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초니에레 51~100 작가와비평 시선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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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옮긴이에 의해 2004년 간행한 칸초니에레 1~50편의 후속작이다. 이번에는 표제처럼 칸초니에레 중 51~100편의 시를 담고 있다. 다만 이번에는 단독 번역이다. 수록작은 주로 소네트 외 발라드 3, 마드리갈 2, 칸초네 5, 세스티나 2편이다.

 

축복 있으리니, 그날과 그달, 그 해, / 그리고 그 계절과 그때, 그 시각과 그 순간, / 그 은총의 마을, 그리고 나를 사로잡은 / 아름다운 그녀의 두 눈에 넋을 빼앗긴 바로 그곳. (P.54, 61)

 

역시 핵심을 차지하는 내용은 라우라에 대한 사랑이다. 라우라를 향한 사랑, 그리움, 갈망과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슬픔, 절망, 회한이 교묘히 엇갈린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이지만, 보답받지 못한 사랑은 고통과 분노, 슬픔 나아가 증오로도 변모되기 마련이다.

 

<칸초니에레> 366편 중 거의 전부가 라우라와 사랑에 관련된 시이므로, 한꺼번에 읽다 보면 성마른 독자라면 물리고 지칠 정도이다. 이 정도면 단순한 사랑과 애정을 넘어서 거의 광기 어린 집착의 수준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다른 측면으로 보면 시인의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깊고 한결같음의 증좌라고 할 수 있으리라. 게다가 일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단기간에 폭풍같이 써 내려간 시가 아니고 10, 20년에 이르는 기나긴 기간에 걸쳐 쓰고 다듬고 복기하며 재음미한 시들이 아니겠는가.

 

이제 돌아보니, 나의 주여, 10년 하고도 또 한 해를 / 거부할 수 없었던 잔인한 멍에에 / 짓눌려 가혹한 삶을 살았나이다. (P.58, 62)

 

잔혹한 길, 불현듯 사랑에 사로잡혔네. / 매년 같은 계절이 돌아와 / 나의 해묵은 상처를 새롭게 하는구나. (P.240, 100)

 

무엇보다 시인은 라우라의 눈빛에 매혹당하고 지배받는다. 최초의 그 순간 그녀의 눈빛으로 공격받고 이후 영원히 거기서 헤어 나오지 못함을 무수한 시구에서 표현한다. 특히 이 책의 수록작 중에서 세 편의 칸초네(71~73)는 각 시의 분량도 압도적이거니와 라우라의 눈을 제재로 삼고 있는 점에서 특별하다. 라우라의 눈은 시인에게 기쁨과 고통을 동시에 안겨주는 양면적 존재다. 시인은 그 감정을 여과 없이 찬가와 애가로 형상화한다. 한편 84편 소네트는 구성 면에서 심장과 눈의 대화 형식으로 사랑의 불가피성을 나타내고 있어서 이색적이다.

 

사랑이 둥지를 튼 그대 어여쁜 눈에, / 내 어설픈 문체를 바치오니 / 본성은 게으르지만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네. (P.96, 71)

 

내 언제나 달려가네 / 그 빛을 향해, 마치 내 구원의 뿌리인 양, / 죽음을 갈망하며 달음질칠 때, / 그 빛에 머무는 시선만으로도 나 살아가리라. (P.128, 73)

 

앞서 읽은 페트라르카 서간문을 보면, 시의 주인공 라우라는 실제 세속의 인물인 동시에 시인 마음속에서 하나의 이상화된 불멸의 여인상으로 승격화된다. 신에게 끝없는 기도와 찬미를 드리듯 시인은 라우라의 노래를 지칠 줄 모르고 읊는다.

 

시인의 진정한 슬픔은 그녀를 향한 무한한 애정에도 불구하고 라우라의 냉대에 있다. 작중에서 라우라는 시종일관 시인의 마음을 일부러 외면하면서 경멸과 멸시의 눈초리로 냉대한다. 물론 그녀가 유부녀 신분이기에 당연하겠지만 극적인 대비를 위해 한층 과장하여 표현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따금 라우라도 실제로는 마음 한편에 시인을 향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시구를 보면 사실일지 아니면 시인의 착각 내지 자기 위안인가 궁금하다.

