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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법의 약을 만들다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4
로알드 달 지음, 김연수 옮김, 퀸틴 블레이크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8월
평점 :
로알드 달의 동화는 뻔하지 않은 인물과 개성적 전개로 기존의 동화와 차별화한다. 기존의 동화 주인공은 대개 착한 인물 또는 악인에서 개과천선한 사람이 등장하며, 내용 또한 우여곡절이 있지만 결국은 사필귀정이고 권선징악이라는 교훈적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반면 로알드 달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의 인물들-조지, 할머니, 조지의 부모-을 보면 선악을 분별하기 어렵다. 조지는 언뜻 착하게 여겨지지만, 할머니를 골탕 먹이기 위해 온갖 물건으로 마법의 약을 만드는 장면에서는 단지 나이로 감싸기에는 악의적 요소가 넘쳐흐른다. 후반부에 등장하는 조지의 아버지는 한술 더 뜬다. 거인으로 변한 할머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며, 마법 약의 조제법에만 열광적인 관심을 보인다. 할머니에 대한 크랭키 씨의 반응은 오히려 냉소적이며, 할머니가 매우 작아져서 영영 사라져버렸음에도 일말의 놀람과 동정 대신 만세를 부를 정도다. 못된 버릇이나 심술을 부리는 존재로 언급하는 사위는 물론 할머니의 딸조차 할머니가 “집안의 골칫거리”였음을 인정할 정도다.
조지가 정말 무서워한 것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차가운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이었다. (P.23)
이 동화에서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는 애정과 친밀함과는 거리가 멀다. 작가가 묘사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차라리 마귀할멈에 가깝다. 심술과 불평, 악담과 냉소로 점철된 할머니를 조지가 좋아할 리 없으며, 골탕 먹이자는 생각에서 일련의 사건이 발생한다.
마법의 약을 복원하려는 노력은 실패하였고, 조지의 할머니는 소멸하였다. 지붕은 구멍이 뚫려버렸고, 가축들은 엄청나게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아니면 다리만 길게 자랐다. 이것이 작품의 결말이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다. 과연 이것이 동화로서 아이들 정서 함양에 적합할지조차 의심스럽다.
작달만한 키에서 거인이 되고, 통증도 사라져버린 채 시원한 공기를 한껏 들이켜며 즐거워하는 할머니. 거실 한구석에서 웅크린 채 은연중 또는 대놓고 가족들에게 부정적으로 표현되는 할머니. 그도 가족들에게 나름 할 말이 있다. 건강이 안 좋아 이십 년간 집안에 갇혀 사는 그에게 집안사람들은 별다른 관심과 배려를 보이지 않는다. 딸조차도 자식인 조지만을 챙길 뿐이다. 거인이 된 지금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점은 동일하다.
“넌 그저 조지밖에는 모르는구나! 조지가 먹을 무엇무엇, 조지가 입을 무엇무엇! 이제는 정말이지 진절머리가 난다!” (P.143)
아무리 좋게 봐도 이 작품은 마법의 약의 우스꽝스러운 효과와 장면을 통해 포장하고 희석하려 노력하지만 결국은 불행한 가족의 끔찍한 결말을 다룬 잔혹 동화일 뿐이다. 동화로 인정받을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