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는 즐거움
이덕무 / 솔출판사 / 199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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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는 학문과 일생을 통해 참다운 인간상을 구현하고 보전하는데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독서 목적, 성리학 외의 소위 잡학에 대한 관심, 고증학적 치밀함 등은 순전한 지식욕의 추구 차원이 아니다. 내적으로는 영혼의 순정하고 충일함을 구현하기 위함이며, 외적으로는 가난, 질병 등의 물리적 제약으로 인하여 내적인 수양이 지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는 알고 있다. 인간의 성정은 거울과도 같이 깨끗하고 맑지만, 나날이 닦아주지 않으면 금세 손때가 묻고 흐릿해지기 십상이다. 그가 <사소절>을 쓴 연유도 여기에 있다. 선비는 작은 행실, 사소한 예절부터 주의를 기울여 법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는 말한다. “작은 예절을 닦지 않고 큰 의리를 실천하는 자를 나는 보지 못하였다.”(P.4). 이 책에서 이덕무는 선비 자신은 물론 아이와 부녀자가 지켜야 할 일상의 규율 등을 상세히(때로는 지나칠 정도로) 밝히고 있다. 


여기에 제시된 모든 예절이 현재 시점에서 전부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일부는 시대적, 문화적 차이로 인하여 오늘날에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진부하고 구태의연한 가르침도 분명히 있다. 더욱이 유가의 기본 틀을 신봉하고 수호하려는 그의 자세는 세세하고 꼼꼼한 측면까지 신경을 쓰다 보니 과도한 측면도 분명히 있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은 옥석을 가리는 심경에서 이해를 도모해야 한다. 시간의 흐름을 이겨내고 여전히 유효한 가르침은 마음에 새겨두어야 할 것이다. 진부한 옛말이라면 저자가 이런 글을 쓴 당대의 문화적 배경의 실상을 파악해보면 납득이 갈 것이다.


“부부의 화목은 가정의 행복이다. 화목하면 아무리 빈천하더라도 걱정할 것이 못 된다. 부부의 불화는 가정의 재앙이다. 불화하면 아무리 부귀하더라도 기쁠 것이 못 된다.” (P.78)


“남편과 시부모가 사납게 성질을 부리거든, 부인 된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숨을 죽이고 조심조심 받들어 더욱 공손한 태도를 보이고 조금도 비위를 거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무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92)


여성의 예절 편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화목한 가정의 중요성은 고금을 막론하고 여전히 금과옥조다. 다만 화목 유지의 책임을 조선시대에서는 여성에게 부과하고 있음을 여기서 알 수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없이 참고 견디라는 것, 그것은 시집가서 시댁의 귀신이 될지언정 친정에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이것이 뿌리 깊은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


“여자가 윷놀이를 하고 쌍륙치기를 하는 것은 뜻을 해치고 위의를 거칠게 만드는 일이니, 나쁜 습속이다.”


친족 간 친선을 도모하기 위하여 전통놀이를 장려하는 관점에서 보면 당혹스러운 주장이다. 하물며 이덕무가 현대인들의 고스톱 놀이를 본다면 기절할 지경이리라. 과연 바둑이나 장기도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그답다. 


선비가 지켜야 할 것으로 언급한 시시콜콜한 예절 중 몇 가지 사례다. 우습기도 하며 어처구니없을 지경이다. 물론 지키면 좋겠지만 생리학적으로 불가피한 경우는 어쩌란 말인지.


“남과 함께 회를 먹을 때에는 겨자를 많이 먹음으로써 재채기를 해서는 안 되며, 또한 무를 많이 먹고 남을 향해 트림하지 말라.” (P.140)


“상추·취·김 따위로 쌈을 쌀 때에는 손바닥에 직접 놓고 싸지 말라. 점잖지 못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P.141)


단편적 내용만으로 별 볼일 없는 책으로 치부해서는 잘못이다. 의외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딱딱한 예의범절만 나열하지 않고, 과거와 선대의 구체적 사례와 인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어 옛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고 헤어 나오지 못하는 소위 미신이라는 영역(관상, 풍수지리, 사주팔자 등)에 대한 이덕무의 입장은 단호하다. 


