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명 : 바흐 성탄 오라토리오

일시 : 2025년 12월 23일(화) 19:30

장소 : 천주교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

연주

  - 지휘 : 최호영 요한 신부

  - 연주 : 돔 앙상블

  - 합창 : 주교좌 명동대성당 가톨릭합창단

  - 독창 : 신정원 (소프라노), 장정권 (카운터테너), 이영화 (테너), 송기창 (베이스)

프로그램

  - 바흐,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 BWV 248

          Part Ⅰ (9곡)

          Part Ⅱ (14곡)


* 세줄평

음반으로만 듣던 성탄 오라토리오를 실연으로, 그것도 성당에서, 무척 기대하였다. 전곡인줄 착각하여 현장에서 다소 실망했던 점, 성당 내부구조가 전형적인 양식과는 달라서 의아했던 점은 제쳐둔다. 기악의 음량이 다소 커서 합주 시 독창이 묻히는 느낌을 제외하면 연주와 성악 모두 생동감이 있었고, 프로그램북을 들여다보며 공연을 감상하니 오라토리오 내용 이해가 용이하였다. 역시나 트럼펫과 팀파니가 주도하는 1부가 밝고 극적이어서 감상자 입장에서는 더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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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위로다 - 명화에서 찾은 삶의 가치, 그리고 살아갈 용기
이소영 지음 / 홍익 / 201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과 같은 그림 감상 안내서를 몇 권 읽었다. 저자에 한하면 <모지스 할머니>를 읽었기에 저자가 이 책에서 지향하는 바를 대충 짐작할 수 있다. 그림을 통한 인생론, 좀 거창하다면 그림으로 보는 삶의 이야기 정도라고 하겠다. 그래서 저자는 스스로를 아트 메신저라고 정의한다.

 

명화를 보는 것은 나의 사고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내가 몰랐던 나의 과거를 끌어다 주며 때로는 나의 미래를 발견하게 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삶을 살아가는 마음가짐을 다잡게 해준다. (P.9, 프롤로그)

 

그림은 까막눈이다. 실기 재주는 처음부터 형편없으며, 안목도 얕아서 작품의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전시회를 가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며, 학창 시절의 교양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수준이다. 저자는 위축되지 말라고 조언한다. 명화의 기준은 전적으로 내게 달렸다고 한다. 내가 보고 좋은 그림이 곧 내게는 명화라는 것이다.

 

진정한 명화는 내게 유독 착 달라붙는 그림, 그리고 사람들이 설명해주거나 책에서 명화라고 하지 않아도 이유 없이 좋은 그림, 그런 그림들이다. (P.87-88)

 

그림 감상은 순전히 기호이자 선호의 문제다. 구상화를 선호하는 사람에게 추상화를 굳이 들이밀 필요가 없다. 고전과 낭만 시기 그림을 좋아하는 이에게 현대 회화를 무리해서 강요하는 건 마땅치 않다. 그래도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라봐도 좋은 그림이 있으며, 알면 알수록 더욱 좋아지는 그림도 있는 법. 나는 후자를 위해서 이 책을 손에 든다.

 

먼저 아는 인물부터 언급하면, 고흐와 모지스 할머니가 반갑다. 르네 마그리트는 생소한데, ‘빛의 제국은 눈에 익다.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본 기억이 있다. 프리다 칼로도 역시 들어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그녀의 불행한 삶과 결혼 생활이 더 기억에 남아 있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화려한 세기말적 그림이 유명한데, 아터제 호수를 배경으로 한 그림은 전혀 다른 화풍이어서 뜻밖인 동시에 마음에 다가온다. 남은 화가와 그림은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에 가깝다. 저자의 해설과 안내에 따라 아,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우뚱하며 유심히 그림을 쳐다볼 뿐이다. 마치 책에 실린 작은 사진에서 뭔가 대단한 숨은 포인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처럼.