 

사실인즉 만에 하나로 사랑을 이룬 나라오. / 나의 적은 정말 강했지만, / 나는 그녀의 가슴을 관통하는 슬픔을 보았다네. (P.198, 88)

 

라우라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몇 편의 시는 오히려 많지 않기에 한층 주목하게 된다. 53편 칸초네는 콜라라는 인물에 대한 것이다. 서간문에서 콜라의 이념에 페트라르카가 열렬히 동조하였고, 그의 타락에 시인이 커다란 실망을 표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는 콜라와 그가 바꿔놓을 정치체제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잘 표현한다. 친구 콜론나에게 보내는 소네트(58)와 동생에게 바치는 소네트(91), 그리고 시인 치노의 죽음에 바치는 소네트(92) 모두 흥미롭다.

 

최근에 번역 출간된 <칸초니에레> 완역본을 얼마 전에 구입하였다. 천천히 시간 날 때마다 찬찬히 읽으면서 음미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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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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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제를 보고 튀르크인의 민족적, 문화적 해설서로 알고 집었는데,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튀르크인이 세운 나라의 역사 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면 그중에서도 제국을 형성한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약사에 해당한다. 돌궐, 셀주크, 오스만이 튀르크임은 알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위구르도 튀르크의 한 종족임을 배우게 되었다. 다만 흉노도? 흉노의 민족 귀속 여부는 이견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과감하게 튀르크로 간주한다. 무슨 근거로? 이 책에서 저자는 전반적으로 튀르키예 편향적이다.

 

1부 초원의 최강 흉노 제국(기원전 209~216)

 

* 초원지대 거주인들의 언어가 대부분 튀르크 어족이므로 흉노는 튀르크 족의 조상으로 오늘날 터키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P.23)

 

저자가 주석으로 부기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흉노를 튀르크, 몽골, 퉁구스계의 부족 연합체로 설명하면서도 저자는 이렇게 단순화시킨다. 이 책에서 여러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이렇게 흉노 편에 특히 많다. 흉노의 광역을 서로 아랄해에서 동으로 한반도 북부라고 설명하는데 통상적인 이해와 차이가 크다.

 

터키육군사령부는 흉노 제국의 창건자 묵돌이 정규군을 조직하고 즉위한 기원전 209년을 터키 육군이 창건된 해로 지정하고 있다. (P.39)

 

흉노를 튀르크라고 인식하는 튀르키예의 무리한 조치를 여과 없이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점을 유념하면 이 책은 흉노와 훈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짤막하게나마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에 생소한 독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후기에는 한민족과 훈족의 연관성 논의를 다루고 있는데, 역사학계 일각의 주장이며 현재로는 설득력 있는 가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연관성 제시 근거 중 하나로 몽골반점을 언급하는데, 몽골반점은 이름 그대로 몽골계 인종에 특유한 현상이다. 훈족을 튀르크인이라고 하면, 튀르크인과 몽골인, 한민족도 모두 같은 종족이라고 하는 셈이 아닐까. 참고로 흉노의 민족적 기원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

 

2부 동·서를 연결한 초원제국, 돌궐 제국(552~744)

 

돌궐은 국명, 종족명 자체가 튀르크를 나타낸다. 돌궐 역사의 특이성은 제1 제국과 제2 제국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인데, 완전히 패망한 후에 부흥하였음을 보여준다. 돌궐은 광대한 영역에도 불구하고 존속 기간이 길지 않으며, 1 제국은 그나마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리되기조차 하였다. 하지만 이때 돌궐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제패하면서 이후 중앙아시아는 튀르크인의 땅으로 자리 잡는다.

 

아무래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가운데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까닭이라는 생각이다. 흉노와 훈의 역사를 중국과 로마 등 적대국의 기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2 제국의 전성기는 너무나 짧다. 톤유쿠크의 죽음과, 빌게 카간과 퀼티긴의 독살로 비극으로 치닫는 모습은 훗날 대셀주크 제국에서 멜리크샤와 니자뮐뮐크의 콤비의 최후를 연상시킨다. 어쨌든 돌궐의 세 명은 모두 자신들의 비문을 통해 미처 못 이룬 꿈과 희망을 후대인들에 영구히 남기고 있다. 돌궐 역사는 추후 정재훈의 저작으로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3부 유목에서 정주 문명국가로 변신한 위구르 제국(745~840)

 

흉노와 돌궐이 유목사회라면, 위구르는 정착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다. 위구르 제국은 불과 100년도 버티지 못하였지만, 오늘날 위구르는 중앙아시아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들의 후손은 강역을 지키면서 중국 내에서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이따금 뉴스로 확인할 수 있다.