“담명(談命)·석자(析字)·관상(觀相)·감여(堪輿)를 하는 부류는 본디 마음이 삐딱하여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백성을 우롱하고 요망한 말로 마구 속이니 사군자는 물리쳐 멀리해야 한다.” (P.243)


세상이 날로 삭막하고 흉흉해지고 있다. 핵가족화와 고령화의 사회적 충격은 가족 간, 친족 간 정리마저도 나날이 옅게 만들고 있다. 부모와 자식, 형제와 자매는 가족 전체가 아니라 오직 본인들의 사고와 입장만을 독선적으로 부르짖고 있다. 개인이 인간으로서의 기본 도덕률을 무시하면 가정이 본연의 모습과 역할을 유지할 수 없다. 뿌리가 흔들리는 사회와 국가는 불안정의 위험과 대가를 멀지 않은 미래에 톡톡히 치를 수밖에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옛말은 낡은 허언이 아니다. 개인 각자가 스스로의 참모습을 계발하고 지키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은 이토록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가르침을 여럿 찾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학문을 하는 적절한 단계를 제시하는데, 한학을 공부할 때 참고하면 도움이 되겠다.


“대학·논어·맹자·중용은 학문을 해 올라가는 과정에서 계단이 일사불란하다. 그 뒤를 이어서 공부할 책은 격몽요결·소학·근사록·성학집요로서, 규모가 정밀하여 얕은 데서 깊은 데로 들어가는 계안이니, 나는 일찍이 그것은 후사서(後四書)라고 불렀다.” (P.180)


사람 간 교제에 관하여 경구라고 할 만한 문장도 있다.


“거짓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교활해지고, 참된 인품은 사람을 많이 상대할수록 더욱 숙련된다.” (P.199)


그러면 그가 생각하는 우도(友道)는 어떠한가.


“겸손하고 공손하며 아담하고 조심하며 진실하고 꾸밈이 없으며, 명절(名節)을 서로 부지하고 과실을 서로 경계하며, 담박하여 바라는 바가 없고 죽음에 임하여 의리를 저버리지 않는 사람이 참된 벗이다.” (P.199)


이덕무는 정통 유학자다. 그는 평생 한학을 공부하고 갈고 닦는데 심신을 전념하였다. 한글은 부녀층과 서민층에서 일부 사용되었지만 점잖은 선비들은 여기에 관심을 기울여서는 안 될 뿐더러 구태여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그의 수많은 시작품이 모두 한시(漢詩) 형태임을 기억하자. 그런 이덕무가 한글에 대하여 제법 흥미롭게 언급한 대목을 찾게 되어 기억에 남기는 차원에서 끝으로 이를 옮겨 적는다.


“훈민정음은, 자음·모음의 반절과 초성·중성·종성과 치음·설음의 청탁과 자체(字體)의 가감이 우연한 것이 아니다. 비록 부인이라도 또한 그 상생상변하는 묘리를 밝게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말하고 편지하는 것이 촌스럽고 비루하여 모범적인 것이 될 수 없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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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신서 일본현대문학대표작선 5
다야마 가타이 지음, 한영옥 옮김 / 소화 / 199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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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일본 근대문학에서 자연주의 사조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미 <이불><시골선생>을 읽어서 생소한 작가는 아니다. 이 작품은 이어지는 <아내><인연>과 함께 3부작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가타이는 작품에서 서술 기법 상으로 평면묘사 이론을 추구한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이는 작가의 주관을 더하지 않고 내부적 설명이나 해부의 과정에서도 조금도 더 보탬이 없는 있는 그대로 진행시키는 것”(P.294)이다. 이러한 평면묘사는 대상을 개인과 사회의 구분 없이 두루 적용할 수 있으며 실제 서구에서는 자연주의 문학이 사회와 제도의 부패와 모순을 폭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는 개인을 중심으로 하여 은밀하게 잠재되어 있는 내면적 고민과 갈등 등의 노출에 집중하고 있다. 다야마 가타이는 이러한 경향의 시초라고 하겠다.

 

삶의 모습은 사람마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인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삶과 풍족한 삶, 부모 또는 형제 없이 사는 삶, 스스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살과 불행으로 판단하는 삶 등. 여기에 때와 장소와 민족이라는 구분자까지 넣는다면 더더욱 복잡다단하다.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삶의 본질적 양태는 대동소이하다는 데서 아이러니와 아울러 동질적 안도감조차 느끼게 된다.

 

삶은 죽음과 불가분의 관계로 엮여져 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음질쳐 간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사람이 생을 치열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원동력인 동시에 종교와 예술과 미신 그리고 억제되지 않는 본능에의 갈구를 탐닉하게 하는 원천이기도 하다. 노인이 천진한 아이와 싱싱한 청년을 볼 때 마주치는 모순된 감정은 그래서 오히려 자연적이다.

