 채 끝끝내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불행한 삶.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과 여성을 끊임없이 사유한 예술세계.

 

판위량은 자국에서 쫓겨난 디아스포라 예술가였고, 그렇다고 유럽인이나 미국 모더니즘의 틀 안에 자신을 맞출 수도 없었던 경계인이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영원한 타자였다. (P.187)

 

프리다 칼로와 남편 디에고, 둘의 만남은 천행인가 불행인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프리다를 괴롭힌 디에고의 행동만을 따져보면 만나서는 안 될 인연이겠지만, 그것이 결국 프리다의 예술로 빚어졌음을 고려한다며. 예술과 인생은 온전히 양립하기 어렵다. 마리기유민 브누아는 신고전주의 화가로서 역사화, 초상화, 자화상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 책은 <마들렌의 초상>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세기 초에 그린 흑인 여성의 상반 나신을 통해 단순히 예술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내밀하게 잠재한 욕망, 편견과 환상을 벗겨내는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해석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당시 남성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던 성적 욕망은 오리엔탈리즘과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욕망과 환상이 초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 개의 시선 사이에 촘촘히 개입하고 있다. (P.202)

 

마지막으로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라는 주제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는 앞선 미술가들에 비하면 20세기로 넘어서는 현대 예술가다. 각각 행위예술, 판화, 설치작품이라는 비주류 장르에 천착하여 일가를 이루고 미술계의 주요 일원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리듬 0>, <연인들, 만리장성 걷기> 등의 퍼포먼스는 인상 깊고 때로는 감명 깊지만, 여전히 행위예술 자체는 인물, 시간, 공간의 기억에 의존하기에 당대성을 넘어서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를 제외하면 오히려 고행에 가까운데, 고통을 넘어선 너머를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면에서 콜비츠는 빈곤, 전쟁, 고통을 직시하고 고발함으로써 예술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상류층과 부르주아를 위한 예쁜 객체만을 과연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네 삶은 행복보다는 고통과 불행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말이다. 그녀의 <판화> 연작, <피에타> 등은 예술의 다른 소명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것이 민중미술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리라. 루이스 부르주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거대한 설치작품 <마망>은 책에 실린 조그만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며, 바느질 작업의 산물도 마찬가지로 사진과 글로는 공감에 한계가 있다. 다만 저자가 던진 질문은 하나의 숙제임에 공감한다.

 

예술과 비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 모호한 섹슈얼리티, 다중 정체성을 내포한 그녀의 말년 바느질 작업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도 물어야 할 질문이자 과제로 남아 있다. (P.303-304)

 

저자가 여성 미술가만 소개한 것은 동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세계가 저자에게 더 와닿아서라고 밝힌다. 따라서 직접적 의도는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내용과 글에 일부 반영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책을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판위량을 창기의 신분에서 구제하고 결혼한 후 예술가로서 대성하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한 판찬화를 제외한 대다수 남성 인물은 그리 긍정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음도.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로랑생과 아폴리네르, 클로델과 로댕, 프리다와 디에고, 마리나와 울라이 등을 보면 여성 예술가에게 남성과 사랑은 불타오르는 예술의 동력인 동시에 자신을 갉아먹는 촛불과도 같다.

 

알지 못하였던 좋은 미술가를 여럿 알게 된 것이 이 책에서 얻은 큰 소득이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글쓰기의 미덕과 결부하여 예술가와 예술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결국 미술가와 작품에 대한 일반적 소개를 넘어 해당 인물의 삶과 예술의 진지한 관찰과 해석이 주는 문장의 맛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개별 미술가에게 할당된 적은 분량의 글에서도 핵심적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며 나아가 소개된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추가로 지적 욕구마저 생기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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