 

돌궐에 이어 위구르도 문자를 사용하였고, 특히 정주 생활을 통해 그들 나름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남겨 이후 초원의 지식층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몽골은 위구르 문자를 채택하였고, 많은 위구르인이 몽골의 정치 사회 체제에서 핵심적 활약을 하였다고 하니 오늘날 그들의 암울한 현실만 보고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 보더라도 돌궐은 남북조 시대와 당나라 초기에 활동하였다면, 위구르는 당나라 후기, 특히 안사의 난 이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위구르 역사도 추후 정재훈의 저작으로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4부 이슬람 전사의 제국, 셀주크 제국(1040~1308)

 

드디어 튀르크인의 본격적 등장이다. 이슬람과 당나라의 일대 회전인 탈라스 전투는 중앙아시아 세계사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이후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문명권의 일원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와 위구르인이 모두 무슬림임이 이것을 입증한다.

 

튀크크인도 이후로 카라한 왕조를 필두로 이슬람을 믿게 되어 가즈나 왕조에서는 술탄 칭호를 부여받게 되며, 셀주크에 이르러 일대 제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자기네들 직계 조상의 나라이니 더욱 큰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

 

1037년 투우룰 베이는 니샤푸르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대셀주크 제국의 건국을 알렸다. 이는 터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P.179)

 

대셀주크 제국은 이슬람 왕조의 보호자로서 정치적 지도자 국가였다는 점과, 최초로 아나톨리아 진출을 시도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술탄 멜리크샤 시기에 재상 니자뮐뮐크의 도움으로 절정기에 이르렀고 이들의 죽음 이후 급격한 혼란과 종말로 치달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나톨리아 셀주크 제국의 역사는 튀르크 인들의 아나톨리아 유입 및 정착과 유럽 십자군과의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P.196)

 

셀주크 제국 하면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과 연관 검색어 관계다. 여기서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대셀주크 제국이 아니라 아나톨리아 셀주크 제국이라는 점이다. 대셀주크는 자체 붕괴하였지만, 아나톨리아 셀주크는 몽골의 위력에 굴복하였다. 훗날 오스만 제국 초기에 자칭 몽골의 후예 티무르에 패망 직전까지 몰렸던 것처럼 튀르크의 역사와 몽골은 뗄 수 없는 악연의 관계다. 이 책에서 셀주크의 가장 인상적인 정책으로 대상 숙소인 케르반사라이건축 사업과, 일종의 대상 보험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만 이때 셀주크가 대셀주크인지 아나톨리아인지 양자 모두를 지칭하는지 모호하다.

 

흔히 셀주크 제국 하나로 통칭하지만, 기실 이 두 나라는 전혀 별개로 간주해야 한다. 아나톨리아 셀주크는 셀주크의 일파가 따로 세운 국가로 대셀주크 제국도 독자적 국가로 인정했을 정도다. 이 책도 이러한 점을 언급하면서도 내용 소개로 들어가면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혼용하는 사례가 있다.

 

5부 문화 다양성 세계 최강, 오스만 제국(1299~1923)

 

아주 예전에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를 읽은 적이 있지만 머릿속에 전혀 기억나는 내용이 없다. 따로 통사를 찾아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600년을 넘게 유지된 대제국으로 현대에도 존속하였던 국가이니만치 방대한 역사답게 모든 방면에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겠지만 이 책은 일단 핵심적 내용 위주로 간략히 소개한다.

 

오스만 제국은 600년 넘게 유지되면서 광활한 영토에 20개의 다민족, 4개의 종교가 공존한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정복을 통해 편입된 다양한 민족에게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자치성을 보장해주었다. (P.245)

 

20세기 후반부터 비롯한 발칸 반도의 유혈극을 보면 오스만의 통치제도가 새삼 대단해 보일 정도다. 세계사에서 오스만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비잔티움 제국을 끝내 멸망시킴으로써 유럽 르네상스 도래에 간접 기여를 하였으며, 수백 년간 발칸 반도를 지배함으로써 유럽 내 이슬람 전파의 결과를 가져왔다.

 

오스만 역사를 굽어보면 급격한 성장과 찬란하지만 단명의 전성기, 그리고 기나긴 쇠퇴와 몰락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후반기의 오스만을 보면서 유럽의 열강들이 유럽의 병자라고 칭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던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제국의 치명적 선택이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튀르크인들의 역사가 저 멀리 흉노로부터 비롯된 유목민족의 전통 계승에서, 튀르크 제국을 이어 현재 튀르키예까지 이르고 있음을 표명한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작 의도라고 생각되는데,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다. 좋은 내용의 책이 일부 무리한 주장으로 빛을 잃는 게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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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 서간문 선집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작가와비평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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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라르카에 대해 자세히 탐구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그의 서간문 선집을 읽는다. 자고로 서간, 즉 편지는 글쓴이의 내밀한 속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도구가 아니던가. 페트라르카의 시 작품만으로 그를 잘 안다고 한다면 착각이다.

