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헌책방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며 열심히 웹서핑을 하던 중 헌책 두 권을 찾아 구입했는데, 그 중 한 권이 루이 알튀세르의 『아미엥에서의 주장』이었다. 알라딘 중고에도 몇 권 올라와 있지만 가격이 2만원대를 넘는 수준이라 망설이던 차에 옥션에서 4,500원에 판다고 올라와 있길래 얼른 주문했다. 그러다가 오늘 낮에 알 수 없는 번호로부터 '책에 볼펜 밑줄과 낙서가 많아 판매를 취소하려 한다'는 문자를 받고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나는 읽을 수 없을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고, 그런 파손만 없으면 '무조건' 구입할 의사가 있다고 답장을 보냈다.



이후 보내준 사진을 보니 밑줄이 있긴 했으나 엄청 심한 정도는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오늘 받은 『읽기이론/이론읽기』도 밑줄이 만만치 않아 어떤 페이지는 한 쪽 전체에 밑줄이 그어진 경우도 있었으나, 페이지 손상은 없는 듯하여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받았다(그래서인지 택배 상자에는 맥심 커피가 두 개 들어 있었다). 그것에 비하면 『아미엥에서의 주장』은 양호한 수준인 듯하다. 부산에서 오는 것이라 다음 주는 돼야 도착하겠지만. 이 책을 구매한 건 『마르크스를 위하여』를 읽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내가 알고 있는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ISS)를 이야기한 사람이라는 것 정도다..



내가 찾는 헌책들은 그밖에도 몇 권이 있지만, 바흐친의 『예술과 책임』, 레비나스의 『윤리와 무한』은 정말 찾기 힘든 책이다. 바흐친의 경우 『프로이트주의』는 알라딘에도 몇 권이 고가에 거래되고 있지만, 『예술과 책임』은 주요 인터넷서점과 여러 헌책방 사이트를 매일 검색해도 도통 나오지 않는다. 『윤리와 무한』도 마찬가지여서 검색하면 '무한도전 윤리' 같은 문제집만 계속 나온다. 몇 달 동안 이틀에 한 번꼴로 검색중인데.. 이 글을 다 쓰고 나면 다시 검색하러 가야겠다. 혹시 어디서 파는지 아시는 분은 제가 '무조건' 살 의향이 있으니 꼭 연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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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2017-01-2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을 올리고 나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두 책 모두 인터파크, 예스24, 교보문고 중고에 올라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다 짜고 올린 듯이 전부 9만 5천원... 나로서는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가격이다.. 눈물을 머금고 이번엔 그냥 보내야겠다.

북깨비 2017-01-22 1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헌책 사냥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해요. ^^

아무 2017-01-22 14:47   좋아요 1 | URL
흥미진진하셨다면 그걸로 족합니다 ㅎㅎ 다음엔 꼭 구할 수 있기를..

cyrus 2017-01-22 14: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판매자님이 마음이 좋으신 분이군요. 저도 정말 비싼 가격의 중고책을 주문했는데, 돌연 주문 취소 통보를 받았어요. 이유조차 알려주지 않았어요. 제가 주문한 책 금액이 5만 원이었어요. 당연히 금액을 돌려받았지만 그때 너무 아쉬워서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다행히 사지 못한 책을 구하는 데 성공했어요. 그 책이 토머스 핀천의 <브이를 찾아서>입니다. ^^

아무 2017-01-22 15:26   좋아요 0 | URL
아 그 책도 진짜 구하기 힘든 책인데, 정말 아쉬우셨겠어요ㅠㅠ 핀천의 다른 책들은 조금씩 번역되는 것 같은데, 그 책만 새로 나온다는 소식이 없어 항상 아쉽습니다.. 저도 5만원까지면 둘 중 한권이라도 주문했을텐데..ㅠㅠ

