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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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읽는 건 <악기들의 도서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글을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쓴다...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디제잉이나 이런 쪽에 워낙 지식이 없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아날로그적 인간은, 이래서 힘든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연애소설집이 아니지만, '연애' 소설집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연애라는 것은 결국 관계가 보여주는 모든 형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맨 앞에 실린 '상황과 비율'은 관계의 시작을 말한다는 점에서 위치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프러포즈라니.

 

"송미씨에 대한 '춘하프로덕션'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송미씨 팬의 평균 연령은 28.5세이고, 악플의 비율은 13퍼센트입니다. 여배우들의 평균 악플 비율이 25퍼센트인 걸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데요. 정지화면 캡처 비율입니다. 얼굴과 상체, 상체와 하체, 전신 캡처의 경우를 통계로 내는데, 송미씨의 경우는 4 대 2 대 2입니다. 전신보다 얼굴의 비율이 높게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송미씨의 웃는 표정을 좋아한다는 얘깁니다."

- '상황과 비율' (24쪽)

 

'픽포켓'은 나에게 집착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극성 팬에게 납치당한 여자 연예인과 그녀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두 팬의 이야기. 이 단편은 작품에서 인용한 찰스 디킨스의 문장,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단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이규호의 입을 빌린 피존씨의 이야기다. 이규호는 옛 여자친구인 정윤에게 말을 털어놓고 있지만, 사실 정윤은 이규호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피존씨나 이규호에게 필요한 건 단 한 번의 포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자의 포옹은 결국,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일 뿐.

 

'뱀들이 있어'는 여러 상황이나 장면이 세월호를 생각나게 하는 단편이었는데, 이 작품과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무엇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정민철이 류영선을 안아주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처럼 보여서일까. '연애'소설집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단편의 주제는 아마 '질투'와 '공감'이 될 것이다.

 

'종이 위의 욕조'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며 알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번의 전시회를 위해 이리저리 작품 배치를 바꿔보며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지만, 관계라는 것, 나아가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끝이다'.(박세회, '[허핑턴 인터뷰] 소설가 김중혁은 우리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보트가 가는 곳'은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우주전쟁'을 생각나게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만난 두 남녀에게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건 결국 사랑이라는 얘기. 이들은 같은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진짜 팔로 포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지막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면 의문이 남는다.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이별 후의 분노와 증오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다. 별로 좋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지...

 

'요요'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편이어서 그런지 꼼꼼히 읽었다. 어쩌면 이 단편에 작가가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꽤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관계라는 건 시계의 시침과 분침 같은 것, 또는 요요와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인생관, 혹은 예술관인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의 동선 중에서 용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되돌아가고 싶은가'였다."('종이 위의 욕조')라는 문장처럼.

 

여전히 그의 문장은 담백하고, 빠르고,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평을 말하자면 글쎄... 의문점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단편들 안에서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을 뿐더러,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 것도 꽤 여러 편 있었으므로... 하지만 이렇게 쉽게 책장이 넘어가게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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