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함석집 귀퉁배기에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방고래에 불 들어가듯 고욤나무 한 그루에 눈보라가 며칠째 밀리며 몰아치는 오후
그녀는 없다, 나는 그녀의 빈집에 홀로 들어선다
물은 얼어 끊어지고, 숯검댕이 앙궁이는 퀭하다
저 먼 나라에는 춥지 않은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끌어낸다
이 세상 저물 때, 그녀는 바람벽처럼 서럽도록 추웠으므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저 먼 나라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밖이 추운 날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맨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그럴 줄 모르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낸다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
- 문태준 시집 <가재미>, 가재미3 -
먼 길을 떠난 그녀의 흔적을, 혹은 나의 미련을 애증을 끊어내듯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외롭고 처량하고 슬픈 몸짓이지만 자유를 얻은 그녀와의 마지막 고리를 끊어주는 마음은 모질다. 남은 이의 몫을 짊어지고 살테지만 저 먼나라에서 춥지않게 살아갈 그녀가 습관처럼 맨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다 되었다.
불현듯,
입안에 핀 곰팡이를 발견하고 뇌인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렇게도 사는구나
그건 긍정이다 안심이다
선택이건 강요건
내 잣대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