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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류재화 옮김 / 아모르문디 / 2017년 8월
평점 :
저자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문학 평론가이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면 제법 여러 권의 책이 출판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프란시스코 고야에 관한 여타 미술 분야의 도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고야를 화가의 차원이 아니라 사상가로 인식하고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는지를 탐색한다.
고야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괴테나 50년 후 등장한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뒤지지 않는 심오한 사상가였다. (P.33, ‘고야, 사상가’)
고야가 살던 시대를 살펴봐야 그의 그림과 이 책에서 보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고야는 괴테, 베토벤과 동시대 인물이었고,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였다. 평민의 신분에서 출발하여 왕실 수석화가로 출세하였지만, 계몽주의 성향을 지닌 개혁 세력과도 끈끈한 친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술 애호가는 고야의 회화 작품, 특히 거대하고 화려한 프레스코화, 태피스트리 밑그림, 초상화를 일반적으로 선호한다. 말년의 ‘검은 그림’도 그 충격적 주제와 색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검은 그림’을 제외한 일반적 회화 작품은 거의 거론하지 않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고야가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지 않은 그림이라고 판단해서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고야가 생계와 출세를 위해 외부의 주문에 응하여 그린 상품일 따름이다. 물론 그것들 가운데서도 다른 화가와는 구분되는 고야만의 독자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유명한 왕실 가족 초상화를 고야처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누가 또 있겠는가.
저자는 고야의 삶과 예술세계에서 세 번의 격변이 찾아왔다고 기술한다. 첫 번째는 청각 장애의 발발, 두 번째는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 세 번째는 나폴레옹의 침공과 스페인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풍파의 시대 상황.
병과 새로운 장애로 인해 이제 주문받은 그림이 아닌 다른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오로지 내적 필요성과 표현 욕구에 추동되어 그리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실로 중대하여, 모든 편지에서 언급된다. (P.66, ‘병과 그 영향’)
성공적인 화가로서 잘 나가던 고야를 멈춰 세운 청각 장애는 고야가 자신의 외부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업적 수요에만 따라 그리던 그림에서 스스로의 내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은 다른 책에서는 지나가는 수준으로만 다루고 그의 그림 세계에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요소다. 토도로프는 실연 이후 고야가 이성의 억제에 숨죽였던 비이성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험하고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일련의 마녀 그림, 정신이상자, 감옥 등을 그린 그림과, 판화집 <변덕들>이 그러하다.
1797년 봄, 감정적 단절은 그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그후로 그는 바로 그 자신을 표현하고자 애쓰게 된다. 상상적 형태들이 고삐가 풀린 듯 그의 붓 아래로 몰려든다. (P.85, ‘치료와 재발, 그리고 알바 공작부인’)
나폴레옹과 스페인 독립 전쟁, 이후 페르난도 7세의 집권은 정치사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다. 계몽주의 개혁 세력과 보수적인 귀족과 종교의 반동 세력의 대치는 프랑스 군대의 침략으로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념적으로는 프랑스를 지지하지만, 애국심으로는 프랑스에 저항해야 하는 모순에 처한 개혁 세력의 고뇌, 프랑스군의 폭력적 지배가 보여 주는 계몽주의 이념의 한계, 페르난도 7세의 집권 이후 표출하는 반동 정치의 혼란. 여기서 고야는 무지, 종교, 미신, 광기와 같은 비이성의 폭력성과 더불어 이성의 폭력성도 경험하면서 어느 한쪽도 긍정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부닥친다. 인간성을 향한 의문과 불신, 고발을 폭로하는 대표 작품이 판화집 <전쟁의 참화>이다.
고야는 이제 계몽주의 사상이 침략과 억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폭력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계몽주의 사상의 이름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폭력을 자행했다. [......] 이성의 잠만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각성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P.160, ‘나폴레옹의 침략’)
고야 말년의 ‘검은 그림’ 창작 동기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저자는 이것을 치유 목적의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가 겪은 인간성의 불신과 혐오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그림을 그린 후, 그는 귀머거리의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일종의 미술치료인 셈이다. 판화집 <어리석음>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한다.
고야가 검은 그림들을 누구하고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공유하려 하지 않은 것은, 이 그림들을 창작하는 행위가 곧 자기 치유의 작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찬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은 그림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바로 그 그림들을 그렸다. (P.253-254, ‘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
치유의 덕택일지 고야 말년의 작품은 보다 밝고 긍정적이다. 주제와 색감, 표현 면에서. 보르도에서 그린 <젖 짜는 여인>이 주는 우아함과 평온함이 눈에 띈다. 활기차고 웃음 띤 노인이 춤을 추거나 맨발로 그네를 타는 말년의 데생 작품은 해탈과 초월의 느낌마저 자아낸다.
저자가 고야의 예술세계에서 특히 놀라워하면서 주목하는 점은 공식적 그림과 비공식적 그림 창작을 긴 세월 분리하여 병행하였다는 사실이다. 공식적 세계에는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대다수의 화려한 작품이 속한다. 왕실과 귀족 초상화, 마하 연작, 그리고 1808년 5월 연작이 그러하다. 비공식적 창작에는 판화집, 데생집이 속한다. 오늘날 사상가로서 주목받게 되는 작품은 후자의 영역이다. 특히 저자는 고야의 데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밑그림의 도구가 아니라 일기와도 같이 고야의 내면 사고와 감정을 반영하는 실제적 표현 수단으로 인식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야처럼 이원화된 예술세계를 병행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한다.
프란시스코 고야를 잘 알지 못한 때에 다른 유명한 화가와 비교하면 그에 관한 책이 시중에 상대적으로 많이 나와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장애를 극복하고 드물게 장수하며 안주하지 않고 회화와 판화라는 두 영역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점. 나아가 명성이 당대에 국한된 게 아니고 근현대에 와서 더욱 높아갔다는 점, 위대한 예술가를 넘어 사상가로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는 점을 볼 때 그에 관한 세인의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사상가 고야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의미 깊은 역작이다. 특히 <변덕들>과 <전쟁의 참화>를 깊이 있게 검토하고 주요 작품을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독자가 놓치거나 간과하기 쉬운 개별 판화를 유심히 살펴보고 이해의 심화를 가능케 한 점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덕목이다.
세상은 건강/병, 이성/광기, 낮/밤, 빛/어둠처럼 명확한 대립을 이루는 범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고야는 그림을 통해 그 둘의 상호 침투성과 불가분성을 보여 주고자 애쓴다. 둘을 나누는 경계는 투과성을 띤다. 이성과 비이성은 인간의 특성이며 똑같은 지위에 있다. (P.120, ‘‘변덕들’의 해석’)
책 내용이 비교적 전문적이기에 화가 고야를 비로소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화가 고야의 삶의 전반을 추적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창작 영역도 저자의 관심 범위 밖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도판을 수록하였지만, 언급하거나 분석하고 있는 그림 전체가 아니기에 다소 불친절하고 아쉬운 면도 존재한다. 다만 고야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거나, 몇 권의 관련 책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인간성과 나아가 사회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의도하고 지향했던 결과라고 개인적으로 이해한다.
고야가 예견했고 토도로프가 증언하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뚜렷한 경계 없이 부유하는 ‘미몽’과 ‘꿈’, ‘마술’과 ‘주술’이 아니라, 전체주의 같은 국가적 장치로 일제 소탕하는 가면 쓴 ‘이성’이다. (P.327,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