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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
프로코피우스 지음, 곽동훈 옮김 / 들메나무 / 2015년 11월
평점 :
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목받는 인물이다. 황제로서 업적이 뛰어나기에 특별히 대제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니. 그는 일시적이지만 지중해를 다시 로마의 내해로 만들었고, 서양 3대 법전으로 손꼽히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였고, 성소피아 성당 같은 불멸의 건축물을 남겼다. 그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마지막으로 재건하였고, 그의 사후 동로마는 결코 이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제왕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그런데 프로코피우스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비사>에서 은밀히 밝힌다. 이 책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동시대 인물로서 <전쟁사>와 <건축론>으로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찬미했던 공식 역사가가 남긴 일종의 비망록이다. 원래 이런 유형의 기록이라면 공식 역사서로는 남기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드러낼 수 없던 진실과 숨겨진 일화를 기대하기에 흥미진진함과 아울러 상당한 사실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프로코피우스는 이 책에서 황제와 황후, 장군에게 무자비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정복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완전한 애처가이자 공처가로 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주변 사람 모두를 포기할 정도의 바보라고 밝힌다. 부인이 그 정도의 사랑과 헌신을 받을 만하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그 부인은 외도를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인물임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장군의 형편없음을 더욱 부각한다.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은 이 인간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웃음거리로 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 대고 ‘멍청이’라고 모욕했으니, 이제야 벨리사리우스의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P.96)
프로코피우스는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비서로 일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준 셈이다. 황제와 황후에 대해서는 비난의 정도가 심하여 그들을 차라리 악마로 묘사할 정도니까 말이다. 두 사람은 로마제국을 파멸시키고 사람들을 망치기 위해 작정한 극악무도한 악한들이라고 기술한다. 테오도라 황후의 경우 한술 더 떠 그녀의 출신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하고 타락하며, 잔혹한 여성으로 폄하를 아끼지 않는다.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번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고백하기를, 그가 남편인 사바티우스의 아들도 아니고, 실은 어떤 남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P.143)
그녀는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남자들의 입에서 일반적인 음란의 차원을 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P.124)
맹목적일 정도로 과도한 인신공격은 이 책의 진실성을 때로 의심케 할 정도이다. 저자가 이들에게 지독한 개인적 원한을 품은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자비한 비난을 퍼붓는다는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난의 외피를 거두고 나면 동로마제국 전성기의 어두운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거창한 정복 사업에 따른 재정 부족은 과다한 징세로 이어져 백성들은 곤궁에 허덕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 등의 자연재해 빈발과, 치명적인 전염병의 유행은 인명과 재산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다. 황제 부부는 백성들의 어려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쓸데없이 화려한 건축물을 계속 짓고, 야만인들에게 재물을 아낌없이 퍼주고 국고를 고갈시켰다. 이것이 프로코피우스가 지적하는 당대의 큰 문제이자 현실이었다.
그의 지적은 상당한 적확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에 마냥 성공적이고 화려하기만 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사실은 장기적 쇠퇴의 조짐을 내포하고 있음을 후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이 빛 좋은 개살구였을까? 이 점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프로코피우스의 지적대로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어마어마한 폭정의 시기였다면 그의 사후 동로마제국은 곧바로 멸망으로 이어졌을 테지만, 누구나 알듯이 이후 천년 가까이 더 존속하였다. 그의 후세 황제 중에서 대단한 성군이 나왔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저자가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복 사업을 옹호하자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고토 회복을 포기한다는 건 황제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훗날 이슬람 세력의 발흥 등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충분히 시도해 볼 만 사업이며, 어쨌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확보한 영토를 계속 유지하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백성들을 쥐어짜서 야만인들에게 펑펑 베푼다는 비난도, 격변기에 군사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페르시아와 슬라브에게 협상을 통한 평화를 구한 정책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에 가깝다. 황제는 고토 수복을 위하여 서쪽으로 진군해야 하는데, 동쪽과 북쪽에서 적국이 쳐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력으로 침입해 온다면 그 피해는 협상 경비의 수준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테오도라 황후의 출신에 대한 맹공은 오늘날 관점에서 지나치게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 배우, 즉 매춘부 출신이 분명한 테오도라의 진면모를 알아차리고 결혼한 황제의 안목과, 이후 공동 통치자로서 역량을 발휘한 테오도라의 능력을 오히려 높이 상찬해야 한다. 귀족 출신인 프로코피우스로서는 그런 테오도라 황후가 결코 마뜩잖았을 것이다.
이러저러한 편견과 그릇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볼만 하고 흥미로운 점이 많다. 가뜩이나 사료가 부족한 동로마제국 초창기 시절, 그것도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스티니아누스 시기의 궁중 비사를 그득 담고 있다. 아울러 당대의 종교 갈등과 청색파와 녹색파 간 파당 분쟁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묘사한 당대 현실이므로 어떤 것에 비할 바 없는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일차 사료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옮긴이의 말대로 미신적인 믿음에 기초한 일부 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믿는 건 다소 위험한 견해다.
이 책은 프로코피우스의 원서를 1926년 리처드 앳워터가 번역한 영역본을 저본으로 한 중역본이다. 중역본이라고 해도 원전 번역이 없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동로마제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일독해 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