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스트 Axt 2015.9.10 - no.002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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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사실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게 많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소문난 잔치인 만큼 뭔가 색다른 걸 기대했는데, 그냥 많을 뿐 별 거 없더라, 하는 것이다. 기우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악스트>가 소문난 잔치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 '그 다음에 나올 작가는 누구?'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간호는 천명관, 이번엔 박민규... 그럼 그 다음엔? 그들만큼 고유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별종인 소설가를 찾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해봤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더욱이 <악스트>의 매력은 작가 인터뷰를 통해 날것 그대로인 작가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보기 때문에, 다음 호에는 누가 나올지 궁금해지면서도 심히 걱정되는 바다.

 

이번에 실린 서평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장르가 많이 다양해진 점이 좋았다. SF소설이나 추리소설, 판타지까지 다루고 있어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아우르려는 것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서평이 평이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알라딘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리뷰로 보이는 글도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금 색다른'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잡지인 만큼 깊이 있는 서평이 지향점은 아니겠으나, 좋은 서평은 전문적인, 때로는 철학적인 해석을 동원하면서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글 속에 잘 녹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물론 그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안다), 조금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금정연의 서평을 읽다가 서평 레시피를 보고 풉, 하고 웃고 말았는데, 비꼬는 듯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렇게 서평을 써야 좋아요를 많이 받고 이달의 글이 될 수 있지만, 이런 글이 이 책의 매력을 잘 담고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처럼 들린 건 나뿐인가.

 

유행에 따라 나도 레시피를 공유하겠다. 거의 모든 소설에 적용 가능한 만능 서평 레시피다.

 

1. 책을 읽으며 키워드 몇 개를 찾는다.

2. 1에서 찾은 것을 적절하게 배치한다.

3. 적당한 인용과 함께 2의 사이를 채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4. 약간의 사회 비판으로 마무리.

- 금정연, '그대여, 내 사랑을 버리지 마오, 나는 글을 배우고 있다오' (52p)

 

북클럽 '달의 궁전'의 좌담(?)은 새롭긴 했지만 가독성도 많이 떨어지고 서평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설터의 <어젯밤>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그닥 들지 않아서... 이번에도 역시 나는 해외문학의 서평에 좀더 좋은 평을 주고 싶다. 특히 사드의 책을 다룬 이충민의 서평은 다른 서평보다 좀더 깊게 들어가려고 한 점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소개 정도에서 끝나는 다른 서평을 읽다보니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글씨는 여전히 작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박민규 작가의 인터뷰는 그닥 새로운 것이 없었다. '가해자문학' 이야기도 예전에 라디오 책다방 나와서 했던 얘기고... '순수' 이야기 역시 이미 닳고 닳은 얘기다. 닳고 닳은 얘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씁쓸하긴 하지만. 사실 순수문학할 때의 순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수가 아니고, 문학이 다루는 대상이 순수해야 한다는, 현실의 협잡물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순수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지배해왔고(현대문학사의 두 거목인 서정주와 김동리를 보라), 나아가 문학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이 '문학은 순수해'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지만, 결국 거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일 뿐.

 

박민규 작가의 경우 이미 <삼미>의 표절을 인정하긴 했으나, 여기서는 인정하기 전이라 그런지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뭐 길게 할 말은 없다. 한때는 팬이었으나, <더블> 이후로 내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외계인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도 지구인이었네' 정도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7847)

 

이번에 실린 단편 중에서는 박민규의 '팔레스라엘' 말고는 딱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없었다. '모르는 얼굴'의 인물 설정이 조금 색달랐다는 것 정도? 윤해서와 조수경의 작품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깊게 다가오는 바가 없었다. 특히 윤해서의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파편화된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Axtstory'는 'Axtory'라고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 신선한 내용이나 글은 없었다. '초단편 분량의 완성도를 갖춘 문학작품', '중역을 통한 우회 번역이 주는 유희'라는 말을 했지만, 글쎄...