 

요시다 가문의 형제와 모친의 생과 사를 그린 이 작품의 소재는 지극히 평범하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어린 자식을 키우기 위해 갖은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 어머니, 가족을 위해 꿈을 버리고 하급관리로 살아가는 맏형의 모습은 불과 얼마 전만해도 우리 곁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고부(姑婦) 간의 갈등은 상존하며, 며느리와 시누이의 갈등 또한 뿌리가 오래되었다.

 

가족은 인간이 세상에 홀로 설 수 있도록 튼튼하게 키워내는 화분이며 온실이다. 성년이 된 개인은 보다 탁 트인 너른 공간에서 훌훌 거리낌 없이 살아가길 바란다. 여기서 자칫 개인과 가족의 관계는 퇴행적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 특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하다.

 

부모는 어린 자식을 훌륭하게 키우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자식을 어느덧 훌쩍 자라서 제 몫을 할 나이가 되면 뿌듯함과 대견함이 가슴이 벅차오른다. 자식이 부모의 노고를 알아주고 감사의 염을 항상 보여준다면 모르겠지만, 사랑은 원래 내리사랑이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부모와 자식 간의 생각이 동등하기는 쉽지 않다. 부모는 부쩍 늙어가는 자신의 처지와 신세에 불현 듯 비탄을 느끼며, 자신과 배우자 그리고 새로운 가정에 관심을 더 기울이는 자식에 일말의 배신감마저 품게 된다.

 

건강히 장수하다가 평온한 임종을 맞는 게 가장 행복한 죽음이라고 하던가. 연로해지면 온갖 질병에 시달리기 일쑤며, 대개 금방 낫지 않고 만성이 된다. 긴 병에 효자는 없다. 긴 투병은 본인은 물론 나머지 가족들마저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으로 힘들게 한다. 그나마 있던 한 줄기 애정마저 어느덧 흐릿해지고 암암리에 빨리 저세상으로 가시길 바라는 상황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더 이상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하신 어머니는 없었다. 오히려 죽음을 기다리는 환자로서 또한 스러져 가는 불유쾌한 하나의 괴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P.189)

 

언뜻 진부하고 상투적인 인생의 흐름이어서 오늘날 드라마에서는 다루기조차 않지만 이런 면면이야말로 기실 우리네 삶의 숨길 수 없는 진실한 모습이다. 작가가 주목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이 작품을 보면 백여 년 전의 일본 가정의 모습이 사소한 문화적, 시기적 차이를 감안하고 본다면 현재의 가정과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노모와 맏아들 료의 갈등은 우선 편모가 흔히 갖는 상실감과 소외감에 연원한다. 노모로서는 맏아들이 늙고 혼자인 자신 앞에서 마누라와 희희덕거리는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료는 가장으로서 의무와 책임을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만의 한 가닥 영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려고 한다. 이러한 갈등이 첫째 아내의 죽음, 둘째 아내와의 이별을 가져왔으며 갓 결혼한 셋째 아내와 노모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다른 자식들인 센노스케와 히데오도 다소간 같은 심경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일견 서운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자식의 불효와는 다른 차원의 사안으로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는 생각이 꾸역꾸역 솟아올랐다.” (히데오, P.178)

 

부모는 부모이고 자식은 자식인 것이다.” (센노스케, P.190)

 

새로운 세대가 대두되면 나이든 세대는 퇴장을 각오하고 준비해야 한다. 심정적으로는 다소 서운하더라도 불가피한 현상이다. 혹여 료의 노모처럼 중병에 걸려 서서히 스러져 간다면 간병하는 가족들도 지치게 마련이다. 불효라고 하겠지만 일반적으로 매도하기는 어려운 게 이 또한 삶의 자연적 측면인 탓이다. 결국 사람의 삶도 죽음도 홀로 가야하는 길이다. 절절하고 뼈저린 아픔이지만 홀로 감내해야 할 몫이다.

 

울어 주고, 슬퍼해 주고, 위로해 주어도 결국 이 몸은 혼자 죽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P.184)

 

인간은 어차피 언젠가는 죽지 않으면 안되는구나 하는 덧없음에 비애가 가슴을 파고들었다.” (P.199)

 

이렇게 해서 사람은 태어나고 또한 죽으면서 세상은 흘러가는 것이다.” (P.209)

 

그러나 이것이 인간인 것이다. 이것이 자연인 것이다. 가는 자는 가게 하라. 사라지는 자는 사라지게 하라.” (P.269)

 

노모는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격식에 따라 장례식이 거행되고 남은 자식들을 제외하고 조문객들은 모두 떠난다. 부모 잃은 자식들의 심정, 그것은 더 이상 과거와 동일하지 않다. 진작 부모로부터 홀로선 존재가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한 가닥 끈마저 완전히 절연된 외톨이가 된 처지다. 상징적, 심리적 의지도 기대할 곳이 없어졌다. 그들의 눈앞에는 새로운 세계와 생활이 펼쳐졌다.