2017-02-19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2-19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수저
나카 칸스케 지음, 양윤옥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설화의, 풍속의 세계에 머물고 싶었으나 결국 헛된 바람일 뿐. 그렇게 인간은 어른이 되고 어린아이의 눈을 잃는다.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어린아이의 순수함과 공들여 묘사된 풍속이 읽기의 원동력이지만, 그것도 성장소설의 뻔한 구도에 머문다. 왜 시제의 차이를 두었는지 나는 파악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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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을 보다가 우연히 문학과지성사 이벤트를 하는 것을 보고 집에 있는 책들을 끌어모아 보았는데, 생각보다 문지 책이 많지 않았다. 책장 한 칸을 겨우 차지할 정도니.. (도서관 책이 한 권 있는 것 같다면 기분 탓이다) 더욱이 읽지 못한 책이 예상 외로 많았다. 그래도 어찌어찌 책장 한 칸을 차지하는 것에 안도하고, 동시에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에게 떠오르는 문지의 첫 이미지는 최인훈의 『광장』이다. 고등학생 때 처음 친구의 책을 빌려서 보았으니 빠른 만남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는 출판사라는 개념이 머릿속에 없던 상태였으니 문지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읽었을 것이다(그리고 난 아직까지 「구운몽」을 읽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 내가 구입한 책이 이청준 작가의 『당신들의 천국』이었는데, 이 때 산 책은 교실에서 돌고 돌다가 실종되었고 나는 책을 다시 사야 했다. 하기야 그때 돌면서 이미 표지도 사라진 상태라 다시 사는 게 나은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소설 명작선 중 가지고 있는 책은 『당신들의 천국』 하나뿐이지만, 이 책은 여전히 내가 읽은 한국소설 중 최고의 자리에 있다.



대산세계문학총서나 문학과지성 시인선, 소설 명작선 등 문지를 대표하는 시리즈들은 많지만, 요즘 나는 그 중에서도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와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마음이 간다. '우리 시대의 고전' 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블랑쇼와 낭시의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 한 권이지만, 시리즈를 검색해서 보고 있으면 언젠가 구입하겠구나 싶은 책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책들이 어떻게 한 출판사에서 나왔나 싶을 정도로. 물론 이 시리즈는 만만해 보이는 책이 없어서 한 권씩 볼 때마다 험난한 여정이 예상될 때가 많다...


 

'현대의 지성' 시리즈에 눈길이 가는 건 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 '타자', '환대', '기호학' 등등.. 그래서 레비나스로 눈을 돌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조금씩 읽고 있는 『서양철학사』(이학사)에서는 레비나스를 다루지 않았다(적어도 목차를 봤을 때는). 그래서 최근에 『시간과 타자』(문예출판사)를 구입했는데, 레비나스의 주저라고 불리는 『전체성과 무한』은 번역본이 없어 2차 텍스트로만 볼 수 있다. 그래서 혹시, 강영안 교수께서 직접 번역할 생각은 없는지.. 그렇게 해서 '우리 시대의 고전' 시리즈로 내면 될 것 같은데...



끝으로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에 대해서 작은 아쉬움 하나만 이야기하고 싶다. 고등학생 시절, 그리고 학부생 시절에 한국 근현대 문학작품을 읽어야 했던 시기, 문지의 한국문학전집은 나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표지 디자인도 일관되고 산뜻하고, 책 크기도 적당하고, 뒤에 실린 해설들도 좋았다. 하지만 각주가 아닌 미주는 읽을 때 많은 불편을 주었다. 근대문학일수록 더 불편한 것은 그 시절 사용되던 어휘가 지금과 달라 주석이 없으면 이해가 어려운 까닭이다(『삼대』나 『고향』 같은 작품은 고역이다). 그래서 나는 문지 전집을 더 좋아했음에도 미주의 불편함 때문에 현대문학 출판사에서 나온 전집을 찾아 읽는 일이 잦았다. 지금은 어떻게 나오는지 모르겠으나, 아직도 그렇다면 개선을 좀...


 

많은 사람들이 문지 하면 떠올리는 것은 문학과지성 시인선이겠으나, 너무 유명해서 굳이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책들이, 특히 80년대에 나온 시집들이 내 시심(詩心)의 중핵을 이루고 있음은 분명하다. 최승자, 이성복, 황지우... 그들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며(별 헤는 밤이 떠오른다면 기분 탓이다) 마무리해야겠다..


