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의 ‘몽고반점’을 읽었노라 하셔서, 나는 엇비슷한 시기에 읽은 작년도 수상작인 김훈의 ‘화장’ 이야기를 건넸다. 매해마다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구매하시는 분인지라 꼼꼼히 읽은 뒤에 빌려주겠노라 하셨는데, 솔직히 나는 김훈의 ‘화장’도 상당히 거북하게 읽은 후였다. 그의 에세이는 더러 접했어도 소설로는 아마도 처음일 ‘화장’은 작가에 대한 호감도가 반으로 싹둑 잘리고야 말았다. 


이 소설은 뇌종양에 걸린 아내의 길고 긴 투명생활과 그 죽음의 과정을 다루었는데, 그 지독히도 건조하고 사실적인 문장에 맞물려 여자, 아내를 바라보는 남편, 작가의 시각에 기가 질렸다. 이 소설이 말하고자 하는 의도나 작품성과는 별개로 남편의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의 치부들, 실수들, 병이 가져온 생생한 고통의 흔적과 소리, 냄새를 쫓아가는 무감각한 사유가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입장을 바꿔 남편에 대한 아내의 눈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가정을 할 정도로. 김훈이라는 작가는 이 시대의 보편적인 정서를 가진 남자이니 당연하지 하면서도 불편했다.


소설 속의 남편은 회사에서 유능한 간부사원이면서 같은 회사 여직원을 사모하고 있다. 남편은 아내의 퇴색하고 늘어진 살갗을 보면서 젊고 싱싱한 여직원을 떠올린다. 그리고 죽은 아내의 영정을 앞에 두고도 사모하는 여직원을 생각한다. 아름다움과 추함, 산 것과 죽은 것의 가치 앞에서 절절한 고통 끝에 죽은 반려에 대한 애통함은 그림자도 없다. 그 죽음이 아무리 필연이고 삶보다 나았다고 해도 말이다.


죽음, 늙음은 흔한 소재다. 다루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화장’은 삶과 죽음, 결혼 그리고 부부, 남자와 여자라는 존재에 대한 많은 생각을 낳는다.  ‘화장’은 병과 죽음 앞에 선 아내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남겨질 남편을 떠올릴 것 같다. 타인보다 낯선 남편이라는 관찰자의 차갑고 메마른 시선에 노출된 약한 존재로서의 아내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는, 한달음에 출발점에서 종점까지 달려가지 않는다. 시는 가급적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세면서 혹은 겨울에 보리밭을 밟듯 꾹꾹 눌러주면서 읽어야, 비로소 시답다. 낯선 시집을 건네받고 겉표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제목과 이름, 두께를 온전히 익힌 다음에야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벌려 매끈한 종이를 더듬는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가장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을 골라내어 천천히 맹물을 씹어 삼키듯,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마흔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

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

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정말 그럴까, 하는 기대감이 마구 솟구친다. 서른을 노래하는 시는 많이 보았어도 마흔은 흔치 않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지라도 일단은 믿고 싶어진다. 들었던 시집을 저 멀리 놓아둔다. 또 언제 바라볼지는 기약할 수 없어도 오늘은 배가 부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날개 2005-01-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시를 보니 나이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마흔에 가까와져서 그럴까요? 유독히 와닿는군요..
말씀대로 꾹꾹 눌러주며 읽으려고 노력 했습니다..ㅎㅎ

로드무비 2005-01-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울과 몽상님의 다가올 마흔 살을 위해.^^

겨울 2005-01-21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 지금 '혜잔의 향낭' 읽고 있어요.^^ 두께부터 맘에 드네요.
로드무비님, 마흔 살을 향해 묵묵히, 씩씩하게 가고 있는 중입니다.^^
 

 

오랜만에 김수영의 시집과 산문집을 꺼내 읽는다. 시인이란 태생이 천형을 짊어진 죄인인가, 어쩌면 이렇게 비감하고 여린가. 시를 반역하는 생활을 한탄하고 또 한탄하는 시인을 떠올리자니 가슴이 아리다. 예전엔 몰랐는데, 이 사람의 시에는 유난히 ‘설움’이라는 단어가 많다. 삶에, 생활에, 현실에 자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비루함, 구차함, 불만족을 토로하는데 철부지 아이 같기도 하고, 이렇게 순수하고 결백하니 시인이지 싶기도 하고, 그러면서 슬며시 웃음도 난다.


내가 으스러지게 설움에 몸을 태우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으스러진 설움의 풍경마저 싫어진다.

나는 너무나 자주 설움과 입을 맞추었기 때문에

가을바람에 늙어가는 거미처럼 몸이 까맣게 타버렸다. <거미>


비가 그친 후 어느 날

나의 방안에 설움이 충만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방안에서 익어가는 설움>


나는 구태여 생각하여본다

그리고 비교하여본다

나는 모자와 함께 나의 마음의 한 모퉁이를 모자 속에 놓고 온 것이라고

설운 마음의 한 모퉁이를. <시골 선물>


오늘은 필경 여러 가지를 합한 긍지의 날인가보다

암만 불러도 싫지 않은 긍지의 날인가보다

모든 설움이 합쳐지고 모든 것이 설움으로 돌아가는

긍지의 날인가보다

이것이 나의 날

내가 자라는 날인가보다.   <긍지의 날>


영사판 양편에 하나씩 서있는

설움이 합쳐지는 내 마음 우에. <영사판>


헬리콥터여 너는 설운 동물이다. <헬리콥터>


마음을 쉰다는 것이 남에게도 나에게도

속임을 받는 일이라는 것을

(쉰다는 것이 무엇이라는 것을 알면서)

