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겉표지를 벗겨낸 것이 훨씬 깔끔하고 예쁘다.)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한 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물론 그동안 비활성화를 잠시 풀었던 것이 열 번 남짓이나 되니, 완전히 끊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이번 시간 동안 느꼈던 것은, 나는 페이스북에 글이나 사진 같은 걸 열심히 올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미 거기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우만이 보기에는, 고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편지 2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p)

 

바우만의 시선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비판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전체에 걸쳐 있고,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은 2008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다. 44개의 편지에서 그가 줄곧 말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의 견고했던(Solid) 질서들이 액체처럼 유동하는(Liquid) 사회라는 것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유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우리는 유동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무시하기도 하고, 울타리를 세워 그 안이라도 견고한 질서를 세우려고 하며, (특히 정치인들이) 유동하는 질서를 붙잡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 어떻게든 불안 요소가 없는 견고함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그런 시도들이 오히려 유동하는 근대를 요동치게 만든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들은, 유동성에 대한 회피와 무시로 인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바우만의 분석은, 7년 전의 분석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예리하고 신랄하다(물론 그의 글과 달리, 트위터는 페이스북에 밀려 사망의 길을 걷는 중이다).

 

44개의 편지가 다루는 현상들이 워낙 다양해서, 혹자는 너무 정신없고 산만하다, 복잡하다라고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바우만의 대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만큼 단호하다.

 

몇 년 전에 나는 한 인터뷰에서 "내 관심사들을 단 한 구절로 요약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인간이 경험해온 그 대단히 복잡한 길들을 탐사하고 기록하려는 나 같은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목적을 묘사하려 할 때 카뮈에게서 빌려온 다음과 같은 구절들보다 더 짧으면서도 한층 더 잘 묘사해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도 있지만 분명 굴욕적인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사명이 어떤 어려움을 안겨준다 할지라도, 결코 그처럼 굴욕적인 것들이든 아름다움이든 간에 둘 중 그 어느 하나에도 불성실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법들을 전달한다면서 철저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많은 작가들은 결국 그처럼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는 저 신앙고백이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도발에 불과하다고 매도할 것이다.

- 편지 44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385p)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각각의 논의가 길게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바우만이 근대의 견고성을 긍정하는가라는 오해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편지들이 주간지에 실려 분량의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갈 때까지 분석과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는 탓에, 나도 읽으면서 '그럼 이 사람은 견고한 근대 사회를 옹호하나?'라는 질문을 품었었다. 후반부로 가면 바우만은 '모두스 비벤디'라는 생활양식의 시도와 실험을 대안으로 세우긴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할 뿐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었다. 물론 <액체근대>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두 번째 문제는, 번역에 대한 것이다. 물론 나는 원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책에 오역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문장과 직역투의 문장들은 처음 책을 읽을 때 나를 가로막는 진입장벽이었다. 한참 읽다가 답답한 문장에 열이 받은 나머지, 나는 색연필을 들고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밑줄은 오류와 상관없이 친 것이다. 오해 없으시길..)

 

표시할 수 있는 것에는 표시를 했지만, 크게 바꿔야 하는 것(이를테면 문장 성분을 이동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에는 표시를 못했다. 문제를 먼저 말하자면, 일단 오탈자가 자주 보이고(왜 '끔찍한'을 계속 '끔직한'이라고 쓰는 것인가? 도대체 왜!), 불필요한 지시어와 부사어가 많으며('역시'라는 단어를 썼는데 왜 같은 의미의 보조사 '도'를 또 쓰는가), 쉼표가 부적절하게 찍혀 중의성을 띠는 문장들, 직역투의 표현('그럼에도'를 몇 번이나 표시했는지 모르겠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러한 문제들이 자꾸 중첩되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지고, 그것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후반부로 가면 이런 오류들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오류가 사라진 것인지 내가 이런 문장들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판본은 초판 13쇄로 2014년에 찍은 것인데, 아마 2판을 찍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나온 <사회학의 쓸모>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매긴 책인데, 바우만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인 만큼 개정판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바우만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사회 현상들을 바라보는 그의 비판적인 시선과 근대 질서의 유동성을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44개의 편지 중에는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피부로 느낄 만큼 그 문제가 확산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의 사상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액체근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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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3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요즘은 뭘위해 커버위에 커버를 씌우나 싶어요.광고위해서..자꾸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