 

'Outro'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악스트>는 조금 색다른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놀이터이지, 어떤 문학적 대안을 들고 나오려는 잡지는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나온 시기가 그런 것을 요구했을 뿐. 처음 읽을 때부터 이 잡지의 목적은 소개이지 문학적 방향성을 정한 것이 아님을 느꼈고, 그 느낌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찌됐든 서평을 중점으로 하는 이런 잡지가 흔하지는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다만 처음에 썼던 것처럼 소문났던 잔치로만 남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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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26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공감하는 바가 있어요!^^

아무 2015-09-26 09:3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그장소] 2015-09-26 09:44   좋아요 1 | URL
아무님도..메리추석!!입니다~^^

2015-09-26 14: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9-26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나다라마바사아 2015-10-01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꾸준히 양질의 리뷰를 쓰시는군요. 저도 참 열심히 리뷰 써서 용돈도 벌고했는데 이젠 게을러져서 일하고 책 좀 보다 잠만 자네요 ㅠㅠ 멈추지 마시길! (박민규 표절은 몰랐네요!!)

아무 2015-10-01 10: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요새 많이 게을러졌는데.. 다시 정신차리고 열심히 가야겠어요 :-)

스윗듀 2015-10-06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정연 서평 나도.ㅋㅋㅋ

아무 2015-10-06 20:09   좋아요 0 | URL
서평 말투가 참.. ㅋㅋㅋㅋ 그래도 <힐>은 한번 읽어보고 싶더라구요^^
 

 

 

 

 

 

 

 

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 홈스와 뤼팽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이 있었다. 그 책이 나에게 추리소설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나는 뤼팽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 당시에 <기암성>도 있어서 읽었었고...(전집은 아니었고 선집 중 하나였다) 그렇게 읽은 뒤 그 둘은 나에게서 잊혀지는 듯 했으나,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을 발견했다. 그 책에서 신출귀몰하는 뤼팽의 모습이란... 하지만 도서관에는 전집이 없었고, 나는 알라딘(아직 aladdin이던 때)에서 전집을 발견하고 꼭 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당시 가격도 15만원 안팎이었던 터라 부모님은 반대했다. 책을 사는 것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부모님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완강했다. 왜 이런 책을 굳이 사냐며... (장르문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그러하듯) 며칠 동안 조르고 조른 뒤에야 나는 까치글방에서 나온 아르센 뤼팽 전집 스무 권의 주인이 되었다. (셜록 홈스 전집이 오기까지는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저작권 기한이 만료되어 우후죽순처럼 나왔던 뤼팽 시리즈 중 성귀수 씨가 번역한 까치글방 판은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황금가지 지못미... 하지만 표지는 예뻤어). 성실하면서도 깊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번역의 질과 해설도 한몫을 했겠지만, 유일하게 <아르센 뤼팽의 수십 억 달러>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만 해도 그의 해설에는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은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알라딘에서(이제는 aladin)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흥분에 젖었었다. 그리고 읽었는데, 흠...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치밀한 구석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깝기도 하다. 코라라는 여성도 그렇고... 뤼팽의 꼬마 특공대는 홈스의 베이커가 특공대를 생각나게 했다. 뤼팽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듯하다... (이것 역시 성귀수 씨 번역이며, 출판사는 문학동네)

 

어렸을 때만 해도 뤼팽과 홈스의 대립 구도 같은 것이 있어서, 네이버 지식인에도 '뤼팽과 홈스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같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올라오던 때였다. 나는 둘 모두 좋아하지만 뤼팽의 호탕함과 유머러스함을 더 좋아했으므로, 철없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열폭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이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가 추리소설에 속한다면,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모험소설로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대결 구도를 만든 건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잘못이 크다. 자기 멋대로 홈스를 작품에 등장시켰으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셜록 홈스의 이름이 또 언급된다. 하....

 

읽으면서 어렸을 때 뤼팽 전집을 쌓아놓고 같은 작품을 네다섯 번씩 읽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여전히 뤼팽은 화끈하고 유머러스했다. 작품성만 놓고 보면 다른 작품에는 못 미치지만,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줬다는 것에 의의를 두련다. 이제 팡토마스를 찾으러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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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최근 읽은 황정은의 단편들에 대한 짧은 감상입니다.) 

 

 

 

 

 

 

 

 

 

 

 

 

 

 

 

1. 웃는 남자

 

왜 웃는 남자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빅토르 위고를 떠올렸다. 작년에 사 놓고 여태껏 읽지 않고 있으므로 기형적으로 웃는 얼굴을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다.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이 단편은 도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아무른 장식도 없고, 벽지마저 뜯어낸 단칸방에서 생곡을 씹고 있는 도도. '디디의 우산'에 나오는 도도가 맞다. 여기서도 도도의 연인은 디디니까.

