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 홈스와 뤼팽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이 있었다. 그 책이 나에게 추리소설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나는 뤼팽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 당시에 <기암성>도 있어서 읽었었고...(전집은 아니었고 선집 중 하나였다) 그렇게 읽은 뒤 그 둘은 나에게서 잊혀지는 듯 했으나,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을 발견했다. 그 책에서 신출귀몰하는 뤼팽의 모습이란... 하지만 도서관에는 전집이 없었고, 나는 알라딘(아직 aladdin이던 때)에서 전집을 발견하고 꼭 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당시 가격도 15만원 안팎이었던 터라 부모님은 반대했다. 책을 사는 것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부모님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완강했다. 왜 이런 책을 굳이 사냐며... (장르문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그러하듯) 며칠 동안 조르고 조른 뒤에야 나는 까치글방에서 나온 아르센 뤼팽 전집 스무 권의 주인이 되었다. (셜록 홈스 전집이 오기까지는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저작권 기한이 만료되어 우후죽순처럼 나왔던 뤼팽 시리즈 중 성귀수 씨가 번역한 까치글방 판은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황금가지 지못미... 하지만 표지는 예뻤어). 성실하면서도 깊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번역의 질과 해설도 한몫을 했겠지만, 유일하게 <아르센 뤼팽의 수십 억 달러>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만 해도 그의 해설에는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은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알라딘에서(이제는 aladin)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흥분에 젖었었다. 그리고 읽었는데, 흠...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치밀한 구석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깝기도 하다. 코라라는 여성도 그렇고... 뤼팽의 꼬마 특공대는 홈스의 베이커가 특공대를 생각나게 했다. 뤼팽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듯하다... (이것 역시 성귀수 씨 번역이며, 출판사는 문학동네)

 

어렸을 때만 해도 뤼팽과 홈스의 대립 구도 같은 것이 있어서, 네이버 지식인에도 '뤼팽과 홈스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같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올라오던 때였다. 나는 둘 모두 좋아하지만 뤼팽의 호탕함과 유머러스함을 더 좋아했으므로, 철없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열폭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이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가 추리소설에 속한다면,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모험소설로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대결 구도를 만든 건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잘못이 크다. 자기 멋대로 홈스를 작품에 등장시켰으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셜록 홈스의 이름이 또 언급된다. 하....

 

읽으면서 어렸을 때 뤼팽 전집을 쌓아놓고 같은 작품을 네다섯 번씩 읽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여전히 뤼팽은 화끈하고 유머러스했다. 작품성만 놓고 보면 다른 작품에는 못 미치지만,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줬다는 것에 의의를 두련다. 이제 팡토마스를 찾으러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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