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 키워드 한국문화 2
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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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중흥을 일구었던 영조와 정조의 찬란한 시대가 갑작스럽게 스러진 후 조선왕조는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때 이른 정조의 죽음으로 인한 어린 순조의 즉위는 왕권 약화와 세도정치가 발호한 빌미가 되었다.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였고 꽤 많은 지지층을 모았다. 이를 다룬 소설과 영화도 등장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 정도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정조와 노론 벽파는 팽팽한 대립 관계다. 왕이지만 전권을 휘두를 수 없고, 파당을 형성하여 왕권을 능히 견제할 수 있는 신하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동정하는 무리와 옹호하는 무리의 당쟁. 정조의 재위는 왕권의 기반을 강화하고, 노론 벽파를 견제하면서 왕조를 재건하려는 분투의 기간이었다면 과장일까.

 

정조의 어찰과 심환지의 문집, 그리고 <정조실록>을 비롯한 정사, 이 세 가지 사료를 견주어볼 때, 정조는 공식과 비공식의 두 가지 경로를 이용하여 심환지와 접촉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P.58)

 

2009년에 공개된 정조의 어찰은 그런 면에서 역사 이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350여 통의 비밀편지. 그것은 단순한 안부 묻는 성격을 넘어서는 서신 정치 또는 공작 정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는 국정의 시시콜콜한 사항을 사전에 심환지에게 묻거나 본인의 뜻을 전하면서 따르도록 요구하거나 다른 신하들의 행위를 날카롭게 평가한다. 정치, 인사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해 누가 어떤 식으로 주장을 펼치도록 조정한 흔적도 역력하다. 배우를 선발하고 연기와 대사를 배정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무대를 지휘하는 연출자의 모습이 바로 정조다.

 

여기서 우리의 역사 이해는 혼란스럽다. 비밀편지가 집중된 정조 시대 후기의 공식 사료의 내용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것인지. 심환지는 정조의 어명을 거스르고 비밀편지를 파기하지 않았다. 심환지 외에 얼마나 많은 당대 신하와 정조가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식 사료 독해보다는 이면의 정치 역학이 본질에 가까움을 우리는 계속 의심해야 하게 되었다.

 

정조가 보낸 비밀편지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막후에서 비밀스런 지시와 조정을 주도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수완과 동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P.11)

 

이 책에 따르면 비밀편지는 내용상으로도 다방면의 해석을 요하는 흥미로운 사항을 많이 포함하며, 문장 면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띈다. 짧은 시간을 내어서 급하게 써 내려간 글이다 보니 수사성을 배제하고 직설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문체반정의 당사자인 자신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소품체의 문장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두식 표기의 사용은 물론 한글 어휘를 그대로 노출하는 등 구어적 표현도 드물지 않다.

 

이 비밀편지의 공개를 통하여 우리는 모범적 군주 정조가 아닌 노회한 정치가 정조의 이미지를 새로이 떠올리게 되었다. 신하들을 인형처럼 자유자재로 조종하고자 하였던 정조. 공식 석상에서는 노론 벽파에게 공격적으로 보였던 이면에는 이처럼 어르고 달래면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풀어나갔던 것이다. 임금과 어찰을 교환한다는 것은 신하로서는 무한히 영광스러운 일이며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일 테니 더더욱 임금에게 협조적으로 되기 마련일 것이다.

 

그런데 심환지는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어찰을 보관하였던 것일까? 어쩌다 한두 통이 아니라 거의 전부를 수신일시까지 표시하며 일목요연하게 남겨둔 까닭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단순히 어찰의 영광을 오래 보존하려는 목적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정치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봐야 하는데, 여기서 심환지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정조와 노론 벽파는 결코 한배를 탈 수 있는 정치적 동지는 아니다. 정조는 심환지를 통하여 벽파를 통제하려 하였고, 심환지는 정조의 비밀명령을 따르고 호응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여차하면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물증을 손에 쥐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어찰에서 정조가 심환지의 무심함과 부주의함을 수차 지적하고 있음은 심환지가 정조가 원하는 그대로 항상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봐야 할 것이다.

 

<어찰첩>에 보이는 정조의 성격은 다혈질적이고, 흥분을 잘하며, 조급하다. 정조는 이러한 자신의 성격을 태양증이라고 자체적으로 분석했다. 그 때문에 화병도 자주 나고 가슴의 심한 통증도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P.97)

 

이 어찰을 통해 저자는 정조의 사망 원인이 독살보다는 자연사, 즉 병사에 가까움을 짚는다. 편지에서 정조는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쁨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병세를 스스로 진맥까지 하고 있다. 사십 대 중반이라면 당대 기준으로는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임금으로서 국정을 총괄하고, 반대파 신하들과 대립하는 가운데 화성 신축과 문예부흥을 끌어내는 다사다난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또한 격심하였을 것이다. 타고난 기질과 군주 지위가 갖는 막중함이 결부되어 정조의 병을 심화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이 어찰의 존재로 독살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한층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다 명백한 근거 제시가 필요할 것이다.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가 굳이 독살을 감행할 명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정조의 비밀편지는 조선 후기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사고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이제 우리는 정조 시대 공식 사료가 기록하는 역사상의 사건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워졌다. 정조의 진정한 의도는 공식 사료에 있을까 아니면 공개 또는 비공개된 비밀편지에 숨어 있을까. 흥미로운 동시에 더 깊은 노력과 연구를 요구하는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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