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세계명작 완월회맹연
정창권 지음 / 월인 / 201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완월회맹연>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대하소설의 존재를 알게 된 적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 알고 읽고 싶었으나 현대어본이 없어 아쉽게 생각하고 훗날로 미루어 두었다.

 

장장 180180책의 대하소설인 만큼 모 출판사에서 간행 중인 완역본이 완성된다면 18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량인 건 사실이다. 이 책은 <완월회맹연>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한 권으로 압축하였다.

 

허허, 완월대에 올라 달빛이나 구경할까 했더니 뜻밖에도 자녀들의 정혼이라.... (P.17)

 

<완월회맹연>의 표제는 완월대 연회에서 맺은 약속의 의미를 지닌다. 정씨 집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완월대에서 정씨와 장씨, 이씨 친우가 서로 자식을 결혼시키기로 맹세한다.

 

정씨 집안의 적장자 정잠은 대를 잇기 위해 아우 정삼의 장남인 조카 인성을 양자로 들인다. 후처 교완은 자신의 소생인 아들 인중이 인성에게 밀리자 분개하여 어떤 수단으로든 인성을 제거하려고 한다. 교완과 시녀, 하인들이 처음에 시작하였지만 나중에는 인중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전처소생과 계모 간 갈등은 고전소설의 단골 소재이지만, 근본적으로 집안의 후계 구도와 맞물려 있기에 계모는 더욱 치열하게 노릴 수밖에 없음도 또한 당대의 현실이다. 처음에는 인성을 목표로 하는데, 인성이 자염과 혼인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아이마저 제거하는 것으로 목표를 확대한다.

 

인성이 정부의 계후가 되어 인중으로 하여금 무용지물이 되게 했도다. 내 반드시 인성을 없애고 인중으로서 계후가 되게 하고 말리라!” (P.66, 교완)

 

인중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 남매 간의 우애는 돈독하다. 심지어 인중의 아우 인웅마저 어머니와 형의 그릇된 행동에 반대하고 바로잡으려고 애쓸 정도다. 이 소설에서 인성은 거의 성인군자에 가깝다. 충과 효에 지극하고, 탁월한 풍모에 반한 뭇 미인의 구애에도 한눈팔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안타까운 여성인 만초란과 석순영의 슬픔과, 해릉공주의 비극은 인성과 무관하지 않다.

 

정씨 집안이 모범적인 인덕의 표본이라면, 정잠의 친우인 장헌은 범인 또는 소인배의 전형이다. 출세를 위해 권력자에게 빌붙고 정혼을 약속한 딸을 왕족의 첩으로 기꺼이 내주려고 할 정도다. 예비 사위인 인광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짐짓 외면하고 여색을 탐하여 월염을 첩으로 취하려고 시도한다. 변장한 인광에게 두드려 맞고 나중에는 계단에서 실족하여 해괴망측한 행동으로 체면을 구기고 사위를 난처하게 만든다. 부인 박씨 또한 남편 못지않아 혼인 후 정씨 집안을 향해 온갖 욕설과 창피한 행동을 서슴지 않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인광이 부인 성완을 아낄 리 없다. 마지못해 혼인하였지만, 처가의 실덕에 질린 인광은 부인을 박대하고 내쫓으려고 하며 심지어 자결을 요구할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안쓰럽고 딱한 대목이 바로 흠잡을 데 없이 고결한 성완이 친정과 남편 사이에서 어찌할 방안을 몰라서 고통받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인광이 너무한 건 사실이다.

 

장헌의 아들 세린과 부인 여씨의 관계 역시 봉건시대의 풍습이 낳은 안타까운 사례다. 자식의 의사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종실과 인척 관계를 맺기만을 바라면서 추녀 여씨와 강제 결혼시키는 장헌의 선택은 비참한 결말로 이어졌을 따름이다. 세린과 여씨 중 누구를 탓하겠는가. 미인을 갈망하는 세린에게 어쨌든 결혼했으니 여씨에게 만족하라고 하겠는가. 여씨는 무슨 잘못으로 시집와서 이리 박대와 수모를 견디라고 하겠는가. 여씨의 언행이 거칠어진 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혼인에 귀인하게 된다. 부부는 등 돌리면 남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차라리 원수다. 대체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서 대표적인 새드 엔딩이다.

 

소녀 장부와 더불어 무슨 원수를 지었길래, 이십 년도 못 살고 몸을 마치게 되었나이까? 죽으나 사나 장부와 원수가 되었으니 더 이상 이에 머물 바 없습니다. 빨리 소녀를 집으로 데려가 모친이나 보고 죽게 하소서.” (P.176, 여씨)

 

조선시대 대하소설은 가문 소설의 구성을 지닌다. 이 소설 역시 정씨 집안의 4대를 축으로 진행되는데, 90세 넘어까지 장수하는 태부인이 집안의 중심을 이룬다. 주요 사건이 큰며느리 교완의 시기와 질투, 음모. 그럼에도 교완을 친모처럼 극진히 섬기는 인성과 자염 부부. 친정과 남편 인광 사이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견뎌내는 성완. 이러한 구도로 소설은 진행되기에 작중인물이 다수 등장하지만 전체적 작품구도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우리네 고전소설의 특징인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위로는 몽골과 아래로는 안남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중국 전역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교완과 인중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며, 장헌 또한 실덕을 깨닫고 친우와 가족에게 사죄하며 훈훈한 마무리를 한다.

 

<완월회맹연>의 저자는 18세기 초중반 이씨부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대한 작품을 혼자 창작한 건 아니고 시작은 이씨부인이 하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뼈를 늘리고 살을 보태어 오늘날 이처럼 방대한 소설로 남게 된 것이다. <완월회맹연>, 그리고 유사한 장편 가문 소설의 존재는 우리네 현대문학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대하소설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저자의 논평은 새로운 인식이다.

 

어쩌면 이 작품은 17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가문의식을 집대성하여 완성시킨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가문의식과 여성 가장의 모습은 <토지><미망>, <혼불> 같은 오늘날의 대하소설에까지 이어져 오는 등 우리 소설사에서도 큰 맥을 형성하고 있다. (P.193, 해제)

 

언제가 될지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지만 <완월회맹연> 전권을 꼭 읽어보고 싶다. 아마 두 번은 읽지 못할 테니 단순한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필생의 과업이라고 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