 

예술 분야에서는 타고난 천재도 많지만, 재능 못지않은 꾸준한 노력으로 일가를 이룬 인물도 많다고 한다. 평생을 꾸준한 습관으로 창의력을 키워 온 르네 마그리트가 인상적이다. 작가 이상과 화가 구본웅의 우정이 빚어낸 자화상, 가족애를 자주 그린 이스트먼 존슨, 우아하고 기품 있는 스타일의 마리 로랑생이 우선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모든 화가가 처음부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한 건 아니며, 몬드리안도 칸딘스키도 피카소도 그렇다고 하면서 방황하는 우리를 안심시킨다. 마리안네 폰 베레프킨과 프리다 칼로의 삶을 통해 참다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자신의 단점을 예술로 승화시킨 툴루즈 로트레크. 어려운 상황을 꿈과 열정으로 극복한 강익중, 수많은 덧칠로 그림을 빛나게 하는 에드워드 호넬. 이들의 이야기는 예술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화가를 바라보게 해주면서 동시에 우리네 삶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교훈을 안겨준다. 내게는 항상 고흐와 연계되어 떠올리는 화가인 세잔이 입체파와 추상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현대미술의 선구 격이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흔히 갖기 쉬운 선입견과 편향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독자가 그림에서 사람과 삶을 찾아보고, 그림의 의미를 통해 인생을 살펴보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삼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무미건조한 교훈서가 되지 않으려면 저자의 인간적 면모도 함께 녹여낼 필요가 있다. 콤플렉스 덩어리였던 저자의 학창 시절, 그림 실력보다 그림을 보는 걸 더 좋아했던 자신의 취향과 소절, 남자 친구와 남편 이야기, 회사 생활과 미술교육에 뛰어들었던 경험, 모지스 할머니 같은 자신의 어머니 등등. 이 책 속에 저자 이소영의 개인사가 상당 부분 들어있기에 책장을 덮으면 저자가 마치 가족 또는 친구 같은 느낌마저 들 정도다.

 

미술관에 가보는 것도 문득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개방 중인 국공립 미술관이 여럿 있지 않은가. 더 흥미가 생긴다면 세계적인 거장이나 미술관의 특별전을 체험해 볼 수 있다. 책장과 화면을 통해 보는 그림과 실제 회화는 분명 차이가 날 것이다. 어디 서양화뿐이겠는가. 한국화, 동양화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내게도 미술적 취향과 안목이 자라나는 날이 있겠지. 그림을 보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느낄 수 있고, 마음의 위로와 삶의 나침반을 삼을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까지 말이다.

 

참고로 내가 읽은 책은 구판이다. 2021년에 저자는 개정판을 냈다. 몇 편의 글이 추가되어 분량이 조금 늘어났고, 글의 배치가 다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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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식물상담소 - 식물들이 당신에게 건네는 이야기
신혜우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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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식물학자다. 앞서 출판한 <식물학자의 노트>가 좋은 반응을 얻어서 후속작으로 내놓은 게 이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자는 본격적인 과학책이며, 이 책은 에세이에 가깝다. 저자가 식물상담소를 개소한 후 만난 여러 사람과 사례를 정리하였다. 하다 보면 상담 범위가 반드시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기에, 결국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식물 이야기인 동시에 식물을 통해 바라본 인생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식물분류학자이며 식물세밀화가다. 후자는 낯선 용어인데, 책에 수록된 여러 식물과 꽃의 그림과 일러스트는 모두 저자가 직접 그린 것이다. 즉 최대한 과학적 사실에 기반하여 식물을 그림으로 생생하게 표현하는 작업도 담당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책의 이야기 자체도 잔잔하게 흥미롭지만, 아름다운 식물 일러스트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낯선 길을 가게 된 배경과 현상을 설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저자의 인생사가 드러나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식물상담소에 찾아오는 여러 상담자가 풀어놓는 이야기에 인생이 빠질 수 없으니. 식물을 관찰하고 키운 경험을 인간사에 비추어보면 적잖은 삶의 깨우침을 받을 수 있다.

