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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나무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63
피오 바로하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7월
평점 :
세르반테스를 제외한 스페인 작가의 글은 처음 읽는다. 그만큼 스페인은 우리에게 가깝지만은 않은 존재인가. 대산세계문학총서에 새삼 고마움을 표한다.
마지막 장을 덮고난 후 소감은 '담담함'이다. 이 단어가 이 소설의 특질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성장소설을 연상시키는 작픔 전개는 마지막에 급작스러운(하지만 당연한) 주인공의 죽음으로 결말난다.
'과학의 나무'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 에덴동산에 있다는 나무이다. '생명의 나무'와는 대조되는 의미에서 말이다.
작가는 안드레스 우르타도라는 젊은이를 내세워 당시 스페인의 사회 깊숙이 자리잡은 부조리와 비합리성, 낙후성을 지극히 담담한 어조로 드러낸다. 한때 세계를 지배하던 대 스페인제국은 무수한 식민지를 상실하고 이제 미국과의 전쟁에서도 완패할 정도로 몰락하고 만다. 사회에 팽배한 상실감과 패배의식 속에 피오 바르하는 분노를 한껏 표출해도 되련만 자제로 이에 대응하며, 후미진 구석을 더 깊고 자세히 그려도 되겠건만 문을 열어서 안을 보여주고는 다시 닫고 만다. 어찌 보면 감질난다고 할 정도로. 이건 작가의 스타일인데, 이또한 피오 바르하가 다른 18세기 작가들과는 비교되는 현대성의 일부라고 한다.
이 작품의 성장소설적 구조는 안드레스가 아버지의 세속성에 대한 강한 불만과 의대생으로 겪고 사색해나가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칸트와 쇼펜하우어에 깊은 영향을 받았지만, "실제적인 해결책은 전혀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애정과 자비심에 기초한 정신적 아나키즘에 경도되어 가고 있었다"(P.60).
우르타도와 삼촌 이투리오스 간의 철학적 담화는 이 소설의 또다른 특징이다. 제4장을 구성하는 이 담화는 작가 자신의 삶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흥미롭다. 이투리오스가 생명의 나무, 즉 주지주의에서 벗어나는 생의 관점에서 인간과 사회를 보는데 반해("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P.160) 안드레스는 이성과 의지의 중요성과 우월성을 신뢰한다.
굴원의 어부사가 연상된다. 세상 사람 모두가 취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고, 모두가 흙탕물에 옷을 적시는데 나만 홀로 깨끗하다. 안드레스가 바로 그러하지 않았을까. 그가 본 스페인 사회는 모두가 취한 사회였다. 그는 아무일 없듯이 그들에 합류하여 취하거나 옷을 더럽힐 수 없었다. 그는 스스로 아웃사이더를 선택한 것이다. 이 시점에서 그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었을텐데, 한줄기 끈이 그것을 지연시켰다. 룰루와의 교제와 결혼이 그것이다. 그녀의 존재는 그가 세상과 맺고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고 그녀를 통해서 그는 세상과 최소한의 관계나마 형성할 수 있었다.
그는 룰루의 염원과는 달리 아이을 낳는데 찬성하지 않았다. 어지럽고 희망없는 세상에 또다른 비주류를 잉태한다는 것은 비극이고 무책임한 짓이다. 출산은 사산으로 끝났고 룰루도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그도 세상을 버린다. 룰루라는 한가닥 실마저 끊어진 마당에 생의 이유를 상실한 것이다.
""너무 안됐어! 이 친구, 이제 아주 잘나가고 있었는데!" 이투리오스가 외쳤다. 그들이 하고 있던 말을 들은 안드레스는 영혼이 꿰뚫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P.288)
그는 잘나가고 있던 게 아니었다. 그저 근근이 연명을 하고 있었을 뿐.
여러모로 특이한 소설이다. 감정을 고조시키기 위한 전개의 고조와 클라이막스를 기대하다가는 실망하기 딱이다. 문학작품에서 기대하는 감정의 몰입도 어울리지 않는다. 담담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뭔가 독특함이 묻어나오는 것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