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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여가 ㅣ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34
프란체스코 페트라르카 지음, 김효신 옮김 / 나남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고독한 생활>과 이부작을 이루는 작품이다. 여가와 여유를 삶의 중요한 요소로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지니지만, 전작이 직접적으로 종교적 삶을 다루지 않는 반면, 이 작품에서는 종교에 초점을 맞춘다. 집필 계기는 동생 게라르도가 입회한 카르투시오 수도회를 방문하고 수도사들과 나눈 종교적 대화의 연속 및 확장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성격으로 기독교 신자라면 전작보다 한층 흥미를 느낄 수 있는 반면 그렇지 않으면 과다한 종교성으로 흥미가 저하될 수도 있다.
‘종교적 여가의 이점을 알리는 첫 번째 편지’와 ‘수사들에게 당부하는 두 번째 편지’로 저작을 구성하고 있는데, 편지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각 편이 하나의 기다란 에세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시간을 가지고 내가 하느님임을 알아라.” (P.21)
첫 번째 편지는 위 문장에서 페트라르카가 논의를 끌어내고 있다. 참된 이해를 위해서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 즉 세속적 일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리다. 그것이 이 책의 표제인 ‘종교적 여가’이다. 그는 수도회가 세상과 문을 닫고 엄격한 금욕적 수도를 하는 행위를 기본적으로 찬양한다. 심신을 정결하게 유지하고 여가를 가져야 하느님께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페트라르카는 자기주장을 옹호하기 위해 교부 아우구스티누스의 저서에서 여러 부분을 계속해서 인용하여 권위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빈번한 성경의 인용은 그의 논의가 시종일관 기독교의 가르침 내에서 근거하고 있음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수사들에게 주의의 말도 아끼지 않는다. 이처럼 투철하게 수도에 정진하다 보면 그것이 지나쳐 유혹에 빠질 위험도 있다는 것. 결코 안전과 방심에 섣불리 기대하지 말며 항상 조심하며 수도의 원래 소망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라는 점. 그는 이러한 여가를 ‘단단한 여가’(P.121)라고 부른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 사상가들의 이론을 기독교에 꿰어맞추려고 애쓰는 대목이다. 키케로는 물론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조차 하느님이 세상의 근본이라는 종교 교리를 입증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사실, 여러분은 편안하고 나태하며 여러분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여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종교적이고 순명적인 여러분의 독특한 특질을 고려하여 단단한 여가가 필요합니다. (P.121)
두 번째 편지는 더욱 직접적으로 수사들에게 향하는 조언이다. 구성면에서 명확한 단락이나 내용 구분 없이 쭉 이어 나가는 서술 형식을 취하고 있어 언뜻 읽다 보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가 의아할 때가 많다. 부분적으로는 충분히 타당성이 있고 논리적이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전체적 문맥을 이해하기 어렵게 느껴진다. ‘옮긴이 해제’의 도움을 빌면 페트라르카는 여기서 악마, 세상, 육체라는 영혼의 3대 적의 함정과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당부의 말을 재삼재사 풀어놓고 있다. 해제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위 세 가지 유혹은 명확하게 구별되는 요인이 아니다. 서로가 깊은 연관성을 지니고 있기에 나름 열심히 구분하여 설명하려고 하는 페트라르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자는 결국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하는 게 용이하다.
우리가 육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우리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는 하느님 오직 한 분의 은혜에 의해서입니다. (P.180)
기독교의 근본적 태도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절대자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 의존하는 데 있다. 저자는 이러한 기준에서 키케로를 비판하며, 암브로시우스를 거룩한 사람으로 일컬으며 찬양한다. 종교적 관점에서 키케로는 자존심과 자의식이 지나쳐 오만함에 가까운 사람에 해당해서이다. 악마와 세상의 사탕발림과 겁박에 흔들리며, 육체와 정욕의 희로애락에 오락가락하는 가련한 우리 인간은 모든 걸 내려놓고 주님의 자비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히에로니무스가 그에게 간청한 것과 같이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이러한 문제들 속에서 살면서 그것들을 명상하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알지 말며, 다른 것은 아무것도 구하지 마십시오.” (P.267-268)
마지막으로 페트라르카는 수사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종교적 여가 속에서 오로지 절대자에게 귀의하라고. 주변의 온갖 유혹에도 불구하고 한눈팔지 말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며.
<고독한 생활>과 <종교적 여가>를 통해 페트라르카가 궁극적으로 옹호하는 것은 그가 택한 삶의 방식의 정당성이다. 페트라르카야말로 고독한 생활과 여가를 누구보다 누리고 있는데, 기독교 사제로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그는 자기 삶이 최선이라고 주장하지 않지만, 자신이 주창한 삶이 괜찮다면 따라도 좋다고 제안한다. 이것이 일반 대중과 시민 모두에게 해당하지만, <종교적 여가>에서는 아무래도 선택의 폭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수사들은 이미 종교에 헌신하고 매진하기로 선서하였으므로. 그래서 저자는 종교적 기준을 적용하여 종교적 삶에서 여가의 의미를 한층 적극적으로 발견하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완성되어야 저자가 부르짖는 ‘여가’가 세속과 종교에 무관하게 인정받을 수 있어서일 것이다.
매우 종교적인 저작이다. 성경과 아우구스티누스 인용은 물론, 비기독교 고대 철학자의 문장도 오로지 종교적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 철저하게 재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된다. 특히 성경 문구의 인용은 지나칠 정도로 자주, 그리고 변형적으로 등장하여 비종교인으로서는 읽기가 괴로울 정도다. 처음에는 이러한 각주도 함께 읽어나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성경 관련 각주는 외면하게 되었다. 각주를 계속 의식하다 보면 독서 흐름이 단절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