 

옮긴이에 따르면, 페트라르카는 다섯 묶음의 서간집을 남겼다. <친근서간집>, <운문서간집>, <노년서간집>, <잡문서간집>, <무명서간집>. 옮긴이는 전자 3곳을 중심으로 하되, 후자 2곳에서도 1편씩을 선별하였다고 한다. 모두 23편을 다섯 가지 주제로 편집하였는데, 페트라르카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 문학 관련 서간문들, 조국과 정치 관련 서간문들, 로마 관련 서간문들, 고대 문화 관련 서간문들이다. 이로써 독자는 시인 페트라르카가 아닌 인간 페트라르카의 다채로운 면모를 엿볼 수 있다.

 

1. 페트라르카 자신에 대한 서간문들

 

서간문 12는 페트라르카의 두 가지 대표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방투산 정상을 단지 보고 싶다는 소망으로 등정하는 행동, 당대에는 특별한 목적 없이 고산 등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또 하나. 그리스와 로마 문화에 대한 심취. 세속의 열락을 등지고 홀로 비밀의 동료를 만나 교류하는 고독한 삶의 즐거움을 토로한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최초의 르네상스인다운 모습이라 하겠다.

 

그리고 라우라에 대한 본인의 심정이다. <칸초니에레>의 많은 시편을 통해서 우리는 시인의 라우라를 향한 깊고 긴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시인은 그 사랑으로 정말 행복했을까? 그렇지 않았음을 몇몇 시구에서 나타내고 있지만 여기 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십년이나 무거운 사슬을 나는 지친 목덜미에 매달았다.

이 정도의 세월을 여성의 굴레에 묶여 보낸 것에 심한 혐오감을 느끼면서. (P.389, 서간문 2)

 

시인의 자기부정은 서간문 17에서도 되풀이된다. 그가 라우라를 사랑한 건 맞지만 수많은 시를 써서 찬미할 정도는 아니며 그건 자기가 꾸며낸 것이라는. 진실인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속마음의 일정 부분은 그러하였을 듯도 싶다.

 

그러나 이, 살아 숨 쉬는 라우라는 그 아름다움에 내가 매료된 것처럼 보이긴 해도 모든 것은 꾸며낸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시도 가짜이고 한숨도 겉치레라고. (P.240-241, 서간문 17)

 

특징적인 서간은 서간체 자서전을 시도한 서간문 5. 후세인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을 취하면서 자신의 삶을 간략하게 풀어내고 있다. 다만 이는 해설에서 밝히고 있듯 왕과 제후와의 친교를 정당화하는 집필 동기를 품고 있어 순수한 게 바라보기는 어렵다. 공화주의자 페트라르카는 현실에 있어서는 그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2. 문학 관련 서간문들

 

톰마소에게 보내는 서간문 6은 문학적 명성의 본질에 대한 냉철한 통찰을 담고 있다. 명성은 대체로 사후에 얻기 마련이므로 생전에 열심히 덕을 쌓으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으면서. 이 편지가 쓰여진 것은 톰마소가 죽은 지 십 년 후의 일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페트라르카는 편지라는 형식을 택하여 자신의 의견이나 주장, 생각을 기술하였음이다. 여기서 그가 서간문을 하나의 창작 형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로마의 계관 시인으로 추대된 이후 시인 페트라르카의 명성은 높아지고, 이에 따라 그의 글쓰기에 대한 비판도 있었나 보다. 서간문 10에서 그는 자신이 고대인들의 범례, 즉 예시를 많은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의견에 대해 글쓴이와 독자 모두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고대 문화에 무지한 당대인들에게 그 아름다움과 심원함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일까. 해설에도 이 점을 언급하고 있다.

 

페트라르카의 밀라노 체류에 대한 비판적 여론에 대해서는 서간문 11에서 일종의 해명을 시도한다. 자신이 각종 저술에 매진하고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기에 온전한 고독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받고 밀라노에 머문 것이지 그 외 다른 의도는 없다는. 이제 그의 행보 하나는 세인들의 관심 대상이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3. 조국과 정치 관련 서간문들

 

서정시인 페트라르카는 단지 그의 일면이다. <칸초니에레>에서도 당대 정치 상황에 대한 시인의 깊은 관심을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사제의 신분이었기에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지 못하고 옆에서 열렬히 격려하는 처지일 뿐이다. 서간문 13은 그의 정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누가 내 한숨에 어울리는 가락을 노래할 수 있으랴.