 

도도는 중간중간에 자꾸 '단순해지'자고 말한다. 어쩌면 단순해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세계는 아버지가 물을 아끼겠다고 변기 손잡이를 떼서 세면대에 남은 물로 오물을 처리하는, 그런 세계다. 그런 곳에서 생각을 자꾸 하면 생각은 '나를 먹고', '나를 짓누르고', '나를 씹는'다(266쪽).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일갈만 남는, 그리고 혁명, 이라고 말하는 게 새삼스러운 세계.

 

구급차를 타고 가는데,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놈이 의식은 있는데 머리가 자꾸 부풀더라고. 머리가 이렇게 자꾸 커져. 겁이 더럭 났지. 그런데 이놈이 자꾸 말을 하려고 하는 거야. 가만히 있으래도 말을 해요. 뭐라고 자꾸, 말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야.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그래서 내가 아 닥치라고, 가만히 좀 이렇게 닥치고 있으라고 열불을 냈단 말이지. 그랬더니 나를 한 번 끔벅 보더니 그다음부턴 말을 안 해. 눈을 감아. 그리고 바로 파래졌지. 바로 파래졌어. (273쪽)

 

디디는 하하, 웃더니 다시 말했다.

일전에 나는 있지, 버스 안에서 혼자 혁명, 하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냥 책 제목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야. 나 엄청 놀랐어.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이 말을 하다니, 하고 놀라서 눈치 보고 그랬어. 그런데 그렇게 놀라고 보니까 이상한 거야. 엄청 이상한 거야. 그게 그렇게 놀랄 정도의 일인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혁명...... 하고 말하는 것이. 그런데 나는 놀랐다? 되게 놀랐고 그렇게 놀란 게 좀 웃기다고 생각했어. 어머 나 좀 봐...... 하고. (271쪽)

 

단순해지려는 도도를 막는 것은 죄책감이다. 디디를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 죄책감은 어떤 노인에 대한 기억을 불러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곁에 서 있던 노인이 쓰러졌을 때 도도는 그를 피해 비켜섰고 때마침 버스가 도착해 버스를 탔다. 그를 떠올리며 도도는 '버스가 조금 늦게 당도했더라면,'(268쪽)하고 계속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단순해지자. / 더 단순해지자.'(269쪽)고 말한다. 하지만 디디에 대한 죄책감은 단순해지지 않도록 그를 막는다. 디디가 현실의 무심함에 대한 반성으로 그를 이끈다고 해야 할까. '벽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263쪽)는 세계에서, 이런 무심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 현실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도는 단순하고 무심한 세계의 표상과 같은 방 안에서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275쪽)라고. 도도는 그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2. 아무도 아닌, 명실

 

(소설 전문은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11033)

 

<한밤의 산행>은 '기억'에 관한 테마 소설집이다. 여기 실린 '아무도 아닌, 명실'은 지금까지 읽은 황정은의 단편 중 두 번째로 어려웠다(첫 번째는 그 다음에 나온다). 명실은 글을 쓰기 위해 노트와 만년필을 찾고 그의(실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책장을 보며 실리를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은 자꾸 흐려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자꾸 잊혀진다. 자신을 알아보는 전어 장수나 자신의 조카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는 걸 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실리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이 소설을 메타소설로 보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끊임없이 책을 쓰려고 하지만 끝을 맺지 못하는 실리, 실리가 죽은 뒤 주인이 없어진 그의 책장과 책들. 그리고 노트에 실리에 대한 글을 쓰려는 명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소설로 보기 전에, 이 소설이 말하려는 건 기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실리가 들려주는 마리코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를 기다리는 방식이 아닐까, 하고.

 

그게 안 돼. 앉으면 말이야...... 앉으면 되지,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서 앉았는데 벌판 가득 풀이 자라서 그 속에 앉으면 길게 자란 풀에 묻히는 거야. 마리코가 자칫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갈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서서 기다려. (...) 그런데 이 벌판에 온전히 혼자인 것은 아니라서......

누가 있어?