 

그 누구나 모두 그 앞에 새로운 생활이 펼쳐지는 걸 보았다. 형제간의 관계에서도, 부모라는 연결 고리가 끊어졌기 때문에 완전히 독립된 자유와 허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P.234)

 

이제부터는 정말 혼자다. 넓은 세상을 혼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뜨거운 눈물이 가슴에 차올랐다.” (P.268)

 

이처럼 이 작품은 한 가족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의 양태와 관계를 치밀하게 모색하고 있다. 작가 자신의 가족사가 바탕이 된 민감하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면서도 작품 전체의 색조는 온화하고 담담하다. 여기에는 작가의 의식적 감정 부여를 회피한 의도적 노력이 주효하다. 이 점에서 뒤에 나온 <시골 선생>과 다소 차이가 있다. 가타이의 장기인 세밀하면서도 아름다운 자연 묘사는 전원에 국한하지 않고 요시다 가족 간의 심리를 각 개인의 처지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듯 기술한다.

 

생과 사는 인간의 영원한 테마다. 삶과 죽음은 인간과 동떨어진 곳에 있지 않다. 바로 우리 주위에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정경이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새삼 발견하는 삶의 성격은 작품해설과도 같이 이러한 모습이다.

 

삶에는 인간의 아름다움이나 추함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인간의 진실한 존재만이 있을 뿐이다.” (P.296)

 

인생이란 시간의 흐름 그 자체이다. 사람은 태어나고, 또 죽으면서 세상은 돌아가는 것이다.”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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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미친 바보 - 이덕무 산문집, 개정판
이덕무 지음, 권정원 옮김, 김영진 그림 / 미다스북스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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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이덕무란 인물이 궁금해졌다.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를 알아보려면 결국 그가 남긴 자신의 글을 읽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의 글에는 남들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글쓰기 스타일이 있으며, 은연중에 개성적인 사고와 가치관이 녹아들어 있다. 어쩌다가 한두 편은 인위적인 글쓰기가 가능하지만, 결국에는 본연의 모습이 드러나기 마련이다.


이 산문선에서 볼 수 있는 이덕무는 어떠한 모습일까? 온화하면서도 옹골찬 선비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서자 출신인 그는 언제나 신분의 한계와 제약을 절감하면서도 글 읽기를 그치지 않는 선비의 자세를 보여준다. 간서치(看書痴)라는 자술처럼 그는 책읽기에 미친 존재였으며, 독서의 폭의 광대무변과 지식의 박학다식은 당대에 유명할 정도였다. 그의 박학함을 알려면 이 책에 실린 ‘중국의 문인과 문장에 대하여’와 ‘조선의 문인과 문장에 대하여’를 읽어보면 충분하다.


그가 독서를 하는 목적은 단순한 지식 축적도 아니며 입신양명의 목적에 구애됨 없이 오로지 마음을 닦고 성정을 길러 참다운 인간상을 구현하고 보전하기 위해서다. 


“책을 읽는 이유는 정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으뜸이고, 그 다음은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 다음은 식견을 넓히는 것이다.” (P.51)


이러하였기에 당대 한시 4대가의 일인으로 손꼽히는 그였음에도 세인의 평가도 “품행을 제1로, 학식을 제2로, 박문강기를 제3으로, 문예를 특별히 제4로”(P.12) 칠 정도였다고 연암 박지원은 술회한다.


그는 글쓰기에서 무엇보다도 타고난 본성과 순수한 진정을 가장 우선시하였다. 자신의 첫 문집명을 <영처문고>라고 한 연유도 마찬가지다. 어린아이의 천진함과 처녀의 수줍음과도 같은 자연스러움으로 자신과 문장을 단속하고자 함이다. 이런 심안을 가지고 자연과 사물, 세태와 인정을 바라보면 인위는 줄어들고 자연스러움은 늘어나게 된다. 모방하지 않아도 꾸미지 않아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개성미가 물씬 풍기는 청언(靑言)이 가능하게 된다.


“모방만 한다면 인위적인 것은 많고 자연스러움은 적을 것이다. 문장이란 하나의 조화인데, 조화가 어떻게 얽어매어 모방할 수 있겠는가?

