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음반정보
- 레이블: STOMP
- 음반번호: EKLD 0405
- 수록시간: 49:26
2. 연주자
- 피아노: 박종훈 (CHONG PARK)
1) 보헤미안의 영혼을 가진 피아니스트 박종훈
피아노라는 악기는 동양인에게 가혹하다. 서양에서 만들어진 악기들이 다 마찬가지겠지만 피아노가 특별히 더 그렇다. 보통의 체격과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괴물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괴물을 압도한다는 느낌을 준 우리나라 피아니스트는 거의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눈앞에 갑자기 '돌연변이'가 나타났다. 2003년 교향악 축제에서 무대로 걸어나오는 박종훈을 처음 보았을 때의 느낌이 바로 그랬다. 저 정도의 체격이라면 혹시나 하는 기대로 그의 연주에 귀를 기울였고 결과는 역시 예상한 그대로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당당함과 자신감은 건방지다 싶을 정도였지만 그 정도의 기량과 그 만큼의 힘이라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오히려 그것이 커다란 가능성으로 여겨졌다.
전혀 거리낌이 없고 주저함도 없었다. 확실히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이제 동양과 서양의 차이는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닌 듯하다. 서양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해서 그냥 따라야 된다거나, 아니면 기를 쓰고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어 보였다. 그저 스스로가 느끼면 그만이고 스스로에게 좋은 일이면 된다. 그래서 남들이 함께 느끼고 같이 좋아해 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여유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누구만큼의 고민이 없고 남들 이상의 고통이 없었을 리 만무하지만 그것에 얽매이거나 연연하지 않고 오늘을 꿋꿋이 딛고 서서 앞날을 향한 큰 걸음을 성큼 내딛고 있다.
본고장에 주눅 들지 않는 자부심이라면 윤디리나 랑랑 같은 중국 피아니스트들도 그 못지 않지만 그들에게는 당장의 화려함 뒤에 남아야 할 여운이 없다. 그런 점에서 박종훈의 은근함과 느긋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임에 틀림없다. 집요하리만치 빠져든다 싶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한 곳에 집중하지만 절대로 집착은 아니다. 무대 자체를 무척이나 즐기면서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다. 거침없이 차고 나가면서도 잠시의 주저함을 잊지 않고 무대를 가득 채우면서도 한 뼘의 여백을 남겨둔다.
리스트가 제격이다 싶었던 것이 엊그제인데 벌써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의 그림'이라면 좀 성급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연주를 들어보니 그게 아니다. 게다가 이름이 생소한 무소르그스키의 소품들까지도 들어 있어 얼핏 기교와 힘을 자랑하려는가 생각도 했지만 한곡 한곡이 이렇게 담백하고 깔끔할 수가 없다. 농익은 감칠맛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힘이면 힘, 테크닉이면 테크닉, 어느 하나 기울지를 않는다. 이 정도의 침착함이라면 다음 행보를 재촉하지 않아도 이미 무엇인가를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을 듯도 싶다. 기교와 힘이라면 이미 관심 밖에 있다는 듯이 어쩌면 그렇게 담담하고 차분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바로 얼마 전 리스트를 연주할 때만 해도 감정을 있는 대로 몽땅 다 실어서 한 번에 폭발시키더니 이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짧게 이어지는 곡마다의 다양한 주제를 그림처럼 펼쳐 보이며 이야기처럼 자근자근 풀어가고 있다. 이렇듯 엄청난 변신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이어가는 투가 능청스러울 만치 얄밉다. 꼼꼼하게 따져 듣지 않더라도 마음만 열고 있으면 순간 눈앞에 장관이 펼쳐지며 가슴속까지 후련하게 뚫린다. 미끄러지듯 짧고 고르게 이어지는 섬세한 움직임에 귀를 기울이면 머리끝이 쭈뼛하는 전율마저 느끼게 된다.
