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말랭이 만들기에 도전(?) 중이다. 손가락에 물집이 그 고행의 증거지만 자랑할 일은 아니다. 간단한 듯 하지만 의외로 번거롭다. 적당한 굵기로 써는 것이 일단은 칼질 서툰 내게 죽음이었고, 적당히 물기 마른 무를 실에 꿰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모양 좋게 꿰어서 마당 한켠 바람 잘 드는 곳에 주렁주렁 걸어놓으니 흐뭇하긴 하다만. 

한 줄도 쓰기 싫다는 얼토당토 않은 기분,이 우습다. 읽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고,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만큼 그저 빠르다.  이렇게도 사는구나, 자각하는 순간이 있다. 울어야할지 웃어야할지 아마도 엉거주춤한 표정으로 서 있을 모습만 상상한다. 단지 상상만이다. 나는 저기도 거기도 아닌 여기 있고. 내일도 모래도 어제처럼 오늘처럼 여기 있고. 사람 사는 거, 진짜 별 거, 아니구나. 계획대로 흘러가지도 않고, 제대로된 계획을 세운 적도 없지만 저마다들 사는 모습은 거기서 여기. 힘들다고 하면서도 죽도록, 힘들다고 하면서도 술마시고 노래하고 웃을 수 있는 게 사람이다. 사는 게 죽기보다 싫다면 죽어야겠지. 다들 똑같다고 말해봐야 소용 없다. 삶은 삶대로 죽음은 죽음대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고 처한 자리가 있겠지.  그래서 노력 중이다. 산 자든 죽은 자든 쿨하게 이별하는 연습을. 안녕 잘가요,라고 말할 수 있는 연습을.   

포인세티아를 선물 받았다. 빨간 이파리가 마치 겨우내 따뜻하게 살라는 의미 같다. 그저께 받은 로즈마리 화분 옆에 나란히 두고 보는 중이다. 여기서 행복하기를.  



    

 

 

 

 

 

 

 

 

 

 

 

겨우내 피고 지는 사랑초랑 로즈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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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함석집 귀퉁배기에는 늙은 고욤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방고래에 불 들어가듯 고욤나무 한 그루에 눈보라가 며칠째 밀리며 몰아치는 오후

그녀는 없다, 나는 그녀의 빈집에 홀로 들어선다

물은 얼어 끊어지고, 숯검댕이 앙궁이는 퀭하다

저 먼 나라에는 춥지 않은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끌어낸다

이 세상 저물 때, 그녀는 바람벽처럼 서럽도록 추웠으므로

그녀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식은 재를 끌어내 그녀가 불의 감각을 잊도록 하는 것

저 먼 나라에는 눈보라조차 메밀꽃처럼 따뜻한 그녀의 방이 있는지 모른다

저 먼 나라에서 그녀는 오늘처럼 밖이 추운 날 방으로 들어서며 맨 처음 맨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습관처럼 그럴 줄 모르지만

이제 그녀를 위해 나는 그녀의 집 아궁이의 재를 모두 끌어낸다

그녀는 나로부터도 자유로이 빈집이 되었다

    - 문태준 시집 <가재미>, 가재미3 -

 

먼 길을 떠난 그녀의 흔적을, 혹은 나의 미련을 애증을 끊어내듯 아궁이의 재를 끌어내는 모습을 상상한다. 외롭고 처량하고 슬픈 몸짓이지만  자유를 얻은 그녀와의 마지막 고리를 끊어주는 마음은 모질다. 남은 이의 몫을 짊어지고 살테지만 저 먼나라에서 춥지않게 살아갈 그녀가 습관처럼 맨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쓸어볼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되었다. 다 되었다. 

불현듯,

입안에 핀 곰팡이를 발견하고 뇌인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 이렇게도 사는구나

그건 긍정이다  안심이다

선택이건 강요건

내 잣대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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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층 높이의 빌라들이 우후죽순 드러서는 요즈음, 근처의 주택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말 못할 속을 끓이고 있다. 구청에도 쫓아가고 시청에도 쫓아가 보지만 말만 그럴싸할 뿐 뾰족한 방도가 없다. 건물과 건물 사이에 끼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고, 제발 우리 뒷집 혹은 옆집이 땅을 팔아치우는 불상사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감나무는 가지 앙상한 봄 겨울 빼고 불편한 타자의 시선으로부터 적당히 시야를 가려준다. 그의 그늘과 그림자는 포근과 안온그 자체다. 