무릇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문장 하나가 가슴속에 담겨 있는데, 이는 마치 그 얼굴이 서로 닮지 않은 것과 같다.” (P.96)


이덕무가 살아있었다면 그는 정조의 문체반정에 적극 호응하였을 것이다. 그의 글쓰기적 이상은 정조와 상당 부분 일치한다. 다만 그는 연암과 초정 같은 이들을 벗으로 하였기에 다른 글쓰기에 좀 더 관대하였다. 그는 “진실한 마음으로 사물을 사랑하는 일에 모든 마음을 기울이는 것”(P.160)을 중시하였기에 속빈 글쓰기를 경계하였다. 


“고인들의 글 쓰는 방법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구속을 받아도 안 되지만, 완전히 버리는 것도 옳지 않다.” (P.98)


모기에 대하여 세밀히 관찰하면서 모기의 주둥이를 ‘꽃 같은 주둥이’(P.256~257)로 표현한 옛글의 올바름을 깨달은 그가 옛사람들의 꼼꼼하고 치밀한 관찰에 감탄하지만, 역시 같은 이유로 우리는 그에게 감탄하게 된다. 이덕무의 여러 글들이 실학풍과 밀접한 유사성을 지닌다고 평가받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벗이자 후배인 이서구에게 <성학집요>와 <반계수록>, <동의보감>을 좋은 책으로 추천한 근원이 이것이다.


이덕무의 관점에서 볼 때 소설은 용납되지 못한다. 연암과 친하지만 자못 의외다. 비록 연암의 소설을 직접 거론하지 않고 주로 <삼국지>나 <수호전> 등을 비판하지만 소설 전반에 대한 그의 평가는 혹독하다. 오늘날 흥미 위주의 통속 소설에도 이 비판은 유효하다.


“소설에는 세 가지 미혹된 것이 있다. 헛것을 내세우고, 빈 것을 억지로 맞추려 하고, 귀신을 말하고 꿈을 말했으니, 지은 사람이 첫 번째 미혹된 것이다. 허황된 것을 감싸고 천한 것을 고취시켰으니, 논평한 사람이 두 번째 미혹된 것이다.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고 경전을 등한시했으니, 탐독하는 사람이 세 번째 미혹된 것이다.” (P.189)


그는 자신을 수양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선비는 거울과 먹줄같이 처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거울은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기 쉽고, 먹줄이 똑바르지 않으면 나무가 굽기 쉽다”(P.177)고 첨언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고래로부터 소위 성선(性善)과 성악(性惡)의 견해가 대립되어 왔다. 설혹 성선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순수하고 천진한 품성을 부지런히 닦고 밝히지 않으면 거울과 먹줄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된다. 간과하기 쉬운 후천적 노력의 중요성을 새삼 강조하여 오히려 신선하다.


“나를 칭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후하게 대하지 말고, 나를 헐뜯는 사람이라고 해서 야박하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P.179)


개인적으로 마음에 다가오는 문장이다. 사람은 누구나 칭찬과 교언에 약하다. 자신에 대해 비판적인 언사라도 듣게 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가슴 한켠에 앙심을 품는다. 귀에 쓴 말을 하는 사람이 선의를 가진 이라면 조언을 고맙게 수용해야 함이 마땅하며, 선의가 아니라면 타인에게 원한과 적개심을 살 만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도(道)는 노장사상에서는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근본 원리이지만, 가까이로는 바람직한 인성을 유지하는 정신이기도 하다.


“사람의 허물은 항상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심해지고, 사람의 재앙은 항상 남을 업신여기는 데서 생겨난다.” (P.199)


“도란 일상생활 가운데 지극히 얕고 가까운 것에 있다. 집안에 물을 뿌리고 깨끗이 쓸며 말을 따라 대답하는 것만큼 얕은 것이 없고,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는 일보다 가까운 것은 없다. 좋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이는 거의 대부분 이것을 무시하고 높고 큰 것을 엿보며 먼저 하늘의 원리를 말하고 역의 법칙을 논하려고 한다.” (P.198)


이덕무는 딱딱하고 고리타분한 도학자인가? 그렇지 않다. 그가 남긴 편지글을 보면 사려 깊고 풍부한 인간성이 깊이 드러나 있다. 조카 이광석에게 보내는 글(P.127)에서 보면 보통 우리네와 다름없는 일상적 친근미가 보여서 정답게 다가온다.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해라’ 이것이 우리네들의 통상적 덕담과 기원 인사말 아니겠는가? 더욱이 그의 표현은 은근한 유머가 깃들어있어 읽다 보면 슬며시 웃음이 배어난다.


윤가기에게 보내는 글에서는 좋은 책을 구하게 되면 자기만 보지 말고 자신도 볼 수 있도록 꼭 빌려달라고 간곡히 청한다. “책을 빌려주는 것이 바로 천하의 큰 보시”(P.140)라고 애달플 정도로 하소연하는 대목에서 역시 ‘책에 미친 바보’라는 평판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이덕무의 행복론을 살펴본다. 