리스트의 초상화에서처럼 귀밑으로 찰랑거리던 단발머리가 어느새 꽁지머리로 바뀌었다. 머리카락이 자라고 있는 만큼이나 음악도 점점 커져가고 있다. 머리카락이 자라면 머리 모양이 바뀌고 얼굴 모습이 달라지는 것처럼 그가 품고 있는 음악의 세계도 그렇게 차원을 달리하게 될 것이다. 단발머리도 어울리고 꽁지머리도 자연스러운 것이 박종훈의 매력인 것처럼 무소르그스키도 제격인 것이 박종훈의 그릇이기도 하다. 다음에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타날 수도 있다. 머리카락이 거추장스럽다고 삭발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바흐에 몰입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고 그 끼를 주체하지 못해 재즈나 제3세계의 음악에 빠져들게 될 수도 있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세상에 지루하지 않은 한 연주자를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도 즐겁다. 자칫 위태로울 수도 있는 끼를 변덕에 맡기지 않고 이런 저런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한 젊은이가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든든하고 뿌듯한지 모르겠다. - 홍승찬 교수 (한국 예술 종합 대학)
2) 박종훈
탄탄한 연주 실력으로 평단의 지지를 받고 있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은 이태리 산레모 클래식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우승하면서 현재 이태리를 중심으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최근 Settimane Mozartiana, Festival suoni e colori in Toscana, I concerti della Domenica, Verona 등 다수의 음악제 출연과 Madrid Royal Casino 연주, The National Philharmonic Society of Lithuania 연주를 비롯 의욕적인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는 서울에서 태어나 세 살 때 바이올린, 다섯 살부터 피아노를 치기 시작했고 15세에 서울 시향과 차이코프스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을 협연하면서 데뷔하였다. 그 이후 KBS 교향악단, 성 페테르부르그 심포니 등 유수의 국내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였고, 또한 아시아, 유럽, 미국 40개 이상의 도시에서 독주회, 실내악 연주를 가진 바 있다.
2000년 이태리 산레모 클래식에서 우승하였으며, 중앙음악콩쿨(1위), 동아음악콩쿨(2위) 이 밖에도 일본 다카히로 소노다 피아노 콩쿨에서 1위로 뽑혔으며, '시타 디 세니갈리아' 콩쿨, 슬로바키아 훔멜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입상하였다.
국내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박종훈은 2002년 피아니스트 김대진과 듀오 콘서트를, 2003년 기타리스트 이병우와 듀오 콘서트를 가진 바 있으며 소프라노 신영옥의 MY SONGS 편곡 녹음 작업 참여와 순회 연주 참가 등 최고의 연주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박종훈은 연세대 음대에서 이경숙, 줄리어드에서 세이모르 립킨을 사사하였고, 이태리 이몰라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라자르 베르만을 사사하였다.
2001년 리스트의 피아노 곡으로 구성되어 있는 데뷔음반 <Liszt Piano Works>을 발표하여 호평을 받은 바 있으며, 이어 박종훈의 자작곡이 담겨 있는 <안단테 텐덜리 (Andante Tenderly)-유니버설 뮤직>를 선보인 바 있다.
[내지에서...]
3. 녹음
1) 녹음일자: 2004.3.25~26
2) 녹음장소: Kum Ho Art Hall
4. 프로그램
01. M.Moussorgsky: Impromptu passionne (2:52)
02. M.Moussorgsky: Douma (4:20)
03. M.Moussorgsky: Meditation (3:12)
04. M.Moussorgsky: A tear (2:58)
05. M.Moussorgsky: Gopak of joyful fellows (1:41)
06~21. M.Moussorgsky: Pictures at an exhibition
재즈 피아니스트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내 통념을 산산조각 낸 음반이다. 덜 유명한 소품들에서 의외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발견한 것도 소득이다. 박종훈의 전람회는 일단 발걸음이 가볍다. 러시아적 무거움과 환상성을 갖춘 것은 아니지만 눈부신 지중해 스타일의 연주도 재밌게 들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