아무 2015-10-31 00:34   좋아요 1 | URL
책 10월호에도 띠지에 대한 글이 하나 실렸더라구요 그거 보고 `띠지 극혐`이라는 제목으로 쓰려다가 안 썼..ㅎㅎ 저는 책을 살 때 답정너 식으로 사서 띠지에 영향을 거의 안 받는데, 띠지가 판매 부수에 영향을 주긴 하나 봐요.. 책 살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띠지 버리는 일인데ㅠㅠ

[그장소] 2015-10-31 06:13   좋아요 0 | URL
음..전 띠지도 버리지 않거든요.일단은 기록물이라.
그 시대가 단적으로 보여요.유행이라든지 ..시대상..
이나..디지털의흐름..돌고 도는것이..ㅎㅎㅎ
암튼..그러네요..그런이유로 버리진 못하는데 겹겹 에워싼 표지에 표지..그렇게 자신이 없나..싶은 거죠.
화딱지가 난달까..

[그장소] 2015-10-31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책사는건 답정너 식..띠지와 상관없이..안들어오죠.
예전에 나온책을 다시 꺼내 보면 신기해요.^^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버스를 타면서 읽을 만한 책이 필요해 도서관을 찾았다. 이리저리 돌아보다 읽으려고 벼르던 츠바이크의 책을 빌렸다. 두 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어 가볍게 읽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였다. 그렇게 츠바이크와의 첫만남이 시작되었다.

 

웨스 앤더슨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약간은 복잡한 액자식 구성을 통해 이야기를 보여준다. 말하자면 어떤 인물의 이야기를 들은 인물이 책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해주는 식이다. 츠바이크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문구를 보고 처음에는 이해를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일정 부분은 이해가 되었다. 이 책에 실린 두 단편 모두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거나 본 인물을 통해 그 이야기를 전달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스 이야기'와 '낯선 여인의 편지'를 다 읽고 났을 때의 느낌은 인간 심리를 잘 묘사한 심리소설이구나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훌륭하다고 볼 수 있는 작품이지만, 그것만으로 이해하는 것이 좁은 생각이라는 것을 번역가의 해설을 보고서야 알았다. 혹시나 책을 읽으려는 사람들에게는, 해설을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오히려 해설을 먼저 읽고 이야기를 감상하는 것이 좋을 지도...

 

'체스 이야기'에는 B박사와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B박사가 나치에게 납치되어 당한 고문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無)의 상태에 가두는 것이 그 어떤 육체적인 고문보다 폭력적이라는 것을 B박사의 고백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까스로 자신이 정신을 쏟을 체스 교습서를 발견한 뒤 그가 보여주는 체스에 대한 집착은 소름이 끼쳤다. 계속해서 집착하기 위해 자아를 분열시켜서 체스를 둘 정도라니..

 