“아무 일이 없을 때조차도 지극한 즐거움이 있는데, 단지 사람들은 스스로 알지 못할 뿐이다.” (P.233)


당신은 행복합니까? 라는 질문을 받으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나는 행복합니다 라고 답변할 사람이 과연 얼마큼 많을지 궁금하다. 남녀 간, 가족 간의 사랑과 행복이 뼈에 새겨질 정도로 짜릿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항상 그러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훗날 돌아보았을 때 그때가 행복한 시절이었지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행복은 무념무사(無念無事)에 가깝다. 파란만장하고 격동적인 삶은 행복하지 않다. 대양을 항해하는 뱃사람은 바람과 파도가 일면 걱정도 커진다. 


이 책은 전반적으로 인간 이덕무와 그의 글쓰기를 한눈에 잘 알게 해준다. 책 구성도 자화상, 내가 책을 읽는 이유, 문장과 학풍에 대하여, 벗들과의 대화, 군자와 선비의 도리, 자연과 벗 삼아 등 주제별로 그가 남긴 글들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는 점도 장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이덕무란 인물이 보다 친근하면서 존경스러운 존재로 다가온 것은 나만의 심정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기회가 닿는다면 좀 더 그의 글을 읽고 싶다. 그만큼 그의 글에서는 담박하면서도 은은한 향기가 풍긴다. 쌉싸름한 국화와 그윽한 매화의 내음이.


참고로 4백 면에 가까운 분량 중에서 후반부의 백여 면은 부록으로, 역자 주와 연보, 등장인물과 책의 소개, 그리고 원문이 수록되어 있어 책읽기에 도움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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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꿈을 보았다 -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
고다 로한 외 지음, 유은경 옮김 / 향연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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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수록 작품>
1.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 (사카구치 안고)
2. 주문이 많은 요리점 (미야자와 겐지)
3. 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4. 쥐 고개 (모리 오가이)
5. 열흘 밤의 꿈 (나쓰메 소세키)
6. 풍류불 (고다 로한)


부제가 ‘일본 모던 판타지 걸작선’인데 굳이 판타지라고 장르를 한정할 필요 없이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주요 단편 작품집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오층탑>의 작가 고다 로한의 또 다른 작품 <풍류불(風流佛)>이 수록되어 있어서다. 단편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중편이라고 해야 할 로한의 이 작품에서도 확실히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다. 불상조각가 슈운이 구도 편력 중 우연히 위기에서 구해 준 오타쓰라는 아가씨와의 러브 스토리를 다루고 있다. 소재는 물론 구성에서도 불교 경전인 <법화경>의 십여시(十如是)를 소제목으로 하여 사건의 전개를 이에 맞추고 있어 독특한 인상을 준다. 로한의 문체는 의고적이어서 옛날이야기를 듣는 느낌도 있고, 작가인 화자가 중간에 의도적으로 개입하여 자신의 감회를 토로하는 대목은 일전에 읽었던 후타바테이 시메이의 <뜬구름>을 연상시킨다. 명사로 끝나는 문장이 많은 점과 아울러 확실히 근대화 이전의 문학적 특성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따금씩 표출되는 속물적 근대화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인식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느끼한 서양 먼지도 여기까지는 날아오지 않고” (P.162)
“생각이 짧은 소녀적인 감성이 도시풍의 경박한 세태에 휩쓸려 변해 버린 것인가.” (P.215)

 

슈운이 떠나버린 오타쓰를 생각하며 혼신을 기울여 조각한 그녀의 목각상은 그대로 풍류불이 되었다. 풍류불이라는 부처도 있었나? 어쨌든 풍류불을 통해 슈운과 오타쓰는 신적인 존재로 승화되었다는 결말이다. 남녀 간의 돈독한 애정과 깊은 신심의 연결이 이채롭지만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주문이 많은 요리점>은 ‘주문’의 주체에 대한 다른 해석이 가져오는 반어적 결말이 무척 흥미롭다. 여기에 고양이와 개라는 동물 간 뿌리 깊은 대립적 행태는 동과 서를 불문하고 유사함을 알게 된다. 짤막하지만 점층되는 긴장감과 압박감의 고조가 인상적이다.

