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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꽃의 살해 - 독일대표단편선
아르투어 슈니츨러 외 지음, 김재혁 편역 / 현대문학 / 2005년 10월
평점 :
품절
<수록작품>
어떤 이별 - 아르투어 슈니츨러
민들레꽃의 살해 - 알프레트 되블린
예기치 않았던 재회 - 요한 페터 헤벨
사랑 또는 타락 - 토마스 만
꿈의 노벨레 - 아르투어 슈니츨러
칠레의 지진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
라라비아타 - 파울 하이제
책의 구성과는 무관하게 작품의 발표 연대순으로 읽었기에 그 순서에 따라 적는다.
<칠레의 지진>은 예전에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독서할 때 읽은 적 있으며, 최근에도 다른 독일단편문학선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읽었다. 인간 운명의 우연성과 아이러니가 냉엄하게 기술된다. 지진 같은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도 어리석은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인간의 삶은 기쁨과 고통이 혼재된 형태임을 보여준다.
<예기치 않았던 재회>는 짧은 분량으로 세월을 초월한 사랑의 힘을 상투적이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라라비아타>도 일전에 읽어본 기억이 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고집쟁이 처녀’라는 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표면상 말괄량이처럼 구는 여주인공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뱃사공 안토니노에게 무심하게 굴다가 갑작스레 사랑을 고백하는 행복한 끝맺음이다. 그녀의 격렬한 고백이 워낙 급작스러운 데다, 높은 자존감을 내세우던 그녀의 비굴에 가까운 태도 전환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더욱이 그녀가 아픈 추억으로 갖게 된 결혼과 남자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일순간에 뒤바뀐다니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길 게 분명하다.
“이제 아시겠죠, 신부님. 왜 제가 그냥 처녀로 살겠다고 하는 건지. 저를 마구 두들겨 패다가 애무를 퍼붓는 인간에게 예속되기 싫어서예요. [......]” (P.359)
<사랑 또는 타락>에서 토마스 만은 남녀의 순결 또는 정조에 대한 세간의 편향적 인식, 사랑의 순수성과 현실성에 대한 기대와 착각의 귀결을 그린다. 순진한 대학생과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랑은 순수성을 대변한다. 대학생은 이상 속을 살아가지만, 가난한 여배우는 현실 속을 걸어가야 한다. 배우로서, 여성으로서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필요를 그녀는 스폰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윤리적 기준으로 분명 타락이지만, 대학생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남의 이야기인 듯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는 애잔하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분노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당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는가. 작가는 이렇게 기술할 따름이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와 절망과 슬픔에 겨워 라일락을 잡아뜯는 그의 거친 행동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좋은 녀석’의 모습은 그에게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P.143)
이 책은 슈니츨러의 작품을 두 편이나 수록하고 있다. <어떤 이별>은 초기작이고, <꿈의 노벨레>는 후기작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이별>은 남성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는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는 중인데, 남편의 외출을 틈타 그녀가 뛰어 들어올 때만 사랑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은 의심할 수 없다. 작품은 그녀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요동친다. 그는 점점 초조해진다. 이건 필시 그녀가 병에 걸린 탓이라는 그의 짐작이 맞아떨어졌고 게다가 중병이란다. 그녀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의 시신 곁에는 애도하는 남편이 있다. 자신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함에도, 그는 당당하게 나설 수 없다. 죽은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 그의 사랑은 유효하지 않음을, 그가 사랑한 건 그녀의 살아있는 육신뿐이었음을.
그는 마음 깊이 수치심을 느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할 자격도 없었고, 또 죽은 애인이 그를 그곳에서 쫓아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를 부인했다고. (P.44)
작가는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불륜을 무릅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조차도 한 껍질 벗겨보면 얄팍하고 이기적인 감정에 불과함을.
<민들레꽃의 살해>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바 아니나 지나치다고 할까. 지팡이로 민들레꽃을 난도질한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죄책감에 절절매는 주인공. 어릴 적 괜스레 개미를 밟아 죽이고, 개미집에 물을 붓고,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려 꿈틀거리는 모습을 즐기던 나. 작중의 피셔 씨에 비하면 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자행한 셈이 아니겠는가.
몸통은 뻣뻣하게 굳어 하늘을 향해 있고, 목줄기에서는 하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P.53)
작가는 민들레꽃을 의인화하여 잘려 나간 모습을 사람의 그것으로 간주한다. 진동하는 시체 썩는 냄새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온 세상이 자신을 비난하는 양 양심에 괴로워한다. 이제 그는 과거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의 안팎에서 그 꽃이 양심의 화신인 것처럼 그를 엿보고 간섭하고 판결 내리므로.
그 꽃은 하나의 양심처럼 아주 중요한 일부터 일상의 자잘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66)
이 책에서 분량과 작품 밀도 면에서 단연 핵심적인 작품이 <꿈의 노벨레>다. 모두가 단편 문학인데 이 작품만이 중편이니 일면 불공평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소설에서 슈니츨러는 작중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꿈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한다. 모범적인 가정, 이성적인 부부라는 외형에 숨겨진 무의식과 본능에의 충동, 그것은 낮이 아니라 밤에 꾸는 한 바탕 꿈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과 사회는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끝 대목은 따라서 상징적이다.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부부는 어떤 꿈을 꾸었는가. 알베르티네가 품은 욕망은 무엇이고, 프리돌린이 밤에 겪은 모험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게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다. 부부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마음속에 숨겨진 자신도 모르는 욕망들”(P.151)을 드러내는 순간 프리돌린은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알베르티네와 전혀 상반된 실체를 봐서다.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면-그건 내게 분명했어요-나는 거역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든 다 할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당신과 아이, 나의 미래까지도 희생할 결심을 거의 굳힌 것이나 다름없었죠. (P.153)
프리돌린도 숨은 욕망이 있지만 아내처럼 적극적이고 분명하지 못하였기에 이후 내내 배신감으로 귀가하여 아내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밤의 방황이 시작된 셈이다. 그의 방황은 아내의 솔직한 토로에서 자극받아 각성한 그의 내밀한 욕망이 불러온 것이기에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타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된다. 마리안네의 고백, 매춘부와의 만남, 가면 가게의 여자애, 그리고 나흐티갈을 통해 알게 된 비밀스러운 모임.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성적 욕망이 가면 아래 무자비하게 활개를 치는 세상. 여기서 가면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최후의 장치다. 정체가 탄로 난 프리돌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수녀의 선택은 그리하여 죽음을 감수하는 헌신이다. 프리돌린은 이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밀 모임의 세계로 들어간 건 무의식과 욕망의 강력하며 무한한 힘을 나타낸다. 그것이 비록 죽음을 가져올지라도.
가면무도회와 이어지는 부부간 대화 이전에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부부의 전형이었다. 그들에게 과연 부족한 점이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이제 프리돌린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의심한다. 겉보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의 얄팍한 껍질 아래 근간을 뒤흔드는 불안정한 욕망이 얼마나 잠재되어 있는지를.
계단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이 모든 질서와 이 모든 균형과 그의 삶의 이 모든 안정감이 가상이요 거짓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의식되었다. (P.274-275)
하지만 우리는 이를 거짓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무의식이 의식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은 그것이 의식으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무의식의 거리낌 없는 발현은 개인 스스로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지구가 지각과 맨틀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네 마음도 밑바닥에 꿈과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된다. 프리돌린은 잃어버린 가면을 통해 알베르티네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그럼요 확실하게 믿어요. 하룻밤의 현실, 그래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도 그 사람의 가장 내면 깊은 곳에 담겨진 진리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으니까요.” (P.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