p.s 1) 사진을 찍으려고 책을 모을 때 문지 책도 아니면서 꽂아보려 했던 책은 낭시의 『무위의 공동체』(인간사랑)였다. 출판사는 다르지만, 『밝힐 수 없는 공동체 / 마주한 공동체』의 짝이니까. 하지만 뒤늦게 발견한 말라르메의 『시집』에 밀려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p.s 2) '현대의 지성' 시리즈 중 내가 갖고 있는 책은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가 전부다. 작년 초에 샀으나 여전히 다른 책에 치이고 있는, 볼 때마다 '봐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 그러다 작년 가을 무렵 문지 페이스북에서 이 책에 교정사항이 있다는 공지를 보고 캡처해 놓았다(아직 내 책에 표시하진 않았다). 이미 책을 읽으신 분들이 바로잡으셨으면 하는 마음에 사진을 올려둔다. 핵심적인 내용이 수정된 것은 아닌 듯하고, 내가 갖고 있는 책은 7쇄다.



p.s 3) 글을 다 쓰고 보니 이 이벤트는 리뷰에만 적용되는 모양이다. 생고생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생고생의 결과는 그냥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벤트가 언제까지인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번 주에 읽어야 할 책 중에 문지 책은 없다...

 

p.s 4) 아무리 수정해도 되지 않길래 어제 밤에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응모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제 읽고 공감해주신 분과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죄송합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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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20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님, 글 위에 ‘이벤트 참여 중’ 단어가 없어요. 마이페이퍼로 작성해서 글쓰기 창 위에 ‘이벤트 응모하기’에 체크해야 합니다. 체크 안 된 게시물은 이벤트 게시판에 보이지 않습니다. 정성들여 쓴 글을 삭제하고 다시 업로드할 때 난감합니다. ^^;;

아무 2017-01-20 11:54   좋아요 0 | URL
이번에 쓸 때는 체크하고 썼는데도 글 위에 안 뜨더라구요ㅠ 그래서 문지 이벤트창으로 들어가니 제 글이 참여중인 걸로 올라와있길래.. 아무래도 예전처럼 글에 참여중을 띄워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헷갈리지 않도록 올려주는 게 나을 것 같아요ㅠ

cyrus 2017-01-20 11:57   좋아요 1 | URL
아, 그래요! 몇 달 동안 출판사 사진 이벤트를 하지 않아서 모르고 있었어요. 저도 조만간 문지 이벤트 응모하려고 이번 주말에 책장을 확인해보려고 합니다. ^^

cyrus 2017-01-20 14:42   좋아요 1 | URL
방금 글쓰기 테스트 해봤는데, 정말 ‘응모 중’ 문구가 안 나오네요.

아무 2017-01-20 15:40   좋아요 0 | URL
오늘 다시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 어제도 내가 착각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정할 때면 체크란도 안 나오고ㅠㅠ 사소한 거지만 ‘응모 중‘ 문구가 나오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습니다.. ^^;;
 

1월이 되면서 내 일상은 또다른 변곡점을 맞았고, 덕분에 항상성을 유지하던 일상은 롤러코스터에 올랐다. 해가 뜨기 전에 집에서 나와 해가 진 후 집에 들어오는 일상, 그리고 잠깐도 눈 돌릴 틈이 없는 일상, 책 한 장도 넘길 수 없이 흘러간 일상. 감히 말하자면 지난 1년보다 몇 배는 힘들고 고되었던 2주였다. 보통 이렇게 바쁘면 아무런 생각도 없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바쁜 와중에도 어딘가 텅 비어 있는 기분, 허전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 글의 부제는 '때늦은 애도'이다. 나에게 그동안 애도의 시간마저 없었음을 한탄하면서..


현자들이 점점 세상을 뜨고 있었다. 에코도 죽었고, 존 버거도 죽었고, 바우만도 죽었다. 평균 연령보다 높은 생을 누리다 죽었으니 급작스러운 부고는 아니겠으나, 그렇다고 이것을 호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이 너무나 강렬하게 그들의 목소리를 원한다. 하지만 그들은 떠났고, 남은 자들에게는 그들의 책만이 남았다. 이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남은 자들의 몫이다.






