 

자신에게 맞는 자리에서 크고 멋지게 자라는 열대식물처럼 우리도 각자에게 맞는 자리에서 비로소 멋진 열매를 맺고 꽃을 피울 수 있는 것 아닐까? (P.25)

 

지금 키우고 있는 식물이 잘 자라지 않는다면 사랑을 줄여보길 권한다. [......] 사랑한다며 나 자신을 좀먹고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주는 일도 많다. (P.59)

 

식물은 분명 살아있는 존재이지만, 동물과는 달리 활동성이 즉각적으로 눈에 띄지 않는다. 동물에 동정을 품고 보호하자는 사람은 많지만, 자연 전체가 아니라 개별적인 식물 보호 주장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저자는 식물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편견을 깨고자 하며, 인간 중심적 사고의 무지한 오류를 지적한다.

 

대표적인 게 잡초의 개념과 역할에 대한 무시다. 잡초는 인간 관점으로 유용성의 기준으로 분류한 것으로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다. 익충과 해충의 개념과 마찬가지다. 자연의 기준에서 잡초는 없다. 좀 더 비장한 시각으로 보자면, 관상 용도로 꽃집에서 파는 꽃다발과 화분도 논의에 오를 수 있다. 꽃을 좋아하는 사람과, 화원 및 해당 산업에서는 불편하겠지만, 이는 식물의 생명을 경시하는 행위임은 부인할 수 없다.

 

플랜테리어도 비슷하다. 분명 식물을 좋아해서 하는 경향이지만, 식물을 생명체가 아닌 인테리어의 일부로서 사물로 취급하는 의식이 밑바닥에 깔려 있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가로수와 정원수도 조경 차원에서 인위성이 개입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일부 농작물 생산을 위한 환경파괴나 그린워싱도 자연과 식물을 산업적으로 보기에 발생한다.

 

식물학자의 눈으로서는 여러 불편한 진실이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은 대중에게 식물과 친근감을 품도록 하는 데 주목적이 있다. 우리가 미처 간과했던 식물의 본성, 아름다움, 진실을 소개함으로써. 화사한 봄꽃을 피우기 위한 겨울눈이 늦여름부터 만들어진다는 사실은 자연조차도 준비에 충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다. 주목 열매를 먹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열매에 독성이 있다는 점에 놀란다. 산수국은 씨앗으로 번식하지만, 우리가 여름에 보는 아름다운 수국은 인위적인 품종이기에 씨앗 번식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의외다. 신토불이라고 하지만, 식물에는 국경이 없다는 견해도 참신하다. 야생 회양목이 그렇게 크고 멋지다니. 많은 내용이 저자처럼 식물에 애정을 품은 사람들만 발견할 수 있는 사실들이다.

 

모두가 아는 이런 뚜렷한 변화 외에도 식물은 신비로운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준다. 식물이 간직한 신비롭고 소중한 비밀들은 아마도 식물 곁에서 식물의 사계절을 계속 지켜본 사람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P.102)

 

실용성이 아니라 순수한 애정으로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고 할 수 없다. 더구나 저자처럼 식물에 빠져 직업으로 삼는다는 건 대단한 용기를 지녀야 가능하다. 일반적으로는 집안의 화분, 집밖의 화단, 멀리 나아가면 공원, 수목원, 식물원, 산과 들을 보면서 충분히 만족할 따름이다. 직접 심고 관리하는 행동은 농작물이 아닌 경우에는 보기 드물다.