누가 있지. 책상과 의자가. (102-103쪽)

 

기억하지 않으면, 기다리지 않으면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104쪽)이다. 명실은 마리코-실리를 망각으로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기다린다. 그 기다리는 방식, 기억하는 방식은 사진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냥 밋밋한 종잇장'(104쪽)이 되는 순간이 오므로, 오히려 실리가 이제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버리므로... 실리를 기억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뿐이다. 실리의 책들, 그 책들이 실리를 죽였다는 생각에 그 책들을 '닥치게 만들었고 죽게 내버려두었'지만(107쪽), 실리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마리코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책상과 의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황정은에게 소설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 기다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중년 부부의 유럽 여행을 다룬다. 시기는 IMF가 터졌을 때로 나오지만 그 배경이 그렇게 큰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을 보았을 때, 이 단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여행인 듯하다. 14년 전 아이와 함께 갔던 계곡 나들이, 유럽 여행, 그리고 우주선 패스파인더(Pathfinder)의 화성 착륙.

 

뭘 그렇게 봐.

아니 화성이니까.

뭐 별거 있나.

아니 저렇게 있는데 못 가볼 거니까, 평생.

화성엔 못 가지.

그렇지, 우린.

다른 사람도 못 가.

미국이 갔잖아. 사진도 찍고, 저렇게.

미국이 간 거지. 아무도 없어, 저기엔. 무인(無人)이었으니까. 저기 갈 수 있는 사람은 지금도 없어. (337-338쪽)

 

소설에는 큰 사건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14년 전 아이의 죽음. 다른 하나는 여권 분실.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부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인 그는 '조금 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여행에서 모든 설명과 일을 도맡아 한다. '묻는 일이 피곤했고 나중엔 거의 두려'울 만큼. 반면 아내는 '왕성하게 먹고 호기심도 왕성'해서, 이리저리 쏘다니고 길을 걷다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이탈해서 가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왕성한 호기심에 그는 무뚝뚝하게, 때로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오히려 그는 그런 활기가 불편하다. '이 도시의 활기가 불편'하듯이. 어쩌면 그는 이 세계의 질서가 체화된 인물,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라는 개별자의 호기심에, 상처에 무관심한 것 아닐까, 하고.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곤혹스러운 세계 자체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개새끼가 가져갔을까. 안장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서 통째로 들어낸 것, 멋대로 떼어내 자취 없이 감춰버린 것. 이제 시작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 시작되어서 앞으로도 이 아이는 지독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거듭 상처를 받아가며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지......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였다. (338-339쪽)

 

이런 그의 불만은 아내가 여권을 잃어버리자 폭발한다. 왜 여기서 그녀에게 뱉는 그의 말이 나는 이렇게 들린걸까. 그러니까 그렇게 질문하고 쏘다니고 호기심 갖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14년 전에 니가 '조금 더 들어가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우리 아이도 안 죽었을 거다. 진작 입 다물고 질서에 맞게, 이 세계의 질서에 맞게 살았으면 되지 않았냐.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라고 말해줘야 돼? 이런 식으로.

 

내가 그걸 챙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부탁한 게 있어? 그거 챙기라고...... 가방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 잊지 말라고...... 그냥 그거 하나...... 가방에 다 있잖아. 당신 칫솔, 화장품, 사탕...... 다 있는데 왜 그건 없냐...... (...) 그런데 괜찮을 거라니...... 당신은 괜찮지 걱정이 없지 내가 다 하니까...... 당신은 잘 먹고 잘 자고...... 어디서든...... 호텔에서든 비행기에서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렇게 비위가 좋냐 그렇게 멀쩡하게...... 괜찮을 거라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쉬워 모든 게......

(...)

그런 식으로 보지 마. 사람 빤히 관찰하지 마. 너는 아무 잘못 없는데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345-346쪽)

 

그리고 아내는 그를 떠난다. 세계의 질서를 무심하게 따라가기만 했던 결과는, 소중했던 사람들의 상실이다. 그래서 '노, 미스드...... 로스트......'라고 한 것 아닐까. 세계에 대한 의심 없이 무관심하게 모든 질서를 수용했던 그와, 조용히 따라오라는 세계에 호기심을 품고 있던 아내.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아니었을까.

 

그냥 읽으면 가끔 아내의 행동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마치 해결사인 것 같고...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세계에 대한 의심 없이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런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세계가 우리의 안전을,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IMF 얘기가 나온 것일지도.