존 버거의 죽음은 새해 들어 처음으로 듣게 된 부고였다. 더욱 안타까웠던 것은 내가 여태 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다. 집에 있는 책은 『다른 방식으로 보기』 하나뿐이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겨우 짬을 내어 작년 EIDF 출품작 <존 버거의 사계>를 보았다. 제목만 보면 존 버거와 보내는 사계절 이야기 같지만, 각각의 계절이 다루는 내용은 너무도 이질적이다. 이 다큐는 존 버거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편린 몇 조각만을 던져준다. 김현우 피디는 "연출자는 사상가로서 존 버거의 생각을 90분 안에 친절하게 설명하는 방식을 택하는 대신, 얼핏 혼란스럽지만 그의 활동을 형식적으로도 대변하는 구성을 택"했다고 썼다. 여태 미뤄두기만 했던 독서를 다큐로 달래며, 나는 『제7의 인간』이라는 책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8호부터 작가-번역가 시리즈를 싣고 있는 악스트는(굳이 설명하면 두 개의 글인데, 번역가가 본 작가, 편집자가 본 번역가 순이다), 이번 호에서 존 버거에 대한 김현우 피디의 글과 함께 존 버거의 「자화상」을 실었다. 밀린 악스트를 얼른 다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애도하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정리해본다. 일단 가지고 있는 『다른 방식으로 보기』부터..




























바우만의 죽음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는데, 그것은 이미 그의 책을 몇 권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맨 처음으로 읽었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이 나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지 않아서, 그와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액체근대』를 읽으며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을 실감했고, 그의 책을 열심히 찾아서 사기 시작했다. 『액체근대』의 문제의식은 2000년에 발표된 책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현재도 유효하다고 나는 생각하며, 그가 21세기에 가장 의미있게 다루어져야 할 사회학자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나온 책들이 줄곧 대담집이어서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이 나왔으면 하고 내심 바랐는데, 결국 그 희망은 허망한 것이 되었다.


바우만의 책이 국내에 나온 양도 꽤 많고 독자층이 적지 않은데도, 국내 학계에서는 그리 크게 연구되지 않는 모양이다. 부고 소식을 듣고 내가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를 검색해 보았을 때, 서평을 제외하면 그를 다룬 논문은 열 편이 채 되지 않았다. 혹자는 바우만의 책이 체계를 따르지 않아서 학자들이 외면하는 것 같다고 했는데, 문화비평가 또는 사회비평가 정도로 다루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의 사상이 가장 절실한 시기는 바로 지금이 아닐까.


바우만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가져다 준 책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이다. 이 책을 발표했을 때 바우만은 60대였다...(그래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 것인가) 임지현 교수는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테제를 한 걸음 더 밀고 나아간 홀로코스트에 대한 '악(惡)의 합리성' 테제"라고 평했는데, 내가 읽게 될 바우만의 다섯 번째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네 번째 책은 사놓고 여태 읽고 있지 않은 『사회학의 쓸모』이다..


바우만의 책에서 줄곧 강조되는 결론은 비판적 회의주의인데, 이런 대안을 두고 구체적이지 않다고 비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나는 지금처럼 비판적 회의주의가 절실했던 시기를 만난 적이 없다... 사유의 부재를 자랑처럼 늘어놓는 시대에 비판적 회의주의만큼 구체적인 대안이 있을까. 그런 점에서도 가장 절실한 생각을 내놓았던 한 현자의 죽음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결국 이들의 죽음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끝없는 회의가 남는 자들의 몫이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 내가 처음 『액체근대』를 읽고 남긴 별점은 네 개였는데, 이것은 내가 그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괄호를 닫지 않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처음엔 번역만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음을 깨닫게 한 바우만의 문체이다. 대담집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바우만의 문체는 긴 만연체를 자랑하고 삽입절도 많이 쓰인다. 특히 삽입절은 한국에 익숙하지 않은 문체여서 바우만 읽기를 주저하게 되는 요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천천히 곱씹으며 읽으면 다 읽히는 문장이고, 그 고행만 잘 참고 넘기면 현대 사회에 대한 가장 비판적인 통찰을 남긴 바우만과 마주할 수 있다..