 

대다수의 사람은 어릴 때 흙과 식물을 주저 없이 만지작거리며 놀던 추억이 있다. 나이가 들면서 점차 자연에서 멀어지는 게 현실이다. 추상적, 관념적으로는 자연을 옹호하고 그리워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마련이다. 전형적인 도시인에 가까운 나로서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연과 식물을 바라볼 때 허투루 넘기지 말고, 조금이나마 관심과 주의를 더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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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명 : 정다슬 피아노 독주회

일시 : 2025년 12월 16일(화) 19:30

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연주 : 정다슬 (피아노), 강신욱 (신디사이저)

프로그램

  - 야나체크, 안개 속에서

                Ⅰ. 안단테

                Ⅱ. 몰토 아다지

  - 배승혜 & 강신욱, 통합된 파편들

  - 리스트, 순례의 해, 첫 번째 해 : 스위스


* 세줄평

예습차원에서 야나체크의 곡을 몇 번 청음했는데, 나직하고 신비로운 음색과 곡상이 인상적이다. 연주자 역시 이러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전곡이 아니라 아쉽다. 배승혜와 강신욱의 창작곡은 초연이다. 14분 정도 걸리는데, 신디사이저와 자동피아노가 동반되어 이채롭다. 생소하지만 이질적이지 않게 들렸는데, 무대세팅이 번거로워 실연이 자주 이루어지기는 어렵게 보인다.

리스트의 곡이 오늘 연주회의 하이라이트다. 예습을 여러번 하다 보니 이곡이 완전히 좋아졌다. 빌헬름 텔 성당의 장중한 개시부와 폭풍우의 격렬함도 인상적이지만, 파스토랄과 목가, 향수 등의 고요하고 은은한 곡상도 아름답다. 이 모두를 포괄하는 게 오베르망의 골짜기다. 연주자는 4곡, 2곡, 3곡씩 나눠서 해설과 연주를 진행하였는데, 한마디로 호연이라고 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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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아니 에르노 지음, 신유진 옮김 / THE CIRCLE PRESS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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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작품의 기본 제재로 삼고 있는 아니 에르노는 다시 개인사로 돌아왔다. 등단 이후 개인(<빈 옷장>, <단순한 열정>)과 가족(<남자의 자리>, <한 여자>)을 오가며 글쓰기를 하였던 그는 <부끄러움>으로 개인과 가족을 결합하였다. <세월>은 에르노식 글쓰기가 추구하였던 개인사와 사회사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집대성이자 총결산이라고 칭할 만하다.

 

노년에 이른 누군가가 문득 옛 생각이 나서 사진첩을 뒤적거리다 보면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기 마련이다. 갓난아기부터 꼬마, 청소년, 성년에 이르기까지 시절에 맞추어 달라지는 본인의 모습은 물론 가족과 친구들의 세월의 흐름도 찬찬히 눈여겨보게 된다. 이 사진을 찍었을 때 나는 몇 살쯤이었고 어떤 상황이었는지 등의 자문이 보편적이라면, 화자는 한발 더 나아가 깊숙한 질문을 던진다. 당시 프랑스 사회는 어떠하였고, 전 세계적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리고 개인의 삶과 생각이 사회와 세계사의 흐름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가.

 

그녀는 이 세계가 그녀 안에 새긴 것들과 그녀와 동시대를 사는 이들, 아주 오래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슬며시 미끄러져 온 시간을 공동의 시간을 재구성하는 데 사용할 것이다-공동의 기억에 대한 기억을 개인의 기억 속에서 되찾으며, 역사를 경험한 측면에서 표현하기 위해. (P.319-320)

 

세계사란 원체 거시적이기에 민족과 국가 위주로 구성되기 마련이며, 여기에서 특출난 인물이 영웅처럼 등장한다. 평범한 개인은 세계사에 끼어들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보통의 개인의 삶은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는 말인가. 작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화자 같은 소시민의 어린 시절부터 모든 삶을 회상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거시사 못지않은 중요한 역사적 맥락을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기억은 성적 욕망처럼 결코 멈추는 법이 없다. 그것은 망자와 산자를, 실존하는 존재와 상상의 존재를, 꿈과 역사를 결합한다. (P.12)

 

에르노의 기존 작품과 마찬가지로 <세월> 역시 회고적이며 기억을 회상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며 의미를 찾기에 이는 당연한 동시에 불가피하다. 다만 기억은 항상 불완전하고 편향에 빠지기 쉽다. 화자가 기억의 오류 여부를 반복적으로 자문하는 것은 무오류성과 자기 객관화를 최대한 유지하고자 함이다. 주관성이 두드러지면 개인사를 통한 글쓰기라는 본래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하게 되며,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는 사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