 

가게를 봐주고 있는 처남에게 도착을 알리고 안부를 물었다. 매형, 처남이 말했다. 우리 나라가 망했어요. (336쪽)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세계의 바깥을 말하는 것일까? 패스파인더도, 아이도, 그녀도 불합리한 이 세계의 바깥으로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다 이해한 것처럼 떠들었지만 이건 모두 나만의 독자적인(그래서 오류가 많은) 해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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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9-23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방식˝이라...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와 연결하니, `고도`(Godot)가 영어 `God`와 프랑스어 `Dieu`의 합성어라는 점(황정은 작품 속 인물들 이름짓기와 유사?), 인물들의 대화, 기다리는 상황....상당히 황정은 작가 작법세계와 긴밀하단 생각이 드네요

아무 2015-09-23 21:32   좋아요 1 | URL
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듣고 보니 정말로.... 이름짓기도 그렇고 상황들도 뭔가 고도를 기다리는 그런 상황과 유사한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고도가 세계를 벗어난 인물이 될 지도...ㅎㅎ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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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여유롭게,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읽자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한 시간 뒤, 그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책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책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끝을 볼 때까지 쭉 읽은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보지 않았던 이 책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모든 일에 실패한 삶을 살아간 윌리엄 스토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재미없는 소설처럼 보인다. 자극적인 반전도 없고, 대단한 전환점도 없는 스토너의 삶이 출생부터 쭉 나열되고 있으니까. 소설가 김중혁은 책을 완독하지 않았을 때 다른 소설리스트 멤버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지금도 재미있게 읽고 있긴 한데 대체 언제부터 재미있어지는 거에요?"

 

그러나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스토너의 평범한, 지극히 평범했던 그 일생에 있다. 매사에 수동적이었고, 일, 사랑 그 무엇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던 스토너의 삶을 다 읽었을 때, 소설의 감동이 마음을 울린다. 어쩌면 스토너의 삶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언뜻 보았기 때문일까.

 

 

1. 이디스, 그레이스

 

스토너는 평생 살면서 어떤 행동(action)을 직접 행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그에게 가해진 어떤 행동의 반작용(reaction)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반응 중 대부분은, 그의 아내였던 이디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디스는 전형적인 교육을 받던 여성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히스테릭하고 때로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 정신 불안을 겪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끔씩 그가 스토너에게 가하는 행동들은 상식을 벗어나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드는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녀가 악역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과묵하고 학문에만 열중할 뿐인 스토너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정신적인 불안을 겪으며 행동하는 모습이 미워지지 않고 오히려 연민마저 느껴지게 된다. 그녀의 제정신이 아닌 행동은, 제정신을 차리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레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기에, 아버지를 많이 따르기도 하고, 부녀 사이에는 어떤 정서적 교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부녀가 서재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디스는 자신에게 없는 감정의 소통이 둘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스토너에게서 그레이스를 빼앗아 자기 식으로 기르기 시작한다.(스토너는 여기서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제일 답답...)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자란 그레이스는 부모가 알지 못하는 방황을 겪고, 감옥과 같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기를 갖는다. 이후 남편을 잃고 알콜 중독에까지 이르며 파멸의 길을 걷는데, 한때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스토너는, 여기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볼 뿐.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니. 아...

 

그레이스와 이디스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이는 그레이스가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이디스의 손에서 길러졌다는 것도 한몫을 한다. 둘 모두 자신을 옥죄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불행했다. 그 안에는 지(知)에 대한 사랑도, 상대를 향한 사랑도 부재했기에.

 

 

2. 스토너, 책을 사랑한 인간의 자세

 

스토너의 일생에서 떼 놓을 수 없는 것은 책이다. 그는 평생 동안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문학을 사랑했다. 특히 그가 관심을 쏟은 것이 문법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법이라는 것은, 단순한 단어들의 배열 규칙 같은 것이 아니라, 영문학을 이루는 모든 것이자 그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문법에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은, 그는 영문학 자체를 무목적적으로 사랑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처음으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일정한 리듬과 운율을 요구하는 정형시 소네트였다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초반에 아처 슬론이 읊어주는 소네트 역시 감탄할 만한 장치인데, 내용이 스토너의 인생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캐서린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가 학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동물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결혼까지 했던 이디스와의 생활은, 학문에 대한 사랑을 공유할 수 없었기에 불행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학문에 대한 사랑까지 있었기에 사랑하면서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279쪽)

 

그러나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라고 우기는 세계의 개입으로 이들의 사랑은 끝났다. 스토너는 다시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하나, 책에 빠져 남은 생을 보낸다. 그의 삶을 지켜보며 내가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을 대하는, 학문을 대하는 그의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실패뿐이었던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끝까지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에.