사회학을 하는 길에서 `참여`와 `중립`을 선택할 여지는 없다. 참여하지 않는 사회학은 아예 불가능하다. 대놓고 밝히는 자유주의적 입장에서부터 철두철미한 공동체주의적 입장까지 오늘날 통용되는 수많은 사회학 상표들 한가운데서 도덕적 중립 입장을 취하려 한다면 이는 헛된 노력이다. 사회학자들은 자신들의 글이 지닌 `세계관`의 효과나, 인간의 개별적 혹은 연대의 행동에 그 세계관이 미치는 여파를 부정하거나 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모든 다른 인간들이 나날이 직면하고 있는 선택의 책임을 저버리는 대가를 치러야만 한다. 사회학이 하는 일은 그러한 선택들이 진정 자유로운지, 인류가 지속되는 동안 그 자유가 유지되는지, 더욱 더 자유로워지는지 잘 살펴보는 일이다. (『액체근대』, 3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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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1-18 17: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리말로 번역된 바우만의 글이 읽기 어려워서 학자들 입장에서는 연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바우만이 책에서 언급한 핵심 개념이나 용어를 통일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아무 2017-01-18 17:45   좋아요 0 | URL
liquid modernity만 해도 제각각이긴 하죠. 액체근대, 유동하는 근대/현대 등.. 일단 modernity가 우리나라에서 근대/현대로 둘 다 번역되는데, 그 차이가 많이 크다 보니... 바우만이나 존 버거의 평전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벤야민 평전도 여태 안 나오고 있는 현실이지만ㅠㅠ
 
아무도 아닌
황정은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내 나름대로 황정은 소설을 분류하면 크게 둘로 나뉜다. 첫 번째는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부유하거나(대니 드비토) 땅 밑으로 추락하는 존재들(낙하하다)을 그린 작품으로, 일곱시 삼십이분 코끼리열차의 그림자, 파씨의 입문이 여기에 속한다(예외가 있어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마더소년같은 작품들도 그렇고, 파씨의 입문에서도 일탈하는 몇몇 단편들이 있는 까닭이다). 이 존재들은 땅이라는 직선과 삼각형을 이루며 위/아래로 떠돈다(“세 개의 점이 하나의 직선 위에 있지 않고 면을 이루는 평면은 하나 존재하고 유일하다.”).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기점으로 황정은 작가의 작품세계가 땅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는 비로소 작가가 현실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신호가 아니다. 부유하던 존재들이 땅이라는 직선에 잠식당하기 시작해 작품세계 역시 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번에 나온 신작 아무도 아닌역시 그 연장선상에 있는 단편집이다.

 

아무도 아닌에서 자주 마주하는 질문 중 하나는 피해자가 되지 않기를 선택한 화자들의 죄책감이다. 진짜 가해자는 얼마나 치밀한지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이미 당해버린 피해자와 한사코 그 무리에 합류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만 존재한다. 프리모 레비식으로 말하면 구조된 자의 죄책감이다. 그들(그들은 결국 우리다)모두를 당혹스럽고 서글프게 만든 것은 내가 아니라고(상류엔 맹금류, 88) 항변하지만, 이런 항변의 강도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가 세계의 폭력에 비-존재가 되어버린 존재들을 방관한 비정한 목격자. / 보호가 필요한 소녀를 보호해주지 않은 어른.”(양의 미래, 56)이 되었다는 반증이다. 작가는 이렇게 쓴다. “네 탓이라고 누군가 노려볼 때 그게 왜 내 탓이냐고 항변하고 싶은데 생각하고 보면 내 탓인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삶. 멀쩡하게 사는 것 같다가도 불규칙한 주기로 돌아오는 혜성 같은 그런 심정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는 삶.”(*)

 