 

개인의 것이지만 세대의 변화가 녹아 있는 삶. 그녀는 시작하는 순간, 늘 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어떻게 역사적인 시간의 흐름과 사물들, 생각들, 관습들의 변화와 이 여자의 내면의 변화를 동시에 표현할 수 있을까. (P.238)

 

처음에는 빛바랜 사진을 차례차례 들여다보면서 추억을 더듬는 화자는 중반부터는 사진과 영상을 함께 참조한다. 지난 세기 후반부터 대중화된 영상매체의 발달로 정적인 사진보다는 동적인 영상을 담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사진이든 영상이든 화자는 항상 과거를 현재화한다. 옛이야기를 과거형으로 표현하였다면 순전한 회고에 지나지 않는다. 화자는 과거의 사건과 사상을 끄집어내어 현재에도 유효하기를 바란다. 나의 과거사, 남의 과거사가 한데 모이고 현재적 관점에서 의미성을 지니면 그것이 사회사가 된다.

 

작가가 자서전을 썼다면 분명 이 작품이 그것에 해당한다고 믿는다. 에르노식 자서전, “비개인적인 자서전”(P.321). 정확한 연대도, 실명도 드러내지 않지만 독자는 분명 이 작품을 통해서 작가의 삶을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전반적으로 조망할 수 있다. 물론 중간에 빼먹거나 살짝 언급만 하면서 간단히 넘어간 시기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의 다른 작품에서 비교적 상세히 다루고 있으므로 여기서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없어서라는 것도.

 

<세월>에서 특징적인 점은 역사와의 연계다. 단순히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고 간단히 치부하는 경우도 있지만, 자신이 직접 참여한 사회개혁과 정치 변혁의 당대적 사고와, 시간이 흘러 자식 세대의 의식과 빚어지는 두드러진 차이, 그리고 다소간의 실망감의 토로. 자본주의 문명의 고도화에 따른 대량 소비사회의 생소한 만남과 일말의 우려. <<911일 이후>>(P.281)로 표출되는, 공산주의 몰락 이후 새롭게 발생한 국제적 긴장 관계의 현주소 등등.

 

젊은 초대 손님들은 우리가 세상에 등장한 거대서사를 캐내는 일에는 관심 밖이었으며, 전쟁과 사람들 사이의 미움은 그들만큼이나 우리들에게도 끔찍했다. 더 이상 알제리, 칠레 혹은 베트남을 언급하지 않았고, 685월도, 자유로운 낙태를 위한 투쟁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과 같은 시대만을 살았다. (P.200)

 

특이한 건 이 모든 기술이 지극히 담담하고 관조적이라는 데 있다. 개인의 감상과 판단은 객관성의 큰 기조를 흔들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금씩만 나타날 뿐이다. 작가는 철저히 기록하는 태도를 보인다. 20세기 중반, 프랑스 시골에서 태어난 아니 에르노라는 한 여성의 생을, 담백하면서 솔직하게, 더하지도 않지만 덜하지도 않게끔. 그럼에도 결국 개인의 삶은 사회와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음을. 작가라고 어찌 부끄러움이 없겠는가, 글로 적나라하게 밝힌 내용이 결국 자신의 체험과 경험을 토로한 것이기에.

 

인간의 개별적 생은 죽음과 더불어 잊히고 소멸하는 운명이지만, 작가는 그것에 보편성과 영원성을 부여하였다. 이 작품은 여러 문학상을 수상하였는데, 당연하다. 개인적으로 이전의 어떤 작품도 <세월>이 성취한 지점에 이르지 못하였으며, 아니 에르노의 2022년 노벨문학상도 <세월>이 결정적인 기여를 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만큼 이 작품이 작가의 문학 경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이후 여기에 필적할 만한 작품을 과연 쓸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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