 

 

3. 약간의 아쉬움, 로맥스와 워커

 

동료 교수인 로맥스와 그의 제자 워커는 이 작품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다. 이들은 스토너를 방해하며 소설의 전개를 추동하는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둘이 모두 장애가 있다고 설정한 것이 조금은 불편한 감이 있었다. 마치 장애라는 환경적 조건이 그들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는 일반화가 성립된 것 같아서. 악당이 가진 불구적인 요소가 그 요소마저 악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형적인 사고가 눈에 띄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이들이 있었기에 한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스토너가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평생 가정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 적이 없던 스토너는, 교육자로서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 이들과 적극적으로 맞섰으니까.

 

 

4. 너무나 평범했던 한 남자

 

작품을 읽으면서 이 인물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까, 그랬다면 좀더 나아졌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학문을 제외하면 한번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스토너는 쓸쓸하게 생을 마쳤고,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그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 첫 문단을 읽었을 때 느껴졌던 아련함과 울림이란... 슬픔과 고독 속에서 책을 향해, 문학을 향해 걸어갔던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책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스토너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평생 책을 사랑했던 그의 마지막은, 슬픔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책을 만나서 다행이었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알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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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9-20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고싶은 말을 아무님이 다 했네요..그것도 잘👍

아무 2015-09-20 13: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다른 작품도 나오면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2016-01-1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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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읽는 건 <악기들의 도서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글을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쓴다...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디제잉이나 이런 쪽에 워낙 지식이 없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아날로그적 인간은, 이래서 힘든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연애소설집이 아니지만, '연애' 소설집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연애라는 것은 결국 관계가 보여주는 모든 형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맨 앞에 실린 '상황과 비율'은 관계의 시작을 말한다는 점에서 위치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프러포즈라니.

 

"송미씨에 대한 '춘하프로덕션'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송미씨 팬의 평균 연령은 28.5세이고, 악플의 비율은 13퍼센트입니다. 여배우들의 평균 악플 비율이 25퍼센트인 걸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데요. 정지화면 캡처 비율입니다. 얼굴과 상체, 상체와 하체, 전신 캡처의 경우를 통계로 내는데, 송미씨의 경우는 4 대 2 대 2입니다. 전신보다 얼굴의 비율이 높게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송미씨의 웃는 표정을 좋아한다는 얘깁니다."

- '상황과 비율' (24쪽)

 

'픽포켓'은 나에게 집착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극성 팬에게 납치당한 여자 연예인과 그녀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두 팬의 이야기. 이 단편은 작품에서 인용한 찰스 디킨스의 문장,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단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이규호의 입을 빌린 피존씨의 이야기다. 이규호는 옛 여자친구인 정윤에게 말을 털어놓고 있지만, 사실 정윤은 이규호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피존씨나 이규호에게 필요한 건 단 한 번의 포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자의 포옹은 결국,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일 뿐.

 

'뱀들이 있어'는 여러 상황이나 장면이 세월호를 생각나게 하는 단편이었는데, 이 작품과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무엇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정민철이 류영선을 안아주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처럼 보여서일까. '연애'소설집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단편의 주제는 아마 '질투'와 '공감'이 될 것이다.

 

'종이 위의 욕조'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며 알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번의 전시회를 위해 이리저리 작품 배치를 바꿔보며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지만, 관계라는 것, 나아가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끝이다'.(박세회, '[허핑턴 인터뷰] 소설가 김중혁은 우리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보트가 가는 곳'은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우주전쟁'을 생각나게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만난 두 남녀에게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건 결국 사랑이라는 얘기. 이들은 같은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진짜 팔로 포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지막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면 의문이 남는다.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이별 후의 분노와 증오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다. 별로 좋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지...

 

'요요'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편이어서 그런지 꼼꼼히 읽었다. 어쩌면 이 단편에 작가가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꽤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관계라는 건 시계의 시침과 분침 같은 것, 또는 요요와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인생관, 혹은 예술관인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의 동선 중에서 용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되돌아가고 싶은가'였다."('종이 위의 욕조')라는 문장처럼.

 

여전히 그의 문장은 담백하고, 빠르고,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평을 말하자면 글쎄... 의문점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단편들 안에서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을 뿐더러,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 것도 꽤 여러 편 있었으므로... 하지만 이렇게 쉽게 책장이 넘어가게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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