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국화 향기가 절정에 이르렀다. 서리 내리기 전, 눈 내리기 전 바삐 서둘러 핀 꽃들 천지다. 아침에 눈을 떠서 보고 저녁 해가 넘어가고 보아도 한결 같다. 오고 가는 이웃, 손님들이 코를 들이대고 주머니 가득 향을 훔친다. 인지상정. 꽃 앞에만 서면 세상에서 가장 너그러운 인간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인간이 된다.
이웃에서 준 모과 두 개를 얇게 썰어 모과차를 담갔다. 설탕 속에 잠긴 모과의 깊고 은은한 향 앞에서 즐거워 하는 마냥 유순한 여자가 진짜 나일까 싶도록 모과의 향은 마법과 같다. 샛노란 껍질을 모아 소쿠리에 말려 방 한구석에 놓는다. 겨우내 마른 콧속이 시원하게 뚫리기를 바라며.
당신과의 불화.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그러나 어설픈 세뇌와 최면은 곧 상처를 되돌린다. 잘 지내는 척 한다. 착한 척 한다. 너그러운 척 한다. 그게 위선이란 걸 당신은 모를까. 가끔씩 있는대로 성질을 부리고 욕도 하고 말도 안하고 맘에 있는 말 바닥까지 드러내고 싶다. 할머니와는 그게 가능했는데 당신과는 안된다. 슬프게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치유받지 못한 상처는 낫지를 않는 거다. 당신이 주지 않은 것들, 챙기지 못한 것들, 그 시절, 그 나이에 듣고 싶었던 말들이 문득문득 떠올라 가슴이 미어진다. 위안이라면 그때 몰랐던 것은 지금도 모를 거라는 거. 당신은 그냥 그렇게 평생을 살거라는 거. 정말 간절히 당신을 좋아하고 신뢰하고 존경하고 싶다. 그런 바탕을 디디고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