쉬어야 하는 설움이여.   <휴식>


모두들 공부하는 속에 와보면 나도 옛날에 공부하던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당시의 시대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다고

누구나 어른들은 말하고 있으나

나는 그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고

구태여 달관하고 있는 지금의 내 마음에

샘솟아 나오려는 이 설움은 무엇인가. <국립도서관>


남의 일하는 곳에 와서 덧없이 앉았으면 비로소 설워진다

어떻게 하리

어떻게 하리.   <사무실>


질서와 무질서와의 사이에

움직이는 나의 생활은

섧지가 않아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여름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을 읽고 뭔가를 쓰려고 노력하게 된 건 최근의 일이다. 의무적으로 독후감을 쓴 학창시절 이후로는 애써 시간을 내어 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살았다. 알라딘을 이용해 책을 사고, 읽고, 다른 분들의 리뷰며, 페이퍼를 읽게 되면서, 시간을 쪼개 끙끙거리며 짧은 글을 완성하고 자족하는 요즘이 그래서 무척 행복하다. 그러다보니 예전에 읽고 쌓아둔 책들을 보면 별점은커녕 감상 한 줄 못 남긴 게 미안하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그런 경우다. 술술 읽히는 재미에 한 권씩 사 모았지만 이렇다할 코멘트 하나 달아주지 못했다. 거기다 얼마 전에 조카아이에게 안겨버렸으니 아무리 말 못하는 책일지라도 서운할 테다. 요즘엔 좀 덜하지만, 어떤 책이 좋으면 그 작가의 모든 책을 읽어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20대의 그런 치기와 열정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30대에 들어서며 퇴색하였다. 읽고 난 책에 연연하지 않고 빌려주고, 나눠주고 돌려받아도 그만 안 받아도 그만이 되었다. 무엇이든 많이 소유할수록 삶의 무게가 나간다. 굳이 욕심을 부려 손에 얻은들, 그 즐거움도 잠시고 지키기에 급급하니, 비어있는 마음만 못하다는 뜬금없는 생각........ 요컨대, <로마인 이야기>가 있던 책장의 빈자리가 쓸쓸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4-12-20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를 읽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네요. 일년에 한권씩 완성한다는 시오노 나나미에 보조를 맞추어 읽어볼까 했는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5권이후로는 손에 잡히지 않아서 읽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겨울 2004-12-20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한 10권 정도 읽었는데, 건성건성 꾸역꾸역 이었어요. 처음 몇권은 신나고 재밌었는데 점점 의무감에 읽히더라구요. 덥썩 보따리를 싸서 넘긴 걸 봐도 그다지 애착을 느끼지 않는 책인 모양입니다.
 

 

........ 죽음을 앞에 둔 중위는 묘한 도취를 맛보았다. 이제부터 자신이 시작하는 것은, 일찍이 아내에게 한번도 보인 적이 없는 군인으로서의 공적인 행위였다. 전쟁터에서의 결전과 똑같은 결의가 필요한, 전쟁터에서의 죽음과 동등동질한 죽음이었다. 자신은 지금 전쟁터의 모습을 아내에게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것은 잠깐 동안 중위를 알 수 없는 환상 속으로 이끌었다. 전쟁터의 고독과 죽음과 눈앞의 아름다운 아내, 이 두 가지 차원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도 없는 둘의 공존을 구현하며 지금 자신이 죽으려고 하고 있다는 이 감각에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는 감미로운 것이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행복이란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되었다. 아내의 아름다운 눈이 자신의 죽음 한순간 한순간을 시중들어 주는 것은, 향기 짙은 미풍을 맞으며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곳에서는 무엇인가가 허락되어 있었다.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남모르는 경지에서, 다른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은 경지가 허락되어 있는 것이었다. 중위는 눈앞에 있는 새색시처럼 아름다운 군기와, 그것들 모두가 화려하게 미화된 환영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들은 눈앞의 신부와 마찬가지였으며, 어디에서라도, 아무리 먼 곳에서라도, 끊임없이 맑은 눈빛을 발하며 자신을 주시해 줄 존재였다. 레이꼬도 또한, 죽음을 받아들이려고 하는 남편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이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생각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군복이 잘 어울리는 중위는 그 늠름한 눈썹, 그 꾹 다문 입술과 함께,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아마도 남자가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리라.


<우국>은 미시마  유키오가 어떤 인물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단편이다.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자 동료들과 더불어 죽기를 결심한 다께야마 신지 중위는, 그의 어린 아내에게 자신의 할복을 지켜볼 것과 그 후, 더불어 자결할 것을 권한다. 이것은 그들이 죽음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과장도 가식도 없이 이성적이며 냉정하게 묘사한 글이다. 죽음을, 할복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각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무섭도록 잔인하다 싶으면서도, 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 편의 소설로써는 정말이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강렬하여 충격을 던진다. 아내 앞에서 배를 가르는 남편과, 그것을 흔들림 없이 지켜보며 극한의 고통에 다다른 남편에게서 결코 눈을 돌리지 않는 아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는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나는 한 때, 그들의 식민지였던 과거의 역사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이 같은 일본의 다른 얼굴에 대해 무조건 경계한다. 그들 나라의 영웅에 대해서도 괴물을 연상한다. 물론, 애국지사라는 이름의 괴물은 어디에나 있지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잉크냄새 2004-12-16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는 자살을 죽음의 미학으로 승화하기까지 한다고 하더군요. 자살에 대한 인식과 현실 사이의 괴리와 모순이 가장 짙게 남아있는 곳이 일본이라고 합니다.

겨울 2004-12-16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 안에서의 자살에는 중독성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휩쓸립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글은 특히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고 아름답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