누가 무참한 조국의 황폐함에 걸맞는 탄식을 연주할 수 있으랴. (P.187, 서간문 13)

 

, 우리들의 손에 무기를 들고 벌판으로 말을 몰자.

창을 하늘로 내뻗자. 군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자. (P.197, 서간문 13)

 

외세와 내홍으로 분열된 조국 이탈리아를 향한 시인의 사랑은 실로 깊고 강하다. 아비뇽 교황청을 서방 바빌론으로 비난하는 그의 어조는 결코 수사적이 아니다. 페트라르카의 정치적 글을 보면 마키아벨리와 사고와 유사함을 깨닫는다. 개인적으로는 분명히 공화주의자이지만, 현실적인 면에서 군주정을 옹호하는 점에서. 서간문 16을 보면 페트라르카는 독일의 신성로마제국 황제에게 이탈리아를 구원해달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이탈리아 통일을 향한 시인의 의지는 이처럼 맹목적이다. 그만큼 그가 이탈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이리라.

 

나의 조국을 알아보고, 기쁜 마음에 인사를 하노라.

안녕, 나의 아름다운 어머니여. 세상의 영광이여, 안녕! (P.216, 서간문 15)

 

4. 로마 관련 서간문들

 

종교적인 측면에서 페트라르카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은 아우구스티누스다. 그의 <고백록><신국론>을 페트라르카는 탐독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그의 마음을 당겼던 이유 중 하나는 고대 문화를 배제하지 않고 이를 호교론에 적극 활용하였기 때문이다. 서간문 17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고대 문화에 대한 애호의 장난스러운 비난에 사뭇 진지하게 응대한다.

 

오오, 로마 자유의 아버지여! 로마 평화의 아버지, 로마 평안의 아버지여! 그대 덕분에 현시대 사람들은 자유롭게 죽을 수 있고 후세인들은 자유로울 때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P.279-280, 서간문 19)

 

공화주의자 페트라르카의 가슴에 불을 지른 이가 있으니 바로 콜라다. 그는 귀족 가문의 영주정을 타파하고 로마에 공화정을 실현하였다. 서간문 1920에서 콜라와 콜라 정부를 향한 시인의 지지와 찬미는 강렬하고 더없이 드높다. 그는 드디어 로마가 본모습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껏 기대를 품는다. 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면 좋겠지만 콜라는 이내 초심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하며 결국 귀족들에 의해 타도되고 만다. 콜라를 열렬히 지지했던 만큼 페트라르카의 정치적 입지도 곤란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콜라의 그릇된 처신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가 콜라에게 보낸 글을 통해 절망적 심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까, 그대가 조국을 배신함으로써 내가 평생 슬퍼하는 것보다 그 사람의 거짓말로 며칠 슬퍼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P.303, 서간문 20)

 

5. 고대문화 관련 서간문들

 

페트라르카의 삶과 영혼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라우라, 키케로, 아우구스티누스라고 한다. 특히 키케로는 그가 자신의 지적인 측면에서 전범으로 삼았던 인물이다. 그는 비록 키케로의 인간적 약점, 즉 그의 삶은 비판적으로 바라보지만, 키케로의 재능과 변론은 고대 로마의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서간문 2122는 그것을 보여준다.

 

페트라르카는 진정한 애독가라 할 만하다. 책에 싫증 나지 않으며, 많은 책을 가지고 있다고 병세를 밝히지만 누구도 이를 병이라 여기지 않으리라. 그는 독서의 탐색에 관한 흥미로운 방안을 제시하는데, 독서를 하다 보면 자연스레 책 내용 중에 언급된 다른 책으로의 독서를 이끈다는 점이다.