작가가 생각하는 폭력의 근원 또는 가해자는 상류의 자리로 종종 나타나는데, 거기에는 맹금류, 또는 아래에서 시끄럽다고 하든 말든 무라무라무라(누가, 130)라고 떠드는 자들이 있다. 피해자가 되기 싫어서, 즉 비-존재가 되기 싫어서 우리는 상행(上行)을 꿈꾸지만, 상류로 가는 길에는 월식이 시작되고 길조차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이 드리운다. 우리를 둘러싼 벽이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흉(웃는 남자, 173)하다는 것을 감추기 위해 세계는 가급적 단순한 것이 되(웃는 남자, 166)라고, “조금 더 들어가보자(누구도 가본 적 없는, 154)는 생각도 하지 말고 챙기라는 것들만 챙기며 살라고 요구한다. 똥물을 먹지 않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이, 그 물을 먹지 않을 수 없는 제희의 가족, 진주, 도도의 옆에서 쓰러진 노인은 비-존재가 되어 직선에 파묻힌다. “패턴의 연속, 연속, 연속(웃는 남자, 184)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상을 향해 분노의 화살을 똑바로 겨누고 있을까. 벽 너머에 터널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처럼, 세계는 우리의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버릴 만큼 영악하다. 심지어 우리를 한통속으로 만들어버리는 데도 능수능란하다. 누가에서 가 겨우 이사를 온 집의 이전 세입자인 노인을 보며 정당하게 세를 내고 이 집으로 들어왔을 뿐인데 노인을 내쫓았다는 기분(127)을 느끼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소음에 고통스러워하며 스스로 계급적 인간임을 인식하는 가 하는 일은 금융권에서 연체금을 독촉하는 상담원이고, 윗집의 소음에 분노하여 취하는 의 행동은 또다른 소음이 된다. 피해자가 되지 않은 화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나지막이 생각하는 것뿐이다. “안됐다······ 거기까지. 그 너머는 벼랑이니까.”(129)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리처드 세넷의 논의(투게더)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동정은 나는 네가 무엇을 느끼는지 알고 있다, 지금 나는 너다라고 말하는 것이고, 공감은 나는 너와 다르다, 그러나 나는 너에게 주의깊은 관심을 쏟고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혹은 동정은 같아지면서 멈추는것이고 공감은 다른 채로 나아가는것이다.” 이후 신형철은 이렇게 결론짓는다. “sym-pathy그 감정과 함께 있음이어서 ()’, 같아져 있음’(상태)이고, em-pathy그 감정 속으로 들어감이어서 ()’, 함께 하려 함’(실천)이다.”(**) 동정(sympathy)과 공감(empathy)에 대한 상투적인 정의에 따르면 안됐다는 동정이지만, 신형철의 정리대로라면 이는 동정도 공감도 아니다. “안됐다는 상대가 나와 다름을 전제로 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상상력을 발휘해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려는 노력도, 함께 하려는 실천도 없다. 그러니 우리는 가라앉은 자를 찾고자 자신을 던지는 이들에게 아무도 나를 신경쓰지 않는데 내가 왜 누군가를 신경써야 해? 진주요, 아줌마 딸, 그애가 누군데요? 아무도 아니고요, 나한텐 아무도 아니라고요.”(양의 미래, 59)라며 씨르르, 하고 우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가 우리에게 생존의 윤리만을 들이밀었기에 발생한 태도이지, 우리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잘못은 동정하기 위해 공감하려 노력하지 않은 것에, 구조된 자로서 아파하지 않은 데 있다.

 

그렇다면 이 엄혹한 세계에서 쓴다는 것은, 아무런 쓸모도 없어 보이는 쓰기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작가가 찾은 답은 명실에 있다. “수면 위로 드러난 이름 아래 차갑게 잠겨 있는 이름들(99), 그 일각(一角)을 드러내는 것. 그래서 명실은 실리를 기억하기 위해 쓰기를 택했다. 그녀가 가진 것은 파편들이고 메아리들일 뿐이지만, 그 작은 불빛들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수평선을 만드는 것(109)이다. 그래서 명실은 쓰려고 한다. 실리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을. “모든 것이 사라져가는 이때필요한 것은 기억과 호명이요, “그 아름다운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실리가 생전에 책을 냈더라면 그녀의 책도 한 권이나 어쩌면 몇 권쯤은 있었을 것이다. 실리가 이름을 적어 선물했을 테니까. 아마도 그 책의 첫 페이지엔 명실아, 하고 적혔을 것이다. 다른 것 없이 명실아. 언제고 자신의 책을 낸다면 첫 번째 증정본엔 그렇게 적을 거라고 실리는 말하곤 했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고맙다거나 사랑한다거나 말하지 않고, 명실아. 그녀는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대답했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92)