이야기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간다. B박사와 체스를 두게 된 첸토비치는 자신의 차례가 올 때마다 곧바로 대응하지 않고 시간을 계속 끄는데, 이것이 B박사를 점점 불안정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B박사는 과거 나치에 의해 독방에 갇혔을 때처럼 신경증적인 불안에 휩싸이게 되고, 심지어 말을 잘못 두는 실수까지 저지른다. '나'의 저지를 통해 제정신을 겨우 차린 B박사는 게임을 중단한 채 자리를 뜬다. 그렇다. 체스 외에는 일자무식의 면모를 보이는 세계 체스 챔피언 첸토비치를, 작가는 나치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비인간적인 체스기계'로 묘사되는 첸토비치의 비인간성은, 과거 파시스트들의 그 모습에 대응되며 교양인인 B박사와 대조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체스에서 첸토비치가 보여주는 심리전은, 처음부터 마수를 드러내지 않고 서서히 세계를 장악했던 나치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낯선 여인의 편지'는 한 여성이 소설가 R에게 보낸 편지가 대부분의 내용을 차지한다. 열세 살부터 오직 그만을 사랑해왔던 한 여자의 사랑고백은, 너무나 아름답기도 하면서 처연하기도 하다. 어떻게든 그의 모습을 보고 싶어, 그의 눈에 띄고 싶어 전전긍긍하는 그녀의 심리를 드러내는 작가의 묘사는 무척이나 섬세하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저녁마다 자신의 집 앞에서 기다리던 여자를 만났을 때도, 이후에 클럽에서 그녀를 만났을 때도. 그에게 그녀는 그저 성적 탐닉의 대상이었을 따름이었지만, 너무나 그를 사랑했던 그녀는 그의 의지에 순순히 따른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다. 열세 살 때 당신이 살던 마을에 살던 여자아이였다는 것도, 당신 생일 때마다 장미를 보냈다는 것도, 당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것도.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심리묘사와 뒤로 갈수록 서서히 그 전모가 밝혀지는 이야기의 전개는 훌륭하지만, 오늘날의 시선으로 보았을 때는 비판할 수 있는 거리가 한둘이 아님은 분명하다. 지나치게 순종적인 여성상, 누구에게도 헌신하지 않고 바람둥이처럼 욕망하고 즐길 뿐인 그의 모습 등등. 하지만 그렇게만 보기에는 뭔가 허전하다. 그러면 왜 편지를 다 읽은 후에야 그는 비로소 그 여자를 정열적으로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 역시 해설을 읽고 난 뒤에야 실마리가 풀렸는데, 당시의 성도덕은 여성에게 순결을 강요하면서 동시에 매춘을 합법적으로 인정하는 이중적인 면모를 띠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그의 요구에 무작정 따르는 그녀를 보며 당황하면서도, 그녀를 집에 들여 잠자리를 갖는 그의 모습은 이런 이중적인 성도덕의 온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편지를 읽은 후에야 그녀에 대해 불멸의 사랑을 느꼈던 것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작품들에서 돋보이는 것은 작가가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심리다. 작가가 프로이트의 영향을 깊게 받았고 그로 인해 인간 내면에 대한 탐구가 소설 곳곳에서 이루어졌다는 해설을 읽은 뒤, 그가 썼다는 <정신의 탐험가들>을 읽어보고 싶어졌다. 프로이트에 대해서는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는 터라 열린책들에서 나온 프로이트 전집을 읽는 것이 순서이겠으나, 가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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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6 01: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0-26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계와 작가

먼댓글이라는 걸 처음 해봐서... ㅎㅎ

 

장강명 작가의 인기의 시작이 확실히 현재 사람들의 울분과 통했기 때문이라는 것에 저도 동의합니다. 대표적인 게 <표백>과 <한국이 싫어서>가 되겠죠. 그리고 현재 한국문학의 특징이 말씀하신 세 가지 안에 다 들어간다는 것도 슬프지만 사실이구요. 대표적인 것이 백수죠. 혹자는 2000년대 초까지 한국문학의 지배소가 신경숙의 고백하는 문체였다면, 현재의 지배소는 백수 캐릭터라 말하면서, 한국문학사상 가장 처치곤란한 인물들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

한국문학에서 현실성이 강한 소설이 거의 대부분을 이루는 건 리얼리즘이 현실 참여의 수단으로 인식되었던 전통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이 더 소설같은 상황에 그 이유가 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국적인, 혹은 스케일이 큰 문학작품이 나오지 않는 것,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은 비판을 피할 수 없겠죠(본격문학만을 중시하는 점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봅니다).

 

운동권 자살을 같이 엮었던 건, <표백>에서 중간중간에 나오는 자살 선언 관련 기사 중 '88만 원 세대,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제목이 있어서 떠올렸던 것입니다. 찰스 맨슨에 대한 얘기가 앞부분에 나오는데, 자살 선언은 그것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이고, '세계에 대한 복수' 역시 마찬가지로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자살이라는 방식이 표백 세계에서 효과적인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제대로 된 대안은 아니라고 보구요.

 

장강명 작가의 강점이라면 그동안 굉장히 어렴풋이 에둘러 다루었던 현실을 마치 날것인 듯 독자들에게 들이밀었다는 점이겠죠. 그 점에서 많은 독자들이 카타르시스를 느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쓰고 싶은 이야기를 쓰려면 근력을 좀더 키우는 몸 만들기가 필요하다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구요. 다양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전략이라고 하고, 방대한 주제를 다룬 소설을 쓰는 것이 야심 중 하나라고 하니, 저는 앞으로의 행보가 좀더 기대됩니다. 현재 작가는 좀비물(...)을 연재하고 있고, 한국전쟁에 대한 스릴러와 문학상 관련 논픽션을(저번 북토크 때 설문조사를 부탁하시더라구요..ㅎㅎ) 준비 중이라고 하네요(http://blog.aladin.co.kr/line/7756829)

 

