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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5.9.10 - no.002 ㅣ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사실 소문난 잔치에는 먹을 게 많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다'는 말이 공감을 얻는 이유는 소문난 잔치인 만큼 뭔가 색다른 걸 기대했는데, 그냥 많을 뿐 별 거 없더라, 하는 것이다. 기우인지는 모르겠으나, 다음 <악스트>가 소문난 잔치가 되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되는 것이, '그 다음에 나올 작가는 누구?'라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창간호는 천명관, 이번엔 박민규... 그럼 그 다음엔? 그들만큼 고유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으면서도 별종인 소설가를 찾을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해봤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더욱이 <악스트>의 매력은 작가 인터뷰를 통해 날것 그대로인 작가의 얼굴을 만나볼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크다고 보기 때문에, 다음 호에는 누가 나올지 궁금해지면서도 심히 걱정되는 바다.
이번에 실린 서평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장르가 많이 다양해진 점이 좋았다. SF소설이나 추리소설, 판타지까지 다루고 있어 장르문학과 본격문학을 아우르려는 것이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서평이 평이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러다 보니 알라딘에서 볼 수 있을 정도의 리뷰로 보이는 글도 많이 있었다. 기본적으로 '조금 색다른' 놀이터를 만들겠다는 취지로 시작된 잡지인 만큼 깊이 있는 서평이 지향점은 아니겠으나, 좋은 서평은 전문적인, 때로는 철학적인 해석을 동원하면서도 독자가 이해할 수 있게 글 속에 잘 녹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므로(물론 그것이 굉장히 어렵다는 것도 안다), 조금은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금정연의 서평을 읽다가 서평 레시피를 보고 풉, 하고 웃고 말았는데, 비꼬는 듯한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마치 '이렇게 서평을 써야 좋아요를 많이 받고 이달의 글이 될 수 있지만, 이런 글이 이 책의 매력을 잘 담고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처럼 들린 건 나뿐인가.
유행에 따라 나도 레시피를 공유하겠다. 거의 모든 소설에 적용 가능한 만능 서평 레시피다.
1. 책을 읽으며 키워드 몇 개를 찾는다.
2. 1에서 찾은 것을 적절하게 배치한다.
3. 적당한 인용과 함께 2의 사이를 채워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한다.
4. 약간의 사회 비판으로 마무리.
- 금정연, '그대여, 내 사랑을 버리지 마오, 나는 글을 배우고 있다오' (52p)
북클럽 '달의 궁전'의 좌담(?)은 새롭긴 했지만 가독성도 많이 떨어지고 서평의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으면서 설터의 <어젯밤>을 읽어볼까 하는 생각이 그닥 들지 않아서... 이번에도 역시 나는 해외문학의 서평에 좀더 좋은 평을 주고 싶다. 특히 사드의 책을 다룬 이충민의 서평은 다른 서평보다 좀더 깊게 들어가려고 한 점에서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소개 정도에서 끝나는 다른 서평을 읽다보니 그렇게 느낀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리고 글씨는 여전히 작다. 눈이 아플 정도로.
박민규 작가의 인터뷰는 그닥 새로운 것이 없었다. '가해자문학' 이야기도 예전에 라디오 책다방 나와서 했던 얘기고... '순수' 이야기 역시 이미 닳고 닳은 얘기다. 닳고 닳은 얘기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씁쓸하긴 하지만. 사실 순수문학할 때의 순수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순수가 아니고, 문학이 다루는 대상이 순수해야 한다는, 현실의 협잡물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순수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한국문학을 지배해왔고(현대문학사의 두 거목인 서정주와 김동리를 보라), 나아가 문학교육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이다. 순수문학이라는 이름이 '문학은 순수해'라는 생각을 심어주게 되었지만, 결국 거기도 사람들이 사는 곳일 뿐.
박민규 작가의 경우 이미 <삼미>의 표절을 인정하긴 했으나, 여기서는 인정하기 전이라 그런지 부정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뭐 길게 할 말은 없다. 한때는 팬이었으나, <더블> 이후로 내 관심에서 멀어졌기 때문에... (그렇다고 실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외계인인 줄 알았는데 이 사람도 지구인이었네' 정도다.
(http://jmagazine.joins.com/monthly/view/307847)
이번에 실린 단편 중에서는 박민규의 '팔레스라엘' 말고는 딱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없었다. '모르는 얼굴'의 인물 설정이 조금 색달랐다는 것 정도? 윤해서와 조수경의 작품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에, 깊게 다가오는 바가 없었다. 특히 윤해서의 작품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지, 파편화된 삶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건지, 종잡을 수 없었다.
'Axtstory'는 'Axtory'라고 해도 괜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 신선한 내용이나 글은 없었다. '초단편 분량의 완성도를 갖춘 문학작품', '중역을 통한 우회 번역이 주는 유희'라는 말을 했지만, 글쎄...
'Outro'에서도 나오지만, 결국 <악스트>는 조금 색다른 것을 만들어 보고 싶었던 사람들의 놀이터이지, 어떤 문학적 대안을 들고 나오려는 잡지는 아니다. 단지 그것이 나온 시기가 그런 것을 요구했을 뿐. 처음 읽을 때부터 이 잡지의 목적은 소개이지 문학적 방향성을 정한 것이 아님을 느꼈고, 그 느낌은 지금도 유효하다. 어찌됐든 서평을 중점으로 하는 이런 잡지가 흔하지는 않았으니까, 그것만으로도 의미있는 일이지 않을까. 다만 처음에 썼던 것처럼 소문났던 잔치로만 남지는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