재개발 재건축을 하니 마니. 누가 소송을 걸고 누가 찬성을 하고 반대를 하느니 마느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어설프게 아는 것도 병이고 전혀 모르는 것도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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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국화 향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서리 내리기 전, 눈 내리기 전 바삐 서둘러 핀 꽃들 천지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보고 저녁 해가 넘어가고 보아도 한결 같다.  오고 가는 이웃, 손님들이 코를 들이대고 주머니 가득 향을 훔친다. 인지상정. 꽃 앞에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인간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된다.

이웃에서 준 모과 두 개를 얇게 썰어 모과차를 담갔다. 설탕 속에 잠긴 모과의 깊고 은은한 향 앞에서 즐거워 하는 마냥 유순한 여자가 진짜 나일까 싶도록 모과의 향은 마법과 같다. 샛노란 껍질을 모아 소쿠리에 말려 방 한구석에 놓는다. 겨우내 마른 콧속이 시원하게 뚫리기를 바라며.      

당신과의 불화.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러나 어설픈 세뇌와 최면은 곧 상처를 되돌린다. 잘 지내는 척 한다. 착한 척 한다. 너그러운 척 한다. 그게 위선이란 걸 당신은 모를까. 가끔씩 있는대로 성질을 부리고 욕도 하고 말도 안하고 맘에 있는 말 바닥까지 드러내고 싶다. 할머니와는 그게 가능했는데 당신과는 안된다. 슬프게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낫지를 않는 거다. 당신이 주지 않은 것들, 챙기지 못한 것들, 그 시절, 그 나이에 듣고 싶었던 말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위안이라면 그때 몰랐던 것은 지금도 모를 거라는 거. 당신은 그냥 그렇게 평생을 살거라는 거. 정말 간절히 당신을 좋아하고 신뢰하고 존경하고 싶다. 그런 바탕을 디디고 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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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기도 읽기도 소원하다. 띄엄띄엄 대충 쓰는 일도 마찬가지.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서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책장을 보면 비우고,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극단적으론 찢거나 태우거나 하고 싶은데 장소가 여의치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응시하며 인상만 쓰고 있다. 이렇게 버려져야 할 것들을 왜 그렇게 악착같이 모으고 간직했을까.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긴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거다. 버리는 일도 나쁘진 않다. 버려야할 나이에 이르렀다는 거겠지. 근데 책마저 버리기 시작하면 내게 남는 게 뭐지. 아무것도 없이도 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답이 없다.




껑충 커버린 목련나무를 벴다. 여름 내내 거슬리던 잎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의 서늘함이란. 놀라웠다. 봄이 되면 또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런 놈이다. 뿌리를 말려버리지 않는 이상은. 미안한건 새들이다. 거처 삼아 오다가다 쉬어가고 나들이 나와 놀던 이름도 모르는 다정했던 연인 새들. 우거진 잎이 사라지게 해서 미안.




대국에서는 노란 꽃잎이 벌어지는 중이고, 소국에선 자줏빛 꽃잎이 살포시 잎을 벌리고 있다. 너희들로 해서 가을이 기대된다. 화분에 옮겨 심은 빈카는 잎이 축 늘어져 있다. 살 수 있을까. 아님 그대로 시들어 버릴까. 변덕스런 주인의 도박에 몸살을 앓는 꽃이 불쌍하다. 윗가지를 잘라 땅에 꽂아놓았던 엔젤트럼펫에선 새순이 돋아났다. 강하고 강한 녀석이 대견하다. 마지나타랑 행운목, 스파디필룸은 제일 먼저 집안으로 들였다. 따뜻한 내년 봄까지 동거동락을 위하여. 

10월에 시작된 곶감 만들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감의 익은 정도에 따라 곶감의 질이 달라진다는 중요한 사실도 발견했다. 세 번에 걸쳐 곶감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작업은 아무래도 실패다. 군데군데 곰팡이도 피었고, 급기야 투명한 진물 같은 게 흘러나오는 것도 있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너무 잘 익은 부작용이지 싶다. 가급적이면 단단하고 덜 익은 것들이 쉬이 마르고 형태가 곧다. 떫은 감을 우리는 것도 감의 익은 정도에 따라 시간차가 상당했다. 도합 세 번에 걸쳐 우렸는데 처음은 장장 36시간이 걸렸고, 두번 째는 24시간, 그리고 마지막엔 20시간이었다. 처음 시도한 것치곤 상당히 우수한 성적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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