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디스토피아를 다룬 과학소설이다. 온 세계를 뒤덮은 더스트로 인류가 절멸의 위기에 처한 소위 더스트 시대. 몇몇 살아남은 인간은 더스트를 막는 거대한 돔 시티에 모여 살고, 돔에 들어가지 못하거나 쫓겨난 사람들, 그리고 더스트 내성종들은 밖에서 나름대로 옹색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분투한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러 겨우 더스트를 퇴치하고 문명을 회복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 더스트 박멸은 과학기술의 덕택인 줄 알았으나 우연한 계기로 더스트 시대에 이에 저항하고 퇴치를 위해 노력한 사람들의 존재가 밝혀진다. 모든 게 모스바나라는 더스트 시대 후기에 풍미했던 독성 덩굴식물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후기, 그리고 재건 직후의 빈곤한 시대에 가장 번성했던 우점종이었다. 당시에는 세계 어디에나 모스바나의 덩굴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과거의 불행한 기억, 혹은 겪어본 적도 없는 시대의 절망과 이 식물을 연관 짓는 것인지도 몰랐다. (P.41)

 

이 작품의 화자는 두 사람이다. 전체적으로 이끄는 이는 식물학자 아영이지만, 사건의 핵심은 프림 빌리지의 생존자인 나오미의 증언에 따른다. 그리고 작품의 주인공은 이희수=지수 씨와 레이첼이다. 전체 3부 구성인데, 1부는 어린 나오미와 언니, 2부는 프림 빌리지 시절, 3부는 아영과 나오미의 만남, 아영과 레이첼의 대면이다.

 

더스트는 기상이변이나 자연재해가 아니다. 인간의 탐욕과 과학기술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비극이다. 디스토피아 작품의 전형적 설계다. 돔 시티는 인류의 구제 수단인 동시에 제한된 공간과 자원으로 불가피하게 대다수 사람을 돔 밖으로 배제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영구적 돔은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돔 안의 사람은 악착같이 자신들을 지키려 극단적 선택과 행동을 한다. 더스트에 저항성을 지닌 내성종 사람과 보통의 사람, 전자는 돔 시티 안의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배척당한다. 심지어는 인간 사냥의 대상이다. 동일한 인류로 간주하지 않는 것이다. 내성종끼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이기에 인간성을 도외시하곤 한다.

 

돔 안의 사람들은 결코 인류를 위해 일하지 않을 거야. 타인의 죽음을 아무렇지 않게 지켜보는 게 가능했던 사람들만이 돔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인류에게는 불행하게도, 오직 그런 이들이 최후의 인간으로 남았지.” (P.226)

 

앞선 과학기술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타고 다니는 호버카, 드론 외에 무엇보다도 레이첼이라는 인간형 로봇이 있다. 프림 빌리지를 실질적으로 유지하는 원동력이자 온실의 주인, 식물 연구 외에는 일체의 관심이 없지만 지수 씨와 교류를 통해 독성을 낮추는 약과 저항성을 지닌 농작물을 개발한다. 그가 개발한 식물 중 하나가 모스바나다. 훗날 단지 유해식물로만 인식되던 모스바나가 더스트로부터 프림 빌리지를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동시에 맹렬한 생장과 전파로 다른 농작물을 살 수 없게 만들어 결국 프림 빌리지를 해체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더스트 폭풍에 살아남으려면 덩굴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 덩굴은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아름다워 보였던 푸른 먼지는 이제 고통의 근원처럼 느껴졌다. (P.230)

 

프림 빌리지. 인류 멸망의 시대에 돔 시티와는 다른 의미에서 인류 생존의 희망이자 외로운 모델이다. 돔 시티 못지않게 프림 빌리지 역시 이중성을 지닌다. 빌리지의 안전과 생존을 위해 외부 침입자는 가차 없이 제거하는 비정함. 나오미 자매가 받아들여진 것은 예외적인 사례다. 차마 죽이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는 판단이리라.

 

프림 빌리지는 외부적 방해요인이 없었다면 영속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된다. 레이첼의 자비에 의존하여 생명줄을 버티고 있을 뿐. 그러기에 내부적 갈등과 작별이 끊임없이 생길 수 밖에 없는는 취약한 구조가 프림 빌리지다.

 

레이첼이 마을의 해체를 원치 않았던 건 이 마음을 자신의 실험실로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그럼으로써 지수를, 자신의 옆에 붙잡아두고 싶었던 거였다. 정비사가 아닌, 지수를 옆에 두고 싶어했던 것이다. (P.339)

 

지수 씨와 레이첼의 관계를 무엇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레이첼을 수리할 때 감정 기능을 활성화함으로써 지수 씨에 대한 끌림을 느끼는 레이첼, 지수 씨가 떠나는 걸 막기 위하여 프림 빌리지가 간신히 버틸 정도로만 작물 개발을 하는 레이첼을 과연 비난할 수 있을까. 인류에 대한 환멸로 스스로 아웃사이더로 자처하던 지수 씨가 더스트 종식 시대를 살아남아 찾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레이첼을 발견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게 되는 걸까.

 

이 책이 중고등학교 추천도서로 지정된 까닭은 무엇일까. 무분별한 과학기술의 폐해, 인류 최후의 순간에도 바래지 않는 인류애, 인간과 로봇의 공감과 공존, 멸절의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분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존재. 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모두가 해당한다. 한편 소설은 다소 산만하고 혼란스러운 인상을 준다. 작품 속에 너무나 많은 사건과 요소를 담으려고 하다 보니 원래라면 벽돌책 또는 몇 권으로 나왔어야 할 내용을 한 권에 압축하는 작가의 의욕 과다의 결과라고 하겠다.

 

식물의 기계와도 같은 정밀함과 동시에 난관을 헤쳐나가는 유연함에 대한 찬사가 되풀이되는 점도 놓쳐서는 안 된다. 세계 도처에 적응하고 살아남은 모스바나처럼.

 

저는 모스바나가 더스트와 같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모스바나는 공존과 유전적 다양성을 습득하고 더스트 시대의 흔적을 자신에게서 지우는 것으로 살아남았지요. (P.366-36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