 

페트라르카의 서간집을 읽다 보면, 그가 편지를 공적, 사적 양면으로 활용하였음을 알게 된다. 순전히 개인적 동기와 목적으로 쓴 글에서는 그의 내밀한 심경과 알지 못하였던 모습을 알게 되고, 공적인 편지는 문학적 창작의 하나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여기서는 그가 대외적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정신적, 정치적 성격의 글을 통해 그의 사상과 사고를 헤아리게 된다. 확실한 것은 시인 페트라르카는 매우 단편적이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그의 시를 제대로 음미하려면 서간집을 포함한 그의 기타 저작을 잘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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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타이트 제국의 역사 더숲히스토리
쓰모토 히데토시 지음, 노경아 옮김, 이희철 감수 / 더숲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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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히타이트 역사서다. 게다가 최근에 나온 따끈따끈한 신간이다. 원서도 작년에 출간되었으니 2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그동안의 간극을 뛰어넘는 최신 연구 성과를 접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크다. 히타이트 제국의 역사는 앞서 읽은 이희철의 <히타이트>를 통해 대체적인 윤곽을 파악하였다. 극적인 발견, 히타이트의 유래, 선주민 하티, 피비린내 나는 왕위쟁탈, 이집트와 벌인 세계 대전과 평화 조약, 갑작스러운 멸망에 이르기까지.

 

결과적으로 이 책이 전혀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지는 못하였다. 여전히 히타이트의 많은 것이 공백 상태에 놓여 있음을 확인해줄 뿐이다. 다만 기존에 간과했던 여러 사항의 의미를 새삼 인식하게 되었는데, 북쪽 카스카족의 지속적 위협의 심각성이 그러하다. 히타이트는 남쪽과 동쪽으로 세력 확장을 꾸준히 도모하면서도 인근의 카스카족, 수도 하티마저 한때 약탈당했으면서도, 그들에 대해서는 확고한 지배권을 확립하지 못하였다. 아나톨리아 반도 서쪽에 대해서도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이 책은 당대 기후 불순에 따른 흉작을 언급하고 있다. 산지가 많은 나라 특성상 그들은 생존을 위해 평야 지대로 영토를 확장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히타이트의 멸망은 여전히 모호하다. 북방 해양 민족의 습격으로 패망했다고 하는데, 미심쩍은 점이 여럿 있다. 하나는 국세가 약해졌다 해도 히타이트가 급작스럽고 흔적 없이 지도상에서 사라지는 게 가능하냐는 점이다. 투드할리야 4세는 건설왕으로 불릴 정도로 여러 비문과 시설을 남겨 놓았는데, 나라가 위기 상황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지막 군주 수필룰리우마 2세가 특별히 폭군 또는 혼군이라는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오히려 타르훈타사를 포함한 여러 곳을 정복하였다. 저자도 이 책에서 히타이트의 멸망 원인의 해양 민족설에 유보적 의견을 밝힌다.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힌 상황에서 해양 민족의 등장이 방아쇠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앞 장에서 말했듯 히타이트 제국 말기에 아나톨리아가 심한 가뭄을 겪었을 가능성이 큰데 이 역시 제국을 지탱했던 제도들이 붕괴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해양 민족들의 이동과 기후 변동이 밀접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가지 원인만을 꼽기는 어렵다. (P.131)

 

우리는 히타이트 제국이 멸망한 후 그들이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저자는 후기 히타이트 국가들에 대해 비교적 자세히 고찰한다. 그들 왕가의 분가가 다스렸던 타르훈타사 부왕국과 카르케미시 부왕국이 수백 년간 존속했음을, 성서 언급과의 관련성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 유산 킬리키아 왕국도.

 

이 책의 전체 13개 장 가운데, 전반부 6장이 히타이트 역사를 다루었다면 후반부 7장은 히타이트의 사회, 종교, 외교, 도시, 생활 등을 주제별로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히타이트 제국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셈이다. 철의 나라 히타이트에 대해 저자는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으며, 히타이트는 청동기 제국이라고 단언한다.

 

히타이트는 관용성이 풍부한 나라였다. 피정복 지역이나 이웃 국가의 문화를 큰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언어와 문자도 바빌로니아식 쐐기문자를 주로 사용하지만, 우리가 외래어를 혼용하듯 수메르어와 바빌로니아 어휘를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으며, 상형문자를 쓰기도 하였다. 종교에서 있어서도 천신(千神)의 나라라는 별칭처럼 다양한 신을 섬겼다. 그들 고유의 애니미즘은 물론 피정복국 신을 자기들 신의 하나로 추가하는 일도 빈번하였다. 특히 국가 제사의 경우 왕이 직접 집행해야 할 의무가 있어 군사 행동도 이에 제약받는 사례도 있을 정도다.

