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한달음에 출발점에서 종점까지 달려가지 않는다. 시는 가급적 한 걸음 한 걸음 발자국을 세면서 혹은 겨울에 보리밭을 밟듯 꾹꾹 눌러주면서 읽어야, 비로소 시답다. 낯선 시집을 건네받고 겉표지를 오래도록 들여다보며 제목과 이름, 두께를 온전히 익힌 다음에야 엄지와 검지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벌려 매끈한 종이를 더듬는다. 그리고 고르고 골라 가장 가슴에 와 닿는 한편을 골라내어 천천히 맹물을 씹어 삼키듯, 소가 되새김질을 하듯, 읽고, 읽고, 또 읽는다.
마흔
서른이 될 때는 높은 벼랑 끝에 서 있는 기분이었
지.
이 다음 발걸음부터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끝도 없이 추락하듯 내려가는 거라고.
그러나 사십대는 너무도 드넓은 궁륭 같은 평야로
구나.
한없이 넓어, 가도가도
벽도 내리받이도 보이지 않는,
그러나 곳곳에 투명한 유리벽이 있어,
재수 없으면 쿵쿵 머리방아를 찧는 곳.
그래도 나는 단 한 가지 믿는 것이 있어서
이 마흔에 날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다.
정말 그럴까, 하는 기대감이 마구 솟구친다. 서른을 노래하는 시는 많이 보았어도 마흔은 흔치 않다.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힐지라도 일단은 믿고 싶어진다. 들었던 시집을 저 멀리 놓아둔다. 또 언제 바라볼지는 기약할 수 없어도 오늘은 배가 부르다.