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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르크인 이야기 - 흉노.돌궐.위구르.셀주크.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ㅣ 타산지석 21
이희철 지음 / 리수 / 2017년 6월
평점 :
표제를 보고 튀르크인의 민족적, 문화적 해설서로 알고 집었는데, 기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튀르크인이 세운 나라의 역사 이야기, 더 정확히 말하면 그중에서도 제국을 형성한 흉노, 돌궐, 위구르, 셀주크, 오스만 제국의 약사에 해당한다. 돌궐, 셀주크, 오스만이 튀르크임은 알고 있었고, 이번 기회에 위구르도 튀르크의 한 종족임을 배우게 되었다. 다만 흉노도? 흉노의 민족 귀속 여부는 이견이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저자는 과감하게 튀르크로 간주한다. 무슨 근거로? 이 책에서 저자는 전반적으로 튀르키예 편향적이다.
제1부 초원의 최강 흉노 제국(기원전 209~216년)
* 초원지대 거주인들의 언어가 대부분 튀르크 어족이므로 흉노는 ‘튀르크 족’의 조상으로 오늘날 터키인의 조상이라 할 수 있다. (P.23)
저자가 주석으로 부기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흉노를 튀르크, 몽골, 퉁구스계의 부족 연합체로 설명하면서도 저자는 이렇게 단순화시킨다. 이 책에서 여러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은 이렇게 흉노 편에 특히 많다. 흉노의 광역을 서로 아랄해에서 동으로 한반도 북부라고 설명하는데 통상적인 이해와 차이가 크다.
터키육군사령부는 흉노 제국의 창건자 묵돌이 정규군을 조직하고 즉위한 기원전 209년을 터키 육군이 창건된 해로 지정하고 있다. (P.39)
흉노를 튀르크라고 인식하는 튀르키예의 무리한 조치를 여과 없이 소개한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다를 바 없다. 이러한 점을 유념하면 이 책은 흉노와 훈의 역사에 대한 기본적 사실을 짤막하게나마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에 생소한 독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다.
후기에는 한민족과 훈족의 연관성 논의를 다루고 있는데, 역사학계 일각의 주장이며 현재로는 설득력 있는 가설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연관성 제시 근거 중 하나로 몽골반점을 언급하는데, 몽골반점은 이름 그대로 몽골계 인종에 특유한 현상이다. 훈족을 튀르크인이라고 하면, 튀르크인과 몽골인, 한민족도 모두 같은 종족이라고 하는 셈이 아닐까. 참고로 흉노의 민족적 기원에 대해서는 현재 여러 의견이 엇갈린다.
제2부 동·서를 연결한 초원제국, 돌궐 제국(552~744년)
돌궐은 국명, 종족명 자체가 튀르크를 나타낸다. 돌궐 역사의 특이성은 제1 제국과 제2 제국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인데, 완전히 패망한 후에 부흥하였음을 보여준다. 돌궐은 광대한 영역에도 불구하고 존속 기간이 길지 않으며, 제1 제국은 그나마 서돌궐과 동돌궐로 분리되기조차 하였다. 하지만 이때 돌궐 제국이 중앙아시아를 제패하면서 이후 중앙아시아는 튀르크인의 땅으로 자리 잡는다.
아무래도 중앙아시아 유목민족 가운데 최초로 문자를 만들어 자신들의 기록을 남긴 까닭이라는 생각이다. 흉노와 훈의 역사를 중국과 로마 등 적대국의 기록으로만 파악할 수 있는 것과는 천양지차다.
제2 제국의 전성기는 너무나 짧다. 톤유쿠크의 죽음과, 빌게 카간과 퀼티긴의 독살로 비극으로 치닫는 모습은 훗날 대셀주크 제국에서 멜리크샤와 니자뮐뮐크의 콤비의 최후를 연상시킨다. 어쨌든 돌궐의 세 명은 모두 자신들의 비문을 통해 미처 못 이룬 꿈과 희망을 후대인들에 영구히 남기고 있다. 돌궐 역사는 추후 정재훈의 저작으로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제3부 유목에서 정주 문명국가로 변신한 위구르 제국(745~840년)
흉노와 돌궐이 유목사회라면, 위구르는 정착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다. 위구르 제국은 불과 100년도 버티지 못하였지만, 오늘날 위구르는 중앙아시아에서 큰 지분을 차지한다. 그들의 후손은 강역을 지키면서 중국 내에서 자치구를 형성하고 있으며 끊임없는 독립 투쟁을 전개하고 있음을 이따금 뉴스로 확인할 수 있다.
돌궐에 이어 위구르도 문자를 사용하였고, 특히 정주 생활을 통해 그들 나름의 풍요로운 문화유산을 남겨 이후 ‘초원의 지식층’ 구실을 하였다고 한다. 저자에 따르면 몽골은 위구르 문자를 채택하였고, 많은 위구르인이 몽골의 정치 사회 체제에서 핵심적 활약을 하였다고 하니 오늘날 그들의 암울한 현실만 보고 과소평가할 일은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 보더라도 돌궐은 남북조 시대와 당나라 초기에 활동하였다면, 위구르는 당나라 후기, 특히 안사의 난 이후 커다란 영향력을 미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위구르 역사도 추후 정재훈의 저작으로 자세히 살펴볼 계획이다.