이 단편집에서 다른 작품과 가장 다른 톤을 가진 작품은 누가복경일 텐데, 나는 복경을 읽으면서 황정은 소설이 다소 무서워졌다는 생각을 했다. 매장을 찾는 고객들에게 항상 웃늠을 지어야 하는 화자는 누군가의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진술하고 있다. 이야기 도중 불쑥 튀어나오는 반말이 주는 날카로운 감정의 기복도 그렇지만, “도게자에 대한 이야기는 읽으면서 정말 섬뜩했다. 이후 그녀는 자존감을 가질 틈도 주지 않는 이 세계에 대고 존귀하다는 것은 존나 귀하다는 의미냐고 묻는다. 이 소설은 소파를 찢지 않았다며 항변하는 그녀의 진술이기도, 살기 위해 똥물을 먹어야 했던 비-존재들의 분노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 엄혹한 세계를 고발하고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더욱 엄정(嚴整)하게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악에 받쳐 뜨거운 화자의 목소리와 달리, 이 소설은 나에게 매우 차갑다.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조건서론에서 이렇게 쓴다. “사유하지 않음, 즉 무분별하며 혼란에 빠져 하찮고 공허한 진리들을 반복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뚜렷한 특징이라 생각된다.” 우리에게 사유의 중단을 요구하고 생존만이 진리라고 말하는 세계의 폭력. 이 안에서 가라앉은 자, 또는 가라앉고 있는 자에 대한 아픔을 느끼는 것이 존재의 비-존재화를 막기 위한 시작이다. 그래서 황정은 소설의 화자들이 느끼는 죄책감은 소중하다. 아렌트는 인간의 어떤 다른 능력도 사유만큼 약하지는 않다고 썼지만, 그 약한 사유가 어둠 속에서 수평선을 만든다.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음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끊임없이 호명함으로써 기억하는 것, 그것이 동정을 향한 공감의 시작이다.


*  황정은, ‘작가노트’, 2014 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34-35.

** 신형철, 감정의 윤리학을 위한 서설 1, 문학동네2015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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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1-01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광화문에서 시청쪽으로 올라오니 자정이 다 되어가는데도 아랑곳없이 군가 같은 걸 틀어놓고 태극기를 흔들며 ˝무라무라무라˝ 하는 맹금류 어르신들이 있더군요. 촛불을 든 사람들과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의 대비가 너무 기괴했습니다. 제게 극악스러운 표정으로 태극기를 흔들던 노인을 보며, 저는 당혹스럽고 서글프고...조금 비참한 심정이었습니다.
무수한 평행선들....

아무 2017-01-01 11:55   좋아요 1 | URL
맹금류라기보단 어떻게든 상류에 닿으려 발버둥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요.. 맹금류는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부분도 있고.. 어떻게 사유하는지, 무엇을 사유하는지도 중요하지만, Agalma님이 말씀하신 장면을 생각하니 일단 정지된 사유를 시작하는 게 더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은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겠지만, 당신들이 믿고 기댔던 가치들은 이제 생명을 다 했다고, 이제 끝장이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그들은 또 듣지 않겠지만..

AgalmA 2017-01-01 12:38   좋아요 1 | URL
성질이 사납고 육식을 뜯는 맹금류와 그들이 비슷해보인다 싶어 본문과 연결해 ˝맹금류˝라 표현했는데 그것은 다분히 외형만의 연결이었고, 맹금류의 서식 속성에 대한 아무님의 말씀 듣고 보니 너무 간단히 연결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적 고맙습니다.
아무님이 쓰신 ˝정지된 사유˝라는 표현은 좀더 정교하게 말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그들이야말로 정지된 맹목 상태에 빠져 있으니까요. 그들은 사유가 없다 라고 배제하는 전제를 두더라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민주 정부 때는 사유하는 인간들의 힘이 긍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었던 거 같다고요. 지금의 전세계적인 우경화 조짐을 보면 이런 상황은 계속 순환되어 나타나겠죠. 그래서 역사의 반복이란 말도 끊임없이 나오는 걸 테고요. 인간은 변화무쌍할 수도 있지만 또한 단순하며 변질하기 쉬워요...

아무 2017-01-01 13:13   좋아요 1 | URL
Agalma님이 그들을 보고 맹금류를 떠올리신 것도 저는 의미있는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맹금류가 되고 싶어 발버둥치는 사람들일 테니.. 구조된 자의 나쁜 예라고 생각합니다. 운이 좋아 가라앉지 않았을 뿐인데, 가라앉지 않은 걸 세계의 덕으로 돌리는 사람들..
말씀을 듣고보니 그들을 ˝정지된 사유˝의 상태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쉬운 배제라는 생각이 들어 반성하게 됐어요. 사유의 긍정적인 힘으로 얻은 민주화라는 성취가 무너지는 건 너무나 쉽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말씀처럼 인간은 쉽게 변하죠. 그래서 지금의 우경화 조짐이 심상치 않게 보이고.. 전 요즘 행동이 너무 절실해서 사유가 다시 홀대받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이럴수록 필요한 건 좀더 깊은 사유와 그걸 정교하게 표현할 수 있는 세밀한 언어겠죠..

2017-02-08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27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