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변의 조문객 ㅣ 쏜살 문고
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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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작>

폴란드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소녀

악마의 눈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

변신

유프라시아

강변의 조문객

순례자들

꿈

 

메리 셸리는 <프랑켄슈타인>이 아니더라도 고딕, 모험, 환상 문학을 선호하는 듯싶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9편의 단편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개인과 사회의 일상적 단면을 표현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악마와 초현실을 다루거나 전쟁, 모험, 난파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타국을 지역적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영국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그리스, 스위스, 프랑스가 등장한다. 시대적으로도 중세와 현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또 다른 장편인 <최후의 인간>은 하물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먼저 인상에 남는 단편은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와 <변신>이다. 전자는 불멸의 영약을 마셔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누구나 다 바라 마지않는 영생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님을 말해준다. 나만 홀로 청춘인데, 가족과 친구 모두가 늙고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면, 누구를 사랑하고 교감을 할 것인가, 어차피 그들도 곧 이별할 텐데. 그런 면에서 불멸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할 것이다. 카렐 차페크의 <마크로풀로스의 비밀>과 제재 면에서는 비슷하다.

 

죽음을 바랐지만 절대로 죽지 않았다. 불멸의 인간. 야망도 탐욕도 생기지 않았고, 심장을 괴롭히는 열렬한 사랑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기에 사랑은 나를 괴롭게 할 뿐이었다. (P.119,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

 

후자는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를 연상시킨다. 그림자든, 육체든 자신에게 속한 고유의 것을 악마와 거래한 치명적인 대가를 여기서 보여준다. 귀도는 방탕한 생활의 극단에 내몰려 보물 상자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몸을 사흘간 빌려주기로 거래한다. 신의를 지킨다면 그것이 악마이겠는가. 귀도의 몸을 쓴 악마는 개과천선을 위장하고 약혼녀와 결혼식을 치르려 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영원한 파멸인 동시에 줄리엣의 선한 영혼마저 타락시키는 씻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세상사의 우여곡절은 인생을 결코 평탄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인 간, 가족 간 무수한 이별과 곡절이 중첩되어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제자리에 돌아오게 될 때 그것은 우연이자 기적이 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비극적 결말로 귀결될 수 있지만 때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악마의 눈>과 <순례자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자는 그리스의 해안가를, 후자는 스위스의 산악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모험과 약탈, 은혜와 원수, 복수가 켜켜이 쌓이는 가운데, 악마의 눈으로 불리는 흉포한 산적 드미트리는 어릴 때 죽은 줄로 알았던 딸과 손주와 재회한다. 기사 부르크하르트는 사랑하는 딸이 적대적인 이웃 영주의 아들과 비밀 결혼을 하자 배신감에 칩거 생활을 한다. 세월이 흘러 늙은 영주는 모든 은원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화해하고자 하나 이미 방안이 없다. 순례자를 가장한 외손주의 방문과 외손녀와 젊은 공작의 결혼은 독자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주는 쫄깃함과 행복함을 안겨준다.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남녀 간 사랑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근원적 제재가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도 <폴란드인의 사랑>, <보이지 않는 소녀> 그리고 <꿈>이 이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성향답게 아름답고 순탄한 사랑이 아니다. 음모와 모험, 유령과 환상, 고딕풍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을 감싸고 있어 소재의 진부함을 색다르게 다루고 있다. 전자는 이탈리아, 가운데는 영국, 후자는 프랑스를 각각 지역적 배경으로 한다. 특히 전자와 후자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전쟁, 프랑스의 종교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다. 내용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다채롭게 흘러가지만 결말은 동일하다. 사랑의 성취와 승리!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인을 안았다. 보이지 않는 소녀가 바로 로지나였다. (P.67, 보이지 않는 소녀)

 

그는 위험천만한 침상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그녀의 새털 같은 몸을 떠받았다. 그녀가 눈을 뜨고 연인을 보았다. 운명의 꿈을 꾸는 내내 자신을 지켜보았고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연인을. (P.248, 꿈)

 

나머지 단편인 <유프라시아>와 <강변의 조문객>도 작품 간 유사성을 지닌다. 이 역시 사랑을 다루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이 주는 슬픔과 영향이다. 전자는 그리스 독립전쟁, 후자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자는 적군에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출하지만 누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오빠, 후자는 난파당한 배에서 먼저 구출되기를 거부하고 끝내는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힌 딸. 콘스탄틴과 클라리스/엘렌은 누이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 사람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전장에서 발휘하고, 클라리스/엘렌은 외딴곳 오두막에 홀로 고적한 은둔의 삶을 영위한다. 두 작품 모두 그들 주위에 머물렀던 사람의 목격과 증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클라리스/엘렌의 슬픔이 독자에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육친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자책과 비난과 자기부정의 철저성이 자아내는 극단적인 비극성에 있다고 하겠다.

 

병과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경험이 내 절망에서 독을 빼 주었어. 네가 본 슬픔과 번뇌는 누그러진 아픔과 경건한 희망으로 녹아내렸지. 난 이제 비참하지 않아. 이제는 말이야! (P.194, 강변의 조문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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