 

<코(鼻)>도 역설적인 상황 인식의 묘미를 그려낸다. 코끼리처럼 커다란 코를 지닌 노승이 갈망하던 대로 코가 줄어들었음에도 행복감을 느끼지 못한다. ‘방관자의 이기주의’라고 명명된 대로 사람들은 평소에는 동정심을 보여주었던 불행한 사람이 그 상황에서 벗어나면 서운함을 느끼고 심지어는 비난을 하기까지 한다. 코가 하룻밤 사이에 원래대로 커지자 노승이 오히려 후련함을 느끼게 되는 연유를 알기에 오히려 우리는 우스우면서도 슬프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도 조만간 작품집을 읽을 계획을 갖고 있는 작가다.

 

모리 오가이의 <쥐 고개(鼠坂)>가 여기에 실려 있는 점은 반갑기도 하면서 의외였다. 그의 작품에 판타지 성향이 있었는지 의아스럽다. 러일전쟁 당시 숨어있던 젊은 여인을 발견하여 몹쓸 짓을 하고 몰래 살해한 사람이 7주기를 맞는 날에 피살자의 환상을 보고 죽는다는 내용이다. 군의관으로서의 작가 자신의 체험이 반영된 작품이다. 전쟁 중 잔학 행위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귀신 이야기 형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다만 오가이만의 특성을 잘 드러나지 않은 편이다.

 

<만개한 벚꽃 나무 숲 아래>와 <열흘 밤의 꿈(夢十夜)>은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다. 그나마 나름대로 줄거리가 짜여있는 전자가 내용 이해에 용이하다. ‘만개한 벚꽃’에 대한 오늘날의 이미지라면 단연 봄철 벚꽃 축제로 대변되듯, 사람들의 환성과 탄성을 불러일으키는 화사한 정취라고 할 것이다. 특히 달 밝은 밤 또는 가로등에 비친 밤 벚꽃의 아름다움과 바람 불면 눈 내리듯 흩날리는 꽃잎의 비애 섞인 미감 등.

 

작가는 벚꽃이 아름다움과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잔인함을 지녔음을 보여준다. 꽃 중에서 팜므 파탈이라고나 할까. 만개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은 정서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며 정신을 빼앗기기조차 한다. 그래서 작가는 서두에 벚꽃의 절경에 대한 상찬은 거짓말이며, 옛날에는 오히려 벚꽃 밑이 무섭다고 했음을 지적한다.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쉽사리 해치우는 산적과, 사람 머리통을 장난감 가지고 놀 듯 하는 여자. 여자의 아름다움은 산적의 혼을 빨아들일 것처럼 무섭다.

 

“눈동자도 영혼도 저절로 여자의 아름다움에 빨려 들어가 꼼짝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한편 남자는 불안했습니다. 어떤 불안인지, 왜 불안한지, 뭐가 불안한 건지 그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P.23)

 

여자가 사람 머리통을 가지고 노는 장면은 엽기와 그로테스크 그 자체이다. 새삼 작가인 사카구치 안고에 대한 궁금증이 생길 정도다. 오페라 <살로메>에서 살로메가 세례 요한의 목을 가지고 희롱하는 대목이 연상된다.

 

다시 만개한 벚나무 숲으로 돌아오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여자가 귀신이었음을 산적은 불현 듯 깨닫는다. 산적이 죽인 여자는 꽃잎으로 산화해 버리고 산적의 몸도 사라져버린다. 여자 없이는 그는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으며, 돌아갈 곳도 없는 고독 그 자체가 되었다.

 

<열흘 밤의 꿈>은 나쓰메 소세키의 제법 유명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특이성은 우선 열흘 밤의 꿈 이야기로 작품이 구성되어 있으며, 게다가 각각의 꿈 이야기가 매우 모호하며 상징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데 해득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프로이트의 저작이라도 읽었던 것인지 꿈과 무의식과 환상이 뒤섞여 꿈을 꿈으로만 볼 수 없도록 하고 있다. 꿈은 비합리와 비논리가 용납되는 시공간이다. 꿈은 현실도 아니지만 순전한 환상과 가상의 영역도 아니다.

 

