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 유동하는 근대 세계에 띄우는 편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조은평.강지은 옮김 / 동녘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개인적으로는 겉표지를 벗겨낸 것이 훨씬 깔끔하고 예쁘다.)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한 지 이제 두 달이 다 되어간다. 물론 그동안 비활성화를 잠시 풀었던 것이 열 번 남짓이나 되니, 완전히 끊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이번 시간 동안 느꼈던 것은, 나는 페이스북에 글이나 사진 같은 걸 열심히 올리는 편이 아니었지만 이미 거기에 중독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바우만이 보기에는, 고독을 피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대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이 그러한 고독의 맛을 결코 음미해본 적이 없다면 그때 당신은 당신이 무엇을 박탈당했고 무엇을 놓쳤으며 무엇을 잃었는지조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 편지 2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p)

 

바우만의 시선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있지 않다.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비판은 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현상들 전체에 걸쳐 있고, 그가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은 2008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다. 44개의 편지에서 그가 줄곧 말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의 사회는 과거의 견고했던(Solid) 질서들이 액체처럼 유동하는(Liquid) 사회라는 것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것들이 유동한다는 사실을 인지했을 때, 우리는 유동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불안을 피하기 위해 그것을 무시하기도 하고, 울타리를 세워 그 안이라도 견고한 질서를 세우려고 하며, (특히 정치인들이) 유동하는 질서를 붙잡으려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시도들, 어떻게든 불안 요소가 없는 견고함을 찾으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 그런 시도들이 오히려 유동하는 근대를 요동치게 만든다. 오늘날 현대 사회가 보여주는 다양한 현상들은, 유동성에 대한 회피와 무시로 인한 것이다. 이에 대한 바우만의 분석은, 7년 전의 분석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예리하고 신랄하다(물론 그의 글과 달리, 트위터는 페이스북에 밀려 사망의 길을 걷는 중이다).

 

44개의 편지가 다루는 현상들이 워낙 다양해서, 혹자는 너무 정신없고 산만하다, 복잡하다라고 불평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바우만의 대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새겨들어야 할 만큼 단호하다.

 

몇 년 전에 나는 한 인터뷰에서 "내 관심사들을 단 한 구절로 요약해달라"는 요구를 받은 적이 있다. 당시 나는 인간이 경험해온 그 대단히 복잡한 길들을 탐사하고 기록하려는 나 같은 사회주의자가 추구하는 목적을 묘사하려 할 때 카뮈에게서 빌려온 다음과 같은 구절들보다 더 짧으면서도 한층 더 잘 묘사해주는 것을 찾을 수 없었다. "아름다움도 있지만 분명 굴욕적인 것들도 있다. 나는 그 사명이 어떤 어려움을 안겨준다 할지라도, 결코 그처럼 굴욕적인 것들이든 아름다움이든 간에 둘 중 그 어느 하나에도 불성실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도 행복한 사람이 되는 비법들을 전달한다면서 철저한 자기 확신에 차 있는 많은 작가들은 결국 그처럼 확실한 태도를 취하지 않으려는 저 신앙고백이 당연히 비난받아야 할 도발에 불과하다고 매도할 것이다.

- 편지 44 '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385p)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각각의 논의가 길게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바우만이 근대의 견고성을 긍정하는가라는 오해를 만든다는 것이다. 이는 편지들이 주간지에 실려 분량의 제한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중반부를 넘어갈 때까지 분석과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는 탓에, 나도 읽으면서 '그럼 이 사람은 견고한 근대 사회를 옹호하나?'라는 질문을 품었었다. 후반부로 가면 바우만은 '모두스 비벤디'라는 생활양식의 시도와 실험을 대안으로 세우긴 하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후반부에 잠깐 등장할 뿐이어서 아쉬운 면이 있었다. 물론 <액체근대>와 같은 작품들을 읽으면 그 답을 찾을 수 있겠지만.

 

두 번째 문제는, 번역에 대한 것이다. 물론 나는 원문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책에 오역이 있는지 없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매끄럽지 않은 문장과 직역투의 문장들은 처음 책을 읽을 때 나를 가로막는 진입장벽이었다. 한참 읽다가 답답한 문장에 열이 받은 나머지, 나는 색연필을 들고 부적절하다고 생각되는 단어들에 표시를 하기 시작했다.

 

(밑줄은 오류와 상관없이 친 것이다. 오해 없으시길..)

 

표시할 수 있는 것에는 표시를 했지만, 크게 바꿔야 하는 것(이를테면 문장 성분을 이동해야 한다든가 하는 것들)에는 표시를 못했다. 문제를 먼저 말하자면, 일단 오탈자가 자주 보이고(왜 '끔찍한'을 계속 '끔직한'이라고 쓰는 것인가? 도대체 왜!), 불필요한 지시어와 부사어가 많으며('역시'라는 단어를 썼는데 왜 같은 의미의 보조사 '도'를 또 쓰는가), 쉼표가 부적절하게 찍혀 중의성을 띠는 문장들, 직역투의 표현('그럼에도'를 몇 번이나 표시했는지 모르겠다)이 자주 눈에 띈다. 이러한 문제들이 자꾸 중첩되다 보니 가독성이 떨어지고, 그것이 책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후반부로 가면 이런 오류들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오류가 사라진 것인지 내가 이런 문장들에 익숙해진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다. 내가 가진 판본은 초판 13쇄로 2014년에 찍은 것인데, 아마 2판을 찍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근 나온 <사회학의 쓸모>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별점을 매긴 책인데, 바우만을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인 만큼 개정판이 하루 빨리 나오기를 바란다.

 

바우만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는데, 사회 현상들을 바라보는 그의 비판적인 시선과 근대 질서의 유동성을 문제로 지적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44개의 편지 중에는 별로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은 내가 피부로 느낄 만큼 그 문제가 확산되었다는 증거일 것이다. 그의 사상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만간 <액체근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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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10-3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요즘은 뭘위해 커버위에 커버를 씌우나 싶어요.광고위해서..자꾸 독자를 바보로 만들어...

아무 2015-10-31 00:34   좋아요 1 | URL
책 10월호에도 띠지에 대한 글이 하나 실렸더라구요 그거 보고 `띠지 극혐`이라는 제목으로 쓰려다가 안 썼..ㅎㅎ 저는 책을 살 때 답정너 식으로 사서 띠지에 영향을 거의 안 받는데, 띠지가 판매 부수에 영향을 주긴 하나 봐요.. 책 살 때마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띠지 버리는 일인데ㅠㅠ

[그장소] 2015-10-31 06:13   좋아요 0 | URL
음..전 띠지도 버리지 않거든요.일단은 기록물이라.
그 시대가 단적으로 보여요.유행이라든지 ..시대상..
이나..디지털의흐름..돌고 도는것이..ㅎㅎㅎ
암튼..그러네요..그런이유로 버리진 못하는데 겹겹 에워싼 표지에 표지..그렇게 자신이 없나..싶은 거죠.
화딱지가 난달까..

[그장소] 2015-10-31 0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저도 책사는건 답정너 식..띠지와 상관없이..안들어오죠.
예전에 나온책을 다시 꺼내 보면 신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