답이 충분히 되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아는 한도에서 최대한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횡설수설한 느낌이네요^^;; 그러니 제목도 횡설수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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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0-18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답을 바랐다기 보다 장강명 작가 얘기가 나와서 저도 이런저런 생각을 말해본 거였는데, 수고를 끼친 듯해서 죄송한데요^^; 하지만 아무님의 진지한 성찰을 또 읽어 좋네요~

한국 실정상 ˝잉여인간˝은 늘 주요소재였죠. 전쟁으로든, 정치 사회적으로든, 노동으로든 파생될 수밖에 없었죠. <광장>이나 <무진기행>도 본질적으론 그 카테고리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래서 <잉여인간>이란 제목을 아예 붙이고 나온 손창섭과 장강명을 비교 분석해도 재밌을 것이란 말을 한 것이고요. ˝반사회성˝ 의 발전상까지 비교해 볼 수 있겠죠.

저도 인터뷰 보고 스케일이 큰 작품 구상을 하고 있는 것 같아 흥미로웠습니다. 애초에 장강명 작가가 sf에서 소설쓰기를 시작했고, 작품에 과학을 많이 담는 게 보여서 좀 더 확장된 한국문학을 선보여주길 바라죠.

아무 2015-10-17 18:39   좋아요 1 | URL
저도 항상 생각만 했던 이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네요^^
댓글을 읽다가 문득 한국문학에서 `잉여인간`이 그 모습만 바꾸었을 뿐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사회성`의 발전상처럼 그런 인물의 변천사를 다루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그러면서도 요즘 다루어지는 `잉여인간`들이 여태껏 보아왔던 인물들 중 가장 무기력한 유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표출하지 않고 꾹 참는 첫 번째 유형과도 연관이 있는 것이겠지만, 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나 <잉여인간> 같은 경우에는 전쟁이라는 거대한 배경이 있었던 반면 지금의 작품들에는 그런 것도 부재한 것 같은, 세계 자체에 대한 무력함이 표출되는 것 같다고 할까..(당장은 윤성희의 작품이나 천명관의 `숟가락아, 구부러져라`가 생각나네요)
장강명 작가가 최근의 한국 작가들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면이 많이 있긴 해요. 그래서 제가 계속 기대하며 작품들을 찾아보는 걸지도.. ^^
 

 

이 시스템에서는 어떤 모순도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지만, 또 어떤 모순도 혁명이 일어날 정도로는 쌓이지 못한다. 고작해야 `선거 혁명`이다. 즉 오늘날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의 논쟁은 적당한 온도의 온수를 놓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수도관과 차가운 물이 나오는 관 사이에 레버를 어느 위치에 놓느냐를 두고 벌이는 싸움에 불과하다.
(18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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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백 - 제1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술 마시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술만 마시면 잠깐 졸았다가 깨고 나서 불면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주량은 대한민국 평균 이하보다 낮은 밑바닥이라 누구에게는 마신 것도 아닐 테지만, 그 정도의 양만으로도 나는 치사량에 도달한다. 오늘 역시 잠이 오지 않아서, 머리는 계속 띵하고 쿵쿵하고 누군가 머리를 두드리는 기분이다. 그러므로 이 리뷰는, 취중리뷰 정도 되겠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맨처음 들었던 생각은, '이걸 왜 영화로 안 만들었지?'였다. 영화로 잘 만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 거 같은데...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영화를 구상하고 있었다. 와이두유리브닷컴의 메시지는 내레이션으로 처리하고... 이런 식으로.

 

이 작품에 대한 안 좋은 평가 중 하나는, 자살이라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오는 불쾌함에 있다. 실제로 공감할 수 없었다는 평가 중에는 자살 선언과 연쇄 자살로 인한 것이 많았는데, 사실 이것은 이 소설의 논점을 벗어난 평가라고 생각한다. 자살은 청년 세대의 극단적인 선택의 방편이었을 뿐, 정말 중요한 것은 자살이라는 행위가 상징하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78p)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서 첫 번째로 한 일은, 출간 연도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2011년 7월 20일. 무려 4년 전이지만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오늘도 유효하다. 그래서 소름끼친다. 바우만은 현대 사회를 '유동하는 근대'라고 지칭하지만, 모든 것이 견고하지 못하고 유동한다는 불확실성이야말로 절대로 변치 않는 이 시대의 본질이 아닌지. '하늘 아래에 새 것이 없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인류가 구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새 것이 없도록 만든 것은 아닌가. 여기서 나는 지젝을 떠올렸다.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을 지향한다고 말했던 <실재의 사막>에서의 지젝을.

