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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일기 ㅣ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클래식 8
미치쓰나의 어머니 지음, 정순분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헤이안시대 일본 여류 일기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작품이다. 후대의 일기문학과는 달리 작가가 뇨보가 아닌 가정집 여인으로서 보통의 귀족 여성의 삶을 재현하였다고 하여 높은 문화사적 가치를 부여받고도 있다.
이상과 같은 평가를 보면 굉장히 대단한 고전으로 생각되겠지만 실상 들여다보면 한 여인네의 평범한 삶을 일기형식을 빌어서 쓴 회상록이다. 작자는 10세기 전반기 당대 세력가의 부인으로서 아들 후지와라노 미치쓰나의 어머니라고만 전한다.
작자가 신변잡기와도 같은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와 연유는 서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더할 나위 없이 높은 신분의 사람과 결혼하면 그 생활이 어떨지 미리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그 사람한테도 하나의 본이 되고 싶었다.” (P.34)
즉 상위 귀족과의 결혼 생활의 애환을 제시하는데 목적이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전편을 통해서 당대 일반적 여인들의 곤고한 삶을 숨김없이 적나라하게 노출하고 있다. 도대체 권세가의 부인으로서 작자의 삶이 어떠했기에 이러한 토로를 하는지 궁금하다.
중류 귀족의 딸로서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 유력 집안이 후지와라노 가에이에의 아내가 된 그녀. 일기 내내 작자의 관심사는 오로지 남편에게만 쏠려 있다. 남편을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체념하여 무덤덤한 듯 하다가도 종내 끈을 놓지 않는다. 그녀의 주장처럼 남편 가네이에는 작자에게 소홀하고 박정한 형편없는 남편이었던가. 여러 아내를 거느렸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그러하지만 당대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일반적인 결혼생활을 하였다. 게다가 작자의 한탄과는 달리 애정이 식은 후에도 지속적인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일방적 매도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가네이에의 구혼 편지의 불성실함에 대한 비난과 결혼 초 남편에 대해 “여전히 마을 놓을 수 있는 사이가 되지 않아”(P.45)라고 표현한 대목은 훗날 작자의 불행을 암시하고 있다.
작자의 불행을 초래하고 남편과의 사이를 소원하게 만든 원인은 바로 남편의 또 다른 결혼이다. 헤이안시대의 결혼 풍습을 감안하면 남편의 행위는 비난받을 여지가 없다. 작자 자신 역시 두 번째 부인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오직 남자만을 바라보고 일생을 살아야 하는 여인의 입장에서 사랑의 경쟁자인 시앗에 대한 질투의 감정을 억제하기는 참으로 힘들 것이다. 작자의 경우 무로마치 골목길 여자에 대한 질투 표출은 적대적이어서 훗날 그 여자가 남편을 총애를 잃게 되자 적나라한 감정을 표현할 정도다.
“더할 나위 없이 하찮은 여자다. 단지 그런 속사정을 잘 모르는 요즘 사람들이 떠받들어 주니까 자기 주제도 모르고 기고만장했던 것이다......내가 겪은 고통보다 조금 더 고통스러울 거라는 생각이 들자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P.65)
또 다른 남편의 여인 오미에 대한 적개심도 뒤지지 않는다. 그 여자의 집을 일컬어 ‘내가 싫어하는 곳’이라든지 ‘밉살스런 여자네 집’이라고 대놓고 기술할 정도다. 자신도 여러 부인 중 하나라는 인식을 갖지 못한 작자의 편협성은 이처럼 다른 여인에 대한 질투와 증오를 보여줄 뿐이다. 일부다처제에서 남자는 여러 부인에게 비교적 균등한 대우와 기회를 주어야 한다. 특정 부인에게만 관심과 애정이 쏠리면 가정불화를 야기하게 된다. 그럼에도 작자는 남편의 사랑을 독점하길 갈구한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이 자주 오기만을 기다리며 지내는 신세였다.” (P.125)
작자의 남편에 대한 감정과 태도는 모순적이다. 그녀는 당대 통상적 여성들처럼 남편에게 고분고분한 면은 부족했던 듯하다. 부부 사이의 소원과 해소가 반복되는 와중에 간혹 남편이 찾아오는 날에 오히려 퉁명스럽고 냉대하다시피 응대하여 남편을 떠밀다시피 해놓고는 다시금 원망의 신세한탄을 되풀이한다.
