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명물교수 함토벤
함신익 지음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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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인기몰이로 클래식 음악계는 모처럼 들떠있는 듯싶다. 우습지만 드라마 초창기에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에서는 김명민의 연기를 제외한 모든 부분이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극단적으로는 시청의 값어치가 없다는 일각의 주장도 있었다. 그들은 다중을 위한 드라마가 아닌 매니아를 위한 정통 클래식을 보고 싶었던 것일까.
 
하기사 <베토벤 바이러스>가 원조는 아니다. 일본의 만화 원작으로 드라마화되어 대성공을 거두었던 <노다메 칸타빌레>가 자극제가 되었을 것이다. 특히 지휘자 치아키의 캐릭터는 이 책 <함토벤>을 읽는 도중 가끔씩 오버랩 되곤 하였다.
 
솔직히 함신익이 얼마나 대단한 인물인지 잘 모른다. 음악계 단편으로 대전시향을 맡아서 괜찮게 이끌다가 운영진과의 불화로 그만두었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그나마 귀에 익은 베를린필이나 빈필 또는 시카고나 뉴욕필을 이끈 것도 아니니 세계적 명성을 지닌 음악가도 아니다. 좀 냉정한가?
 
책장을 넘기면서 나의 편견이 얼마나 얄팍한가를 절감하게 되었다. 음악 그 자체보다는 외피와 포장에만 현혹당하는 가련한 존재. 실력에서는 뒤질지 몰라도 열정과 헌신만 있다면 얼마든지 감동을 자아낼 수 있는 것이 예술이다. 피곤한 프로보다는 뜨거운 아마추어가 더 나을 수 있다는 점은 일찍이 청소년 오케스트라 공연을 통해 느낀 사실이다. 강마에가 이끄는 석란시의 프로젝트 오케스트라가 그러하고, 치아키가 지휘한 S 오케 또한 그러하다. 그들은 음악에서 음악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욕심부리지 않는다.
 
함신익도 달동네 소년에서 예일음대 교수가 된 것은 그야말로 지칠 줄 모르는 음악에 대한 사랑과 노력의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양교회 합창단을 이끌고 경연대회에 나간 시절의 회상이 흥미롭다. 경연장에서는 남이 무조건 나보다 더 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P.35)고 한다. 그래서 자신감이 줄어들고 결국 연주를 망치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노다메>에서 치아키가 지휘 콩쿨에 나가서 라이벌이 지휘하는 <틸 오일렌슈피겔>을 듣고 다급해져서 스스로 무너지는 장면이 절로 연상된다. 남에게 좌우되지 않는 자기만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 그것은 비단 음악만이 아니라 어떤 경합에서도 마찬가지 요건이리라.
 
성공한 사람은 나태하지 않다. 기회는 막연히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고(P.37)고 함신익도 말한다. 그는 자신의 온 존재를 던져 그 일로 돌진했다고 한다. 그가 미국 유학시절 레스토랑의 웨이터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할 때의 사례는 이를 잘 보여준다.
 
흔히 성공한 사람, 남보다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자신의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약하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반면 남들의 눈에 그들 자신이 어떻게 비치는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한다. 스포츠 스타 출신의 감독이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이를 입증한다. <노다메>의 치아키도 남 못지않은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다. 피아노면 피아노, 바이올린이면 바이올린, 거기다가 지휘까지.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완벽성을 단원에게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가 역풍을 맞는다. 토스카니니가 다시 태어났다면 필시 지휘계에서 제명당했을 것이다. 강마에가 십년 동안 국내 무대에 서지 못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한때 함신익도 자인한다. 자신도 같은 부류였음을. "연습 중에 틀리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함으로써 내 능력을 인정받으려 했는지도 모른다"(P.19)고.

내가 이 책에서 흥미롭게 받아들인 부분은 저자 자신의 화려한 성공담이 아니다. 사회에는 외관상 저자 자신보다 더 성공한 이들이 모래알만큼이나 많다. 음악도가 맨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자신의 실력을 배양하여 당당하게 우뚝 서는 과정과 그 이면사를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유복한 집안의 천재 연주자면 성공하지 못한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함신익은 50줄에 막 접어들었다고 한다. 지휘계에서는 과거에 오십대도 아직 원숙하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현재진행형이다. 소박한 바램은 이 책이 회고담이 아니라 중간 쉼표의 역할을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배가 고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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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근대나무 2011-09-01 17: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2009.1.20 마이페이퍼에 쓴 글을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