 

히타이트의 최고 병기는 전차라고 한다. 비무장 또는 경무장한 보병에 대해 전차는 절대적 우위를 지닐 수 있었는데, 만약 중무장 보병이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저자는 히타이트를 괴롭히고 멸망시켰던 세력들이 보병 집단전이라는 새로운 병기와 전법을 사용하여 오히려 기존 문명을 압도하였을 가능성을 다른 학자의 입을 빌려 언급한다. 또한 반복적으로 아나톨리아 반도의 기후 변동을 여러 증거로 제시한다.

 

쿠샤클르 발굴을 통해 보아즈쾨이 이외의 히타이트 도시 유적의 전모가 처음으로 드러났고 히타이트인의 생활과 기술에 관한 정보가 다양하게 알려졌다. (P.257)

 

기존의 보아즈쾨이, 알라자회위크, 카만칼레회위크 등의 유적지 외에도 오르타쾨이, 쿠샤클르 등이 새로이 발굴되면서 히타이트 도시의 구조와 기능 등을 확인할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의 삶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는 성과가 나왔다고 한다. 여전히 많은 도시와 시설들이 땅속에 묻혀 있기에 히타이트 제국의 연구는 현재진행형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왕의 무덤이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러하다. 고대 국가는 왕릉 발굴을 통해 많은 사료와 유물을 입수할 수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기존에 히타이트 개설서를 이미 읽었기에 이 책에 나온 많은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지 않았지만, 전혀 초심자라면 이 책의 내용은 매우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또한 고대사와 고고학의 매력도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무대로 유명한 트로이는 소아시아의 난데없이 등장하는 생뚱맞은 도시국가가 아니라는 사실. 히타이트 시대에 윌루사 또는 히사를리크로 추정되는데, 독자적인 강력한 세력을 지닌 채 히타이트와 맞섰던 곳이라는 점. 그렇기에 훗날 그리스 연합군과 장장 십 년 넘는 장기전을 벌일 수 있었던 것임을 추론할 수 있게 된 점은 의외의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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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낯선 여인의 편지>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 이제 저는 이 세상에서 오로지 당신만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그동안 아무것도 모른 채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여러 다양한 것들을 누리며 즐기던 당신을, 저를 알지 못한다 해도 제가 항상 사랑했던 당신만을 알고 있습니다. (P.91)

 

어느 날 문득 이렇게 시작하는 편지를 받는다면 누구라도 당혹하게 마련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편지란 말인가, 수신인이 잘못된 게 아닐까, 그녀는 도대체 누굴까, 자기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왜 내게 알려주는 걸까 등등. 이 소설의 특징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발신인이 자신의 정체를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 그렇기 때문에 수신인은 그녀의 편지를 다 읽을 수밖에 없다는 점. 물론 웬 생뚱맞은 편지란 말인가 하고 한구석에 휙 집어 던지고 다시 읽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수신인의 성향에 맞지 않음을 이미 발신인도 알고 있지 않겠는가.

 

편지의 내용은 한 여인의 삶과 사랑에 관한 고백이다. 소녀 시절부터 수신인을 향한 일편단심 지극한 연모의 마음을 품게 된 여인, 어떻게든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존재를 인식 받고 싶다는 열망, 비록 그가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여기에 사랑의 전형적인 속성이 드러난다. 연인은 자기 삶의 전부이고, 자기 존재 의미는 연인에 있으며, 그의 모습을 보고 만나는 것만이 유일한 소망이라는. 이 정도 순애보라면 남자가 여인을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여인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남자는 소위 바람둥이다. 그에게 자신의 첫사랑을 바치고 그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여인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이 자신의 지극한 소망이었기에.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이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그 아이는 당신의 아이이기도 합니다. 그 삼 일간의 밤에 생긴 아이였습니다. (P.123-124)

 

여인은 충격적 진실을 토로한다. 죽은 자기 아이가 사실 수신인 남자의 아이라고. 그를 만나지 못하더라도 아이를 통해 대리 행복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그녀. 딱 한 번 마지막으로 그녀가 자신을 알아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절규했던 순간이 있었으나 남자는 끝내 알아차리지 못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에게 여자는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여인 중 하나에 불과하므로.

 

남자는 기억 회로를 열심히 가동해 보지만 절대로 그녀를 되살려내지 못한다. 그에게 편지를 보낸 그녀는 완전히 낯선 여인이다, 이름도 얼굴도 전혀 떠오르지 않는. 앞으로도 그는 그녀를 찾지 못할 것이다. 이 편지를 보냄으로써 그녀는 자신의 목숨도 다했음을 알리기에.