“정말 밉살스럽기 그지없어서 목석과 같이 딱딱하게 굳은 채 밤을 새우고 말았다.” (P.170)
“......아무 말 없이 무뚝뚝하게 있자......” (P.207)
“아 어쩌나, 그에 비하면 나는 완전히 마음을 놓고 풀어진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 옷은 너무 오래 입어 흐느적거리는 낡은 것이었고 거울을 보니 얼굴 또한 늙고 볼품없었다. 이번에도 내게 정나미가 떨어졌을 게 틀림없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P.248)
그리고 하쓰세 참배, 나루타키 한냐지 등 외유를 감행하여 가네이에의 태도에 일희일비한다. 이는 본인의 답답한 심경을 해소하고 신불에게 기원하는 동시에 남편의 관심을 유도하려는 목적을 지닌 외유다. 대상회 재계에 대한 작자의 태도가 하쓰세 참배 사건 이후 극적으로 변모하는 장면에서는 절로 실소하게 된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어서....” (P.113)
“......알았다고 하고 혼이 빠지도록 일을 했다......나도 왠지 경사스러운 의식에 같이 참여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마음이 들떴다.” (P.120)
남편과의 관계가 서서히 소원해지면서 일기에는 중권 이후 작자의 비탄과 탄식, 체념의 문구가 끊임없이 반복된다. 작자는 이 글을 자신의 신세 한탄의 용도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마저 들 정도다.
“애당초 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이 무의미하고 아무런 재미조차 느낄 수 없는 쓸쓸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P.208)
“정말 애정이 다 말라버렸구나 생각하니 기가 막힐 뿐이었다......해도 정말 너무하다. 이럴 수가 있나 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P.234)
“이렇게 소원해진 채 지내는 것도 이제는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하면서도......” (P.241)
그나마 띄엄띄엄 있던 남편의 방문도 작자가 교외로 이사를 하면서 완전히 단절되었다. 남편 입장에서는 방문이 물리적으로 불편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사를 통해 작자와 정리할 명분을 얻게 된 셈이다.
이 작품이 하나의 문학으로서 무슨 의의를 가질 수 있는지 되새겨본다. 이미 살펴보았듯이 이 글은 온통 작자와 남편과의 관계 불화에서 비롯된 한탄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사회적 현안과 사건에 대한 인식도 매우 취약하다. 작자를 변호하자면 작자는 헤이안시대의 타 여류 문인들과는 달리 세간 경험이 없으므로 오로지 남편만을 바라보는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여기서 작자와 남편에 대한 개인적 과오의 비판은 당대의 시대적 사회구조적 제약을 고려하면 금물이다.
그들은 모두 제도의 피해자다. 페미니즘적 관점에서 이 작품을 음미하면 어떨까. 시대적 제도적 덫에 걸린 일개 여인인 작자가 자신의 처지와 불행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고백하고 있다. 개인적 체험과 회상을 넘어 당대 여인들의 일반적 삶을 대변하고 있어 천여 년이 경과한 오늘날 독자에게도 당대를 돌아보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내용 이외에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인간적이며 사실적인 슬픔 표현이 인상적이다. 노리아키라 친왕과의 와카 증답은 부부 간 사이가 좋았던 시절의 즐겁고 흥미진진한 추억으로 남았으리라. 아들 미치쓰나와 수양딸의 각각의 구애와 청혼담을 바라보는 작자의 내밀한 심경은 어떤 것이었을지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당대는 와카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자 역시 와카의 명수였고 해서 과장하자면 수많은 와카의 증답이 일기 전체를 도배하고 있다고 할 정도다. 일본 옛 시절의 독특한 정서와 미감의 편린이나마 맛볼 수 있어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