제4부 이슬람 전사의 제국, 셀주크 제국(1040~1308년)
드디어 튀르크인의 본격적 등장이다. 이슬람과 당나라의 일대 회전인 탈라스 전투는 중앙아시아 세계사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이후 중앙아시아는 이슬람 문명권의 일원에 속하게 되었다. 현재 중앙아시아 여러 국가와 위구르인이 모두 무슬림임이 이것을 입증한다.
튀크크인도 이후로 카라한 왕조를 필두로 이슬람을 믿게 되어 가즈나 왕조에서는 술탄 칭호를 부여받게 되며, 셀주크에 이르러 일대 제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특히 튀르키예 입장에서는 자기네들 직계 조상의 나라이니 더욱 큰 의미로 받아들이게 되었으리라.
1037년 투우룰 베이는 니샤푸르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대셀주크 제국의 건국을 알렸다. 이는 터키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P.179)
대셀주크 제국은 이슬람 왕조의 보호자로서 정치적 지도자 국가였다는 점과, 최초로 아나톨리아 진출을 시도하였다는 사실, 그리고 술탄 멜리크샤 시기에 재상 니자뮐뮐크의 도움으로 절정기에 이르렀고 이들의 죽음 이후 급격한 혼란과 종말로 치달았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나톨리아 셀주크 제국의 역사는 튀르크 인들의 아나톨리아 유입 및 정착과 유럽 십자군과의 전쟁의 역사로 점철되었다. (P.196)
셀주크 제국 하면 무엇보다 십자군 전쟁과 연관 검색어 관계다. 여기서 미처 몰랐던 사실 하나, 대셀주크 제국이 아니라 아나톨리아 셀주크 제국이라는 점이다. 대셀주크는 자체 붕괴하였지만, 아나톨리아 셀주크는 몽골의 위력에 굴복하였다. 훗날 오스만 제국 초기에 자칭 몽골의 후예 티무르에 패망 직전까지 몰렸던 것처럼 튀르크의 역사와 몽골은 뗄 수 없는 악연의 관계다. 이 책에서 셀주크의 가장 인상적인 정책으로 대상 숙소인 ‘케르반사라이’ 건축 사업과, 일종의 대상 보험 시스템을 소개하고 있는데 무척 흥미로운 사실이다. 다만 이때 셀주크가 대셀주크인지 아나톨리아인지 양자 모두를 지칭하는지 모호하다.
흔히 셀주크 제국 하나로 통칭하지만, 기실 이 두 나라는 전혀 별개로 간주해야 한다. 아나톨리아 셀주크는 셀주크의 일파가 따로 세운 국가로 대셀주크 제국도 독자적 국가로 인정했을 정도다. 이 책도 이러한 점을 언급하면서도 내용 소개로 들어가면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거나 혼용하는 사례가 있다.
제5부 문화 다양성 세계 최강, 오스만 제국(1299~1923년)
아주 예전에 도널드 쿼터트의 오스만 제국사를 읽은 적이 있지만 머릿속에 전혀 기억나는 내용이 없다. 따로 통사를 찾아 읽을 필요가 있겠다 싶다. 600년을 넘게 유지된 대제국으로 현대에도 존속하였던 국가이니만치 방대한 역사답게 모든 방면에서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겠지만 이 책은 일단 핵심적 내용 위주로 간략히 소개한다.
오스만 제국은 600년 넘게 유지되면서 광활한 영토에 20개의 다민족, 4개의 종교가 공존한 제국이었다. 오스만 제국은 정복을 통해 편입된 다양한 민족에게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자치성을 보장해주었다. (P.245)
20세기 후반부터 비롯한 발칸 반도의 유혈극을 보면 오스만의 통치제도가 새삼 대단해 보일 정도다. 세계사에서 오스만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비잔티움 제국을 끝내 멸망시킴으로써 유럽 르네상스 도래에 간접 기여를 하였으며, 수백 년간 발칸 반도를 지배함으로써 유럽 내 이슬람 전파의 결과를 가져왔다.
오스만 역사를 굽어보면 급격한 성장과 찬란하지만 단명의 전성기, 그리고 기나긴 쇠퇴와 몰락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 후반기의 오스만을 보면서 유럽의 열강들이 유럽의 병자라고 칭하면서 부정적으로 인식하였던 게 아니었던가.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은 제국의 치명적 선택이었다.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는 튀르크인들의 역사가 저 멀리 흉노로부터 비롯된 유목민족의 전통 계승에서, 튀르크 제국을 이어 현재 튀르키예까지 이르고 있음을 표명한다. 이것이 이 책의 저작 의도라고 생각되는데, 일방적인 주장을 수용하고 있는 게 아닌지 조심스럽다. 좋은 내용의 책이 일부 무리한 주장으로 빛을 잃는 게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