 

세연이 생각했던 자살 선언과 청년들의 자살은,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를 살아가는 표백 세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으로 그려진다. 모든 것의 정답(正答이 아닌 定答)을 체화하길 강요당하고, 소소한 것에 만족하는 법을 세뇌시키는 시대, 이것이 안고 있는 모순을 드러내는 유일한 방법으로.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선택한 것은 갓 등단한 작가의 패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카뮈의 '나는 반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에서 영감을 얻었을 지도.

 

물론 이런 발상은 위험하다. 어쩌면 80년대 말~90년대 초에 있었던 운동권의 자살 소동과 맥이 닿아있다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우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표백을 강요하는 사회의 질서에 편입할 기회가 주어진 청년들의 자살은, '죽음의 굿판'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나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달한다.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자유를 박탈당한 표백 세대의 모습, 정말 이 체제가 인간이 구축할 수 있는 가장 나은 체제인가? 라는 생각을 박탈한 세계. 자살을 비판하는 세대에게 묻고 싶다. 이것이 정말 개인의 문제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불편함을 느낀 것은, 소설 속 '나'의 모습이 내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에 그렇다. '나'는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의 질서에 가장 깊게 체화된 공무원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를 한다. 교사가 나의 꿈이지만, 그것은 더 높은 꿈을 가질 수 없는 현실과 타협한 것이 아닐까. '자살'하기가 두려워 세계의 질서를 수용하기로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 때문에.

 

이 책이 다루는 가능성은 20대를 옹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들을 모욕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 사실에 나는 약간 죄책감을 느낀다. 이것도 일종의 착취에 해당하는 것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든다.

어쩌면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위대한 과업이란 철저히 개인화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위대하다는 개념이 변질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위대함의 본질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있고, 스토리텔링 기법으로만 묘사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작가의 말' (342p)

 

작가는 자신이 대안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휘영과 '나'를 남겨두었다. 휘영의 세연에 대한 비판은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자살이 그저 젊음의 치기일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나' 역시 그들이 잘못되었고, 3년 안에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을 한다. 이런 결말의 설정은, 자살이 아닌 진정한 가능성을 찾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마지막의 '사이트 개편 공지'는, 자살 선언 역시 일종의 유행처럼 변질되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읽혔다.

 

나는 소설에 있어서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고 믿는 형식주의자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형식에 제대로 된 내용이 담길 수 없다고 믿었다(물론 그 역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런데 <표백>은, 형식이 다소 불안정해도 제대로 된 내용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소설만큼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잘 보여주는 소설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소설이 정말 훌륭한 세태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그믐>보다 훨씬 뛰어난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소장해야 할 책의 목록에 이 책을 추가했다.

 

그녀는 문과대 뒤 학교 연못으로 향하면서 다른 학생들을 마주칠 때마다 속으로 빌었다.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받길 바라요. 당신들도 나처럼 상처받길 바라요. (336p)

 

상처받지 않은 자, 이 세계에 의문을 던질 수 없다. 상처받았음에도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자 역시 이 세계의 균열을 인지할 수 없다. <표백>은 우리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낸다. 아픔을 통해 인식을 바꿀 수 있도록, 이 세계에 의문을 던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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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계와 작가
    from 공 음 미 문 2015-10-17 03:53 
    운동권의 자살이 "항거"였다면, 리뷰를 통해 본 <표백> 속 자살은 "세계에 대한 복수이자 자기 지배로서의 처단"이군요. 이 세계의 의미없음에 침 뱉어주는 게 단발성이 아니라 피로서 얼룩지게 만들고 싶어 한달까요. 자주 드는 생각인데, 이런 점은 장강명 작가 세계관과 연결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의 작품들에서 그가 세계에 가지는 증오심이 강하게 느껴지거든요. 지금 장강명 작가에 대한 열광은 현재 이 한국
 
 
AgalmA 2015-10-17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다보니 말이 길어져서 먼댓글로^^;;
아무님 공부도 걱정됩니다. 리뷰를 이렇게 열심히 쓰시는데, 공부할 시간 뺏기시는 건 아닌지.

아무 2015-10-17 08:48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 게 현재 저에겐 일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낙인지라...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수단 같은 것이죠. 머리 쓰는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머리를 쓰는 일이라는 게 함정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