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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ㅣ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독특한 책이다. 책을 시종일관 이끌어가는 화자가 이덕무인지 저자 안소영인지 알 수 없다. 안소영에 의탁한 이덕무 본인일까? 이덕무를 가장한 안소영 자신일까? 온화한 낯빛과 나직한 말투로 조곤조곤 풀어나가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어느 샌가 그의 어조에 흠뻑 빠져들고 만다. 흐뭇한 달빛에 취한 기분 좋은 술꾼의 심정이랄지. 눌변의 미학이라고 부를 수 있겠다.
‘책만 보는 바보’란 이덕무가 스스로를 일컫는 말이다. 저자는 이덕무의 <간서치전(看書痴傳)>을 읽으면서 그토록 젊은 나이에 종일 책만 보는 처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에게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사실로 문살을 반듯하게 짠 다음 상상으로 만든 은은한 창호지를 그 위에 덧붙여 문을 내보았”(P.7)다고 밝힌다. 저자는 이덕무를 주 인물로 한 팩션(faction)을 쓴 셈이다.
이덕무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였다. 국사책에 얼핏 스쳐지나가는 인물 정도, 그리고 <청장관전서>라는 저작물 이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친숙한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의 제자이자 후배이며, 유득공과 박제가의 선배이자 친우임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의 손자가 백과사전서인 <오주연문장전산고>를 쓴 이규경이라는 사실도.
이 정도에 그친다면 별로 주목거리가 되지 못한다. 세상에 드러나지 못한 채 초야에 묻힌 인재들이 어디 한둘인가. 이덕무는 조선후기 사가(四家)시인의 한 명으로 중국에까지도 성명을 날린 인물이다. 사가시인은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과 이서구를 지칭한다. 그만큼 시적 재능이 탁월함을 알 수 있다.
이덕무는 박제가, 유득공과 더불어 서얼의 신분이었다. 흔히 말하는 반쪽 양반. 양반이 아니기에 관직에 나아갈 수 없으며, 평민이 아니기에 농사나 장사를 할 수도 없는 (엄격한 신분제 하에서 그들은 이를 깨뜨리려는 시도를 감행할 수 없다) 어중간한 지위. 그래서 이덕무는 종일토록 책만 보며 나날을 보내는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었다. 조선시대에 선비가 책을 읽는 목적은 자기 수양 외에 치국(治國)에도 뜻을 두는데 연유가 있다. 자신의 재능과 학식을 세상에 쓸 수 없다면 얼마나 답답할 것이며, 현실적인 차원에서 가족의 생계는 어찌 마련할 수 있겠는가.
천만다행으로 그의 글에서는 양반의 고루함이 배어나오지 않는다. 스스로 고상한 척 잘난 체하지 않는다. 솔직하고 담백하게 사물을 바라보고 현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뜻과 마음만 통한다면 10년이나 어린 사람과도 기꺼이 친구 되기를 마다하지 않고, 존경하는 이에게는 몇 살 차이가 나지 않아도 스승으로 예우하기를 꺼리지 않는다.
이 책은 이덕무 개인만을 다루지 않는다. 그의 벗들, 박제가와 유득공, 백동수와 이서구는 물론, 그의 스승 홍대용과 박지원에 대하여 새삼 알게 해준다. <북학의>와 <발해고>의 저자, <을병연행록>과 <열하일기>의 작가라는 딱딱한 역사적 외피 아래 감추어진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고 뜨거운 피가 흐르는 우리와 똑같이 밥 먹고 숨 쉬는 인간으로서의 그들 말이다. 특히 서얼이라는 신분의 굴레가 그들에게 얼마나 고뇌와 절망을 안겨주었는지 절감하게 된다.
이덕무는 책을 눈으로만 읽지 않는다. 그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책 속에는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그림을 보듯 책을 보기도 한다. 책에서 풍기는 독특한 내음을 반가워한다. 그의 산문집 제목을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라고 붙인 것은 결코 한때의 치기나 우연의 소산이 아니다.
내용 곳곳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에 대한 탄식이 깃들어 있다. 반복되는 토로가 그저 개인적 신세 한탄에 머물지 않고 시대적, 제도적 변혁 요구의 당위성으로 연결되는 것은 이덕무와 그의 벗들이 연행 사신의 수행원이 되어 북경에 가게 되어 만나게 중국 선비들과의 교류이다. 조선 내에서는 불가능했던 일이 중국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어쩐 연유일까?
“나라가 다르고 말씨가 다르고 옷차림이 다르고 풍습이 다른 것을 따지기보다는, 서로의 마음속에 담긴 생각을 먼저 보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정작 같은 나라 사람들과는 사귀기가 쉽지 않았다. 신분이 다르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고 적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있고 없다는 이유로, 서로가 속한 당파가 다르다는 이유로, 미리부터 사람들 사이에 금을 그어 놓았기 때문이다.” (P.150)
이덕무를 포함한 소위 백탑파(白塔派)와 북학파의 당대 지식인들이 그토록 여러 저작을 통해 구현하고자 한 사회의 미래 모습은 결국 현재보다는 좀 더 나아진 사회, 불평등과 불합리가 완화되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이다. 그게 어디 그들만의 꿈과 희망으로 치부될 수 있겠는가? 우리네가 지향하는 바도 과거와 다름없이 여전하다.
“우리의 후손은 못난 조상처럼, 소중한 삶을 탄식과 분노로 오랫동안 소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노라면 스스로가 빚어 낸 삶이 희미한 빛을 낼 때가 있지 않을까.” (P.245)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정의한 학자가 있다. 우리가 옛 고전을 읽는 이유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책을 통해 우리는 옛사람들로부터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 받기도 하며, 그들에게 우리의 시간을 나누어 주기도 한다.
“옛사람과 우리가, 우리와 먼 훗날 사람들이, 그렇게 서로 나누며 이어지는 시간들 속에서 함께하는 벗이 되리라.” (P.250)
이덕무는 물론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역사 속 인물을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덕무가 벗과 스승을 바라보는 한결같이 따뜻하고 우정과 존경이 깃든 마음과 태도는 활자를 뛰어넘어 여전히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준다. 더불어 역사를 현재에 되살린 저자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를 자신들의 목소리로 직접 듣고 싶어졌다. 홍대용의 <을병연행록> 정도만 기억에 오롯하다. <발해고>와 <북학의>도 예전에 읽었을 테지만 그들의 글과 시작(詩作)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시 정독해 보련다. 특히 유득공의 <이십일도 회고시>를 읽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