각 꿈은 “이런 꿈을 꾸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책의 표제도 여기에서 빌려온 게 아닐까. 각 꿈은 죽음과 사랑, 귀신, 공포, 예술의 근본, 기원, 슬픔, 유혹 등이 희미한 색채를 띠면서 일본 전래의 설화적 이미지와 교묘하게 엮여져 있다. 이 작품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해석하려면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 세계에 대한 선행적 탐구가 필요하다. 지금은 이대로 낯설고 생경하며 요령부득이고 허무맹랑한 느낌마저 드는 이 상태로 그냥 놔두련다. 연말 또는 연초 쯤 되면 소세키의 작품을 시작할 수 있을 차례가 된다. 그때 다시 이 작품을 펼치게 될 기회가 생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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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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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책이다. 책을 시종일관 이끌어가는 화자가 이덕무인지 저자 안소영인지 알 수 없다. 안소영에 의탁한 이덕무 본인일까? 이덕무를 가장한 안소영 자신일까? 온화한 낯빛과 나직한 말투로 조곤조곤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샌가 그의 어조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흐뭇한 달빛에 취한 기분 좋은 술꾼의 심정이랄지. 눌변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책만 보는 바보란 이덕무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저자는 이덕무의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읽으면서 그토록 젊은 나이에 종일 책만 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보았”(P.7)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덕무를 주 인물로 한 팩션(faction)을 쓴 셈이다.

 

이덕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국사책에 얼핏 스쳐지나가는 인물 정도, 그리고 <청장관전서>라는 저작물 이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친숙한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의 제자이자 후배이며, 유득공과 박제가의 선배이자 친우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의 손자가 백과사전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이규경이라는 사실도.

 

이 정도에 그친다면 별로 주목거리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채 초야에 묻힌 인재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덕무는 조선후기 사가(四家)시인의 한 명으로 중국에까지도 성명을 날린 인물이다. 사가시인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이서구를 지칭한다. 그만큼 시적 재능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이덕무는 박제가, 유득공과 더불어 서얼의 신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반쪽 양반. 양반이 아니기에 관직에 나아갈 수 없으며, 평민이 아니기에 농사나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그들은 이를 깨뜨리려는 시도를 감행할 수 없다) 어중간한 지위. 그래서 이덕무는 종일토록 책만 보며 나날을 보내는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조선시대에 선비가 책을 읽는 목적은 자기 수양 외에 치국(治國)에도 뜻을 두는데 연유가 있다. 자신의 재능과 학식을 세상에 쓸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현실적인 차원에서 가족의 생계는 어찌 마련할 수 있겠는가.

 

천만다행으로 그의 글에서는 양반의 고루함이 배어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고상한 척 잘난 체하지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뜻과 마음만 통한다면 10년이나 어린 사람과도 기꺼이 친구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존경하는 이에게는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아도 스승으로 예우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 책은 이덕무 개인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의 벗들, 박제가와 유득공, 백동수와 이서구는 물론, 그의 스승 홍대용과 박지원에 대하여 새삼 알게 해준다. <북학의><발해고>의 저자, <을병연행록><열하일기>의 작가라는 딱딱한 역사적 외피 아래 감추어진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우리와 똑같이 밥 먹고 숨 쉬는 인간으로서의 그들 말이다. 특히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가 그들에게 얼마나 고뇌와 절망을 안겨주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덕무는 책을 눈으로만 읽지 않는다. 그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책 속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그림을 보듯 책을 보기도 한다. 책에서 풍기는 독특한 내음을 반가워한다. 그의 산문집 제목을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라고 붙인 것은 결코 한때의 치기나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내용 곳곳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탄식이 깃들어 있다. 반복되는 토로가 그저 개인적 신세 한탄에 머물지 않고 시대적, 제도적 변혁 요구의 당위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연행 사신의 수행원이 되어 북경에 가게 되어 만나게 중국 선비들과의 교류이다. 조선 내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 중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어쩐 연유일까?

 

나라가 다르고 말씨가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풍습이 다른 것을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나라 사람들과는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고 적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있고 없다는 이유로, 서로가 속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리부터 사람들 사이에 금을 그어 놓았기 때문이다.” (P.150)

 

이덕무를 포함한 소위 백탑파(白塔派)와 북학파의 당대 지식인들이 그토록 여러 저작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사회의 미래 모습은 결국 현재보다는 좀 더 나아진 사회, 불평등과 불합리가 완화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다. 그게 어디 그들만의 꿈과 희망으로 치부될 수 있겠는가? 우리네가 지향하는 바도 과거와 다름없이 여전하다.

 

우리의 후손은 못난 조상처럼, 소중한 삶을 탄식과 분노로 오랫동안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노라면 스스로가 빚어 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낼 때가 있지 않을까.” (P.245)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한 학자가 있다. 우리가 옛 고전을 읽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P.250)

 

이덕무는 물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역사 속 인물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덕무가 벗과 스승을 바라보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우정과 존경이 깃든 마음과 태도는 활자를 뛰어넘어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더불어 역사를 현재에 되살린 저자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졌다.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정도만 기억에 오롯하다. <발해고><북학의>도 예전에 읽었을 테지만 그들의 글과 시작(詩作)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정독해 보련다. 특히 유득공의 <이십일도 회고시>를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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