 

독자는 이 작품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까. 남자의 방탕함과 무신경함을 비난해야 마땅한가, 여인의 고루하고 수동적인 사랑의 태도를 딱하게 여겨야 할 것인가. 아니 그것보다 작가가 이 소설을 쓴 이유가 누군가를 비난하려는 의도일까, 당대의 어쩔 수 없는 삶과 사랑의 양태를 보여주는데 더 큰 까닭이 있는 게 아닐까. 그것도 직접적 사건 서술과 대화 형식보다는 편지라는 고백체의 일방적 전달 형식을 통해서. 수신인은 일방적으로 당하고 기다리는 처지에 놓인다. 그는 편지글을 곱씹고 자신의 삶을 회상하며 어느 순간에 마주쳤던 여인들과 연계하여 여인의 정체를 알아내고자 맹렬히 애쓰지 않겠는가. 조금씩 사실을 드러내고 알려주며 독자를 감질나게 하고 추론하도록 하는 것 이것이 참된 묘미다.

 

<체스 이야기>

 

츠바이크의 마지막 작품이다. 나치를 피해 머나먼 브라질 땅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작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한창 나치가 맹위를 떨칠 때 문명 세계는 더는 희망 없다는 절망감과 두고 온 세상을 향한 향수병이 그를 극단적 선택으로 몰았으리라. 이 작품에서 나치가 주인공을 심리적 극단 상태로 내몬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절대적 열대와 냉대 지역에서 생존할 수 없듯이 우리네 감각기관이 극단적 상황을 견뎌낼 수 없다. 예전에 한 번 무향실에 들어가 본 적 있었는데, 절대적 고요함이 오히려 환청을 유발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았다. B박사가 맞닥뜨린 상황도 이와 유사하다.

 

그들은 우리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를 그저 완벽한 무()의 상황에 세워두었던 겁니다. 잘 아시겠지만, 지상의 어떠한 것도 그보다 더 강력하게 인간 영혼을 압박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P.45)

 

생명은 움직이고 활동하는 현상이다. 아무런 정신적, 신체적 활동도 없고 홀로 고립된 상태에서 할 일도 금지당한 존재는 비생명에 가까워진다. 게다가 그 존재가 매우 지적인 생명체라면 효과는 극적이다. 주인공이 여봐란듯이 그런 상황을 극복하고 업그레이드되어 등장하는 설정은 영화에서만 가능하다. 육체적 고문도 무섭지만 정신적 고문도 이에 못지않다.

 

B박사는 우연히 입수한 체스책으로 심리적 위기 상황을 헤쳐나올 수 있었지만, 무한한 시간 속에 그것도 한계를 보이고 이내 혼자서 블라인드 체스를 두기 시작한다. 두 사람이 하는 체스 게임을 혼자서 한다는 것은, 재미 삼아 장난으로 두지 않는다면 정신을 둘로 갈라야 가능한 법이다. B박사의 발작은 결국 정신분열증이 아니겠는가. 나치의 심리 고문을 극복했던 B박사는 체스 게임으로 자초했던 심리 위기는 이겨내지 못하였다.

 

체스를 두면서 흥분이 점점 더 고조되었어요. 아침부터 밤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요. 한순간도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이 왔다 갔다 했습니다. (P.66)

 

첸토비치는 B박사의 과거사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B박사가 보이는 여러 행동과 반응을 보고 그가 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접어들고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최대한 활용한다. 최대한 천천히 시간 끌기, 상대방이 무위한 기다림에 지치고 견딜 수 없어 제풀에 허물어지기를 노리는 심리 전략이다. 다른 고수라면 적당히 대응할 수 있겠지만 B박사는 그렇지 못하다, 정신적 외상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했음을 화자와 독자는 알 수 있다.

 

이 소설에서 흥미로운 대목은 서두에 체스 세계 챔피언 첸토비치를 소개하면서 화자가 그를 편집광적인 인물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첸토비치는 오로지 체스만 잘 둘뿐 그 외는 무지하다. 블라인드 체스를 못 둘 정도로 상상력도 빈약하다. 나치가 B박사에게 가하는 심리 고문과, 첸토비치가 B박사에게 행하는 심리 전술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뿌리를 지닌다. 작가가 화자의 입을 빌려 묘사하는 첸토비치야말로 체스계의 히틀러에 다름 아니지 않는가.

 

이 세계를 오로지 검정과 흰색 사이의 좁은 일방통행으로 축소시키고, 서른두 개의 체스 말을 단순히 앞뒤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데서 삶의 성취감을 찾는 사람을, 정신적으로 민활한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것은 사실 얼마나 어렵고 불가능한 일인가.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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